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슬레이
이곳은 슬레이의 선술집.
이렇게 평판도 안 좋고 쓰레기 같은 도시에 누가 오겠냐는 소리도 있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무법 지대이기 때문에 지은 죄값을 치르기 싫은 범죄자들은 물론이고, 일탈을 즐기기 위해 일부 귀족들도 오곤 했다.
처음 바텐더가 이 선술집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참 괜찮았다.
슬레이에 맞지 않게 선해 보이는 바텐더의 외모는 이런 험한 슬레이 속 구세주같이 보여 처음 온 외지인들에게 의지가 많이 되었고 그 덕에 사람들을 속이기도 쉬웠다.
사람들은 공짜의 환장하니 서비스라고 하며 술을 한 잔 주는 것도 잘 먹히는 방법이었다.
애초의 선술집을 오는 사람 중의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서비스라고 하면 바텐더의 성의를 생각해 한 입이라도 마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을 먹은 외지인이 잠에 빠지면 가진 걸 전부 뺏고 노예 시장에 팔아버려 쏠쏠한 돈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통 외지인들이 슬레이로 오지 않아 밥벌이가 걱정이었는데 눈앞의 깃털 코트나 비싸 보이는 물건들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남자가 오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큰 게 남창으로 팔면 돈이 굴러떨어질 거고 어디 귀족가의 성노예로 팔면 금화가 자루로 쏟아질지도 모른다.
처음의 서비스로 주는 술을 먹지도 않고 어떻게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면용 다트도 피한 남자는 결국 자기 스스로 고통받는 길을 택했다.
부하들이 남자의 뒷목을 후려갈겨 기절시키려 할 때 순간 엄청난 빛이 술집에 퍼지더니 처음 보는 동물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겨우 돌아오는 시력으로 눈을 비비며 앞을 보려 할 때 폭발음이 귀를 때렸다.
콰과과광-!!
“고마워, 폭스들아.”
우우-!
우우우-
술집의 테이블들은 전부 화염에 여파로 불타올랐고 유리창은 전부 다 깨져 바닥이 온통 유리 조각 천지였다.
“어으으…….”
데카드와 가까이 있었던 남자들은 하나 같이 육편이 되어 바닥의 조각 난 채로 널브러졌고 뒤에 있던 남자들도 사지 한 군데가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끄아아!”
“내 팔!! 으아악!”
이 술집에서 사지가 멀쩡한 건 데카드와 겨우 바 테이블 뒤의 몸을 숨긴 바텐더뿐이다.
“짹짹아 쟤 좀 내 앞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짹짹이는 두려움과 공포로 물들어 벌벌 떨고 있는 바텐더를 데카드의 앞으로 던졌다.
“우아악!”
철푸덕-
힘겹게 눈을 뜨자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그대로 조심스레 얼굴을 들자 눈은 시릴 듯이 차가우면서 입은 환하게 웃고 있는 데카드와 눈이 마주쳤다.
“흐윽!!”
까맣게 그을린 바닥을 구르자 옷이 더러워지고 부서진 바닥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몸을 쿡쿡 찔러도 바텐더는 데카드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누운 채로 뒷걸음질쳤다.
“이리 와라.”
데카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텐더는 4발로 기어오듯 달려와 넙죽 무릎을 꿇고 절했다.
“사, 살려만 주십쇼!! 시키는 건 뭐든 다하겠습니다!”
바텐더는 직감했다.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도 지체없이 죽거나 아니면 사지 중 한 군데가 떨어져 나갈 거라고.
그런 바텐더를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데카드는 눈을 찡그렸다.
“흐음, 일단 불부터 좀 꺼야겠네. 소환.”
불가사리와 똑 닮은 물속성 마수인 워터 스타가 식탁이나 벽에 달라붙은 불들을 전부 꺼트려 주었다.
“고마워.”
“부르르-”
바텐더는 입을 쩍 벌리고 언제 불이 났냐는 듯 얌전해진 술집을 두리번거렸다.
“눈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죄, 죄송합니다!”
데카드는 근처에 불타다 만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았다.
“그럼 이제 내 질문의 대답해라.”
“알겠습니다!”
가장 먼저 물어볼 건 이 도시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슬레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전부 말해봐.”
바텐더가 첫 질문부터 턱 하고 막혔다.
“5초 안에 대답 안 나오면 죽는다.”
“네, 네? 잠시만 시간을……!”
“5, 4, 3, 2…….”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세상에 모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생각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 바텐더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체험하는 중이다.
“1, 짹짹아 이새끼 죽…….”
“압니다! 알아요!”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
“머, 먼저 육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슬레이로 들어오고 나가는 문은 모두 갱들이 막고 있어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바텐더는 머리가 동그래질 정도로 굴리고 굴려 다른 탈출 방법을 하나 더 생각해냈다.
“아니면 문을 막은 사람들에게 뒷돈을 주고 열어달라는 방법도 있고…….”
“그렇게 해서 나가면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는 얼마나 걸리는데.”
바텐더가 손가락까지 써가며 거리와 요일을 계산하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걸어서 한 달 정도…….”
전혀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방법이다.
한 달 동안 걷기만 해야 되고 그 기간에 먹을 식량과 물은 어디서 구할 것이며 뒷돈도 고작 은화 한 두푼가지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기 있는 텔레포트 기계는 왜 안 말하냐?”
잠깐이지만 프로피에서 텔레포트 마법사가 기계를 어떻게 작동시키고 움직이는지 본 적이 있다.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정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이동은 될 것이다.
“텔레포트 기계요?”
생각도 못했다는 듯 멍 때리던 바텐더가 곧장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저걸 써먹어보려고 했었는데 저 쇳덩이를 작동시킬만한 마법사가 슬레이에 없었고 갱들이 몇 번 건드니까 망가져 버렸습니다.”
‘내가 망가뜨린게 아니었네.’
다행히 기계값은 안 물어줘도 될 것 같았다.
“고칠 수 있는 사람 없어?”
바텐더는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지만 쉽사리 말 할 수 없어 망설였다.
“모르면 그냥 여기서 팔 하나 줘도 되고.”
“마,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아는데.”
“슬레이에 아주 유명한 정보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알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데카드는 검게 그을린 의자의 등을 기대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 바텐더가 정보상에게 가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본진으로 유도하는거라면?
설마 그렇다면 바로 바텐더는 죽을 테니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널 죽이고 그 유명하다는 정보상을 찾으면 안 되나?”
“그, 그 정보상의 위치는 쥐굴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시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실 겁니다!”
바텐더는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처절하게 갖다 댔다.
“그래, 안내해라. 대신 허튼수작 부리면 죽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따라오시죠!”
다 부서지고 쓰러져 가는 술집을 나온 데카드와 바텐더는 슬레이에 넓은 대로를 걸었다.
“짹짹아 하늘로 올라가서 이상한 점이 있으면 알려줘.”
“알겠습니다.”
짹짹이가 바로 까마귀의 모습으로 변하며 하늘 위로 날아가 함정 같은 게 없나 감시를 했다.
“그보다 제가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할지…….”
“데카드라고 불러라.”
어차피 이 이름을 아는 사람도 몇 없을 테니 알려줘도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 바텐더의 처분은 정보상을 찾을 때까지로 미뤄졌다.
‘마공학이나 좀 배워둘걸.’
마탑에서도 마법 기계를 다루는 마공학을 가르쳤지만, 데카드는 성격에 안맞아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슬레이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내게 정보라도 캐려는 거냐?”
바텐더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와 같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길 안내나 빨리해라.”
이런 곳을 도시라 불러야 하는 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 도시에선 단 하루도 있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사람들이 싸움 도박을 버젓이 하고 제대로 관리가 된 건물들은 전부 도박장이었다.
큰 공터같이 건물이 없는 넓은 부지도 보였는데 지금까지 본 슬레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저기는 뭐하는 곳이지?”
“노예시장입니다! 슬레이에 주 수입원입죠!”
철창에 갇힌 사람들이 남녀노소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중요 부위만 가린 채 사람들에게 팔려가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잡혔으면 나도 지금쯤 저곳에 있겠군.”
“아, 아닙니다! 데카드 님은 아마 귀족가에게 팔려가셨을…….”
뭔가 더 말하면 뼈 한군데는 부서질 것 같아 바텐더는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잠깐 그 노예시장에 안쪽을 보니 특이하게 엘프 같은 아종족도 섞여 있는게 보였다.
“아아! 오늘이 엘프 노예가 들어오는 날이었군요! 엘프들은 그 몸도 튼튼하고 암컷들은 미모가 훌륭해 보통 귀족가에 팔리기 마련인데 웬일로 경매에 부쳐지나 봅니다! 관심 있으시면 제가 알선을…….”
“닥쳐라.”
“넵”
바텐더의 말대로 정말 희귀하긴 한지 입찰 팻말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의 손이 떨어질 줄 몰랐다.
엘프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손목에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다.
“봉마 수갑으로 마력을 봉인했군.”
엘프의 손목을 묶은 저 속박용 마도구는 마법사가 마나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마도구다.
데카드도 집행관 시절 흑마법사 소탕 임무를 맡았을 때 여러 개 들고 다닌 기억이 있다.
“보험이나 하나 만들어둘까.”
엘프들은 그 태생적 능력이 마법을 쉽게 쓸 수 있도록 되어있어 설령 같은 서클의 마법사라도 엘프 마법사가 인간 마법사보다 더 강하다.
또 봉마 수갑에서 나오는 어두운 빛이 강한 걸 보니 아무래도 꽤나 강한 마법사 같았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바텐더가 멍하니 데카드가 말한 말의 뜻을 찾고 있을 때 소환 마법진이 펼쳐졌다.
“소환.”
또 한 번에 광휘와 함께 작은 새의 모습을 한 에어 스왈로우가 몇 번의 날갯짓으로 데카드의 손가락에 올라왔다.
“찌르르-”
“뭐, 뭘 하시려는 겁니까?”
바텐더의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었고 지금은 그저 데카드 자신의 기분대로 하고 있는 짓이다.
“가라.”
하늘로 손을 높이 날리자 스왈로우가 빠르게 노예시장으로 날아갔다.
단상 위에 올려진 채 손에는 봉마 수갑을 찬 엘프 마법사.
엘프는 특이하게 바다를 닯은 청발과 청안을 가졌고 그 종족
특유에 아름다운 용모가 잘 나타나 있는 엘프였다.
심지어 성별까지 여자라 경매가 아직도 끝나지 않고 뜨겁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경매장의 온도를 조금 더 높여줘야겠어.”
에어 스왈로우는 그 불에 작은 기름 한 방울을 넣어줄 것이다.
“에어 커팅.”
스왈로우는 높은 연결감과 데카드의 마수 이해도로 마수계에서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다.
사아아-
하늘에서 막힘 없이 나아가던 바람은 스왈로우 쪽으로 불며 한 줄기의 칼바람이 되었다.
“찌르-!”
충분한 바람이 날개에 스며들고 그대로 휘두르자 초승달 모양의 삭풍이 봉마 수갑으로 날아갔다.
철커덩-
철창의 사이로 날아간 삭풍은 봉마 수갑의 연결부위를 잘라버렸고 수갑은 힘을 잃었다.
봉마 수갑이 풀리면서 막혔던 마나룸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뼈와 그 골수 안까지 스며드는 마나의 엘프 마법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번뜩이며 떴다.
그러면서 본 하늘에는 제비를 닮은 마수가 자신을 바라보다가 다시 어딘가로 날아갔다.
“나를 구해준 건가…….”
퍼어어엉-!
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시 한복판에서 홍수라도 난 듯 물보라가 휘몰아쳤다.
“계속 안내해라.”
“네, 넵!”
마법사라는 직업 성격상 궁금한 건 못참을테니 스왈로우의 마나를 따라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이런 무법지대에서 믿을만한 동맹 하나쯤 있어서 손해볼 건 없겠지.’
* * *
슬레이의 미로 같은 뒷골목을 지나고 또 지나다 보니 어딘가 주변의 풍경과 동떨어져 보이는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저곳입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