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로바드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길을 찾으며 도착한 곳은 세 군데 중 일행이 출발한 장소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럼 흩어져서 찾아보자고.”
“나는 이쪽을 맡겠다.”
산책하듯 걷는다고 생각했을 때 30분 정도면 이곳을 다 돌 수 있을 정도에 크기였다.
사람이 살 만한 민가는 별로 없었고 술집들이 집중해서 모여있는 곳이었다.
“너는 여기 앉아서 길이나 빨리 찾아.”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이곳에 세이칼이 없을 수 있으니 빠르게 다음 경로를 찾아놔야 했다.
“소환.”
데카드는 회복된 마나로 무리만 하지 않을 만큼 세 마리 정도를 한 번에 소환했다.
크고 작은 마법진에서 날카로운 강철 이빨이 돋보이는 중형 정도 크기의 아이언 독과 스카이 크레인 두 마리가 나왔다.
“세이칼을 찾아.”
멍-!
카아악-!
스카이 크레인들은 하늘을 쭉 돌며 혹시라도 보일 세이칼을 찾기 시작했고 아이언 독은 바닥에다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짹짹이 너도 하늘에서 찾아봐 줘.”
“알겠습니다.”
데카드가 1서클 때보다 훨씬 커진 짹짹이의 크기는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쓸 수 있는 마나도 늘어나고 데카드와의 연결감도 더욱 높아졌다.
검은 깃털을 흩뿌리며 짹짹이가 크레인들과 함께 날아가고 데카드는 만약 자신이라면 이런 곳에서 어디 숨을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데카드가 이렇게 마수 소환과 추리라는 장기를 발휘하며 세이칼을 찾고 있을 때 페일 또한 자신의 힘을 십분 활용해가며 그를 찾고 있었다.
“어딨느냐.”
미세한 변화라도 느끼기 위해 물을 골목길 구석구석마다 적셔 비밀 입구나 그런 것이 없는지 확인해보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데카드도 크레인들과 아이언 독, 짹짹이에게서 아무런 흔적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짹짹이는 그만 돌아오고 나머지는 조금만 더 수고해줘.”
다시 짹짹이가 깃털 코트로 돌아와 데카드에게 걸쳐졌다.
건물 안쪽을 빼면 전부 수색을 마친 데카드와 페일은 대충 세어봐도 열 곳이 넘는 술집을 하나하나 들어가 봐야 한다는 생각의 한숨부터 나왔다.
“귀찮다고 대충하면 안 돼.”
“알고 있다.”
지금 귀찮다고 똑바로 안 했다가는 나중에 이곳을 다시 수색해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하나씩 하면 되겠지.”
데카드와 페일은 눈에 보이는 술집 중 아무거나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로 각자의 테이블에서 잔을 부딪치며 시끄럽게 떠들썩 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굉장히 시끄러운 곳이군요.]
‘오히려 이런 게 좋은 거야.’
모두 방금 들어온 데카드를 힐끔 볼 뿐 큰 관심 없이 저들끼리 놀기 바빴다.
싸우려 온 게 아닌 세이칼만 찾으면 되는 데카드의 입장으로는 큰 관심은 이쪽에서 사절이었다.
로바드처럼 사기꾼이나 깡패 집단 대장이 아닌 정말 이 가게의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는 손님들이 먹고 간 테이블을 치우며 닦고 있었다.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예에 물어보십쇼.”
가게 주인은 데카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일을 계속 진행했다.
“제가 세이칼이라는 수리공을 찾고 있는데 어디 갔는지 아시나요?”
데카드가 초상화를 보여주며 세이칼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자 가게 주인은 하던 일을 멈췄다.
아니 이 술집 자체가 전부 멈췄다 해도 좋을 것이다.
시끌시끌했던 술집은 갑자기 평온을 되찾았고 모두 데카드와 가게 주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흐음…….”
한 번 위아래 스윽 데카드를 스캔한 가게 주인은 다시 일에 들어가며 말했다.
“요즘 주변 거리에서 썩은 쥐 깡패들이 계속 누굴 찾고 있다는데 당신도 같은 겁니까?”
썩은 쥐 깡패들과 찾는 사람은 같지만, 그들과 같은 선상에 두면 안 됐다.
“찾는 사람은 같지만 썩은 쥐 소속은 아니에요.”
“어쨌든 난 모르는 일이니 다른 곳 가서 찾아보십쇼.”
겉으로 드러나는 술집의 안쪽에서는 초상화와 닮은 인물이 보이지 않았고 창고 같은 곳의 세이칼이 숨어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가게 주인이 그걸 허락해줄 것 같지는 않군.’
데카드는 못하지만, 이 마수는 가능하다.
손바닥 안에서 조용히 소환한 작은 몸집의 볼트 렛은 저기 열려있는 창고를 빠짐없이 수색할 것이다.
“협조 감사했습니다.”
이 술집에 남은 부분은 볼트 렛이 수고해줄 거고 데카드는 이제 또 다른 술집으로 가봐야 했다.
“어이 잠깐.”
데카드가 나가기 위해 문으로 다가간 순간 그 앞을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남자가 막아섰다.
“너는 뭔데 영감님을 찾지?”
슬레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주먹다짐이라 가게 주인은 말리는 것 없이 더러워진 상을 계속 치웠다.
드러난 팔의 칼자국 같은 흉터가 빠짐 없이 나 있는 남자가 팔짱을 끼고 문 앞을 수문장처럼 막고 있었다.
“갈 길이 급해서 그런데 좀 나와라.”
민가도 몇 개 남았고 들러야 할 술집도 아직 6~7군데는 더 남았을 것이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왜 영감님을 찾냐고 물었다. 만약 너가 수상한 놈이라면 여기서 곤죽으로 만들어주지. 영감님한테는 개인적으로 은혜를 입었거든. 사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지.”아까 수리공의 이름이 나왔을 때 정적이 감돈 건 그런 이유였었다.
“3초 안에 안 비키면 후회할 거야.”
이쪽은 지금 너무 바빠서 이런 조무래기한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후하게 쳐줘도 3초였다.
“이 새끼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남자가 그대로 둔기 같은 팔과 주먹을 데카드에게 내지른 순간 검은 정장과 코트를 입은 남자가 한 손으로 주먹을 잡아냈다.
“어딜 감히 하찮은 인간이 옥체의 손을 대려 하느냐.”
코트에서 사람으로 변한 짹짹이는 그대로 남자의 턱을 어퍼컷으로 갈겨 천장의 머리가 박히게 했다.
힘없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남자를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멍하게 지켜봤고 볼트 렛도 창고의 수색이 끝나 데카드에게 총총 뛰어왔다.
“없어?”
찍찍-
아무래도 이번 술집은 꽝인 것 같다.
데카드가 술집의 문을 쾅하고 닫자 남자의 머리가 천장에서 빠지면서 바닥으로 털썩하고 떨어졌다.
“이거 큰일이구만.”
가게 주인이 말한 큰일은 남자의 상태가 아닌 듯 창고로 들어가 새장에서 새 한 마리를 꺼내왔다.
“이걸 전해주거라.”
째잭-
작은 종이에 무언갈 써내려간 가게 주인은 돌돌 말아 새의 다리에 달려있는 보관함에 넣었다.
째재잭-
열어둔 창문으로 빠져나간 전서구는 어딘가로 날아갔고 하늘을 맴돌던 스카이 크레인들과 마주쳤다.
* * *
“이쪽 술집은 전부 찾아봤는데 역시 없더군.”
“벌써 그렇게 많이 돌았다고?”
데카드가 아까 그 술집 말고도 두 개 정도를 더 돌아봤을 때 페일은 한쪽 거리에 있는 술집을 전부 돌아봤다.
“대충 한 거 아니야?”
“사람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이라면 전부 찾아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빨리할 수는 없었기에 페일이 수색했던 곳으로 눈을 돌리니 그런 속도가 나올만했다.
창문이나 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안에서 또 한바탕 한 것 같았다.
“물로 방이란 방은 빈틈없이 쓸어봤는데 초상화와 비슷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그래.”
찾는 방법이야 어떻든 목적지로 도달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다음 술집이나 가보자.”
데카드가 짧은 한숨과 함께 움직이려는 순간 하늘에서 스카이 크레인 한 마리가 날아와 바닥으로 안착했다.
“왜 그래?”
카아-
스카이 크레인이 긴 다리로 날개를 펄럭이는 새 하나를 꽉 잡고 있었다.
“갑자기 웬 새야?”
카아- 카아-
긴 부리로 크레인이 튀어나온 새의 다리를 가리키자 조그마한 것이 매달려 있었다.
“전서구 아닌가.”
페일이 먼저 이 새의 정체를 알아보고 다리에 있는 편지를 꺼내 보았다.
스르륵-
가로로 돌돌 말린 종이를 읽을 수 있게 쫘악 펴보던 페일이 순간 몸을 부르르 떨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너의 마수가 아주 큰일을 했군.”
“응?”
페일은 다른 말 없이 읽고 있던 편지를 주었다.
세이칼에게.
아무래도 자네를 추적하고 있는 이들이 더 늘은 것 같아.
웬만해서는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숨어있기를 바라네.
-구엔-
“잘했어! 크레인!”
데카드는 큰 일을 한 스카이 크레인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카아-!
“그럼 이 새가 날아가는 곳을 추적하면 세이칼이 있는 은신처가 나오겠군.”
페일은 크레인이 잡고 있는 전서구를 조심스럽게 잡아들었다.
“수고했어!”
마나를 아끼기 위해 세이칼을 찾던 마수들은 이만 마수계로 돌려보내고 전서구를 추적할 에어 스왈로우만 하나 더 소환했다.
읽은 편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있던 새에게 넣어두고 하늘을 향해 날렸다.
째재잭-!
풀려난 전서구는 자신의 일을 하러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라 목적지로 날아갔다.
찌르르-!
그 뒤를 스왈로우가 따라갔고 이제는 마음 편하게 결과만 기다리면 오케이였다.
* * *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전서구를 따라갔던 스왈로우가 다시 데카드에게 마나 신호를 보내왔다.
“가자!”
“드디어…….”
페일도 이제 가보를 고치고 더러운 이 도시를 떠날 생각에 힘든 것도 모른 채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왈로우가 보내는 신호를 따라가면 돼.”
신호의 위치를 대충 지도와 맞춰보니 아까 데카드와 페일이 수색을 끝낸 곳을 뺀 두 군데 중 하나였다.
“제가 지름길을 압니다!”
이곳은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는지 로바드가 자신 있게 앞장섰다.
그렇게 로바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스왈로우가 나무에 앉아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잘했어.”
스왈로우는 따라오라는 듯 빙빙 돌며 일행을 인도했고 셋은 세이칼의 은신처가 있는 곳을 제대로 눈에 담았다.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안 되는 곳이네.”
도착한 곳은 예전에 큰 화재가 있었는지 시꺼멓게 타 버린 벽들과 부식된 골조들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어 제대로 된 건물이라 할 게 없어 보였다.
“너의 마수는 알고 있겠지.”
스왈로우는 분명 세이칼이 전서구의 편지를 받는 것을 봤을 테니 은신처를 찾았을 것이다.
“이곳이야?”
스왈로우가 멈춰선 곳은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다 타들어 가서 쓰러 질려 하는 집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구멍도 휑하게 뚫려있어 집 안쪽이 다 보였지만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기다려봐라.”
페일이 양손의 마나를 집중시키더니 단숨에 급류를 만들어 겨우 집의 형태만 간신히 남은 폐가를 밀어버렸다.
우지끈-! 쿠구궁-
집의 잔재들도 마저 쓸려 내려가면서 남아 있는 것이라곤 지반뿐이었다.
“무언가…… 느껴진다.”
뿜어낸 물이 지반을 뚫고 어딘가로 흘러내리는 걸 감지한 페일은 성큼성큼 지반으로 걸어와 바닥의 손을 짚고 손잡이 같은 걸 잡아냈다.
끼이익-
“찾았다.”
다락방으로 향하는 문 같이 지하로 갈 수 있게 만들어진 계단은 세이칼에게 데려다 줄 것이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