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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8화 (18/208)

018 탈환

“고칠 수 있겠나?”

눈앞에서 사람이 피 분수를 뿜으며 죽던 수분이 다 빨려 깡마른 육포처럼 되던 아무런 상관도, 관심도 없는지 보스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건 세이칼이 저 큐브를 고칠 수 있는지였다.

“…….”

세이칼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썩은 쥐 보스의 얼굴과 금색의 큐브를 바라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칠 수 있냐고 물었다.”

찌직-

보스의 애완용 쥐가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세이칼에게 얼른 대답하라고 압박이라도 주듯 쇳소리를 냈다.

“할 수 있습니다.”

유물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저 인간에게 자신의 효용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방금 죽은 두 명처럼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말 거다.

그저 살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고 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생활할 작업실에 부족한 건 없겠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지원해주도록 하지.”

보스의 말에서 세이칼은 번뜩 이곳에서 도망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작업하기 전, 제집에 한 번만 들르고 싶습니다.”

“이유는?”

“제가 항상 쓰는 장비들이 있는데 그게 없이는 이 큐브를 열수도 없고 집중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보스는 손에 깍지를 끼고 테이블 위에 올렸다.

조명에 어렴풋이 비친 보스의 반지에서 금속의 쥐가 그를 노려보는 듯했다.

“내가 준비한 작업실에는 너가 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장비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세이칼을 자신의 눈앞에 두기 위해 썩은 쥐에 보스는 수리공이 쓴다고 알려진 장비들을 최상급으로 전부 준비해놨다.

“하지만 저는 제가 쓰던 것이 아니면 일을 하지 못하고 이 큐브가 워낙 정교한 물건이라 처음 써보는 장비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어떤 실수가 있을지 모릅니다.”자신이 이렇게 말을 조리 있고 깔끔하게 잘하는지 세이칼은 처음 알았다.

“흐음…….”

보스는 몇 분 정도를 고민하다가 다시 책상 위에 켜져 있는 조명에게서 멀어졌다.

“좋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지.”

다시 목에서 드는 따끔함과 함께 세이칼은 기절했고 다시 눈을 떠보니 익숙한 자신의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으윽…… 꼭 이렇게 사람을 옮겨야겠소?”

“우리 소속원도 아닌 사람에게 본부의 위치를 알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세이칼은 조금씩 돌아오는 시야와 아직 심한 어지럼증을 참은 채 작업실에 있는 큰 가방을 가져왔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아라. 여기 주변 전체를 우리가 포위했으니.”

“알고 있소.”

썩은 쥐의 보스는 잔인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철두철미하고 예민한 자다.

집을 중심으로 몇 겹에 포위망을 짜놨을 것이고 육로로는 도망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큰 가방에 지금까지 수많은 물건들을 같이 고쳐왔던 장비들을 전부 넣었다.

휴대가 가능한 장비들은 챙겼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거치용 장비들은 이곳에 남겨두어야 했다.

“읏차.”

세이칼은 가방을 등에 메는 것을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쳤다.

“끝났나? 이제 그럼…….”

“잠깐!”

“응? 뭐 놓친 게 있나?”

세이칼이 아랫도리를 붙잡으며 작업실과 가까운 화장실을 가리켰다.

“똥 좀 쌉시다.”

“얼마 안 걸리니 가서 해라.”

뒤에 있던 깡패가 또 수면용 다트를 쏠려는 순간 또 세이칼이 급하게 끼어들어 멈추게 했다.

“자, 잠깐! 잠깐! 저 다트를 맞으면 엉덩이에 힘을 못 줘서 마차에 싸버릴 텐데 괜찮겠소?”

“…….”

깡패는 마차로 가는 길 내내 그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낯빛이 썩어갔다.

“대장, 마차에 있는 의자 가죽을 저번 주에 바꿨는데 이번에 또 바꾸려면 예산 엄청 깨집니다……!!”

“닥치고 있어라.”

예산 얘기가 나오자 대장이라 불린 깡패는 화장실을 보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면 다트를 꽂지 말고 그냥 태워주던가!”

“그건 안 된다.”

외부인이 본부로 오는 경로를 알아버리는 건 그것이 어떤 이유라도 크나큰 중죄였다.

“후우…… 갔다 와라.”

“고맙소!”

화장실은 건물 밖에 있었고 딱 변기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 1인용 화장실이었다.

벌컥-

세이칼이 부리나케 바깥으로 들어가서 화장실의 문을 연 그때 뒤에서 깡패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방도 들고 들어가는 건가?”

세이칼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고 심장이 멈춘 것 같았지만, 순간의 기지로 잘 대답할 수 있었다.

“언제나 한 몸 같은 도구들이라서 말이오. 그래서 항상 이렇게 화장실도 같이 들어간다오.”

“그런가. 5분 줄 테니 빨리해라.”

“난 변비라서 10분은 걸리오!”

세이칼은 그렇게 가방을 멘 상태로 화장실 문을 쾅 닫았고 곧장 푸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변비라는 놈이…….”

그렇게 5분이 지나고 세이칼이 본인의 입으로 얘기한 10분이 지났을 때도 화장실 안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참다못한 대장 깡패가 화장실로 와 문을 쿵쿵 두드리며 말했다.

“이봐! 이제 그만 나와라!”

이렇게 해서 늦어버리면 간부님들한테 변명할 명분도 사라져버린다.

썩은 쥐에 보스 못지않게 무섭다고 소문이 자자한 간부들한테 똥 싸느라 늦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깡패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그 어떤 반응이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콰앙-!

갑자기 드는 불안한 예감에 깡패가 화장실 문을 걷어차자 안에는 누가 들어갔냐는 듯 아무도 없었다.

“젠장!! 빨리 수리공을 찾아라! 어서!!”

이 좁디좁은 화장실에 도망칠 공간이 어딨는지 세이칼은 한줄기의 바람이 된 것처럼 사라져있었다.

* * *

“그렇게 변기 밑에 있는 구멍으로 거의 반나절을 기어서 다른 은신처로 탈출했지.”

파라만장한 탈출 스토리에 로바드는 감탄하다가도 썩은 쥐 보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썩은 쥐 보스는 영생을 노리는 건가?”

데카드로선 영생이란 단어가 나름 익숙했다.

집행관 시절, 주로 잡고 다녔던 흑마법사들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리치로 다시 태어나 이루려는게 바로 불사, 즉 영생이었다.

물론 자기한테 맞아 다 죽어가는 흑마법사가 영생 어쩌구라고 나불거려도 전혀 무섭지 않았기에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걸 실현시켜주는 물건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무서운 자였네. 사람이나 부하를 고작 갈아 끼우면 되는 부품 정도로만 여기는 놈이야.”

“흥. 인간 주제에 건방지고 하늘 높은 줄을 모르는구나.”

평균 수명이 500년 정도로 별다른 일만 없다면 인간보다 훨씬 긴 인생을 살아가는 엘프들은 영생을 쫓는 이들이 한심하고 우주에 떠 있는 별을 잡으려는 멍청이 같았다.

“어쨌든 나는 그 정체 모를 유물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고 신경쓰고 싶지도 않네. 빨리 내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야.”

세이칼은 관심이 좀 잦아들때까지 은신처에 있을려 했는데 썩은 쥐에 보스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 목소리와 몸을 낮춰주시게.”

지금 걷고 있는 골목길만 지나면 바로 앞에 세이칼의 집이 있다.

“짹짹아 보고 있어?”

하늘을 날아 일행을 계속 쫓아오던 짹짹이는 세이칼의 집을 지키고 있는 깡패들이 훤하게 보였다.

[정문에 둘, 후문에 셋, 집 안에도 몇 명이 있는 것 같고, 작업장 안에도 셋 정도가 보입니다.]

“흐음…… 혼자 개인행동을 안 하고 항상 뭉쳐 다니는군. 이래서 조용히 처리할 수 있으려나.”

데카드는 씨익 웃으며 안심하라는 듯 세이칼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이제부터는 마법사가 나설 차례야. 걱정 말고 여기에 숨어있어.”

“응원하겠습니다! 데카드 님!”

때마침 하늘도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는 지금 야습을 하기 딱 좋은 때다.

태양이 사라지고 깡패들은 시야를 밝히기 위해 횃불을 들었으며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지금.

“내가 작업장 쪽부터 천천히 정리하겠다. 신호를 주면 따라오도록.”

페일이 먼저 나서겠다 말하자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짹짹아.”

기본적으로 어둠 속성을 타고난 짹짹이는 야습에 최적화되어있었다.

깃털 코트로 변한 짹짹이가 데카드에게 걸쳐지자마자 어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데카드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호오, 소환사가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특별한 거야.”

어둠이 발에도 감싸지면서 발걸음소리가 전혀 흘러나오지 않았고 페일은 조심스럽게 어둠에 몸을 숨기면서 작업장 입구 근처까지 도달했다.

페일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며 생긴 구멍에 작은 입김을 불어넣자 마치 비눗방울처럼 물방울들이 뽕글뽕글 생겨나기 시작했다.

꽤나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이것이 불러오는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꼬르륵-!

꾸르르-

물방울들은 빠르게 날아가 깡패들의 머리에 뒤집어써 졌고 그대로 숨을 못셔 질식사하고 말았다.

“안쪽은 내가 처리할게.”

짹짹이의 말대로 작업실 안에는 세 명 정도가 지키고 있었다.

사실 말이 지키고 있는 거지 의자에 앉아 농땡이를 피우며 저들끼리 신 나게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너 혼자 가능한 거 맞나?”

창문을 통해 슬며시 본 안쪽은 딱히 제대로 된 경계를 안 하고 있더라도 거의 동시에 세 명을 아무런 소음 없이 처리해야 한다.

“걱정 말고 다른 데 처리하고 있어.”

데카드가 마수계로 끌려가기 전에 얼마나 많은 흑마법사의 소굴을 털어봤다고 생각하는가.

흑마법사들이 모이는 집회에도 몰래 들어간 적이 있을 만큼 데카드가 쌓아온 짬은 적지 않았다.

“알았다.”

페일이 그렇게 후문 쪽으로 이동하고 데카드는 거칠 것 없이 대놓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 열려있으니까 들어와!”

안쪽 깡패들은 자신들의 동료라 생각하는건지 별다른 의심이 없었고 데카드는 그들의 말대로 문을 열었다.

“누구…….”

어둠으로 가려진 데카드를 알아채지 못한 깡패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행동이 멈춘 이때 데카드는 손을 흩뿌렸다.

슈슈슉-!

손바닥 길이에 검은 깃털들이 암기처럼 날아가 순식간에 깡패들의 목을 꿰뚫었다.

[감이 죽지 않으셨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군데 당연하지.’

본래 이것은 마법사의 마법이 아닌 마수들의 마법으로 짹짹이의 종족인 다크로우의 스킬이었다.

작업장 입구에서 쓰러진 깡패 두 명은 누가 볼 수 있으니 조용히 작업장 안쪽으로 옮기고 문을 닫자 완벽범죄가 따로 없다.

“스읍…… 그냥 도둑이나 할까?”

무음으로 움직이게 하고 마음대로 어둠 속에 몸을 녹아들게 할 수 있는 짹짹이의 능력은 그야말로 잠입, 암살에 최적이었다.

“아래에 무슨 일 있어?”

시끌시끌하던 아래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작업실 위에 있던 깡패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 없어요.”

물론 그 깡패도 조용히 뒤로 돈 후에 목을 졸라 기절시켰고 그대로 위층까지 깡그리 정리했다.

“바깥쪽도 끝났다.”

입구들을 막고 있던 깡패들도 페일이 정리를 끝냈고 30분도 안돼서 세이칼의 집 탈환에 성공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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