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1화 (11/208)

011 트위스트 도박장

벌커덩-

데카드는 호기롭게 도박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박장은 로바드가 말했던 이곳 주인에 관한 역겨운 소문과는 다르게 매우 청결했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신사 숙녀 같았다.

“같은 곳 맞아?”

정보상의 집처럼 데카드는 자신이 또 다른 공간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30은화 걸겠소.”

“받고 40더.”

들어보면 하는 말도 오직 도박에 관련된 말만 하는 중이었다.

보통 생각하게 되는 도박꾼의 이미지와 달리 이곳은 건전해 보이기 까지 했다.

“경비원들도 있군.”

도박장 곳곳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어깨 형님들이 도박 종목마다 5명씩은 꼭 붙어있었다.

데카드가 예상외로 청결한 도박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위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런 씨발!! 너희들 이거 조작이지! 어떻게 연속으로 짝만 5개가 나올 수 있어!!”

2층에서 일어난 소란의 안에 있던 도박꾼들의 고개가 모두 그쪽으로 돌아갔다.

“내 돈 내놔! 내놓으라고!!”

데카드도 2층으로 올라와 보니 한 남자가 홀짝 게임의 주사위를 굴리는 직원에게 마구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이, 이보게……!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 그만 하시게!”

“상관없어!! 내 돈이나 빨리 내놓으라…….”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남자의 머리가 함몰돼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

잠시나마 이곳이 꽤나 신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곳은 역시 무법지대 슬레이가 맞다.

남자에 머리를 몽둥이로 부순 검은 정장들은 익숙한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큰 포댓자루와 걸레를 든 사람들이 바쁘게 시체 주위로 모여 끈적한 뇌수를 닦고 조각난 뇌를 주워담았다.

“사람들이 조용히 있는 이유가 있었네.”

시끄럽게 했다가 검은 정장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곧바로 저 남자처럼 골통이 부서질 거다.

그때 짹짹이가 말했다.

[그런데 주인님, 이곳은 뭐하는 곳입니까?]

짹짹이의 눈에는 인간들이 반짝이고 동그란 무언가들을 걸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박이라는 건데….조금 있다 알려줄게.”

지금은 수리공을 찾는 게 더 시급하니 짹짹이의 궁금증은 잠시 뒤로 미뤄두어야 했다.

“찾았다, 포커장.”

3층 정도를 계단으로 올라왔을 때 카드만이 낼 수 있는 셔플 소리와 도박용 칩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세이칼이 있었다는 거지.”

다른 도박판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도박에 관한 말 빼고는 접착제라도 붙여 놓은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물어보면 대답은 하려나.”

전부 이렇게 닥치고 도박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무시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따로 생각해둔 작전이 있으십니까?]

‘그럼, 당연하지.’

그래도 적진에 들어오는데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오진 않았다.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정신머리는 있다고.’

데카드는 대충 오기전에 잠깐 짜 놓은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포커장에 있는 빈자리로 가 앉았다.

판에 들어온 새로운 뉴페이스에, 도박꾼들은 힐끔 데카드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도박에 집중했다.

“작은 판은 5실버 부터고 큰 판은 5실버 이상의 상한선은 없습니다.”

중간에 서서 카드를 돌리던 직원이 간단한 룰과 도박판에서 제일 중요한 돈의 규칙을 알려주었다.

“금액이 많으시면 밑에서 칩으로 바꿔오셔도 되고 1골드 이하시면 그냥 지폐나 동전으로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동전으로 하겠습니다.”

[저희는 수리공을 찾으러 온 것 아니었습니까?]

짹짹이가 데카드의 행동에 의문을 품으며 합당한 지적을 했지만 데카드는 고개를 저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이렇게 섞이면서 말을 조금씩 트다 보면 수리공에 대한 정보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도박꾼들은 원래 한 번 정한 종목이나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않기에 아마 세이칼도 이들을 만났을 확률이 높았다.

“처음에는 무조건 1은화를 내셔야 게임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데카드도 다른 사람들처럼 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책상 위로 올려놨다.

[도박은 해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 완전 처음인데?’

[…….]

짹짹이는 주인의 지갑 사정이 곧 어려워지겠다고 직감했다.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직원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셔플하기 시작했다.

탁- 탁-

5초간에 셔플을 마친 카드는 위에서부터 하나씩 도박판에 앉은 5명에게 차례차례 나눠졌다.

“이곳의 세이칼이 왔다던데.”

데카드는 받은 카드들을 확인하며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지금 데카드가 앉은 도박판에서만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속삭이듯 말한 화두 하나는 어떤 거액보다 도박꾼들의 이목을 모으기 충분했다.

“그건 왜 묻지?”

중절모를 쓰고 작은 뱁새 눈으로 카드를 쪼아보던 남자가 데카드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눈은 카드에게 가 있는 것이 천성 도박꾼이다.

“그 사람하고는 인연이 좀 있어서.”

뜻하지 않게 생긴 인연의 대상은 어디로 갔는지 계속 보이질 않았다.

“너도 그 놈한테 받을 돈이 있나?”

[수리공도 바텐더처럼 빚을 진 걸까요?]

남자가 하는 말만 들어보면 짹짹이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데카드는 자연스럽게 자신도 그런 척 어울려주기 위해 슬레이식으로 더욱 거친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돈도 받고 이자로 목숨까지 받아낼 생각이야.”

그러자 뱁새 눈 남자도 공감한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칩을 만지작거렸다.

“그놈 발견하면 나한테도 좀 알려주시오. 세이칼이 댁한테 얼마나 빌린 지는 모르겠지만 나만큼은 아닐 테니.”

카드의 분할이 끝나고 이제 돈을 걸 차례다.

“나는 빠지겠습니다.”

“저도요.”

“나도 빠지지.”

안 좋은 패가 걸렸는지 5명 중 세 명은 기본 참여금만 내고 판에서 빠졌다.

“빠지겠어.”

데카드도 돈을 더 걸거나 하는 것 없이 정보만 얻으려 여기 온 것이니 굳이 룰도 모르는 게임의 생활금까지 바칠 필요는 없었다.

4명이 게임에서 빠져버리며 자연스레 승자는 아까 그 뱁새 눈 남자가 되었다.

“푼돈이지만 고맙게 받겠소.”

뱁새 눈 남자는 5은화 중 참여금인 1은화만 빼고 품 안에 넣었다.

데카드와 도박꾼들에게 나누어 줬던 카드들을 다시 회수하고 직원은 셔플로 겹치지 않게 잘 섞었다.

“그 수리공이 어디 갔는지는 혹시 모르나?”

뱁새 눈 남자는 작고 찢어진 눈을 더욱 얇게 뜨면서 씹어 삼키듯 말했다.

“어디 있는지 알았으면 내가 진작에 요절을 내놨겠지.”

“아무런 힌트도 없는 건가?”

남자는 헛웃음을 터뜨리듯 숨을 내뱉더니 칩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며 말했다.

“꼴에 슬레이 출신이라고 흔적이나 모습을 감추는 건 신출귀몰하더군.”

‘그건 그렇겠네.’

다른 범죄자들처럼 슬레이로 거처를 옮긴 게 아닌 슬레이 태생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거친 풍파를 견뎌왔을 것이고, 도시가 눈에 훤하게 그려질 것이다.

‘숨을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

“그리고.”

뱁새 눈 남자가 돌리던 칩과 말을 멈추고 주변에 있는 검은 정장들을 확인하더니 숨죽이며 말했다.

“그놈 한테 떼인 돈은 잊는 게 좋을 거요.”

“왜 그렇지?”

남자가 피식하고 웃으며 곁눈질로 검은 정장들을 가리켰다.

“저들에 보스도 수리공을 쫓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괜히 눈에 들었다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게 없소.”

지금까지 나온 소소한 정보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대어가 낚였다.

‘썩은 쥐의 보스가 세이칼을 쫒고있다라…….’

어느 의미로는 상황이 몇 배로 어려워졌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쉬워진 것일 수도 있다.

‘세이칼을 찾고 있는 썩은 쥐 깡패를 찾으면 그들이 찾아놓은 정보를 내가 흡수할 수 있어.’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이게 숨은 현지인보다야 이곳이 자기들 세상인 줄 알고 설쳐대는 깡패들 찾기가 더 쉽지 않겠는가.

[나름의 진전이 생겼습니다.]

‘그런 것 같다.’

본질적인 문제는 아직 미스터리여도 다음 데카드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나는 이만 빠지겠어.”

드르륵하고 의자를 민 데카드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고 별다른 트러블 없이 포커장을 빠져나왔다.

‘봐봐 짹짹아. 내 작전이 성공했잖아.’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아무런 충돌 없이 트위스트 도박판을 나가기만 하면 조용히 들어와서 조용히 나가기가 완료된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푸화아악-!

1층에서부터 입구로 급류가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도박장을 휩쓸어버리고 있었다.

“우아악!”

“꺄아악!”

“제, 젠장! 누구냐!”

1층에 있던 검은 정장들은 물을 너무 마셔 그대로 익사하거나 기절했고 어느 정도 상황정리가 끝나자 익숙한 얼굴이 도박장 안으로 들어왔다.

“저 여자는…….”

[주인님이 구해줬던 그 마법사입니다.]

2층도 1층처럼 수족관으로 만들 생각인지 위를 바라보던 엘프 마법사의 눈과 데카드의 눈이 마주쳤다.

“……!”

엘프 마법사는 동공이 커지면서 입을 살짝 벌리는 게 놀란 표정으로 데카드를 쳐다보았다.

‘날 알아본 건가?’

[그건 맞는 것 같지만, 주인님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닌 듯합니다.]

데카드 때문에 도박장에 왔다면 얼굴을 보고서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스르륵-

1층에 있던 물은 점점 수위를 높여가며 2층으로 올라왔고 데카드가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발에 무언가 묶이는 느낌이 났다.

“으음?”

발목에 드는 차가운 느낌의 아래를 보자 물들이 길게 밧줄처럼 데카드를 잡고 있었다.

“으악!”

그대로 2층 난간에서 끌어당겨 진 데카드는 1층으로 떨어졌고 짹짹이가 급하게 날개를 펼치려는 순간 물들이 솟아오르며 추락을 막아주었다.

“밖에서 기다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데카드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물로 둘러싸여 문밖으로 내쫓겼다.

“으윽!”

도박장 바깥으로 떨궈진 데카드의 몸은 물로 떨어지고 감싸졌는데도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다.

“데, 데카드님! 괜찮으십니까?”

도박장 앞에 있는 잔디에서 웅크리고 있던 로바드가 급하게 달려와 쓰러져있는 데카드에게 다가왔다.

“저런 건 원래 내 포지션인데.”

“네?”

데카드는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가만히 건물만 바라봤다.

와장창-! 쾅-! 쾅-!

1층부터 최고층인 5층까지 유리창이 하나둘 깨지면서 건물 내부를 가득 채웠던 물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잠시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엘프 마법사가 그 발걸음도 당당하게 정문을 열고 나왔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마지막 흔적이고 뭐고 다 없어질 뻔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데카드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나 자신에게 걸어오는 엘프 마법사를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뭔데 이렇게 예쁘냐.’

외모가 뛰어난 건 마수들의 인간화를 보면서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엘프는 인간과 다른 느낌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데카드는 이제 미녀의 감사인사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고맙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멋진 구원자의 답변을 생각하고 있을 때 엘프 마법사가 우묵하게 닫아놨던 입을 열었다.

“왜 날 구했지.”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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