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야습 (2)
끼릭- 끼릭-
기계 앞에서 몸에 어둠을 덮은 채 납작 엎드린 데카드가 최대한 조용히 나사를 풀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갈 때에는 숨도 안 쉬면서 일체의 미동을 하지 않자 경비원들은 이곳에 눈길도 주지 않고 경비를 돌았다.
“후우…….”
무언가 일을 하는데 소리가 아예 안 나는 건 불가능해 짹짹이의 어둠을 이곳에도 이용해보려 했지만 그렇게 하면 마나 소비가 너무 심해서 돌아갈 때 필요한 마나까지 다 써버릴 수 있다.
저 멀리서 집 타들어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고 있다.
그건 플레어 라쿤과 마운틴 호크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경비원들도 내색은 안 하지만 저쪽에서 일어난 화제에 관심이 쏠려 제대로 된 경비가 불가능할 것이다.
“무슨 소란이냐!”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지금 데카드가 있는 앞마당을 가득 채울 만큼 소리를 지르며 테라스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보, 보스. 별거 아닙니다.”
“별게 아니야? 네 눈에는 저 시뻘건 불이 보이지 않느냐?”
탕-!
갑자기 들린 총격음에 엎드려 있던 데카드가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보스 옆에서 대답을 하던 깡패가 총에 맞고 쓰러져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깡패들은 안타까운 시선을 죽은 깡패에게 보낼 뿐 다른 감정의 표출은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이러다가는 내 보물들도 다 타버리겠다!”
‘보물?’
갑자기 눈을 번뜩 뜨이게 하는 단어에 데카드가 하던 분해도 멈추고 바이퍼 보스의 말에 집중했다.
“거, 걱정 마십쇼! 금고가 있는 곳까지는 절대 불이 오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낸 놈은 잡으면 사지를 찢어줄 테니 그렇게 알아라! 에잉!”
독사처럼 신경질적인 바이퍼의 보스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분해는 끝나셨습니까?]
‘거의. 근데 여기서 이 부품 말고도 가져갈 게 있는 것 같아.’
짹짹이는 주인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것을 보고 알았다는 듯 작은 한숨을 뱉으며 마나를 집중했다.
[금고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바이퍼 보스가 저렇게 노발대발하는 걸 보면 불이 난 곳 근처에 금고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컸다.
‘역시 눈치가 빨라. 우리 짹짹이.’
같이 1000년 동안 모험을 하고 죽을 위기를 수도 없이 넘겼더니 이제는 주인과 신하 그 이상의 관계가 되었다.
구석에 있는 그림자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경비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늘을 날아갔다.
저 까마귀는 짹짹이의 분신으로 까마귀가 보고 듣는 것은 전부 짹짹이에게 들어온다.
‘이제 끝났어.’
데카드는 마지막 배선에 분리를 끝내고 떼어낸 부품을 짹짹이에게 맡겼다.
‘그럼 이제 너의 분신이 연락을 해올 때까지 숨어 있으면 되겠어.’
[마침 연락이 왔습니다.]
짹짹이의 분신이 불이 난 곳 중 다른 곳보다 유난히 엄중한 보안과 항마력을 가진 소재로 만든 벽을 지닌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무조건 거기다.’
항마력을 가진 소재는 그 희귀성과 가공의 어려움으로 인해 갑옷에 일부 섞는 것만으로도 돈이 보통 깨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예 그런 재료로 건물을 지은 바이퍼 보스의 재력이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놈의 보물이 이제 내 것이 되는 거지.’
데카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림자 밟기로 쥐도 새도 모르게 앞마당을 빠져나왔다.
앞마당과 입구를 나오면 이곳은 불을 끄느라 바쁘기 때문에 데카드에게 눈길을 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저긴가?’
[맞습니다.]
확실히 다른 곳에 비해 경비가 더 삼엄했다.
갑옷을 입고 긴 창과 방패를 들고 있으며 깡패가 아닌 정식 기사 같은 경비원들이 입구와 주변을 빠짐없이 메꾸고 있었다.
‘그래도 틈은 있길 마련이야.’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면 무조건 실수를 하고 지금같이 정신없는 상황이라면 그런 실수는 더욱 도드라지길 마련이다.
데카드가 풀숲에 숨어 경비원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했다.
‘쟤는 저렇게 움직이고 저놈은 이렇게 움직이네.’
건물이 항마력 소재라 건물에 가하는 마법은 불가능했다.
마법을 제외하니 건물 안으로 잠입할 수 있는 방법은 저것뿐이다.
‘테라스로 들어가자.’
맨 위층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서인지 뻥 뚫린 테라스는 경비원이 지키지 않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사거리가 닿습니다.]
그림자 밟기의 범위에 한 끗 차이로 테라스가 포함되는걸 확인한 데카드는 그대로 이동해 테라스에 착지 했다.
‘좋았어.’
이렇게 넓은 건물 자체가 금고라는 생각에 데카드는 전에 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혹시라도 들킬라 주변에 대한 경계를 더욱 높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저거 뭐야?’
데카드는 1000년 동안 별 이상한 일과 잡다한 일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웬만해서는 절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습은 사람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큰 게 금고라는 겁니까?]
‘그런 것 같다.’
짹짹이도 보고 잠시 말을 잃을 정도로 3층짜리 건물에 중앙과 높이를 꽉 채운 거대한 금고는 사람이 축소된 듯 그 크기가 말도 안 됐다.
‘그럼 저기 안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있는 거야.’
지나치지 않고 이곳에 온 건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슬레이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꿀을 건너뛸 뻔했지 않은가.
이런 거대한 꿀인 만큼 그것을 지키는 벌들도 만만치 않았다.
[경비가 무척 많습니다.]
‘나도 보인다.’
이 정도면 부대라 표현해도 될 만큼 대충 세봐도 30이 넘는 경비원들은 금고의 곁을 두 명씩 뭉쳐 다니며 도둑은 이곳에 발을 붙이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금고의 외벽을 뚫는 건…… 불가능할 테고.’
저런 두꺼운 금고를 뚫는다는 것은 정말 높은 서클의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못할 짓이다.
‘결국 금고의 입구밖에 없는 건가.’
금고가 너무 커서 보통 사람이 지나다니는 문 같이 금고를 열 수 있게 해놨다.
[아무도 모르게 금고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짹짹이의 말처럼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아무렇지 않게 금고의 앞으로 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방법이 있어.’
데카드는 손을 한 번씩 풀어주고 소환을 준비했다.
“소환.”
마법진들이 테라스 곳곳에서 생겨나며 넓었던 테라스가 마수들로 꽉 차보였다.
‘흐으, 힘드네.’
이제 정말 최소한의 마나만 남긴 데카드는 이 마수들로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었다.
[전부 독속성 마수들이군요.]
‘이런 다대일 상황에서는 독만큼 쓸모 있는 게 없어.’
고슴도치 모습을 한 니들 헤지하그, 스파이더즈, 데저트 스콜피온들을 두 마리씩 소환했다.
스파이더즈는 특이하게 세 마리가 한 쌍이라 총 6마리의 거미들이 테라스에서 데카드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제 너희가 할 일은.”
오랜만에 심장의 떨림을 느끼며 데카드는 마수들에게 단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
“암살이야.”
니들 헤지하그는 짧은 다리로 총총 바닥을 뛰어가고 스파이더즈는 실을 뿜어 천장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데저트 스콜피온은 이 중에서 제일 작은 몸집을 가졌기에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스파이더즈에게 붙어 같이 이동했다.
‘깃털들이 하나도 빗나가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깡패들은 6명.’
마수들과 데카드가 암살을 끝낸 후 건물 안에 남은 나머지 깡패들을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밖에 있는 이들이 알아채면 안 되기에 완벽한 무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주인님, 마수들이 전부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알았어.’
마수들은 자신이 최대한 많이 공격할 수 있는 자리로 움직였고 마수 하나당 두세 명은 암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굴러갔을 때 정말 딱 알맞게 여기 안에 있는 모든 경비원들을 소리소문없이 암살할 수 있으니 불가능한 도둑질은 아니다.
‘셋을 세면 간다.’
건물 전역에 퍼져있는 마수들이 마나를 내뿜으며 공격 태세에 들어갔다.
‘하나…… 둘…… 셋!!’
후우욱-!! 푸수수숙-
사아악-! 콰직-!
마수들이 일제히 공격에 들어가고 데카드 또한 3층에서 뛰어내리며 자신 앞에 있는 6명을 향해 깃털 암기들을 쏟아냈다.
“뭔……!”
경비원들은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모두 성대가 뚫려 만들어진 구멍에서 희미한 바람 소리만 날 뿐 그 어떠한 비명이나 소리도 없었다.
짹짹이의 날개를 이용해 안전하게 착지한 데카드는 일을 잘해준 마수들을 칭찬하며 역소환했다.
“모두 잘했어.”
밖에 있는 인원들은 아무래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제 이 문을 어떻게 열지만 고민하면 되는데…….”
마침 이런 금고나 자물쇠를 따는 데에 최적의 능력을 갖춘 마수 한 마리를 데카드가 알고 있다.
“소환.”
바닥에서 작은 마법진과 함께 골드 카멜레온이 소환됐다.
“마음 같아서는 잠금장치를 녹여버리고 싶지만, 이것도 항마력 소재네.”
건물은 물론이고 안에 있는 금고도 당연히 전부 항마력 소재라 마법으로 피해를 주거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는 가능하지.”
골드 카멜레온은 온 신경과 정신이 혀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자신의 혀가 닿은 것에 아주 미세한 변화라도 알아차린다.
“이 문을 열어줄래?”
골드 카멜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 혀를 쭈욱 뽑아내 금고의 다이얼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골드 카멜레온이 데카드의 손바닥에 앉은 채 오직 혀의 감각에만 의존하며 금고를 열어가고 있었다.
철컥- 끼이익-
금고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카멜레온이 혀로 문을 당기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금고가 열렸다.
“네가 일등공신이다.”
카멜레온을 한 번 부드럽게 쓸어준 후 다시 역소환한 데카드는 천천히 금고의 안으로 들어갔다.
“으음?”
안쪽은 금고의 거대한 크기에 맞게 무척이나 넓었다.
하지만 안쪽에 들어있는 것은 굳이 금고를 거대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저것들은 아공간 주머니라고 부르는 것이군요.]
“맞아.”
금고 안에 있는 것은 아공간 주머니 세 개였다.
데카드는 생일날 선물을 열어보는 아이의 마음처럼 두근거리고 설렜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걸 숨기고 다니는지 보자.”
이 정도의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만약 보상이 마음에 안 든다면 다음 행선지는 바이퍼 보스의 침실일지도 모른다.
“우선 첫 번째 주머니부터.”
아공간 주머니를 열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보자 익숙한 감각이 느껴져 꺼내보았다.
“백금화? 미치긴 했네.”
금화 백 개의 가치를 지닌 백금화가 이 주머니 안에서 가득 만져졌다.
조금 더 팔을 뻗어보아도 집히는 건 동전밖에 없는 걸 보니 이 주머니에는 돈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두 번째 주머니.”
두 번째 주머니에서는 종이 같은 것들이 뭉텅이로 잡혔다.
크기가 큰 게 지폐는 아닌 듯싶었고 꺼내보니 지도나 여러 글자들이 적힌 파일이었다.
“태초의 유물.”
파일 맨 앞장에 적힌 제목을 읽고 나니 대충 어떤 내용인지 데카드에게도 감이 왔다.
“바이퍼도 썩은 쥐처럼 유물을 찾고 있었군.”
파일의 내용을 보니 그 진행도를 적어놓은 듯싶었다.
“아직 멀었네.”
유물이 하나뿐만이 아닌 건 바이퍼 또한 알고 있는 정보였고 그것이 어느 대륙에 있는지까지 알아냈지만,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정보도 내가 잘 먹겠어.”
유물은 데카드도 한 번 파보려 했던 것이기에 파일에 들어있는 정보들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주머니.”
스르륵-
주머니가 풀리고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만진 데카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아악!!”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