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문제 해결
“믿을 수가 없군…….”
“크으! 역시 마법사들은 엄청나네요!”
세이칼의 옆에 있던 로바드도 하나둘 사라져가는 횃불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제 들어와도 된다.”
데카드와 페일 대신 짹짹이가 세이칼의 앞으로 와 탈환 성공의 소식을 전했다.
“그,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로바드는 구면이지만 세이칼은 지금 처음 짹짹이의 인간형을 보았다.
“그건 네가 알 거 없다.”
짹짹이는 다시 까마귀로 변하며 하늘로 올라갔고 세이칼은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새로 변했어……?”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들어갑시다!”
로바드는 제자리에 서서 정신 못 차리는 세이칼의 팔을 붙잡고 그의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뭐가 신기한 게 많네.”
데카드는 쓰러진 깡패들을 밖으로 버린 후 작업실 안에 비치된 여러 기계들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오랜만이야…….”
집 바로 앞에 선 세이칼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정말 근 한 달 만의 들어온 집을 사악 손으로 쓸어보았다.
“왔어?”
집의 어느 방보다 제일 먼저 작업실을 온 세이칼은 집과 마찬가지로 기계들도 한 번씩 정성스레 만져주었다.
사람의 손을 오랫동안 타지 않은 기계들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금방 따뜻하게 해주마.”
예전처럼 기계를 돌리고 작업하다 보면 작업실은 한겨울에도 후끈후끈해진다.
“여기서 내 시계를 고쳐줄 수 있는 건가.”
페일이 위층에서 내려오며 넓은 작업실을 가득 차지한 기계들을 보았다.
“그렇소만, 말했다시피 소음이 심해서 방음을 하지 않는 이상 근처에 있는 썩은 쥐들이 알아챌 가능성이 높소.”
“방음. 할 수 있다.”
페일이 팔짱을 풀고는 손바닥을 펴며 전방향을 스으윽 쓰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후루루-
그럴때마다 허공에서 물길이 일어나며 작업실의 벽면으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더 많은 물이 나와서 벽면에 겹쳐졌고, 곧 작업실의 벽은 사람 한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졌다.
“이 정도면 방음은 확실하겠소!”
세이칼은 책상에 올려진 깡패들이 먹은 음식과 술을 전부 바닥으로 밀어버리고 그 위에 가져온 수리도구들을 펼쳤다.
“잠깐 시계를 빌려주시겠소?”
“여깄다.”
페일도 이 정도의 수량을 조절하려면 힘이 많이 들어 이마가 땀으로 촉촉해져 있었다.
“얼마 안 걸리니 조금만 참으시오.”
이미 한 번 해봤던 만큼 기계의 분해는 처음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다.
뒷부분의 나사를 한 번의 손목 돌림으로 풀어내고 아까 문제가 있었던 톱니바퀴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흐음…….”
세이칼은 이 부품의 원래 모양을 상상하며 적당한 크기의 톱니바퀴 재료를 꺼내 들었다.
“이걸로 새로운 톱니바퀴를 만들어 드리겠소.”
세이칼은 재료를 들고 한 기계 앞으로 이동해 앉았다.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긴장되는구먼.”
말을 하고 뛸 수 있을 때부터 항상 손에서 놓질 않았던 수리 도구와 수리 기계들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든 관계없이 손에 착하고 달라붙었다.
딸깍- 위이이잉-
전원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돌아가며 커다란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왜 방음이 중요하다고 했는지 알겠네.”
지금은 페일이 벽면을 전부 물로 두껍게 펼쳐놔서 망정이지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동네방네 세이칼이 돌아왔다고 소문낼 뻔했다.
세이칼은 톱니바퀴 재료를 기계에 잘 고정시킨 뒤 홈을 내는 도구를 손에 들고 오직 감각에 의지한 채로 톱니바퀴를 완성해나갔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을 세이칼 본인에게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데카드와 페일, 로바드에게는 휙하고 지나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완성됐소!”
세이칼이 벌떡 일어서며 이제는 완성된 톱니바퀴 재료를 손에 들었다.
“완벽해.”
그러고는 누군가 대답할 새도 없이 아까 시계를 분해시켜놨던 책상에 앉아 새로운 톱니바퀴를 들고 재조립에 들어갔다.
“지금이 몇 시요?”
“12시 56분입니다!”
로바드가 작업장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재빨리 대답했다.
“12시 56분…….”
망가져서 그대로 멈춰버린 시계에 시침과 분침도 다시 정확하게 맞춰놓고 뒷부분을 덮어버리자 회중시계는 다시 째깍째깍 돌아갔다.
“여깄소.”
페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 회중시계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엘프들 고유의 전통적 문양으로 조각된 시계는 그 틈 사이사이로 톱니바퀴들이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다.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고쳐진 물건을 받고 행복해하는 손님의 얼굴을 보는 것 또한 수리공의 즐거움 중 하나지.”
세이칼의 말대로 페일은 처음 보는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깜빡할 뻔했군.”
페일이 고쳐진 시계를 품속에 넣고 동시에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보수다.”
“받지 않겠소. 물론 거기 있는 검은 머리 손님의 것도 말이오.”
“오케이! 무르는 거 없기다!”
데카드는 이유야 어찌 됐든 공짜라는 말에 덩실덩실 기뻐했고 세이칼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대들에게 하루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정말 값진 도움을 받았소. 얼마나 갈지 모르는 행복이지만 이렇게 집을 돌려받은 것과 기계를 다시 만져볼 수 있게 됐다는 점. 두 분에게 정말 감사드리오.”세이칼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둘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인사를 했다.
“나야말로 정말 고맙다.”
페일도 세이칼과 같이 감사를 표시했다.
“그럼 이제 검은 머리 손님의 물건도 보러 가야겠소. 오늘 안에 고칠 수는 없겠지만, 견적은 내 볼 수 있을 것이오.”
“바로 출발하자고!”
데카드는 기다릴 만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오자 로바드를 바라봤다.
“여기서 기계까지는 얼마나 걸려?”
“어…… 음…….”
로바드는 데카드를 만난 이후로 하루종일 지도만 들여다본 탓에 이제는 머릿속에 슬레이의 지도가 들어있었다.
“50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멀지도 않네! 갑시다!”
“준비 끝났소.”
로바드가 길 안내를 위해 선두를 서고 그 뒤를 데카드와 세이칼, 페일이 따라왔다.
“응? 너도 따라오는 거야?”
데카드가 일행을 따라 걸어오는 페일을 보고는 말했다.
페일의 용건은 여기서 끝났으니 자신의 집으로 가도 문제 없을 텐데 이쪽을 따라오는 모습은 이상했다.
“그대가 나의 일을 도와줬듯이 나도 그대의 일을 끝까지 도와주겠다.”
“의리가 넘치는 엘프구만.”
기계가 완전히 고쳐질 때까지는 최소 2~3일이 걸리고 길게는 1년이나 걸린다는 것을 페일도 들어서 알고 있을 터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반의반은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엘프들은 인간과 성격이 완전 다르다고 집행관 때부터 선배들에게나 문헌으로나 들어보기는 했지만, 막상 경험하니까 또 신선하다.
“어쨌든 고맙다.”
데카드 혼자라면 뒤 없이 나댈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인데 페일이 계속 일행에 붙어있는다면 그 범위는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저곳입니다!”
델레포트 기계 주변은 저번에 로바드와 처음 만났던 주점하고도 가까워서 지리에 익숙한 로바드가 지름길을 통해 올 수 있었다.
“기계는 아예 버려진 건가?”
처음 왔을 때도 그렇고 기계 주변에는 거리를 떠도는 거지나 부랑자 말고는 그 흔했던 깡패도 없었다.
“초반에는 관심이 엄청났습니다. 저걸 이용해서 다른 도시를 빼앗자는 둥, 세계 침공도 가능할 거라는 둥 말들이 많았지만, 작동법을 몰라서 실패하고 말았죠.”
“슬레이에는 마법사가 없어?”
꽤나 괜찮은 마법사만 몇 모인다면 원하는 목적지로의 이동은 불가능하더라도 작동은 가능하다.
“마법사들이 있긴 한데…… 두 분처럼 유능한 편은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과의 싸움이라면 마법은 아무리 하찮더라도 큰 무기가 되기에 슬레이의 마법사들은 다들 자신만의 패거리를 만들기 바빴지, 수련 따위는 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다.
“자, 그럼 기계를 한 번 뜯어보겠소.”
“라이트.”
어두운 밤에서도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게끔 페일이 라이트로 광구들을 생성해 세이칼의 주변으로 띄워 주었다.
“고맙소.”
세이칼은 수리도구들로 텔레포트 기계에 레버가 달려있는 곳 밑에 있는 나사를 풀고 철판을 뜯었다.
“이, 이게 뭡니까?”
마법이나 공학에 아예 무지한 로바드의 눈으로는 무수한 배선과 그 틈 중간중간에 푸른 색 빛줄기가 지나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허헛.”
세이칼도 헛웃음을 터뜨리며 기계를 더욱 더 자세하게 관찰하였고 이것이 뭔지부터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래도 이동에 관한 것 같고…… 이 푸른 빛줄기는 무엇이오?”
“아마 사람의 마나회로 역할을 하라고 넣어둔 것 같은데.”
데카드도 마공학 전공이 아니라 기계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해 대답에 확신이 없었다.
“흐음…… 잘 알겠소.”
세이칼은 자신의 지식 내로 알 수 있는 공학적인 것과 알 수 없는 마법적인 것으로 기계 안에 들어있는 부품들을 정리했다.
“흐음…… 어디가 망가졌는지만 알면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기계는 10명의 사람도 거뜬히 서 있을 정도로 컸기에 이걸 다 뜯어보려면 온종일이 걸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곳은 슬레이의 광장이라 너무 개방된 곳이었다.
[이곳에 너무 오래 있는 건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우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군요.]
오밤중에 광장에 있는 기계 주변에서 환한 빛을 켜놓고 모여있는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피해야 할 깡패들은 안 보였지만 될 수 있으면 일행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됐다.
“우리들을 눈에 안 띄게 하는 건 마법으로 가능하다.”
페일이 광구들로 밝아진 주변에 마법 한 가지를 사용했다.
우우웅-
마나로 이루어진 막이 일행이 있는 공간을 감싸는 것을 끝으로 마법은 시전을 완료했다.
“으음…… 뭐가 달라진 겁니까?”
마법에 대해선 아는게 별로 없을 로바드는 무언가 푸른 색 막이 곁에 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 막 사이로 나가보면 안다.”
“어엇!”
페일이 등을 툭 밀치자 로바드가 넘어질 듯 헛걸음질을 하며 엉거주춤 막 바깥으로 나왔다.
“이, 이게 뭐지?”
막 바깥에서는 일행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계를 뜯어보던 세이칼도 보이지 않았고 페일과 데카드 모두 보이지 않았다.
“빛속성도 할 줄 알아?”
“특기가 물속성인거지 빛속성도 가능하다.”
지금 페일이 쓴 마법은 인비저블로 일정한 크기의 막을 생성해 그 막 안에 들어온 것들을 투명하게 해주는 걸 말한다.
“마법은 정말 다양한 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는군요!”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에 꿈도 이 마법만 있으면 현실로 이루어진다.
“빛이 없으면 사용을 할 수 없으니 그렇게 편리한 마법은 아니다.”
그렇게 로바드가 신기해하며 막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고 있을 때 세이칼이 기쁨으로 찬 탄성을 질렀다.
“찾았다! 문제점을 찾았소!”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