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밝아져 가는 출구
“찾았다고?”
데카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세이칼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렇소! 문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소!”
레버부터 사람이 올라가는 곳의 나사까지 하나하나 해체하던 도중 손상을 발견했다.
“원래부터 이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여기 배선이 흐트러진 곳이나 중간마다 이 푸른 빛줄기가 끊어진 곳이 있는데 그것이 문제인 것 같소.”세이칼은 눈을 계속 발견한 문제점에 고정시키며 또 다른 결함은 없는지 찾아보았다.
“오오! 역시 슬레이 최고의 수리공!”
“후훗! 뭘 이 정도 가지고.”
텔레포트 기계는 마법사들이 만든 마공학 기계 중에서도 가장 그 난이도가 높기로 평가받는 기계인데 그것을 한 번 보고 이렇게 결함을 찾았다는 건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은데?”
“흐음…… 생각보다 빠르게 문제를 발견했으니…….”
데카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세이칼의 답을 기다렸다.
“이틀! 딱 이틀만 기다려 주시오! 내 그 안에 무조건 고쳐 드리리다.”
“알았어!”
이곳에서 이틀이나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틀밖에 안 있어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자칫 1년이나 걸릴 수도 있던 일이었다.
“이곳에서 1년? 으윽…….”
1년 동안 썩은 쥐를 피해 도망치고 음식은 캔 요리밖에 없으며 길에서는 쓰레기 냄새와 술에 찌든내를 맡아야 하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아마 이곳에서 1년을 지냈어야 한다면 데카드는 갱단이라도 하나 창설했을지 몰랐다.
“하핫! 이곳이 보기에는 좀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오. 가끔 그것을 느낄 때면 마음이 무척이나 따뜻해지지.”
쓰레기통 도시라고는 하나 엄연히 사람 사는 곳.
무감정한 자들의 도시가 아니기에 사람과 사람과의 크고 작은 인연과 따뜻한 인심, 배려, 도움은 적지만 존재한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한 줄기의 빛조차 크게 보이는 법. 우리 부모님은 날 이런 어둠뿐인 도시에서도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라고 나를 가르치셨소.”
“좋은 부모를 뒀군.”
페일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아…… 대단하십니다.”
이곳 태생은 아니지만 로바드도 나름 이 슬레이에서 오랫동안 살아본 경험으로 봤을 때 슬레이 태생이 세이칼처럼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커 올 때부터 봐온 것은 어른들의 폭력과 술, 마약, 갱단뿐이고 부모조차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 힘든 그 상황 속에서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여기 와서 경험해본 적이 있지.”
“데카드 님이 말입니까?”
데카드가 뭔지 안다는 듯 공감하는 투로 말하자 로바드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의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네가 어떻게?’라는 눈빛이었고 데카드는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채며 손으로 로바드의 뒤통수를 후렸다.
퍼억-
“허헉!”
“물론 내가 그 인연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세이칼을 찾으러 온 술집에서 그의 이름을 말하자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멈추며 자신을 바라보았고 그들 모두가 세이칼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꽤나 많은 선행을 베풀은 모양이야.”
“하하. 이곳 슬레이에서 선행이라 할게 뭐 있겠소. 그저 음식을 조금 나눠주고 술에 취해서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하는 다른 도시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오.”
“일상적인 일이라…….”
데카드는 집행부가 나라의 수도에 있었기에 대도시에서 근무했었고 그곳에서 본 몇몇 사람들의 행동은 슬레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눈 뜬 채로 코 베이는 건 슬레이나 수도에 있는 대도시나 마찬가지다.
“잡설이 길었구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내일 밤이나 낮에 한 번 간을 봐봅시다.”
낮에는 주변에 깡패들이 돌아다니면 할 수 없었고 그들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인비저블 마법으로 일행의 모습을 가려야 했다.
“여기 주변에는 은신처 없어?”
또 밤중에 1시간을 걸어 다닐 걸 생각하니 벌써 다리가 뭉치는 느낌이었다.
“물론 있소. 20분만 걸어가면 되지.”
“대체 은신처가 몇 개이신 겁니까?”
마을 하나 건너뛰면 또 다른 은신처가 있을 만큼 세이칼의 은신처는 질리지도 않고 나왔다.
“수리공 일로 돈을 벌고 취미 삼아 몇 개 만들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더군.”
슬레이에서 은신처가 필수라고는 하나 이건 또 너무 많아 보였다.
광장에서 가까운 은신처의 입구까지 온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꼼꼼히 확인한 후 은신처로 들어왔다.
“항상 기상천외한 곳에 은신처를 지으십니다!”
이번에는 또 어디에 지었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품게 되는 세이칼의 은신처는 이번엔 맨홀 뚜껑이 입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는 길이 살짝 냄새가 났지만, 은신처 안은 습기도 적고 서늘한 것이 쾌적한 느낌이었다.
“원래 1인용인 은신처라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바닥에는 여기 모포를 깔고 자면 될 거요. 그리고 일단 밥을 먹어야겠지.”
슬레이 전통 국민 음식인 캔 요리는 잊을 만하더니 또다시 등장했다.
“여기 있는 물 좀 끓여주시겠소?”
원래라면 이 과정에 따로 기계가 필요하지만, 마법사가 둘이나 있으니 상관없다.
“내가 하지.”
캔 요리라니까 유난히 적극적인 페일은 물이 담긴 통을 받아들고 그 밑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파이어.”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시동어를 말하자 페일의 손바닥에서 작은 불이 피어오르며 얼마 안 가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마법은 확실히 편리하구려. 이제 여기에다 물을 쏟아주시오.”
캔 요리에 끓는 물을 부어주자 맛있는 냄새가 은신처 안에 감돌면서 허기졌던 배가 더욱 고파졌다.
“잘 먹겠습니다!”
짹짹이도 불러서 캔 요리 한 개를 주었고 저녁은 깔끔하게 끝이 났다.
“집에 갈 때 몇 개만 챙겨가도 되겠나.”
페일은 다 먹은 캔 요리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슬레이에는 널린 게 캔 요리이니 말이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페일은 시계가 고쳐졌을 때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벌써 가져갈 캔 요리를 고르는 중이었다.
“나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조심하시오.”
“알고 있어.”
데카드는 짹짹이와 함께 은신처 바깥으로 나오자 바로 옆에 3층 정도 되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저기 올라가자!”
이제 2서클로 데카드가 올라서면서 짹짹이도 펼칠 수 있는 힘이 강해졌고 코트 상태로 돌아간 짹짹이가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새벽의 밤하늘과 똑같은 색깔의 날개는 한번의 날갯짓으로 단숨에 3층까지 도달했다.
“착지는 부드럽게.”
깃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안락하게 옥상을 짚은 데카드는 이제 조금 더 가까워진 달을 바라봤다.
“마수계나 인간계나 달이 아름다운 건 똑같단 말이지?”
“맞는 것 같습니다.”
휘영청 떠 있는 보름달은 악취 나는 슬레이도 차별 없이 밝게 비춰주었다.
“마수계에 있는 부하 놈들은 잘 있을까?”
“멍청해 보여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놈들입니다. 어지간히 알아서 잘하고 있겠죠.”
“그렇겠지?”
고오른은 좀 걱정되긴 했지만, 그도 지배자급 마수다.
자기 앞가림은 잘 하고 다닐 것이다.
“루비아로 돌아가면 바로 해보자.”
“알겠습니다.”
지금 데카드가 갖고 있는 4마리 마수에 신체에서 떼어낸 물건들인 요르의 비늘 이불, 레오의 갈기 팔찌, 티이라의 송곳니 쌍단검, 고오른의 뿔피리는 마수 개인의 고유 마나가 아주 듬뿍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을 거야.”
데카드는 팔목을 감싸고 있는 갈기 팔찌를 매만지며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던 도중 짹짹이가 고개를 돌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주인님, 텔레포트 기계 쪽으로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누구지?”
지금까지 기계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는데 짹짹이의 말대로 사람 몇 명이 기계에 접근하고 있었다.
“가 보자.”
[알겠습니다.]
데카드는 짹짹이의 힘으로 몸에 어둠을 걸친 뒤 소리없이 기계 쪽으로 달려갔다.
* * *
머리에는 새까만 후드를 뒤집어쓰고 허리에는 긴 장검을 찼으며 등 쪽 허리에는 마공학 권총까지 찬 남자가 기계 쪽으로 몸을 숙였다.
“수리공에게서 날 법한 냄새가 나긴 나는군.”
기계에 접근한 남자가 코를 킁킁거리고는 또 다른 흔적을 찾기 위해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그것을 냄새만 맡고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말이야.”
남자의 뒤에 있는 또 다른 남자 두 명은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불평 섞인 말을 늘어놓았다.
“닥치고 있어라. 집중에 방해되니.”
뒤에 있는 남자들은 뭐라 반항도 하지 못하고 남자가 하라는 대로 입을 다물었다.
‘수리공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녹슨 철 냄새…… 이 기계 주변에 짙게 배어 있군.’
남자는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기계에 주변을 천천히 걸어 다니는가 한편 눈은 계속 또 다른 흔적을, 코로는 또다른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나무 냄새? 이 주변에 나무는 없고…… 그 도망쳤다는 엘프인가?’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뒤에 있던 남자들에게 말했다.
“너의 보스에게 그 엘프까지 잡아다 줄 테니 돈을 더 준비하라고 말해라.”
“우리가 네놈의 부하인 줄 아느냐! 너가 직접 전해라.”
남자가 호선을 그리던 미소를 지워버리고 천천히 남자들에게로 다가왔다.
“뭐, 뭐냐!”
푸확-!
검이 뽑히는 소리는 물론이고 휘두르는 것도 보지 못한 남자는 옆에 있던 다른 한 명의 목이 툭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사, 살려주십쇼!!”
“가서 전해라. 돈을 더 준비해놓으라고.”
무릎을 꿇고 겁에 질린 남자는 두 팔을 지지대로 삼아 겨우 일어서고는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달려갔다.
“하아…… 왜 사람은 한번에 말을 듣지 않을까.”
남자는 칼에 묻은 피를 털며 다시 검집에 넣으려는 순간 밤이라 그 안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골목을 바라봤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남자는 순전한 직감으로 사람이 숨어 있을 법한 곳은 전부 보았지만, 기척이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 있나 보군.”
갈 길을 막고 있는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발로 밀어버린 후 남자는 당당하게 대로를 따라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까 남자가 바라본 골목에서 데카드가 천천히 나왔다.
“뭐야, 저 새끼.”
[저희에 은신을 단순한 감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짹짹이는 조금 전 남자의 목을 날린 검의 속도와 위력에 인간계에 와선 처음으로 긴장이라는 것을 해봤다.
“세이칼을 쫓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는 페일도 그 범위에 들었어.”
[은신처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래야겠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심할 수 없는 강자가 판을 깨고 들어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