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24화 (24/208)

024 새롭게 열린 길

끼릭 끼릭-

세이칼이 기계에 나사를 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로바드가 주는 수리도구들을 받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오오! 진짜?”

세이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업이 끝난 곳을 다시 재조립하고 마지막 부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근데 이 부분이…….”

“이 부분이 왜?”

세이칼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어 살짝 망설이고 있었다.

“확실히는 나도 모르겠지만 지금 보이는 이 부분은 다른 것으로 갈아껴야 할 것 같소.”

“다른 거?”

“그렇소. 지금까지 보인 결함들은 모두 수리가 가능했지만, 이쪽은 손상이 너무 커서 아예 새걸로 갈아껴야 한다는 뜻이오.”

데카드는 양 속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만들 수는 없겠어?”

세이칼은 새로 바꿔야 하는 부분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나도 무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소. 이 기계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강철 쪼가리들로 어떻게 해볼 만한 부품이 아닌 것 같소.”

“하아…… 여기서 새로운 부품을 어디서 구해.”

데카드는 또 집으로 간다는 목표가 멀어지자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때 로바드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응?”

세이칼의 수리도구들을 정리 중이던 로바드가 방법이 떠올랐지만, 살짝 애매한 투로 말했다.

“사실 슬레이에는 이렇게 완성됐지만 망가진 텔레포트 기계 하나와 갱들의 습격으로 미완성 된 기계, 이렇게 두 개가 있습니다.”

“호오! 그러니까 자네 말은 그 기계에 지금 우리가 원하는 부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소리구만!”

로바드는 세이칼의 정확한 추리에 긍정해도 무언가 편안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당장 거기로 가자!”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또 다른 기계가 있는 장소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죠.”

데카드는 콧방귀를 끼며 당장 바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만 해! 바로 갔다 올 테니까.”

“슬레이를 움직이는 거대 갱 중 하나인 ‘바이퍼’ 보스의 저택 앞마당에 기계가 있습니다.”

로바드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현실성이 매우 뒤떨어져 보였다.

썩은 쥐와 달리 보스의 거처가 훤하게 드러난 바이퍼는 그만큼 경계가 삼엄했다.

그런 곳을 버젓이 들어가고 앞마당에 있는 기계에서 부품만 빼고 나온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도 얘기는 들어봤지만 사실이었구려.”

“그런데 왜 그게 앞마당에 있는 거지?”

페일은 지금 기계 주변에 있는 광장을 둘러봤고 또 다른 기계도 분명 광장같이 넓은 곳에 있을 텐데 그곳이 앞마당이라는 로바드의 말은 이해가 안 갔다.

“바이퍼의 보스는 넓은 대저택을 좋아해서 광장 주변에 있던 집을 전부 밀어버리고 성 같은 집을 지어서 사는 남자로 유명합니다. 언젠가 그곳을 한 번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있었는데?”

데카드도 도주 경로나 진입로를 짜려면 얼마나 큰지 대충은 알아야 하기에 다음 로바드의 말을 기다렸다.

“마차를 타고 10분을 넘게 달려도 아직 그 집의 담벼락이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

모두들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되었다.

그 정도 규모라면 칩입자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조금 과장해서 집을 부수기 전에 원래 있었던 가구 수보다 많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데카드는 지금 자신을 덮고 있는 짹짹이의 힘을 사용한다면 그렇게 현실성이 없는 얘기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 혼자 가야 해.”

짹짹이의 능력은 한 명밖에 통용되지 않고 자기 몸 간수하기도 어려울 그곳에서 몰려다닌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자네 혼자서 이 부품이 있는 곳까지 분해할 수 있겠나?”

세이칼의 곁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쉽게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합해져서 그렇게 보인거고.

데카드와 같은 초보자에게는 처음 보는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낯설 것이다.

“어떻게 하는 건지 세이칼이 알려주면 돼.”

“흐음…… 알겠소, 이리 앉아 보시오.”

과연 얼마 동안 가르쳐야 할지는 세이칼도 모르겠지만, 기계에 전혀 손을 안 담가본 데카드는 적어도 일주일은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 * *

“여기서는 이렇게 조이고 저기서는 풀어준다. 내가 이해한 게 맞아?”

“마, 맞소. 정말 놀랍구려.”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은신처로 돌아와서도 세이칼은 데카드를 가르쳤고 배운지 반나절 만에 부품을 뜯어낼 만한 해체 능력을 갖추게 됐다.

“기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응, 몰라.”

오직 암기로 머릿속에 밀어 넣은 지식들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빨리 누워서 자 버리고 싶지만 데카드에게는 할 일이 있다.

“후우…….”

데카드는 은신처 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주인님, 여기서 3서클에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짹짹이가 인간형으로 돌아오며 놀란 듯 급하게 데카드의 곁으로 와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적어도 3서클은 돼야 너의 힘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어. 그리고 그 정도는 되어야 그곳에서 확실하게 탈출할 수 있지.”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해도 되겠나?”

같은 마법사인 페일은 서클을 올린다는 개념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페일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페일은 데카드가 무엇을 해달라는건지 눈치채고 고민 없이 등 뒤로 와 그곳에 손을 대며 앉았다.

“물론이다.”

데카드와 페일이 진지하게 무언가를 준비하자 그것을 본 로바드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두, 두 분이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소. 아마 내 생각엔 강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같구려.”

데카드가 집중할 수 있도록 잠시 그와 멀어진 짹짹이가 뒤에 있는 세이칼과 로바드를 노려보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댔다.

끄덕 끄덕-

조용히 안 하면 직접 조용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짹짹이의 분위기에 둘은 합죽이가 되었다.

“간다.”

이 짓은 열 번도 넘게 해봤지만 할 때마다 긴장되고 털이 곤두서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데카드는 먼저 서클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한 지반 공사를 시작했다.

쿠구구궁-

은신처는 아무런 일 없이 평화로웠지만 데카드의 귀에는 건물이 내려앉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마나 회로나 잡다한 마법 관련 몸의 구조들이 전부 부서져 가고 그로 인한 충격이 몸 곳곳에 퍼지는 중인 것이다.

“…….”

입안까지 비명이 올라온 것 같아도 작은 신음소리 하나 낼 수 없었다.

“여기서 한 마디라도 뱉으면 더 힘들어진다.”

육성으로 무언가 튀어나온 순간 그대로 집중력이 깨지면서 서클 올리기에 실패하고 지반 공사로 부서진 몸은 회복이 안 돼 최악의 경우에는 평생 마법을 못 쓸 수도 있었다.

2서클까지 참을만했던 고통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뀌어서 3서클로 찾아왔다.

“내가 도와주겠다.”

이렇게 너무 큰 고통이 있는 나머지, 보통 마법사들은 밑에 안정화 마법진을 깔거나 자신보다 더 고서클의 마법사한테 보조를 부탁한다.

데카드의 옆에는 다행히 페일이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마나를 데카드에게 흘려 넣었다.

마치 처음 데카드가 그녀에게 마나를 사용하는 안마를 해주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데카드의 몸을 쓸어주었다.

몸속에서 이루어지던 파괴 속, 타이밍 좋게 들어온 페일의 온화한 마나는 힘이 잔뜩 들어갔던 몸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다.

30분 동안 이어진 공사는 페일의 도움이 없었다면 두 배는 힘들었을 만큼 고됐다.

이제 남은 건 적당한 크기의 서클을 심장에 감는 것이다.

푸른 마나가 심장에 도달하고 그것이 원을 그리면서 자신의 꼬리를 문 순간 3서클은 완성됐다.

“하아…….”

30분간의 고통과 고생이 거칠고 뜨거운 숨 하나로 완결되어 데카드의 입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수고했다.”

옆에서 도와주는 입장에 마법사라도 삐끗하면 서클을 올리고 있는 마법사에게 무리를 줄 수 있어 덩달아 긴장해 땀이 흘렀다.

“어때 짹짹아?”

몸의 보수작업이 끝나고 데카드는 뒤를 돌아 짹짹이를 바라봤다.

고오오-

“저 여깄습니다.”

짹짹이가 구석에 그림자를 타고 데카드의 앞으로 순간이동 하듯 나타났다.

“이제 쓸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림자 밟기.

마나가 많이 들지만 한 그림자에서 다른 그림자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다.

잠입을 위해 데카드가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마법 중 하나로 이것을 위해 3서클로 올라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 정말 신기하군.”

사람이 바닥에 있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걸 보는 게 흔한 경험은 아닌지라 세이칼은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것이라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가능하지!”

데카드는 전신이 저리고 쑤셨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서클을 올리고 나면 쉬어주어야 한다.”

페일이 데카드를 다시 눕혀주려 해도 그는 손을 저었다.

“밖에서 조금이라도 씻고 올게.”

지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이대로 자 버리는 건 너무 찝찝했다.

“목욕탕! 이 은신처 안에 내가 만들어 두었소!”

“그걸 만들어놨다고?”

“믿어보시오!”

지금 있는 세이칼의 은신처는 하수도.

물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냄새나고 부유물이 둥둥 떠있는 그런 더러운 물을 상상하게 된다.

데카드가 ‘정말?’이라는 표정을 짓자 세이칼은 자신만 따라오라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이리 와 보시오! 안내해 주겠소.”

세이칼이 먼저 은신처 바깥으로 나가고 나머지 일행도 그를 따라나왔다.

하수도를 따라 5분 정도 걸었을 때 넓은 공간 하나가 나오며 그 안에 물이 차 있었다.

“와아! 이게 뭡니까?”

“목욕탕이지!”

로바드는 물의 손을 넣어보자 살짝 차가운 감이 들었고 신기한 듯 냄새도 맡아보았다.

“구린내가 전혀 안 납니다!”

이곳은 하수도가 맞는데도 그 특유의 썩은내나 구린내가 물에서 나지 않았다.

“물을 길어오는 곳은 내가 정화되도록 손을 써놨소.”

“잘 쓸게!”

밖에서 또 누가 볼세라 목욕물을 만드는 건 창피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니 오늘은 여기서 씻어야 할 것 같다.

“그럼 씻고 오시오.”

세이칼과 로바드는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고 짹짹이는 데카드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상의부터 주섬주섬 벗으려는 데카드가 문득 뒤를 돌아보자 페일이 아직 가지 않고 서 있었다.

“페일은 안 가?”

“나도 샤워해야 한다.”

서클을 올리는 건 당사자는 물론이고 옆에서 보조해주는 마법사도 힘든 건 매한가지다.

페일의 머리칼은 땀으로 푹 젖었고 이마부터 목까지 촉촉했다.

“그럼 조금만 이따가 해. 지금은 나 먼저 좀 할게.”

온몸이 천근처럼 무거워서 도저히 페일의 샤워가 다 끝날 때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

옷을 마저 벗기 위해 데카드가 뒤를 돌자 뒤에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같이하자.”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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