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26화 (26/208)

026 야습 (1)

“이 정도면 되겠어.”

두 시간 정도 밤의 슬레이를 활보하면서 다시 얻어낸 감각에 몸은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을 앞마당에서 기계 부품을 가져오는 건 힘든 일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

데카드와 짹짹이는 은신처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방법이나 기술의 응용법에 대해서 강구했지만 그곳에 정확한 지리를 모르니 섣불리 작전을 짤 수가 없었다.

끼익-

데카드가 은신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불을 꺼놓고 모두들 모포를 덮은 채 누워있었다.

“훈련은 끝났나?”

페일이 쇼파에 쪼그려서 누워 있는 채 모포로 덮어진 얼굴을 살짝 내밀며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안 자고 있었어?”

“잠이 안 와서 말이다.”

바닥에 모포를 깔고 그 위에 로브를 한 번 더 깐 후 요르의 비늘 이불을 덮은 데카드는 그 따뜻함에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잘 자라.”

“그대도 좋은 꿈 꾸어라.”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두 종족은 밤의 안녕을 빌어주며 잠에 빠졌다.

* * *

“지도를 봤을 때 이 전역이 바이퍼 보스의 집입니다.”

“이렇게 넓어?”

“실제로 보면 상상을 초월합니다.”

데카드가 부품을 가지러 가기 위해 바이퍼의 본진으로 잠입을 하러 가기 직전, 로바드가 책상 위에 지도를 펴고 위치를 설명했다.

“바이퍼 보스의 집은 이곳과 완전 정 반대에 있으니 점심때쯤 출발하시면 해가 지고 있을 겁니다.”

지금 시간은 슬레이의 대부분이 일어나는 11시.

남은 한 시간은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여기 다 됐다.”

페일이 옆에서 건넨 캔 요리에 데카드는 그것을 받아들고 숟가락을 꺼내 쇼파에 앉아서 먹었다.

“내가 가르쳐준 순서는 기억하고 있을 거라 믿겠소.”

“물론이지.”

아무리 겉으로는 무대포에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세계 최고 명문 아카데미 마탑의 졸업생이자 마법부의 2급 집행관 자리는 힘만으로 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만들어준 캔 요리를 싹싹 비우고 있는 데카드를 보면 앞으로 거대 조직의 잠행하는 사람처럼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세이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된다는 듯 데카드를 바라보았고 그건 페일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내가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그런 상황까지 안 가는 게 좋겠지만, 만약 교전 상황이 일어난다면 페일 같이 고서클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있어.”

하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잠입은 실패.

애초에 들키지 않을 것이니 페일의 도움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럼 갖다 올게.”

지금 부지런히 출발해서 집의 구조라도 조금 봐두는 게 더 유리하다.

“다녀오십쇼!”

“갔다 오시게.”

“꼭 돌아와라.”

세이칼과 로바드는 그래도 배웅이라는 느낌이 나는데 페일은 안 돌아오면 지옥 끝까지 쫓아올 것 같다.

“당연히 돌아올게.”

귀환은 이쪽 전문이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서도 다시 돌아왔는데 고작 넓은 집 따위에서 귀환 못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데카드가 은신처 바깥으로 나오자 세상은 빛으로 가득한 대낮이었다.

시계가 12시와 가까워질수록 해도 더욱 높이 뜨려 했고 짹짹이의 능력을 펼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골목길로 가면 수월하겠습니다.]

“그러자.”

로바드의 설명대로라면 은신처에서 북쪽으로 쭉 갔을 때 바이퍼 보스의 집이 나온다.

집 자체가 너무 커서 방향 한 개만 제대로 잡고 간다면 어떻게든 집이 보이게 돼 있다.

“헤이스트.”

후욱-!!

버프 마법에는 그래도 조예가 있었던 데카드가 3서클때 쓸 수 있게 된 헤이스트를 사용해 골목을 달려갔다.

짹짹이의 그림자 밟기까지 사용하자 발걸음 한 번마다 풍경이 바뀌었다.

“어엇! 뭐야?”

골목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나 깡패들은 검은 것이 눈앞으로 휙 지나가자 놀라 자빠지거나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다.

[이대로면 3시간 후에 도착하겠습니다.]

“좋아.”

예상보다 훨씬 빠른 도착시간은 아직 밤이 찾아오려면 멀었어도 할 일은 충분히 많았다.

굽이굽이 꼬아진 골목길을 넘어 옥상으로 경로를 바꿔서 그 사이사이를 넘나들자 점점 성 같은 무언가의 윤곽이 보여갔다.

“저건가.”

[성이라 해도 무방하군요.]

짹짹이는 저걸 담벼락이라 불러야 하는지 성벽이라 불러야 하는지 헷갈릴 만큼 저기 보이는 궁전에 할 말을 잃었다.

“후우…….”

어느 정도 집의 앞까지 오자 데카드는 집이 잘 보이는 옥상에서 멈춰 대략적인 집의 크기를 파악해보았다.

“존나 크네.”

사람 한 명이 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집이라는 게 믿기 힘들었고 자신이 잘 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집은 커다랬다.

“소환.”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적진에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기에 데카드는 마수들로 집의 모습을 잡아가 보기로 했다.

카아아-!

스카이 크레인 세 마리와 3서클의 마운틴 호크 2마리가 나와 하늘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저 두 마수는 눈이 좋으니 어디에 경비병이 지키고 있거나 기계가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1시간 정도를 옥상에서 죽치고 앉아있으며 답 없이 커다란 집을 보고 있을 때 기계를 발견한 마운틴 호크가 신호를 보내왔다.

“저기 있구나.”

있어도 하필 집의 정중앙에 예쁘게 놓여져 있었다.

“밤에 출발하자.”

대략적인 집의 파악도 끝이 났으니 호크와 크레인은 이만 역소환해 놓았다.

지금부터는 결전의 그 시간까지 마나를 보충해야 했다.

마나는 자연 상태에서 가장 예민한 물질이라 가만히 있을 때 가장 잘 모인다.

어떤 자세이든 가만히만 있으면 되기에 데카드는 그 자리에서 누워버려 새벽까지 못 잘 것을 대비해 지금 미리 자두기 시작했다.

“커어어…….”

바닥에 머리 댄 지 몇 분이나 흘렀다고 빠르게 잠이 들은 데카드는 마수계에서의 낮잠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황금빛으로 찬란했던 태양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주황색 감처럼 변하며 노을이 되었고 곧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달이 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 이제 일어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두다가는 내일 아침쯤에 일어날 것 같이 깊은 잠에 빠진 데카드를 짹짹이가 깨웠다.

“그래? 하아암…….”

하품과 기지개를 켜며 옥상에서 일어난 데카드는 딱딱한 바닥이라 그런지 등이 배겨 몸이 굳어있었다.

“밤도 찾아왔고 이제 움직일 시간이군.”

스트레칭을 해주자 굳은 몸이 펴지고 몸속에 활기가 들어왔다.

“가자 짹짹아.”

[준비 완료입니다.]

몸 전체에 짹짹이의 어둠이 감돌자 옥상에서 보였던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집으로 접근한 데카드는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을 보았다.

“담벼락으로 가자.”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수문장을 없에고 시작한다면 꼬리가 너무 길어지게 된다.

최선의 방법은 어둠을 틈타 짹짹이의 날개를 이용해 담벼락을 넘는 것이다.

물론 이 담벼락도 멀리서 보면 성벽으로 착각할 만큼 크고 두꺼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펄럭-

거대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가듯 우아하게 담벼락을 넘어 착지에 성공한 데카드는 날개를 집어넣고 주변에 있는 경비원들을 살폈다.

‘예상은 했지만 엄청 많네.’

또 절대 혼자 다니지 않고 사수와 부사수를 짜서 서로가 서로의 등을 봐주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이럴 때는 교란 작전이 필요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불러모으기엔 이거 만한 게 없다.

“소환.”

저번에 목욕물을 데워줬던 플레어 라쿤과 마운틴 호크를 다시 소환했다.

‘여기에다 불을 크게 지르고 불이 붙을 만한 곳은 전부 질러대. 너는 그 불을 최대한 키워줘.’

카아-!

카악-!

라쿤은 데카드의 말대로 온 몸에서 열을 방출시켰고 조형을 위해 만들어 두었던 잔디들과 나무들이 타들어 갔다.

“어어! 불이다!”

“불이라고?”

‘좋았어.’

모두의 신경이 이쪽으로 쏠리자 데카드는 시선이 닿지 않는 비어있는 공간으로 그림자 밟기를 사용해 빠져나왔다.

‘저곳은 라쿤이 불을 지를 거야.’

그리고 라쿤이 지른 불이 쉽게 꺼지지 않고 더욱 커지도록 마운틴 호크가 공중에서 계속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람들이 급하게 물 양동이를 가져와서 뿌려대도 불은 잠잠해질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커져 나갔다.

“제, 젠장!! 야! 빨리 안 오고 뭐해!”

“간다! 가!”

“아까 여기서 담배 핀 새끼 누구야!”

경비 일과 불 사이에서 갈등하던 경비원들이 이내 잠잠해질 줄 모르는 불을 보며 급하게 물을 길기 시작했다.

그 혼란 속에 데카드가 들어갈 틈이 생겼다.

‘그림자 밟기.’

어둠과 어둠 사이를 이동하며 호크가 보내온 신호를 쫓아가던 데카드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이곳만큼은 비킬 수 없다는 듯 입구 하나를 막고 있는 경비원 둘은 덩치도 산만 하고 입고 있는 갑옷도 상등품의 것이었다.

‘저기 너머에 기계가 있어.’

다른 경비원들은 화재를 진압하느라 바쁘니 이 두 명만 넘어서면 된다.

까아악- 까악-

“재수 없게 웬 까마귀야.”

울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보며 문을 지키던 경비원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너희들 재수가 없긴 하네.”

위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두 명이 퍼뜩 놀라며 위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어둠에 휩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치, 침입……!”

“조용.”

짹짹이를 덮음으로써 강화된 완력으로 경비원 한 명을 후려갈기자 투구가 그대로 찌그러지면서 안에 있던 경비원의 얼굴도 찌그러졌다.

“웬 놈……!”

“너도 조용.”

무언가를 잡는 제스처를 취하며 경비원을 향해 날리자 깃털 모양의 암기가 갑옷의 빈틈을 뚫고 경비원의 성대를 뚫었다.

털썩-

재빨리 경비원들을 처리한 뒤, 마차도 들어갈 만큼 커다란 입구로 데카드가 유유히 들어갔다.

“저기 있네.”

무언가 중간중간 비어있는 미완성의 기계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데카드가 뜯어갈 부분은 온전히 남아있었다.

[주변의 경비원들이 많습니다.]

이 문 안쪽은 바이퍼 보스가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경비원들이 어떤 소란에도 움직이지 않고 철통 같은 방어를 유지했다.

그런 곳 중앙에 위치한 기계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주변에 횃불이 없는 어둠 속에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데카드에겐 짹짹이가 있었다.

중간중간 기계 주변을 경비원들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짹짹이의 능력을 이용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림자 밟기.’

경비원들이 기계에서 멀어졌을 때를 노려 그림자 밟기로 순식간에 기계 앞으로 도착한 데카드는 어둠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 자신을 가렸다.

그 상태로 몸을 바짝 숙이자 주변 어둠과 완벽하게 동화가 되었고.

그런 그의 모습은 정말 가까이서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는 이상은 아무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듯 보였다.

‘짹짹아 그거.’

[여깄습니다.]

짹짹이는 기계를 분해할 때 필요한 공구들을 꺼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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