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29화 (29/208)

029 루비아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데카드를 바라보는 엘리스에 일행 모두가 당황하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데카드가 페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물어도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 별다른 답변이 없었다.

당황의 침묵을 뚫고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암살자가 목숨을 구원받은 순간, 그 암살자는 은인의 목숨을 똑같이 한 번 구해줄 때까지 절대 은인의 곁을 떠나지 않아요. 저를 당신의 여정에 받아주세요.”짧은 순간, 데카드는 엘리스가 들어와서 얻어질 이득과 손해를 계산했다.

먼저 이득.

엘리스는 전직 갈까마귀 암살단의 조장으로 암살자 중에서는 탑티어의 실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암살자는 사람을 죽이는 게 끝이 아닌 정보 수집, 잠입에 특화돼있어 남들이 보면 안 되는 짓을 할 때 엘리스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손해는?’

손해를 따지자면 사실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밥값이나 여관 대여료가 조금 더 는다고 해도 바이퍼의 금고에서 얻은 돈이 있기에 그 정도는 티도 안 날 것이다.

데카드의 계산이 끝나고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좋아! 받아줄게.”

“감사합니다!”

엘리스는 만약 내쳐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으로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데카드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세이칼은 어떡할래?”

한창 세이칼이 기계를 고치고 있을 때 데카드가 그에게 자신과 같이 루비아로 가지 않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아, 그 답변 말이군.”

세이칼은 그날 이후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잘 때도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고민은 길었네만, 나에게 나오는 답변은 하나였네.”

“그게 뭔데?”

세이칼은 미소를 짓더니 뒤를 돌아 슬레이를 눈에 담았다.

“이곳은 아직 씻어내지 않은 보석이야, 나는 이곳에서 최대한 살아가 보고 싶네.”

“그런가.”

한 남자가 인생을 바꿀 정도의 결정을 지었다면 그걸 바꿀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여기 수고비야.”

“말했지 않는가, 돈은 받지 않겠다고.”

세이칼의 말은 무시한 채 데카드는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백금화 두 개를 꺼내 하나는 그에게, 하나는 멍 때리고 있는 로바드에게 건넸다.

“이, 이건……!!”

옆에서 세이칼이 이제 정녕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 표정으로 백금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가운데 로바드는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로바드! 이리 와봐.”

“네, 넵!!”

백금화가 손에 들려 있는 이상 그곳이 똥밭이라도 로바드는 언제든지 부름에 응답할 자신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풀어진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고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데카드 앞에 선 로바드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공손한 몸짓을 했다.

“귀 좀 대봐.”

데카드는 로바드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소근소근 얘기했고 그는 화들짝 놀라며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알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로바드가 뒷머리를 긁으며 사이즈가 안 나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젓자 데카드가 아쉽다는 듯 손에서 백금화 4개를 더 굴렸다.

“성공할 수 있다 말하면 4개 더 줄려 했는데 아쉽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어요!”

로바드는 일류 무인보다 빠를 태세 전환을 보이며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양손을 내밀었다.

“나중에 와서 확인할 거니까, 돈 먹고 튀면…….”

뒷말 또한 귓속말로 로바드에게 속삭여주자 그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걱정 마십쇼!”

로바드와의 거래가 끝나고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데카드가 레버를 당기고 그 위에 엘리스와 함께 올라섰다.

“잘 가시게.”

“즐거웠다.”

“안녕히 가십쇼!”

데카드는 기계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루비아로 향하는 정확한 마나 파장은 몰랐어도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방법은 알고 있으니 일단은 프로피로 가야 한다.

저번에 프로피의 기계 담당 마법사가 하는 마나의 파장을 유심히 지켜본 데카드는 그대로 옮겨 넣어 프로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슈욱-!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엘리스와 데카드, 짹짹이는 프로피로 이동했다.

“어서 오십쇼, 여기는 프로피 입니…….”

텔레포트 기계 담당 마법사가 업무에 지친 여행 가이드 목소리를 내다말고 기계에 올라타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말을 소리질렀다.

“너, 너는 위조범! 어떻게 돌아왔지?”

“위조범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런 상황이 생길 줄 데카드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루비아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신분증 위조 같은 잡다한 마법 범죄는 전부 집행관 관할이지? 빨리 날 루비아로 연행해.”

“너, 너가 그런 걸 어떻게……!”

담당 마법사는 아무런 저항에 의사가 없는 듯 수갑을 묶기 편하도록 양손을 모아서 앞으로 내미는 데카드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선배님, 잠깐 여기로 오셔야겠는데요.”

담당 마법사가 어딘가로 연락하는 사이 엘리스는 데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절시킬까요?”

한동안 주머니 안에 꼼짝없이 햇빛도 못 보며 갇혀있어서 육체적 능력은 약해져 있지만 폼은 죽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뒤를 돌고 있는 사람 한 명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대낮에도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럴 필요는 없어. 오히려 저 사람이 목적지로 우리를 데려다 줄 거야.”

데카드가 설명을 하자 엘리스는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너희들은 일단 묶어 놓겠다.”

마법사가 손을 뻗자 푸른색 사슬이 데카드와 엘리스의 손목을 감아 속박했다.

속박당한 채로 기계 위에서 5분 정도를 기다리자 담당 마법사의 선배가 하품을 길게 하며 나타났다.

“하암…… 위조범?”

“그렇습니다!”

불려나온 마법사는 둘의 얼굴을 대충 보고 품에서 수갑들을 꺼냈다.

철컥- 철컥-

봉마 수갑이 둘에게 채워지고 선배 마법사가 기계 위에 올라탔다.

“내가 집행관들한테 넘겨주고 올 테니까 루비아로 목적지 맞춰 놔.”

“알겠습니다!”

담당 마법사는 아까까지의 느긋한 태도는 어디 가고 빠릿빠릿하게 레버를 당기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루비아에 있는 텔레포트 기계의 마나 파장은 저거네.’

이제 프로피 뿐만이 아닌 슬레이, 루비아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게 됐다.

슈욱-

기계 위에 올라탄 세 명은 루비아로 텔레포트 됐고 도시라고는 하나 아직까지 산이나 들이 멀리서 보였던 프로피와는 다르게 루비아는 건물 숲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둘 옆에 있던 마법사는 루비아의 기계 담당 마법사와 무언가 얘기를 나눴고 엘리스는 커진 눈으로 루비아를 보았다.

“루비아는 처음이야?”

“암살 의뢰를 받을 때 한 번 왔었는데 그때는 급하게 빠져나가느라 이렇게 볼 일이 없었어요.”

“그, 그렇구나.”

모르고 보면 아름다운 귀족

집안의 영애 같은데 하는 행동거지나 말을 보면 천생 암살자가 따로 없다.

“여기로 내려와라.”

프로피 담당 마법사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순간 이동되고 데카드와 엘리스는 곧이어 등장한 사람들에 의해 끌려갔다.

“따라와라.”

‘집행관은 아닌 것 같고.’

지금 자신을 연행해가는 이 셋은 집행관이라고 하기엔 많이 약해 보였다.

엘리스가 당장 싸워도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을 정도랄까.

‘많이 바뀌었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아마 이걸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자신이 일하고 살아갔던 루비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물들이나 가게들이 전부 달라졌다.

[엄청나게 커다란 도시군요.]

‘그렇지?’

이렇게 넓은 루비아의 지리라도 작은 골목까지 전부 외우고 다녔었는데 이제는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루비아가 달라졌다 해도 이 건물만큼은 모를 수가 없다.

“집행부.”

겉으로 보이는 건 5층 정도이지만 기본적으로 지하 2층까지 해서 7층의 건물이다.

지하에는 유치장이 설치돼 있었고 엘리스와 데카드는 아마 그곳으로 갈 것이다.

집행부 안으로 들어가자 몇 년 동안 맡았던 고향의 향기가 데카드의 코로 잔뜩 들어왔다.

“좋네 좋아.”

데카드가 돌아온 직장에 대한 감상을 하고 있을 때 앞에 있던 세 명중 하나가 딴죽을 걸어왔다.

“좋긴 뭐가 좋으냐. 너희는 앞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까?”

그럴 것 같았으면 데카드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데카드의 예상대로 셋은 유치장으로 둘을 데려왔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앞에서 멈춰 섰다.

“갖고 있는 물건은 압수하겠다. 여자 쪽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고 너는 팔을 벌려라.”

엘리스는 작은 마을의 처녀가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무언갈 숨길 공간이 옷에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옆에 있는 데카드는 휘황찬란한 깃털 코트에 그 안에는 로브까지 입고 있어 무언갈 숨길 공간이라면 차고 넘쳐 보였다.

데카드는 이들이 하라는 대로 팔을 벌리며 검사를 받았다.

자칫하다간 가지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뺏길 수 있었지만 그건 짹짹이 안에 있는 것이기에 깃털 코트를 아무리 더듬거려도 주머니는 찾을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가자. 곧 점심시간이야.”

셋은 유치장의 문을 잠그고 그대로 올라가 버렸고 데카드는 유치장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철컥-

“음?”

엘리스 쪽에서 무언가 풀리는 소리가 나더니 묶여 있던 그녀의 손목이 자유로워졌다.

“……어떻게 했어?”

엘리스는 말없이 데카드가 앉아 있는 의자로 다가와 자신의 머리카락 한 개를 뽑고 계속 꼬아서 점점 두껍게 만들었다.

그 후에 머리카락을 열쇠가 들어가는 구멍으로 넣고 몇 번 돌리자 거짓말같이 수갑이 풀렸다.

“너도 마법사니?”

정말 마법 같은 일에 데카드가 순수하게 놀라자 엘리스의 귀가 붉어지며 뽑은 머리카락을 입에 넣었다.

“야! 그걸 왜 먹어?”

배고프면 챙겨온 육포를 먹으면 되는 데 굳이 머리카락을 먹어댈 필요는 없다.

“네? 증거가 남으니까…….”

“와아…….”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을 만한 증거들은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애버리는 철두철미함에 데카드가 오늘 여러 번 놀랐다.

역시 갈까마귀 암살단에서 나고 자란 암살자는 뭔가 틀렸다.

이 봉마 수갑도 집행관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도둑들이 자물쇠 딸 때나 쓰는 잡기술이 통용되는 물건이 아니다.

“그보다 머리 안 불편해?”

의자에 앉아 있는 엘리스가 연신 귀 뒤로 머리를 쓸어 넘기지만 계속 쏟아지는 머리가 불편해 보였다.

“조금 불편하긴 하네요.”

“이리 와봐. 짹짹아 조금만 도와줄래?”

[알겠습니다.]

짹짹이는 데카드의 마음을 읽으며 부드러운 깃털 몇 개를 뽑아내 주었고 데카드가 그것들을 꼬아내 탄성이 있는 팔찌를 만들어냈다.

“뒤로 돌아봐.”

엘리스가 의자를 옮겨 조심스레 데카드 앞으로 가자 그녀의 허리까지 오는 머리가 찰랑거렸다.

‘피 냄새가 나네.’

항상 시체와 피를 가까이했던 만큼 샴푸 냄새 대신 약간의 피 냄새가 엘리스의 머리카락과 피부에서 올라왔다.

냄새가 어찌 됐던 일단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중앙으로 잘 모아주고 깃털 팔찌로 묶어주자 아직 길기는 했지만 깔끔해졌다.

“감사합니다.”

이제 눈을 찌르지도 않고 깔끔해진 머리에 엘리스가 이빨이 보일 만큼 환하게 웃었다.

쿵쿵-

그때 누군가가 유치장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