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현상금 사냥꾼
벌컥-
짹짹이와 함께 은신처로 돌아온 데카드의 표정이 무언가 체한 사람처럼 좋지 않았다.
“밖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눈치 빠른 로바드가 데카드를 보고 단박에 자신은 모르는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귀찮은 일이 생겼어. 에휴…….”
데카드는 한숨을 쉬며 페일이 있는 작은 쇼파에 앉았고 목을 기대 천장을 올려다봤다.
“썩은 쥐가 지척에 왔소?”
“차라리 깡패 새끼들이면 다행이지.”
방금 본 남자의 실력은 예전이라면 쉽게 찍어눌렀을지 모르나 아직 2서클밖에 복구하지 못한 지금은 오히려 데카드가 죽을 수도 있는 정도였다.
그런 놈이 일단 썩은 쥐의 소속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일까.
남자가 한 말과 행동으로 유추해 볼 때, 현상금 사냥꾼이란 결과가 나왔다.
“현상금 사냥꾼이 세이칼하고 페일을 쫓고 있는 것 같아.”
“허헛! 그런 놈들한테 내가 한 두 번 쫓겨본 줄 아시오? 그놈들은 여길 절대 못 찾을 테니 걱정 마시오.”
“그래. 설령 찾는다 해도 그놈은 길거리에 익사체로 발견될 것이다.”
둘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감이 넘쳤는지 얼굴에서 별다른 긴장감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그 놈은 텔레포트 기계에서 우리 흔적을 찾고 있었어. 또 그 실력이 예사롭지가 않아.”
단순 후각만으로 흔적의 주인을 유추하고 그다음 경로를 예측하는 모습은 집행관들도 잘하지 못하는 행동들이다.
“텔레포트 기계에서? 그건 좀 커다란 문제구만.”
기계를 들고 어디로 옮길 수도 없는 이상 세이칼은 꼭 거기로 가서 작업을 해야 했다.
기계가 있는 주변은 광장이라 탁 트였고 꼭 그 중앙에 있었다.
“걱정 마라. 아무도 없는 새벽에 나가서 재빨리 인비저블을 펼치면 되지 않겠는가.”
새벽이면 해도 조금씩 나올 시간이라 광구를 위에 띄울 필요도 없다.
“그게 최선이겠네.”
기계는 고쳐야 하고 아직 현상금 사냥꾼은 기계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다들 이쯤에서 주무시게나.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될 듯하니.”
“그래야겠어.”
데카드와 페일, 로바드는 바닥에 모포를 깔고 누웠고 세이칼은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다.
지하에 있는 은신처라 굉장히 시릴 거라 생각했던 바닥은 예상외로 참 따뜻했다.
“내가 여기에 온돌을 깔아서 바닥이 따뜻할 거요.”
“그냥 집 한 채를 지었네, 지었어.”
데카드는 그 위에 요르의 비늘 이불과 짹짹이가 변한 코트까지 덮자 이곳이 바로 우리 집 안방이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걸어 피곤했던 몸은 금방 잠들었고 해가 아직 하늘로 솟아오르기 위해 준비 중인 새벽, 일행은 깨어났다.
* * *
“좋아 아무도 없군.”
맨홀 뚜껑을 살짝 열고 본 바깥은 거지나 부랑자들도 아직 잠들어있는지 광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 틈을 타 후다닥 뚜껑 바깥으로 차례차례 나온 일행은 기계로 달려가 재빨리 인비저블을 발동했다.
새벽이라 그렇게 밝지 않은 햇빛임에도 마법은 다행히 잘 작동해주었고 세이칼은 문제가 있던 부분을 빠르게 뜯어냈다.
저번처럼 결함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전부 해체하는 게 아닌 문제가 있는 부분만 딱 뜯어내는 것이기에 작업속도는 전보다 훨씬 빨랐다.
“마법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소?”
“하루 종일도 가능하다만 밤이 되면 내가 자체적으로 라이트를 인비저블 바깥에다 띄워두어야 해서 들통이 날 거다.”
“남은 시간은 반나절 정도라는 거구려. 최대한 빨리해보겠소.”
세이칼이 그렇게 작업에 들어가고 로바드는 자신만의 눈치를 이용해 세이칼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드라이버.”
“여깄습니다!”
세이칼이 어떤 장비를 말하면 로바드가 재빨리 그 장비를 건네주는 형식으로 세이칼이 굳이 도구들에게 시선을 돌릴 필요가 사라져 더욱 능률이 오르고 있었다.
“나는 위에서 망을 볼게.”
페일은 이 안에서 계속 인비저블을 유지 시켜야 하고 여기서 유일하게 할 짓이 없는 건 자신 같아 데카드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어제의 그 현상금 사냥꾼이 오지는 않는지 경계하러 나섰다.
“소환.”
에어 스왈로우 4마리가 푸드덕 소환진에서 튀어나왔다.
“현상금 사냥꾼이 주변에 있는지 살펴봐 줘.”
찌르르-
스왈로우들이 동서남북 방향을 나눠 흩어졌고 데카드는 옥상 위에 앉아 광장 주변을 경계했다.
“짹짹아 너도 뭔가 수상한 게 보이면 바로 말해.”
[알겠습니다.]
해가 완전히 뜨자 추운 밤을 피해 어딘가로 숨어있던 거지와 부랑자들이 광장으로 나와 언제나처럼 드러눕기 시작했다.
“미리 나와서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또 대낮에 사람이 사라지는 기현상을 거지들은 봤어야 했을 것이다.
1시간 정도 아무런 소식 없이 세이칼은 기계를 고치고 데카드는 망을 보고 있을 때 스왈로우가 신호를 보내왔다.
“신호가 왔어.”
남쪽으로 날아간 스왈로우가 어제 그 현상금 사냥꾼을 발견하고 마나 신호를 보내왔다.
스왈로우와 지금 데카드의 거리를 따져봤을 때 사냥꾼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기껏해야 500M 정도네.”
계속 사냥꾼 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스왈로우가 점점 광장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이동방향도 기계가 있는 쪽이었다.
“그놈이 인비저블을 알아챌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라는 것은 항상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마수 소환사가 왜 전투에서 가장 껄끄러운 존재인지 보여줘야겠군.”
마수 소환사를 상대한 자들은 항상 어렵다가 아닌 껄끄럽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표현의 이유를 저 현상금 사냥꾼은 똑똑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데카드가 자신을 위한 흉계를 준비하는 것도 모르고 현상금 사냥꾼은 광장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기계에 분명 뭔가가 있어.”
현상금 사냥꾼은 계속 흔적을 찾아 이 근방을 돌아봤지만, 텔레포트 기계에 분명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비밀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놈들은 기계에 집착한다. 기계 주변으로만 흔적이 있을 뿐 절대 멀리 벗어나지 않아.”
찌르르-!
“제비?”
슬레이에 제비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 실전을 통해 다져진 위험감각이 사이렌을 울려댔다.
“크윽……!”
허리를 꺾어 유연하게 초승달 모양의 삭풍을 피해낸 사냥꾼은 허리춤에 있던 마공학 권총을 뽑아들어 제비를 향해 쐈다.
탕- 탕-
스왈로우는 총알을 피하면서 몇 번의 곡예비행을 펼치다가 다른 건물들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마수인가?”
현상금 사냥꾼은 마법사도 여러 번 잡아본 경험이 있어 스왈로우가 마수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 엘프년의 짓인가 보군.”
현상금 사냥꾼은 또 다른 마법사가 있다는 것으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표적이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검을 뽑아들었다.
“예상보다 빨리 끝나겠어.”
사냥꾼이 마법의 주체를 찾기 위해 감각을 돋우며 눈을 부라리고 있을 때 앞과 뒤에 마수로 보이는 동물들이 또 튀어나왔다.
생긴 건 그냥 여우인데 유난히 붉은 털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우우-!
우우-!
레드 폭스들이 꼬리를 하늘 방향으로 바짝 세우며 불덩이를 만들어냈다.
“가만히 둘까 보냐.”
다시 사냥꾼이 권총을 들이밀자 하늘에서 또 제비 소리가 울려댔다.
찌르르-!
하지만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사냥꾼을 찾기 위해 뿌려두었던 스왈로우 4마리기 전부 모여 삭풍을 날려댔고 사냥꾼은 계속 회피를 해야 하니 제대로 된 조준이 불가능했다.
“전부 꺼져라!”
그동안의 경력을 헛으로 먹은 건 아닌지 사냥꾼은 혼신의 집중력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왈로우들을 전부 맞췄다.
찌르-
스왈로우들은 전부 역소환됐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화르르-
왜냐하면 레드 폭스들이 충분한 마력을 모을 때까지 버틴다는 명령을 충실하고 완벽하게 이행했기 때문이다.
“젠장!!”
사냥꾼은 급하게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덮어썼다.
그사이 레드 폭스들은 꼬리를 앞으로 움직여 불덩이를 날렸다.
콰과과광-!
한 길목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그 여파에 휩쓸린 건물들이 살짝씩 무너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건물 좀 무너뜨린다고 잡으러 오는 사람도 없겠지.”
이곳은 무법지대 슬레이, 경비병들이나 마법부의 마법사도 당연히 없다.
“이 정도면 죽었으려나?”
건물 잔해에 깔려 죽었기를 기도해봐도 그 사냥꾼은 이런 걸로 죽을 놈이 아니었다.
“폭스들아 확인 좀 해줄…….”
지금 현장에 있을 폭스들에게 사냥꾼에 생사 확인을 말하려 할 때 폭스와의 연결이 끊겨버렸다.
[역소환됐군요.]
“그런 것 같다.”
사냥꾼은 레드 폭스를 처리한 뒤 뒤집어쓴 거무스름한 가죽을 벗어 품 안에 넣었다.
“이게 없었으면 큰 화상을 입을 뻔했군.”
샐러맨더의 가죽.
샐러맨더는 용암에서 사는 도마뱀 몬스터로 그들의 가죽은 불에 대한 완벽 내성을 가지고 있다.
“엘프년, 잡으면 귀를 잘라주겠다.”
사냥꾼은 애꿎은 페일에게 어금니를 부술 듯 깨물며 분노의 칼을 갈았다.
하지만 데카드는 아직 사냥꾼을 편하게 광장까지 오게 할 생각이 없었다.
광장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400M.
데카드는 자신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는 최대한의 경계에서 사냥꾼을 방해하고 죽이려 들었다.
씨 홀스가 작은 파도들을 날려대고 볼트 렛이 짜릿한 전류를 몸에 흘릴 때도 사냥꾼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내가 포기할 줄 아느냐!!”
집념의 현상금 사냥꾼은 수차례의 공격으로 조금씩 찢어지고 해진 옷을 탈탈 털어 물기를 짰다.
“슬슬 잡혀간다.”
그 엘프년은 자신의 위치를 최대한 감추고 있는 것 같지만, 일반인보다 마나의 민감한 자신의 코는 속일 수 없다.
“조금만 기다려라. 요절을 내주도록 하지.”
사냥꾼은 검에 손잡이를 꽉 쥐며 점점 가까워지는 마법의 주체에게 달려갔다.
[주인님. 사냥꾼의 방향이 광장에서 주인님에게로 바뀌었습니다.]
“내 위치를 알아냈나 보네. 대단한데?”
나름 숨긴다고 숨긴 건데 귀신같이 자신의 위치를 알아냈다.
“나쁘지는 않아. 이걸로 계속 나를 쫓아오면 광장으로는 안 갈 거니까. 우리도 움직이자.”
데카드는 남은 마나를 체크하고 적당한 마수 몇 마리를 사냥꾼에게 더 풀은 후 거리를 벌리기 위해 옥상을 넘나들었다.
“끝도 없이 나오는군.”
끼기긱-!
현상금 사냥꾼은 우드 몽키 두 마리와 프로스트 펭귄과 맞부딪쳤다.
시시각각 날아오는 덩굴들은 목을 조이려 하고 이 원숭이들의 주먹은 직격을 허용하면 안 될 정도로 파워가 강했다.
끼에엑-!
“치잇!”
검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밟는 스텝도 저 펭귄이 계속 땅을 얼려 발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세마리의 마수가 합을 맞추며 사냥꾼을 압박하고 또 압박했지만 밀리는 건 마수들 쪽이었다.
“꺼져라.”
우드 몽키 한 마리가 검격에 역소환 되는 걸 시작으로 다른 한 마리와 펭귄도 빠르게 역소환됐다.
“하아…… 하아…….”
마수들의 공격은 전부 넘을 수 있는 정도의 위기였기에 죽을 만큼의 상처는 없었어도 떨어진 체력과 연속된 전투의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엘프년도 마나가 다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도주를 선택했겠지.”
위치가 거의 잡혀가던 마법의 주체 또다시 멀어지는 걸 보면 엘프 또한 갖고 있는 마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마나가 없는 마법사라면 두려워할 필요 없다.”
사냥꾼은 검을 집어넣고 데카드가 달려가는 곳에 맞춰 그를 쫓기 시작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