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유물
세이칼이 원래 살고 있던 곳은 집과 작업장을 겸비한 곳이었다.
바로 그곳에 세이칼을 슬레이 최고의 수리공으로 불리게 도와준 여러 장비들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다른 수리공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소.”
세이칼은 분해했던 파츠들을 다시 재조립해, 페일에게 주었다.
“썩은 쥐들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나.”
페일이 희망의 끈을 잡으며 물어봤고 세이칼은 잠시 고민하면서 어느 정도에 견적을 내보았다.
“당신들의 실력이라면 집에서 대기 중인 놈들을 치워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하지만 문제는 곧바로 썩은 쥐의 본대가 들이닥칠 거란 거지.”페일은 망가진 회중시계를 바라보다가 세이칼에게 말했다.
“밤을 틈타서 깡패들을 조용히 제압한 후에 일을 끝내고 다시 집을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가?”
“조금에 시간은 벌 수 있을지 모르나 기계가 내는 소음이 워낙 시끄러워서 말이오. 방음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금방 썩은 쥐들이 알아챌 것이오.”페일은 이제 겨우 손에 닿을 것 같이 가까워졌던 목적지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데카드는 쇼파에서 일어나 세이칼의 앞으로 왔다.
“당신은 어떤 것을 고치고 싶소?”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이것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텔레포트 기계는 세계 최고 마법 아카데미인 마탑에서 전공학과로 공간속성을 배우고 부전공학과로 마공학을 전공해야 다루고 고칠 수 있는 아주 전문적인 기계였다.
“허! 이리 줘 보시오! 나는 일평생 못 고쳐본 물건이 없소!”
자존심이 상한 세이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 내가 손으로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텔레포트 기계는 아공간 주머니로도 옮길 수 없을 만큼 커다랬다.
“중앙에 있는 텔레포트 기계. 알지?”
“당연하오. 그것이 처음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몰래 한 번 뜯어보려다가 잡혀가고 그랬었지.”
그때만 해도 슬레이는 세금을 걷고 경비병들이 돌아다니는 정상적인 도시였다.
세이칼은 잠시 그 시절을 생각하다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데카드를 쳐다보았다.
“설마 당신이 고쳐달라는 물건은…….”
“맞아. 난 당신이 텔레포트 기계를 고쳐주었으면 좋겠어.”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쳐보겠소.”
세이칼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일어난 그대로 간단한 수리공구와 부품들을 챙기려 했다.
“어? 그게 어디 갔지?”
선반을 양손으로 마구 뒤져보던 세이칼이 아! 하는 깨달음의 소리를 내지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손님들의 물건은 내 집을 가지 않으면 고칠 수가 없을 것 같소.”
“왜지?”
한숨을 푹 내쉰 세이칼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공구 상자를 열어보았다.
“내가 항상 갖고 다니는 도구들이 있는데 이 은신처에는 그것들을 실수로 가지고 오지 않은 것 같소.”
“그래서 그것들이 집에 있다?”
“맞소.”
결국 어떤 이유로든 썩은 쥐 깡패들을 뚫고 세이칼의 집을 탈환해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페일이 팔짱을 끼며 지금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을 점검하던 중 결심하며 세이칼에게 물었다.
“무슨 시간 말이오?”
“내 망가진 부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
세이칼은 아까 만져보고 관찰해보았던 톱니바퀴를 떠올리고는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었다.
“10분에서 15분 정도가 걸릴 것이오.”
“텔레포트 기계를 고치는 건?”
데카드도 시계처럼 10분에서 15분을 바랐지만 꿈과 현실은 멀었다.
“정확한 시간은 본체를 한 번 뜯어봐야 알겠지만, 손상이 적다면 2~3일은 걸릴 것이오.”
세이칼의 말을 들은 데카드는 아파져오는 머리를 매만졌다.
이곳에서는 오래 있을 생각이 전혀 단 1도 없었는데 아주 그냥 말뚝 박게 생겨버렸다.
심지어 짧아야 2~3일이라는 소리는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손상이 많으면 얼마나 걸리는데……?”
마음의 준비라도 미리 하기 위해 세이칼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말없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1주일?”
세이칼은 고개를 저었다.
“한 달?”
이번에도 그는 긍정하지 않았다.
“설마 1년?”
“그렇소.”
이제서야 맞춰낸 스무고개의 정답은 전혀 기쁘지도 않고 성취감은커녕 절망감만 드는 것 같았다.
“너무 걱정은 마시오. 최대한 빨리 끝내 드리지.”
세이칼은 적당한 장비들만 챙겨들고 은신처를 나가기 위해 바깥으로 나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덜컹-
시트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바깥의 빛이 계단과 일행을 환하게 비췄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소.”
나가기 전에 확실하게 주변 경계를 마친 세이칼은 선두로 가장 먼저 올라왔다.
그 뒤를 데카드, 페일, 로바드 순으로 모두 올라왔고 닫은 문 위에 시트를 올려주자 다시 감쪽같이 입구가 사라졌다.
“집까지는 조금 걸어야 하니 부지런하게 움직입시다.”
로바드의 집은 은신처에서도 1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 거리에 위치했다.
“정지.”
중간중간 썩은 쥐에 깡패들이 지나갔고 그들을 피하면서 걸어가니 이동속도는 조금 느릴 수밖에 없었다.
“허헛. 나를 잡으려고 많이도 풀었군.”
세이칼은 은신처 안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지 잊을만하면 나오는 썩은 쥐 깡패들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당신은 뭐 때문에 이렇게 쫓기는 거지?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말했던 그 악마의 물건은 또 뭐고.”
세이칼의 집까지 절반 정도가 남았을 때 깡패들을 피하려 몸을 숙이고 있던 데카드가 물었다.
같이 몸을 숙이고 있는 세이칼은 생각만 해도 빠드득 이가 갈리고 주먹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쥐었다.
“이제 일어나도 된다.”
깡패들이 지나가고 일행은 다시 세이칼의 집으로 움직였다.
“갈 길도 많이 남았고 딱히 비밀도 아니니 말해주겠소.”
세이칼이 여느 때처럼 의뢰로 들어온 물건이나 동네에 망가진 물건들을 고쳐주고 있을 때 작업장으로 어떤 남자들이 찾아왔었다.
“무슨 일이오?”
그들은 동네 주민도 아닌 처음 보는 자들이었고 입고 있는 옷을 보아하니 썩은 쥐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못 고치는 물건이 없다지?”
“보스께서 너를 찾으신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세이칼은 무언가 일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깡패 보스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부터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슬레이에 살면서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물 중 5 손가락 안에 드는 썩은 쥐의 보스가 지금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못 끝낸 작업량이 많아서…… 내일 다시 오겠소?”
“부탁이 아니다.”
깡패의 말과 함께 뒷목에 무언가 푸욱하고 박히는 느낌이 났다.
“이건……?”
목에서 드는 이질감에 손을 대서 뽑아내자 다트 같은 것이 만져졌다.
그와 함께 졸음이 갑자기 쏟아지고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털썩-
“이놈 묶은 다음에 자루에 담아라.”
이 소리를 끝으로 세이칼은 깡패들에 의해 마차에 실려 어딘가로 이동됐다.
* * *
갑자기 몸 전체를 뒤덮는 차가운 감각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온몸이 축축해진 채로 손발이 묶여 있었다.
“정신을 차렸나?”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멍한 시야를 집중시켜서 그 주인을 따라가자 테이블 중앙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고 어깨와 손 위에 쥐들이 앉아있었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지금 네가 있는 곳을 이끌고 관리하는 자라 할 수 있지.”
썩은 쥐의 보스.
잔인하고 포악하며 실수를 저지른 이를 절대 살려주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죽이거나 버려버리는 사람.
그에 관한 정보가 뇌리를 스치자 내장부터 근육까지 긴장상태에 들어가며 숨 한 번 쉬는 것도 어려워졌다.
“자네가 고쳐주었으면 하는 물건이 있어.”
제대로 된 빛이라곤 책상 위에 있는 전구 하나 밖에 없어 보스의 흉부밖에 보이지 않았고 얼굴은 모르겠지만, 목소리는 의외로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웠다.
썩은 쥐 보스가 손가락을 딱하고 엇갈리며 부딪치자 문을 조심스럽게 연 남자들이 꿈틀거리는 포댓자루 두 개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큐브같이 생긴 무언가를 가져왔다.
“풀어라.”
포댓자루에서는 자신처럼 끌려온건지 두려움과 공포에 몸을 떠는 젊은 여자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사,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여, 여기가 어디오!”
“쉿.”
썩은 쥐 보스의 한마디에 여자와 늙은 남자는 얼어붙어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사람처럼 일체의 미동도 하지 못했다.
“내가 고쳐 주었으면 하는 건 저 큐브다.”
정육면체 모먕을 하고 있는 큐브는 바깥으로 무언가 기하학적인 문양이 인상적이었고 매우 단단해 보였다.
“이, 이게 어떤 물건인데 그러십니까?”
“그걸 지금 보여주도록 하지.”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세이칼은 어째서인지 보스가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큐브를 잡고 여자도 반대편에서 잡아라.”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는 벌벌 떨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람 머리만 한 큐브를 양손으로 잡았다.
“Junge kommen zu mir.”
썩은 쥐 보스가 알 수 없는 언어의 말을 내뱉자 큐브가 진동하면서 붉은빛을 내뿜더니 여자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까아아아!!!”
비명소리와 함께 여자의 주름 하나 없던 얼굴이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듯 주름이 파여갔다.
손을 떼려고 해도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큐브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반면에 늙은 남자는 점점 주름이 펴지고 희끗희끗했던 머리는 다시 검게 돌아왔으며 굽은 허리도 펴져 짧게 말해 젊어지고 있었다.
우우웅-
큐브의 빛이 꺼져서야 손은 자유를 되찾았지만 이미 여자는 피라미드의 미라처럼 온몸에 수분과 피가 사라져 죽어있었다.
“저, 젊어졌어……! 젊어졌다고!!”
반대로 늙은 남자는 목소리도 완전히 청년의 그것으로 돌아왔으며 늙으면서 빠진 근육량도 돌아온 듯 온몸에 힘이 넘쳐 보였다.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 모습을 온전히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던 세이칼은 만지면 바스러질 듯 미라가 되어버린 여자와 그와 정반대로 팔팔해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지만 이건 우리가 극비리에 입수한 유물이네, 보다시피 젊음을 뺏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남자는 미라가 되어 죽은 여자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다시금 젊어진 몸을 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물건에도 한가지 문제점이 있네.”
“크헉……!”
남자가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긴 듯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꽉 붙잡기 시작했다.
주르륵-
남자의 코를 시작으로 눈, 입, 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기 시작했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어떻게 얻은 젊음인데!!”
남자가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어떻게든 손으로 막아보며 큐브를 아까처럼 잡거나 흔들어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카학!!”
결국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은 남자는 여자와 같이 쓰러져 죽어버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