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중독
데카드는 사냥꾼을 처리하고 다시 광장으로 가기 전에 눈에 띈 토스트 가게에 갔다.
걸림돌이도 사라졌고 더 이상 망을 보러 옥상에 올라갈 필요도 없으니 이제 기계가 고쳐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캔 요리 말고 딴 것 좀 먹자.”
캔 요리가 끊을 수 없게 중독적인 건 맞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지 오늘은 정말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계란 토스트 5개 주세요.”
“알겠습니다!”
마탑에서 한창 공부하던 학창시절에 데카드는 매일 아침 늦게 일어나나 일찍 일어나나 항상 계란 토스트를 먹고 다녔었다.
반숙의 계란 물이 톡 터져서 설탕에 튀겨진 빵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그 느낌은 적은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1은화입니다.”
토스트를 일행들에 것까지 5개를 사가다 보니 돈이 조금 많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 아까 사냥꾼에게서 뺏은 지갑이 있었다.
“여깄습니다.”
“또 오세요!”
슬레이나 루비아나 마탑이나 계란 토스트의 맛은 통일된 것처럼 맛있었다.
좀 전에 힘든 전투를 끝마치고 와서 그런가 슬레이의 계란 토스트가 조금 더 맛있는 감이었다.
“너도 먹어 짹짹아.”
“감사히 먹겠습니다.”
요 며칠 수고한 짹짹이에게도 한 개를 주었고, 광장으로 도착하자 마나의 파장이 기계 근처에서 느껴졌다.
쑤욱-
향긋한 토스트 냄새와 함께 인비저블 안으로 들어온 데카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오 힘들어.”
“왜 그러십니까?”
로바드가 세이칼에게 도구를 갖다 주면서 데카드의 안색을 살폈다.
“어제 말했던 현상금 사냥꾼 정리하고 오느라 그래.”
“흐음…… 썩은 쥐의 보스가 이 사실을 알면 더 강한 사냥꾼을 보낼 테니 얼른 끝내야겠구려.”
로바드는 손바닥만 한 작은 도구들로 무언가를 풀었다가 다시 조이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여기 토스트 사왔는데 먹으면서 해.”
“오오! 오랜만에 음식입니다!”
로바드는 봉지에 들은 토스트 두 개를 꺼내 잘 뜯어서 기계에 열중하고 있는 세이칼에게 건냈다.
“조금만 쉬었다가 해도 괜찮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소.”
오랜 시간 쭈그려 앉아서 기계만 들여다봐야 하니 세이칼의 이마와 목은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페일도 먹어.”
“고맙다.”
인간세계의 음식을 캔 요리 말고 처음 다른 것을 먹어본 페일은 이것도 나쁘지 않은 듯 와구와구 잘 뜯어먹었다.
“작업 도중에는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식사가 좋아서 토스트를 많이 사 먹고는 했는데 이것도 추억이구려.”
이렇게 토스트를 뜯으면서 기계를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옛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살던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몰래 숨으면서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세이칼.”
“왜 그러시오?”
데카드는 솔직히 이 남자의 손재주가 이딴 쓰레기통에서 썩혀지는 게 아까웠다.
“기계를 전부 고치고 나면 나랑 같이 루비아로 갈래?”
기계를 고치고 같이 루비아로 간다면 세이칼은 아마 그곳에서도 최고의 수리공이나 대장장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그 수도에 있는 도시, 들어본 적이 있소. 치안이 훌륭하고 온갖 신문물들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라더군.”
“맞아.”
세이칼이 알고 있는 대로 루비아는 강대국 탈리스의 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탈리스 안으로 다른 나라의 문물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적용되는 곳이며 제일 먼저 상용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수도 없고 그곳에서 당신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거야.”
루비아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분명 많았지만 거의 반평생을 루비아에 있었던 데카드의 눈으로 봐도 세이칼은 특별했다.
아무런 정보나 사전 지식 없이 저렇게 텔레포트 기계를 고친다는 것은 어쩌면 마법부에서도 모셔가려고 용을 쓸지 모른다.
“그 얘기에 답변은 기계가 고쳐지면 말해주겠소.”
세이칼은 묵묵히 데카드의 말을 들으면서 토스트를 먹더니 부스러기만 남은 포장지를 꾸긴 후 다시 기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반나절이 지나고 태양도 모습을 감추어갈 때 인비저블이 지직거리며 꺼지려고 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알겠소.”
세이칼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썼던 도구들을 상자에 담고 기계를 다시 티가 안 나게 조립해놓았다.
“상자는 제가 들겠습니다!”
“고맙네.”
로바드는 헤헤헤 하고 웃으며 상자를 들며 세이칼을 쫓아다녔고 페일도 인비저블을 해제했다.
“후우…….”
하루종일 꽤나 고서클에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으니 페일이 말은 안 해도 그 피로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힘들지?”
“아니다.”
자존심 때문에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같은 마법사인 데카드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은신처로 돌아가면 내가 안마해줄게.”
마수계에 있을 때, 레오가 수련으로 지친 자신에게 항상 해주었던 마사지 법이 있었는데 그거 한 번 받고 나면 피곤이 날아가고 온몸이 노곤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안마……?”
안마라는 개념이 엘프에게는 생소한지 페일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데카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마을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도 해주면 좋아할 거야.”
일행이 그렇게 은신처로 돌아갔을 때 쓰러져 있던 사냥꾼이 차가운 밤바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윽…….”
뒷목이 아직 저렸지만 서둘러 아까 자신이 꺼내놓은 것들을 챙기고보니 셀러맨더 가죽과 마공학 권총, 돈주머니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다시 뺏을 수도 없고.”
몸 상태가 정상일 때 다시 싸우면 모르겠지만, 그 마법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사와 무언가 다른 차별점이 있었다.
“보고는 해야겠지.”
사냥꾼은 검을 허리에 매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비를 마쳤다.
옥상에 난간을 그대로 뛰어넘어 골목으로 내려온 사냥꾼은 썩은 쥐의 연락책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썩은 쥐 보스는 오늘도 유물을 만지작거리며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혹시라도 떨어뜨릴라 애지중지했다.
“보스, 현상금 사냥꾼이 뵙기를 원합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보스는 잠시 유물을 책상 아래 안 보이는 곳에 숨겼고 방 안으로 들어온 사냥꾼을 맞이했다.
“세이칼은 잡았나?”
후드를 푹 눌러써서 얼굴의 정확한 윤곽이 나오지는 않았어도 지금 사냥꾼의 얼굴이 굳어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의뢰 같습니다. 포기하겠습니다.”
사냥꾼은 어차피 세이칼에게 접근하기 전에 그 괴상한 마법사를 뚫어야 한다면 여기서 발을 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없는 의뢰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의뢰나 조금 더 수행하는 게 더 짭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흐음…… 그런가. 아쉽게 됐군.”
콰직-
“크흑……!!”
갑작스럽게 뒷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격통에 사냥꾼이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어깨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툭- 다다닥-
사냥꾼의 어깨에서 뛰어내린 그것은 곧장 보스의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잘했어.”
보스는 육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아 주었고 그것은 날카로운 앞니로 조금씩 갉아 먹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작별인사랄까? 의뢰도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온 뻔뻔스러운 너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 죽이고 싶어졌어.”
“고작 쥐가 문 것 가지고 내가 죽을 것 같으냐!”
사냥꾼은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으로 소매에 있던 단도를 보스에게 던지려는 순간.
투둑-
단도를 든 손에 힘이 풀려가면서 던지기는커녕 무기를 떨어뜨렸고 똑같이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나의 쥐는 여러 실험으로 극독을 품고 있어. 인간 따위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지.”
사냥꾼은 바닥에 털썩 쓰러지면서 마지막 유언 같은 발악을 내뱉었다.
“나는 당신 썩은 쥐에 비밀을 알고 있어……. 그게 밝혀지면 다른 갱들이 너희들을 가만둘 것 같아……?”
“크크크큭! 그딴 것들이 두려웠으면 이렇게 판을 벌이지도 않았다. 이제 그만 죽어라.”
사냥꾼은 조명에 드러난 썩은 쥐 보스의 얼굴을 보는 것을 끝으로 독이 온몸에 퍼져 죽어버렸다.
“제임스.”
보스의 나지막한 부름에 빛살과 같은 속도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치워.”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사냥꾼의 두 다리를 잡고 바깥으로 질질 끌며 방에서 사라졌다.
다시 혼자 있게 된 보스는 유물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고 그의 애완용 쥐들은 질겁하며 유물과 멀어졌다.
“아름다운 물건이야…….”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유물이 뿜어내는 아름다움과 그 놀라운 힘이 느껴졌다.
“이것만 있으면…….”
보스는 유물을 얻은 날부터 구상해놓은 계획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유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찍찍-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까만색의 박쥐 한 마리가 천장에 생긴 그림자 속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 * *
은신처에 들어온 후 페일은 자기 혼자 캔 요리를 하나 더 까먹었다.
구석 쇼파에 쪼그려서 먹는 모습은 한 숟갈을 퍼서 먹을 때마다 행복해하는 표정과 점점 사라져가는 캔 요리에 아쉬워하는 표정이 합쳐져 복잡미묘한 표정이 참 신기했다.
탁탁-
결국 빈 깡통이 된 캔에게 아무 의미 없는 숟가락질을 몇 번 하던 페일은 캔을 꾸겨 쓰레기통에다 버렸다.
“자, 이리 와서 앉아봐.”
원래는 은신처에 들어오자마자 해주려 했는데 캔 요리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타이밍을 놓쳤다.
“뭘 하려는 것이냐.”
페일은 엉거주춤 데카드가 하라는 대로 바닥에 앉았고, 데카드는 페일의 등에 손을 올렸다.
“마나를 무리하게 쓰다 보면 마나룸이나 마나 회로들이 놀라서 내일 되면 마법도 잘 안 써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진다고.”
레오가 했던 대로 데카드는 마나를 손에 집중시켜서 페일에게 불어넣었다.
“흐윽…….”
페일이 약간의 신음소리를 지르며 외부에서 들어온 마나에 본능적으로 데카드의 마나를 배척했다.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어봐.”
이 안마는 어깨나 주물러주는 그런 게 아닌 마법사 전용 마사지법이다.
데카드의 마나가 페일의 마나 회로를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한껏 긴장된 회로를 풀어주었다.
“신기하다.”
페일은 눈을 감고 몸속을 도는 데카드의 마나를 느껴보았다.
깨끗하고 날 것 그대로인 감각에 마나는 오랫동안 수련해온 엘프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었다.
“몸이 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아?”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페일은 온몸으로 실감이 되는 안마의 효과에 마나를 회전시키자 회로가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이런 것도 인간세계의 문명인가?”
“이거? 글쎄?”
데카드도 인간계에 있을 때는 들어본 적이 없고 마수계에 와서 레오가 해주고 나서야 알게 된 마사지법이다.
“가르쳐줄까?”
“부, 부탁한다.”
남의 마나 회로를 쓰는 건 뛰어난 마나 컨트롤이 없다면 꽤나 위험한 짓이지만 엘프라면 괜찮을 것이다.
“나중에 엘프 마을로 가서 마사지샵이나 열어도 되겠는데?”
페일의 반응을 보니 다른 엘프들에게도 꽤나 잘 먹히는 사업 아이템 같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