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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28화 (28/208)

028 주머니 속 암살자

“왜, 왜 그러십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자마자 놀라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데카드를 보고 짹짹이가 급하게 인간화하며 주머니를 잡았다.

“뭔가 날 잡고 있어!”

데카드가 놀란 이유는 고통 같은 게 느껴져서가 아닌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놓아주지 않고 꽉 잡았기 때문이다.

“제가 빼 드리겠습니다.”

짹짹이가 주머니를 잡은 채로 천천히 뒤로 가자 데카드를 잡고 있던 것이 조금씩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어……?”

꺼내기 전에는 함정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데카드가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을 정도로 안에서 나온 건 예상치 못한 거였다.

“인간입니까?”

주머니에서 나온 건 데카드와 비슷한 또래 정도로 보이는 얼굴의 여성이었다.

초저녁 색깔의 남색 머리는 안 자른 지가 오래돼 허리까지 닿을 것 같았고 잘 먹지 못한 사람처럼 팔다리가 말라있었다.

“그런 것 같은데?”

“배고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신음소리처럼 여자에게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짹짹아 뭐 먹을 거 있냐?”

“물밖에 없습니다.”

“일단 그거라도 줘봐.”

이 여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사람이 아공간 주머니에 갇혀 있었다는 것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 같았다.

“여기 물 있어.”

짹짹이에게서 받은 생수병을 건네자 여자는 데카드의 팔을 놓고 덥석 물병을 잡더니 그대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이걸 한번에 먹네.”

꽤나 크기가 큰 물병이었음에도 여자는 문제없다는 듯 숨도 안 쉬고 원샷을 했다.

“저를 구해주세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쓰러진 여자는 몸이 규칙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니 숨은 잘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데리고 가자.”

“그럼 주머니에 다시 넣겠습니다.”

짹짹이가 쓰러진 여자를 주머니 안에 다시 넣고 다시 코트로 변해 데카드에게 걸쳐졌다.

“아, 나가기 전에.”

금고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가려던 데카드가 무언가 생각난 듯 멈춰 섰다.

“이걸 깜빡할 뻔했네.”

[그건 썩은 쥐의 문장 아닙니까?]

데카드가 금고에 버린 것은 저번 훈련 도중 썩은 쥐 깡패에게서 땐 썩은 쥐의 문장이었다.

“이렇게 하면 바이퍼는 썩은 쥐를 의심하겠지.”

[과연 대단하십니다.]

“그럼 그럼.”

원래 이곳에 왔던 방식대로 테라스를 통해 건물을 빠져나온 데카드는 아직도 현란하게 불 쇼를 펼치고 있는 라쿤과 호크를 역소환하고 정신없는 상황을 틈타 담벼락을 넘었다.

펄럭- 펄럭-

담벼락은 너무 높아 잠시 짹짹이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다.

“공기 좋다!”

시원한 밤바람이 얼굴에 부딪혀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시원하기만 했다.

[저 건물 위에서 착지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케이.”

적당히 넓은 옥상 위에서 날개를 접고 내려온 데카드는 오늘의 엄청난 수확에 만족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히힛!”

[주인님이 인간계에 오고 이렇게 기뻐하는 건 처음 봅니다.]

인간계에 왔다는 사실도 그때는 무척이나 기뻤지만 이건 조금 더 다른 물질적인 기쁨이다.

“돈이 이렇게나 생겼는데 당연하지!”

슬레이를 넘어 다음 목적지인 루비아는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어쩌면 슬레이보다 돈이 없을 때 더욱 가난한 게 루비아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태로 루비아에 가면 나는 아마 9서클 마법사급의 대우를 받을지도 몰라.”

처음 보는 사람이고 귀족도 아닌 자가 이 정도 돈을 갖고 있으면 훔쳤냐고 의심을 할 수 있으니 대놓고 드러내는 건 참아야 해도 마음은 든든하기 마련이다.

“돌아가자.”

30분 정도를 걷고 뛰어서 은신처에 도착한 데카드는 밤이라 모두 자고 있는 일행을 보았다.

“돌아왔군.”

“그럼.”

페일이 예민한 귀로 데카드가 온 것을 알아채 쇼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켰다.

“원하던 건 가져왔나?”

“당연하지.”

세이칼의 책상 위에 필요했던 부품을 올려놓은 데카드는 여자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바이퍼 보스의 금고에서 주머니를 가져왔는데 안에 들어있는 게 좀…… 특이해.”

“금고?”

적당한 표현을 찾던 데카드가 결국 특이하다는 표현을 사용해서 이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말했다.

“어디 한 번 보자.”

“알았어.”

데카드는 주머니를 열고 안에 있는 여자의 팔을 잡아 그대로 잡아당겼다.

“……인간인가?”

“그런 것 같아.”

페일도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직도 정신을 잃고 잠만 자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굶은 것 같군.”

볼이 움푹 파여 있는게 주머니 안에서 정말 죽지 않을 만 먹인 것 같았다.

“여긴…….”

여자가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조금씩 뜨며 앞에 있는 데카드와 페일을 보았다.

“괜찮아?”

데카드가 보기에는 딱히 괜찮아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물어는 보았다.

“배고파요…….”

꼬르륵-

여자는 자신의 배에서 난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캔 요리를 줘야겠어.”

페일은 이제 캔 요리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되었다 해도 자신할 만큼 이 중에서 가장 캔 요리의 물 조절을 잘했다.

금세 물을 데우고 캔에 붓자 따뜻한 수프가 만들어졌다.

“먹어라.”

일회용 숟가락과 함께 캔 요리를 주자 여자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캔 요리를 받아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처음 캔 요리를 먹을 때에 페일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캔 요리에만 열중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고 있는 사람이 다 체 할 것 같았다.

“천천히 먹어도 돼.”

“하나 더 줘야겠군.”

먹는 기세로 볼 때 하나로는 만족을 못할 것 같다.

페일이 눈치 빠르게 하나를 더 만들어서 옆에 두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두 번째 캔 요리를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뜨거워서 천천히 먹어야 할 텐데.”

이번에는 좀 페일이 뜨겁게 만들어서 저렇게 먹다가는 혀 데인다.

“아흣……!”

여자도 얼얼해진 혀를 말며 고통을 삭였지만, 고작 혀가 좀 데인 것 가지고 숟가락질을 멈출 순 없었다.

“하아…….”

만드는 시간까지 포함한 10분 안에 캔 요리 두 개가 박살 난 뒤에야 여자는 이제야 배가 찬 듯 편안한 표정으로 쇼파에 등을 기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엘리스라고 해요.”

너무 제집처럼 있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는지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데카드야.”

“페일이다.”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고 이제서야 무언가 물어볼 분위기가 형성됐다.

“주머니 안에는 왜…… 아니지 애초에 너는 뭐하는 사람이야?”

일단 제일 먼저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저는 사실…… 암살자예요.”

“……암살자?”

페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이 여리여리한 몸을 가진 엘리스를 보았다.

“네, 바이퍼의 보스를 죽이라는 퀘스트를 받고 조를 짜서 저택을 암습했다가 잡혀버렸죠. 나머지 조원들은 전부 죽이고 저를 주머니 안에 가뒀습니다.”

“뭔 생각인지 딱 예상이가네.”

잠깐이지만 저택에서 본 바이퍼 보스의 모습을 보아 하면 엘리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흑심을 품은 것이리라.

“오늘은 그만 자는 게 좋겠다.”

페일이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내 들고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런가?”

저택을 침입하기 전에 충분한 잠을 취해서 그런지 지금은 딱히 졸리지 않았다.

“누워라,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

은신처 안은 짹짹이를 뺀 4명이서 그럭저럭 잘만 했는데 엘리스가 들어오면서 그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괘, 괜찮아요. 저는 앉아서도 잘 수 있게 훈련을 받아서 등만 붙일 수 있으면 돼요.”

엘리스는 쇼파에서 내려와 아빠 다리를 하고 벽에 등을 기대자 공간이 딱 알맞게 짜졌다.

“그래도 되겠어?”

데카드가 누워서 이불을 덮고 엘리스의 자세를 보며 물어보려는 순간 엘리스의 눈은 이미 감겨있었다.

“잘 자네.”

저렇게 자면서도 깊은 잠이 아닌 항상 주변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귀를 열어두는 모습은 암살자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주인님도 얼른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저택에서 마수들을 조금 무리하게 뽑아내면서 데카드에게 가해진 피로는 장난이 아니었다.

‘알았어.’

* * *

“허어…… 그자의 금고에 사람이 있었다는 거요?”

데카드가 가져온 부품을 들고 나갈 채비를 하던 세이칼이 엘리스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살았다는 게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로바드는 방향이 어찌 됐던 살아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부하들이 다 죽고 저 만 살아남았는데 마냥 기뻐할 순 없죠.”

엘리스는 부하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어두워지고 고개를 숙였다.

“일단 바깥으로 나갑시다. 갑자기 은신처가 확 좁아졌구려.”

사람 한 명 더 들어온 게 이토록 실감이 되는지 페일을 시작으로 뒤이어 은신처 바깥을 향해 나갔다.

“그러면 암살단에 몸을 담고 계셨던 겁니까?”

“네.”

로바드의 질문에 엘리스가 이제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편안하게 대답해주었다.

“굉장히 커다란 암살단이었나 보네요.”

슬레이 거대 갱 중 하나인 바이퍼 보스의 목을 따오라는 지시를 받았으면 엘리스가 몸담았었던 암살단도, 엘리스도 실력자라는 것이 쉽게 유추 가능했다.

“암살단이 유명해서 뭐하겠어요.”

엘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제는 암살단에서 나온 거요?”

“그런 셈이죠.”

그쪽은 지금 자신이 죽었을 거라 판단했을 테니 굳이 돌아가서 암살자 일을 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 죽이는 건 이제 질렸어요.”

꽤나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모습에 로바드의 등이 축축해졌다.

광장으로 가는 길은 일행끼리 서로 떠들면서 가다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멀어 보였다.

“암살단? 어디 암살단인데?”

집행관 때 호위 임무를 맡을 때면 암살자들과도 많이 부딪쳐본 데카드는 이제 유명한 암살단이라면 줄줄이 꿰고 있었다.

“갈까마귀 암살단에 있었어요.”

“…….”

인간세계의 정보나 전설에 무지한 페일은 갈까마귀 암살단이 뭔지 몰라 딱히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지만 데카드, 로바드, 세이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진짜……?”

“네.”

[대단한 곳입니까?]

‘암살자들에게는 신앙 같은 곳이지.’

모든 암살자들이 들어가기를 희망하지만, 그 입단 시험이 너무 힘들어 웬만한 용기와 실력이 없다면 통과하지 못한다.

“그곳에서 조장을 할 정도면…….”

로바드는 밤의 공포이자 살아있는 살생부라 불렸던 그들의 명성을 떠올렸다.

또 그런 집단에서 한 무리를 이끈 엘리스의 실력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광장에 기계 앞까지 온 세이칼은 자리에 앉아 교체할 부품까지 해체를 시작하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어쩌다가 잡힌 거요?”

갈까마귀 암살단이라면 아무리 대저택의 경비가 첩첩산중이라도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배신자가 있었어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듯 엘리스가 이빨을 깨물며 대답했다.

“아아…….”

배신자가 있다면 왜 작전이 실패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우우웅-

그 순간 텔레포트 기계가 빛을 내며 정상적인 작동을 시작했다.

“드디어!”

데카드가 감격의 눈물과 함께 작동되는 기계를 어루만졌다.

“수고했소!”

“축하드립니다!”

“고생했다.”

저마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데카드는 이제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데카드 님.”

“응?”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동의 물결을 헤치고 들려오는 엘리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데카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언뜻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엘리스가 결심한 듯 한쪽 무릎을 꿇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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