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8화 (8/208)

008 잘못된 목적지

오늘은 모타운에서처럼 누가 깨우는 사람도 없으니 데카드도 오랜만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실컷 잠을 잤다.

마수계에서 푹신한 이끼를 모아 그 위에서 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진다.

그저 평범한 여관에서 제공하는 평범한 침대인데도 데카드에게는 엄마의 품속처럼 따뜻하고 안락했다.

그렇게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켜갈 때쯤 데카드의 눈도 슬며시 떠지며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아있는 짹짹이가 보였다.

“짹짹아 좋은 아침…….”

아침이라 쩍쩍 갈라지는 데카드의 목소리에 짹짹이는 익숙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으응…… 하아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일어나니 창문의 틈새 사이로 강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데카드는 힘겹게 일어나 잠도 깰 겸 시원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커튼을 걷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벌컥-

데카드와 다르게 부지런한 상인들이 저마다의 점포와 가게를 열었고 아이들은 거리를 뛰놀며 열심히 추억을 쌓고 있다.

모두 자신만의 일상과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은 데카드가 그리워하던 인간계의 모습 중 하나였다.

“돌아오길 정말 잘했어!”

데카드가 돌아온 인간계는 여전히 변치 않았고 그가 다시 돌아와도 어색함 없이 살 수 있게끔 배려해준 듯이 하루가 다르게 자신이 인간계에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이제 루비아로 가자!”

“거기는 어딥니까?”

코트를 입고 양말과 신발까지 신은 데카드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집행부가 있는 곳이지.”

이곳 프로피와 루비아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물리적인 거리는 전혀 상관없다.

“일반적인 마을에서는 안되지만 도시라고 인정받은 곳에는 꼭 하나씩 텔레포트 기계가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의 등급을 매길 때 텔레포트 기계의 수를 기준점 삼아 많은 텔레포트 기계를 가진 도시에게 높은 등급을 주기도 한다.

“저기 보이네!”

보통 도시의 중앙 광장의 자리 잡은 저 기계는 마법부에서 파견한 공간계열 전문 마법사가 관리한다.

“짹짹아 잠시 코트로 변해있어.”

“알겠습니다.”

데카드가 가까이 다가가니 업무에 찌든 표정의 마법사가 일어나 로브에 달린 후드를 벗고 기계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이용료를 먼저 내주셔야 합니다.”

물론 사람을 텔레포트 시켜 도시 간의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기계라 당연히 공짜로 해주진 않는다.

데카드의 기억으로는 대충 한 명당 5 은화를 냈어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낼 수 있는 금액이어도 굳이 낼 필요가 없는 돈이다.

“2급 집행관 데카드 아르마다입니다.”

왜냐하면 2급부터의 마법부 소속 마법사들은 모든 텔레포트 기계 이용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집행관이라는 말에 살짝 눈이 커진 마법사는 손을 내밀었다.

“신분증 좀 보겠습니다.”

경비원 때처럼 집행관 신분증을 보여주고 나니 마법사는 신분증 속 얼굴과 데카드의 얼굴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상하네요. 오늘 집행관이 프로피에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임무 때문에 온 건 아니고 휴가 복귀 중입니다.”

1000년 동안 즐기던 휴가 아닌 휴가였으니 이제는 복귀할 때도 됐다.

“저는 처음 당신을 보는 것 같은데 혹시 육로로 이 도시에 오셨나요?”

프로피는 작은 도시라 이런 텔레포트 기계가 하나밖에 없었고 기계를 이용해 프로피로 들어오는 사람은 전부 마법사가 꿰고 있었다.

그런데 집행관이라는 사람이 편한 기계를 버리고 굳이 불편한 육로를 이용해서 이런 시골 도시에까지 왔다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자연의 풍취도 오랜만에 즐겨볼 겸 산책 삼아 걸어왔습니다.”

마법사의 의심을 계속 교묘하게 피해낸 데카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제 신분증을 돌려주시겠습니까?”

“흐음…….”

마법사는 여전히 무언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데카드를 바라보다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아공간 주머니네.’

아공간 주머니는 마법사의 필수품으로 간이 작업대나 포션 제조대등 무거운 물품을 필수적으로 들고 다녀야 하는 이들을 위해 제작된 특수한 주머니다.

비싼 아공간 주머니일수록 그 수용량이 많고 쓰임새도 다양하다.

마법사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사람의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이상한 기계.

‘이게 뭐지?’

인간세계의 시간, 10년을 건너뛰어 온 데카드는 저것이 뭐하는 물건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티를 내버리면 이 마법사의 의심이 더욱 세질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삐빅-

데카드의 신분증이 기계 안으로 밀려들어 가자마자 흘러나온 불쾌하면서 불안한 이 소리.

“흐음…….”

마법사가 기계의 표시된 결과를 보더니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닙니다. 신분증은 돌려드리지요.”

기계 안에 넣은 신분증을 빼서 다시 데카드에게 돌려준 마법사는 레버를 당겨 기계의 작동 준비를 마쳤다.

“목적지는 어디신가요?”

“루비아로 갑니다.”

마법사는 각 도시에 설치된 텔레포트 기계마다 존재하는 마나 파장에 맞춰 마나를 흘려보내 목적지를 설정했다.

“그럼 좋은 여행 되십쇼.”

‘좋은 여행?’

뜻 모를 마법사의 말과 함께 기계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오며 데카드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쯧, 어디 위조범 따위가 날 속여 먹으려고.”

그 표정과 눈동자에서 단 한치에 떨림이 없어 하마터면 정말 집행관이라 착각할 뻔했다.

다행히 위조 판별기에 도움으로 위조범의 신분증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내서 망정이었다.

“그런 쓰레기는 쓰레기 통으로 가야지.”

원래는 그전에 거쳐야 할 절차 몇가지가 있지만 마법사는 자신의 선에서 데카드를 처리했다.

“크큭! 실적 쌓으시려면 거기 만한 곳이 없으실 겁니다, 집행관님.”

* * *

데카드는 마수계로 이동될 때 느꼈던 공간 이동의 구토감이 살짝 느껴지더니 세상에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지며 처음 보는 도시로 이동됐다.

“돈 아꼈다!”

5은화를 아꼈다는 생각에 데카드는 싱글벙글하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기계를 둘러봤다.

이곳의 텔레포트 마법사는 어찌 된 일인지 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푸슈우-

데카드가 오랜만에 밟아보는 루비아 땅에 설레발치며 발을 탕하고 구르자 기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설마…… 망가진 건가?”

데카드는 재빠른 상황판단으로 자신의 발자국이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이 범인이라는 증거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안 그래도 가난한데 기계값까지 낼 수는 없지.”

걱정거리도 해결됐으니 기계에서 내려와 잠시 도시를 바라본 데카드는 이곳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이곳이 루비아입니까?]

만약 루비아가 이렇게 변하려면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서야 그럴 리는 없다.

길거리마다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 그로 인한 악취, 부랑자들과 거지는 길마다 있었고 건물들은 오랫동안 관리가 안 돼 덩굴이 온 건물을 뒤덮고 있었다.

“루비아는 아니야.”

[아까 그 마법사가 실수로 주인님을 이런 곳에 보낸겁니까?]

짹짹이는 무언가 의심스럽다는 투로 아까 그 마법사의 행동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데카드도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멋대로 판단하기에는 시기 상조다.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야 해.”

이곳의 현지인은 당연히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에게는 얻을게 별로 없어 보여 거리를 조금 걷다 보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가움에 그곳으로 걸어가자 간판이 반쯤 떨어져 덜렁거리고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유리창을 뚫고 밖으로 던져졌다.

“…….”

뭔가 미동도 없는 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지만 이 사람과는 관계없이 일단 한 번 들어가 봐야 했다.

끼익-

문을 열자 녹슨 경첩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건물 안에서는 우락부락한 덩치의 근육남들이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테이블마다 무리가 다른 건지 서로 간에 묘한 경계심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중앙에서 이런 일에 익숙한 듯 평온하게 컵을 닦는 바텐더.

‘질문은 저 사람에게 해야겠네.’

이 중에서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바텐더의 앞자리로 가 털썩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이곳에 처음 왔으니까요.”

바텐더는 방금 닦아낸 반질반질한 컵을 올려두고 뒤에 있는 술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당신도 죄를 저질러서 왔나요?”

“네?”

“이곳은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나는 대체 어디로 떨어진 것인가.

처음 사람을 보자마자 당신도 죄를 저질러서 왔냐는 말의 바텐더.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범죄자라는 말도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여긴 설마 그곳인가?’

10년 전 데카드가 집행관으로 있을 때도 마법부가 거의 반쯤 포기 상태로 버려버렸던 도시.

완전한 무법 지대인 그 도시는 주인이 쫓겨나고 갱들과 그 휘하 깡패들이 도시의 패권을 두고 싸우고 있다 들었다.

“슬레이.”

“맞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이지요.”

“하아…….”

망할 텔레포트 마법사가 자신을 이딴 쓰레기 통에 처넣어버렸다.

이곳이 슬레이라면 텔레포트 기계 주변의 담당 마법사가 없다는 것도 말이 된다.

슬레이는 지리적으로 주변의 마을이나 도시라곤 찾아볼 수 없고 산맥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러니 도시 간의 이동수단은 텔레포트가 가장 편한데 영주가 쫓겨난 이후로 슬레이에는 텔레포트 마법사가 파견되지 않는다.

‘이건 또 어떻게 돌아가냐…….’

데카드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바텐더는 술병을 정리하던 중 적당한 술 하나를 들고 앞에 놓인 잔에다가 따라주었다.

“서비스니 드십쇼.”

“괜찮습니다, 술은 딱히 안 좋아해서.”

바텐더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술이 담긴 잔을 내밀었다.

“그래도 한입만 먹어보십쇼. 나중에 가면 없어서 못 먹을지도 모르는 술입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거절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닌 데카드는 후방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공기 가르는 소리에 그대로 목을 비틀었다.

푸슉-

다트처럼 생긴 것이 데카드가 피한 그대로 바닥에 꽂히고 바텐더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없다.

“어, 어떻게…….”

“난 등 뒤에도 눈이 달려있거든.”

[잘 피하셨습니다.]

데카드의 어깨에 달린 짹짹이는 바텐더가 다트를 발사기의 장전하는 걸 전부 보고 있었다.

“술에서도 구린내가 나서 좀 경계를 했는데, 너희들 다 한패지?”

계속 술을 권하는 모습에서 이미 데카드는 이곳이 하나의 함정임을 알아챘다.

필시 수면제나 마비제같은 약을 탄 술일 것이다.

“오랜만에 온 외지인이라 좀 살살 해주려 했는데.”

“죽일까요, 대장?”

바텐더가 순하게 생겼던 인상이 싸악 바뀌며 험악한 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크큭! 저놈 얼굴이 반반한 게 사창가에 팔면 돈 좀 벌겠다!”

술집에 있던 남자들이 전부 일어나며 데카드를 잡기 위해 몸을 풀었다.

철컥-

유일한 퇴로 같았던 정문도 잠기고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왔다.

“팔아야 할 상품이니까 최대한 기절만 시켜라!”

““네!””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너는 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만 봐줘.’

안 그래도 기분이 잡쳤었는데 좋은 화풀이 대상이 생겼다.

“덮쳐!”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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