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6화 (16/208)

016 슬레이 최고의 수리공

페일이 먼저 숨겨진 은신처로 내려가고 로바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근데 저희가 너무 대놓고 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좀 그렇긴 해.”

예상대로라면 분명 이 안에 세이칼이 있을 것이고 다 부서져 가는 집이라고는 하나 건물 한 채가 쓸려나가는 소리를 못 들었을 수 없다.

“그래도 입구는 여기 있으니까 안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만약…….”

데카드는 다 잡은 목표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작은 가능성이라도 쉽게 보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출구가 있을 수 있으니까, 짹짹아 여기 주변을 계속 순찰해줘.”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곳으로 슬며시 도망치는 세이칼이 있다면 하늘에 있는 짹짹이가 곧바로 발견할 것이다.

혹시 모를 가능성도 막아둔 데카드가 이제 페일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안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페일이 밖으로 뛰어 올라왔다.

“젠장! 피해라!”

콰아앙-!

곧장 폭발이 주변을 강타하며 폭음과 함께 흙들과 먼지가 후두두 머리 위로 쏟아졌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어우…… 괜찮은 것 같아.”

폭발음 때문에 귀가 조금 멍멍한 것 빼면 어디 다친 데 없이 멀쩡했다.

“그보다 이런 폭발물을 숨겨뒀을 줄은 몰랐습니다!”

폭발을 피하기 위해 바닥으로 몸을 던진 로바드는 자신이 먼저 내려갔다면 뒤뚱뒤뚱 올라오다 폭사 당했을 거란 생각의 팔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뭘 했길래 갑자기 이런 게 터져?”

옷에 묻은 흙을 털던 페일의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곧 대답했다.

“바닥에 얇은 줄이 있어 건드려 봤는데…….”

“그걸 건드렸어?”

수리공이 만들어둔 함정을 발견해놓고서 걸려준 마음씨 좋은 엘프는 고개를 숙였다.

“내 실책이다.”

“이미 입구가 무너진 건 어쩔 수 없는데 그럼 안에 있는 세이칼은 어떻게 된 거지?”

계단은 무너져 내려 입구가 막혀버렸고 지하에 있는 은신처도 어지간하게 튼튼하지 않으면 손상을 입을 텐데 자신이 준비한 함정의 자신이 피해를 입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 침입자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다른 입구로 빠져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주인님, 세이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하늘에 있는 짹짹이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어디야?”

[주인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남쪽으로 100M 방향입니다.]

데카드는 짹짹이의 설명을 듣고 또 세이칼을 놓치기 전에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어, 어디 가십니까!”

“세이칼을 찾았나 보군.”

페일은 엘프 특유의 재빠름을 이용해 금세 저 멀리 달리고 있는 데카드를 따라잡았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로바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빨리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달려가는 둘을 쫓았다.

[앞에 보이는 집 두 채만 넘어가면 세이칼이 보이실 겁니다.]

짹짹이가 위에서 알려주는 세이칼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받으며 데카드는 실수 없이 수리공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잠깐 멈춰봐! 당신이 고쳐야 할 물건이 있다고!”

이제 육성이 들릴 정도까지 가까워지자 데카드가 조금 더 앞에서 달리고 있을 세이칼에게 소리쳤다.

“너희 썩은 쥐 보스가 고쳐달라는 건 악마의 물건이다! 내가 그것에 손톱이라도 댈 줄 아느냐!”

결의마저 느껴지는 세이칼에게 날아온 답변에 페일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며 손바닥을 아래로 해 물을 응축시켰다.

“웨이브 블라섬.”

페일의 손을 떠난 물은 그대로 한 줄기에 급류가 되며 그 앞에 장애물이 뭐가 있던 전부 부수거나 뛰어넘어 세이칼에게 다가갔다.

“이, 이건 마법?!”

사람이 물보다 빠를 수는 없었고 세이칼은 곧 물로 이루어진 밧줄의 포박되어 페일과 데카드의 앞에 끌려왔다.

“차라리 날 죽여라!”

드디어 초상화가 아닌 육안으로 보게 된 세이칼은 거친 인생을 대변하는 얼굴에 작은 흉터들과 자르지 않은 머리를 뒤로 묶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워워! 진정해! 우리는 썩은 쥐 깡패들이 아니야!”

“그 말을 어떻게 믿…….”

세이칼의 시선이 데카드를 넘어 그 뒤에 있는 페일에게로 다가가 멈췄다.

달리느라 바람에 벗겨진 후드는 엘프의 기다란 귀와 아름다운 얼굴을 숨겨주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다.

“겠소! 당연히 믿지! 그럼 먼저 이것 좀 풀어주시오.”

갑자기 배부른 양처럼 순해진 세이칼의 태도에 페일은 그를 묶고 있던 물을 풀었다.

“썩은 쥐 놈들이 엘프를 노리개로는 써도 동료로 받아주지는 않겠지.”

세이칼은 봐도 적응 안 되는 페일의 용모에 헛기침하며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었다.

“크흠! 첫만남이 제대로 꼬여버린 것 같지만 먼저 내 소개를 하겠소. 나는 슬레이에서 제일가는 수리공 세이칼 하딩이오.”

“데카드 아르마다.”

“페일이다.”

서로간의 짧은 자기소개가 끝났을 때 로바드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거친 숨과 함께 셋에게로 도착했다.

“수리공은 허억…… 찾으신 허억…… 겁니까?”

“숨 좀 돌리고 말해라.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로바드는 그게 좋겠다는 듯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일단 자리를 옮깁시다. 이곳은 이미 발각됐소.”

세이칼이 어딘가로 걸어가고 데카드와 페일이 그 뒤를 따르자 쉬지도 못한 로바드가 옆에 있던 부러진 나무를 지지대 삼아 겨우 일어나 따라갔다.

* * *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내 은신처가 하나 더 있소.”

“대체 은신처가 몇 개야?”

아까 페일이 함정을 밟아 터뜨린 은신처도 그렇고 이 주변에만 해도 파악되지 않은 은신처들이 넘쳐났다.

“이런 도시에서 은신처 몇 개 준비해 놓는 건 필수요. 그저 내 손재주 때문에 조금 특별해 보일 뿐이오.”

로바드도 은신처 겸 집으로 외진 곳의 건물을 가지고 있긴 했다.

세이칼을 따라 15분 정도를 걸어 다니자 도시임에도 숲같이 나무가 우거진 곳이 나왔다.

“이곳은 본디 식물원이었는데 이제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풀이 무성해지고 나무들이 자라게 됐소.”

걸어 다니기도 힘들게 수풀이 잔뜩 자라있는 곳으로 간 세이칼은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를 잡는 게 아닌 시트 같은 것을 들어 올렸다.

“풀들이 자라있는 땅처럼 보이게 시트를 만들어 놓은 겁니까?”

로바드가 감탄하며 정말 진짜 같은 시트를 쿡쿡 찔러보자 세이칼이 허허하고 웃으며 그 아래 있는 문을 열었다.

“이 정도는 돼야 쥐새끼들이 찾지 못해서 힘 좀 썼지.”

보통은 이런 걸 만들 때 마나를 이용한 일루젼을 사용했고 만약 그랬다면 데카드와 페일이 단번에 그 환상을 꿰뚫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손재주 하나로 환상이 아닌 진실을 만들어버리니 데카드와 페일 같은 마법사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사람은 시트를 문 위에 걸쳐주고 닫아주시게.”

뒤처리까지 깔끔한 세이칼은 지하실의 계단을 전부 내려와 버튼을 딱하고 켜자 전기가 들어오면서 전등이 켜졌다.

“누추하지만 어디든 앉으시오.”

혼자 숨을 것을 가정하고 만든 은신처라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꽤 많이 있어도 나름 괜찮아 보였다.

벽 쪽에는 이곳에서 오래 버틸 것을 대비해 캔 요리와 물들이 가득했고 수리 장비와 부품들이 들어있는 상자도 있었다.

“자 그럼 오랜만에 들어온 손님이니 빨리 물건부터 보도록 하겠소.”

세이칼은 책상 뒤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수리 장비를 벽면에서 찾았다.

“이거다.”

페일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심정으로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책상 위에 회중시계를 올려놓자 세이칼이 장비를 펼치는 것도 잊은 채 조용히 책상 밑에 있는 서랍에서 안경 하나를 꺼내 썼다.

“이런 물건은 또 오래간만이오.”

“…….”

페일은 성급하게 굴지 않고 세이칼이 회중시계를 전부 관찰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세이칼은 시계 문양과 구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 뒤 장갑을 끼고 회중시게를 만져 보았다.

“호오…….”

감탄의 숨을 들이마시며 세이칼은 촉감과 시각에 의지해 회중시계의 결함을 찾아보았다.

데카드는 어차피 지금 여기서 고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에 페일의 일이 먼저 끝나도록 쇼파에서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대단한 물건이오.”

연신 시계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않던 세이칼이 마지막으로 움직이지 않는 시침과 분침을 보고 관찰을 끝냈다.

다시 회중시계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세이칼은 필요한 장비를 손에 쥐며 페일에게 물었다.

“외관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없어서 이 안을 뜯어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오?”

페일은 괜히 허락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눈앞에 있는 인간을 믿기로 했다.

“괜찮다.”

“알겠소.”

세이칼은 숨어있는 동안 이렇게 정교한 기계를 만질 일이 별로 없어 굳었던 손을 뚜둑거리며 풀고 목과 어깨를 차례로 스트레칭했다.

끼리릭-

드라이버라고 할 수 있을지가 의심될 만큼 가시같이 얇고 가는 드라이버로 세이칼은 회종시게의 부품을 가리고 있는 뚜껑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숨 한 번 잘못 쉬면 날아갈 것 같이 작은 나사들이 하나둘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딸깍-

회중시계의 뒷부분이 떨어지고 겉으로 드러나는 정교함과 비교를 불허하는 복잡한 구조의 태엽과 톱니바퀴가 세이칼을 맞이했다.

페일은 책상 앞에서 혹시라도 무엇하나 잘 못 될까 앉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어느새 세이칼의 곁으로 구경 중이던 로바드가 중얼거리는 소리 빼고는 은신처에서 그 어떠한 소음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이칼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고 오랫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아 뻐근해져 왔다.

그래도 세이칼은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더욱 눈의 힘을 주고 문제점을 찾아보았다.

분해 도중에 옆에 빼놓은 나사와 톱니바퀴들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작은 통 안에 담아두고 톱니바퀴 하나를 핀셋으로 유심히 바라보던 세이칼이 미소를 지었다.

“이거요.”

“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세이칼의 바로 옆에 있는 로바드의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여기 잘 보면 톱니바퀴에 튀어나온 이빨 하나가 부러졌소.”

치밀하게 짜맞춘 구조로 작동되는 시계에게 이런 작은 부품의 손상은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는 설명을 세이칼이 덧붙였다.

“고칠 수 있나?”

“고칠 수야 있소. 다만…….”

세이칼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손에 있는 수리 도구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톱니바퀴는 전부 맞춤 제작이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공용 사이즈 톱니바퀴와 맞질 않소. 그래서 나도 맞춤 제작을 해야 하는데 이 은신처에 있는 장비 가지고는 만드는 게 불가능하오.”

“어디서 만들 수 있는 건데?”

데카드가 쇼파에서 묻자 세이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집에 있는 기계들을 사용하면 만들 수 있소. 문제라면 그곳은 지금 썩은 쥐가 지키고 있다는 것 뿐이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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