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7화 (7/208)

007 다행스러운 일

“요즘 집행관은 일 안 하냐!”

사실 집행관이 하는 일의 산적 소탕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산적들을 만나서 반가운 것도 한 두 번이지 지금은 벌써 세 번째 산적 무리들과 맞닥뜨렸다.

첫 번째 산적.

“가진 돈 다 내놓으면 목숨 만은 살려주지!”

두 번째 산적.

“가진 돈 다 내놓으면 목숨 만은…….”

세 번째 산적.

“가진 돈 다 내놓으면…….”

“아오! 알았어 이놈들아!”

언덕을 넘을 때마다 얼굴만 다른 산적들이 똑같은 대사를 들이밀며 위협을 해오는 모습은 질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 산맥에 있는 모든 산적들을 제패하자 수중에는 꽤나 많은 돈이 모여있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짤랑거리는 동전들을 모두 세어보자 산 몇 번 넘었을 뿐인데 11은화가 생겨버렸다.

“그래도 이제 프로피라는 도시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내리막길에 마지막에서 커다란 성벽과 성문으로 보호받는 프로피가 보였다.

“좋았어!”

이제 산적들이 우중충하게 모여있는 산은 질려가던 참이었다.

길을 다 내려오니 경비병들이 성문 앞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었다.

“짹짹아 잠깐 코트로 변해있어.”

“알겠습니다.”

자신은 몰라도 짹짹이는 신분이라 할 만한 게 없어 괜한 변명보다야 이렇게 모습을 감춰버리는 게 나았다.

경비병이 본 데카드의 모습은 때 묻지 않은 전투용 로브와 훤칠한 외관, 왠지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위험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본업에 충실한 경비병은 겉모습이 귀족

같다고 절차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정지, 신분을 밝혀주십쇼.”

“2급 집행관, 데카드 아르마다입니다.”

집행관이라는 말에 경비병은 순간 풀릴 뻔한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버텨내더니 떨리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시, 신분증을 보여주십쇼.”

지갑에서 빼낸 카드와 신분증 중 집행관임을 증명해주는 카드가 있었다.

“여깄습니다.”

경비병은 조심히 집행관 신분증을 받아들고 적혀있는 이름과 사진에 얼굴을 대조해보자 다시 신분증을 데카드에게 주었다.

“화, 확인됐습니다. 방문 목적은 어떻게 되십니까?”

보통 집행관이라고 하면 누구든 겁을 먹고 신분이 확인되면 그냥 들여보내 주기 마련인데 이 경비병은 나름대로 강단이 있었다.

“휴가차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시간을 뺏어서 죄송했습니다.”

경비병이 성문을 막고 있던 몸을 틀어 데카드가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서 주었다.

“아직도 저런 경비병이 있네.”

상대가 누구든 도시에 들어오는 모든 이를 검문하고 살펴야 하는 게 경비병이다.

[건방집니다.]

“자기 일 하는 건데 뭐라 그럴 수는 없지.”

두꺼운 성문을 넘어들어온 프로피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은 지나다니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상인들의 떠드는 소리도 모타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 이게 인간계야!”

산적들로 더러워진 기분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다시 희망차며 즐거운 기분이 데카드를 감쌌다.

11은화라는 돈도 생겼겠다 짹짹이에게 제대로 된 인간의 음식을 소개해줄 겸 데카드는 음식점을 찾아보았다.

“좋아! 저기로 가자!”

음식점으로 보이는 가게의 문을 연 데카드는 훅 들어오는 음식들의 냄새에 황홀감마저 느꼈다.

고작 육포 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냄새와 기분이다.

“짹짹아 나와봐.”

빈자리에 앉아 깃털 코트를 벗고 앞자리에 올려놓자 다시 짹짹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좋은 냄새가 납니다.”

“그렇지?”

마수들은 인간보다 훨씬 후각에 민감했고 그렇기에 데카드보다 더욱 그 냄새의 하모니가 잘 전해져왔다.

“주문하시겠어요?”

머리에는 빵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귀엽게 맨 소년이 메뉴판과 펜을 들고 둘의 식탁 앞으로 왔다.

“고기 정식 두 개 줄래?”

옆 테이블들이 먹고 있는 음식들을 시키면 처음 가보는 음식점에서 맛없는 음식들을 고를 확률이 낮아진다.

데카드는 주변 테이블들이 먹고 있는 음식들을 보고 적당히 주문을 완료했다.

“고기 정식 두 개 주문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띵동-!

“네! 갑니다!”

소년은 데카드의 주문을 받더니 종이 울리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아까 그 소년보다 조금 더 큰 청년들이 고기 정식과 물을 손에 들고 데카드와 짹짹이 앞에 내려놨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턱이 아파오던 육포는 이제 걷어차 버리고 정말 음식다운 음식을 맛볼 차례다.

잘 썰려진 고기를 포크로 찌르자 안에 있던 육즙과 소스가 밖으로 줄줄 흘러나왔다.

그대로 입안의 고기가 들어갔다가 육포를 먹던 습관 때문에 거칠게 씹어버렸고 그대로 짓뭉개져 제대로 된 맛을 느낄 틈이 없었다.

“다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먹은 두 번째 고기부터는 확실히 맛이란 게 느껴졌다.

“와아…….”

이렇다 할 음식이란 것 없이 그냥 과일과 버섯만 처먹어왔던 1000년의 세월들이 고기 한 점으로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짹짹이도 말없이 계속 고기들을 집어먹는 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둘 모두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속 고기 정식만을 탐하자 주문해서 오기까지 만드는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더 빨랐다.

“꺼억, 잘 먹었다.”

짹짹이는 데카드의 입에 묻은 고기조각들을 닦아주며 말했다.

“인간세계가 조금은 좋아지려 그러는군요.”

“이제 나가자!”

밥만 먹고 하루를 끝내기에 인간계의 도시는 무척이나 넓고 해볼 것이 많았다.

“1은화 입니다!”

하나당 50 동화였던 고기 정식을 산적들의 돈으로 깔끔하게 지불해주고 둘은 다시 프로피로 나왔다.

다그닥 다그닥-

상인들의 짐마차와 사람이 타고 있는 마차들이 행인들을 피해 요리조리 지나가는 모습도 참 꿈에 그리워했던 풍경 중 하나다.

“그럼 이제 바로 복직하러 가실 겁니까?”

“조금만 더 놀자! 바로 일하러 가기에는 아직 너에게 못 보여준게 너무 많아!”

돈도 지금 당장은 모자라지 않으니 인간계를 마음 편하게 짹짹이와 즐기면 된다.

그 이후로 데카드는 도시와 사람들을 구경하고 간식거리도 사 먹으면서 짹짹이에게 인간계에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저건 분수라는 거야!”

광장에서 하늘 높이 물을 분사하고 있는 분수도 알려주고.

“저기 있는 건 서점이라는 건데! 책을 파는 곳이야!”

도시 구석에 있는 서점을 가리키며 데카드는 신 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가로등이야! 밤이 되면 빛을 내서 앞을 밝혀줘!”

도로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며 깔려있는 가로등은 저녁때가 돼가자 하나둘 불이 켜지고 있었다.

“이건 대장간이란 거야!”

“전부 듣고 있으니까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도시로 처음 올라온 시골 소년처럼 커다란 인도를 방방 뛰며 여기저기 쏘다니는 모습은 마차에 치이기라도 할까 걱정됐다.

그래도 기뻐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주인의 모습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낼 가치가 있다.

하늘에서는 태양이 사라지고 그 역할을 가로등이 대신하면서 도시는 밤을 맞이했다.

“주인님, 여관이라는 것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발 아프게 뛰어다니고 놀았으니 슬슬 피곤한 몸을 쉬어주어야 할 때다.

여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큰 도로가 있으면 그 양 옆쪽에 하나 정도는 여관이 있었으니까.

결정해야 할 건 어느 곳이 더 깔끔하고 싼 여관인가다.

“저곳으로 가자.”

여러 상점들과 맞닿아있는 저 여관은 필요한 게 있더라도 금방 사러 갈 수 있고 여관의 크기도 3층인 게 괜찮은 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방을 예약하려는 사람들로 줄이 늘어져 있었다.

“다음 손님!”

어느덧 데카드의 차례까지 오고 데카드는 은화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두 명이서 잘 만한 방 하나 주세요, 그리고 목욕물도 부탁합니다.”

“여깄습니다.”

여관 주인은 15동화를 거슬러주고 방 키 하나를 주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방 키에 써진 대로 2층으로 올라간 데카드와 짹짹이는 방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면 괜찮네!”

더블 사이즈 침대는 남자 두 명이 함께 누워도 남을 정도로 컸고 적당한 조명과 책상, 쇼파가 있었다.

“적어도 모타운에서보단 잠자리가 나은 것 같습니다.”

모타운에서는 벤치의 자리를 깔고 누워 노숙을 했었으니 그때보다는 나은 게 분명했다.

똑똑-

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목욕물 준비됐습니다!”

길거리에서 많이 굴러다녔으니 목욕으로 흙 먼지와 때를 씻어낼 시간이다.

“짹짹이도 샤워할래?”

“저는 괜찮습니다.”

짹짹이야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거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더러움 따위 한 번 변신을 풀었다가 다시 변신해주면 없어진다.

“그럼 나 혼자 갔다 올게!”

“다녀오십쇼.”

1층으로 내려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목욕실까지 온 데카드는 뜨끈하게 덥혀진 목욕물이 담긴 커다란 통 앞으로 왔다.

목욕물이 내는 수증기로 흐릿한 목욕실 안은 데카드 혼자였다.

“어흐…… 시원하다.”

마수계에서 이런 따뜻한 물을 느끼려면 물을 마법으로 뜨겁게 달궈야 하는데 불속성 마수가 없을 때 데카드는 항상 찬물의 샤워를 해야 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호수나 강에서 샤워를 마치고 난 후 바람이라도 쌩하고 불면 그대로 몸이 뼛속까지 얼어붙는 감각이 든다.

“이제 그런 과거와도 안녕이야!”

옷은 전부 탈의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 목욕통의 몸을 담궜다.

“하아…… 시원하다.”

따뜻한 물 안에 있으니 전신의 긴장이 풀어지며 복잡했던 머릿속도 차분하게 정리가 됐다.

“집행부에 다시 복직해서…… 돈도 다시 벌고…… 서클도 올리고…… 집도 사고…… 말도 사고, 히힛.”

유일하게 걸리는 문제점이라면 아직 자신이 1서클 밖에 안됐다는 점이지만 서클이야 금방 올릴 수 있다.

“내일은 루비아로 가야겠어.”

중립지대인 아사이드의 위치한 마법부지만 마법부의 본 건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부들은 전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힘이 한곳으로 쏠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마법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 하려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 중 데카드가 일했던 집행부 A팀은 마침 지금 있는 탈리스의 수도, 루비아에 있다.

“그 놈은 잘 있으려나?”

직장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과 일을 같이했던 친구 놈 하나가 따올랐다.

집행부에서는 친구라고 해봐야 한 명 밖에 없었는데 10년이나 지난 지금은 짤렸을지도 모르겠다.

“가보면 알겠지.”

탕 안에 담가두었던 손가락이 쭈글쭈글하게 불어갈 때쯤 데카드는 탕에서 나와 목욕을 마저 끝냈다.

샤워를 마친 후 다시 옷을 갈아입고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며 방으로 돌아오니 짹짹이가 창문을 열고 프로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데카드는 수건을 목에 걸고 짹짹이의 옆으로 와 같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아직 밤이 늦지 않아 집집마다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고 도로는 가로등으로 낮처럼 밝았다.

광장에서는 연인들이나 사람들이 아직 들어가지 않고 사랑을 나누거나 여가를 즐겼다.

마수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게 아닌 정말 주인과 같은 인간인 저 사람들은 넓은 도시를 채우고 있었다.

“주인님의 고향은 참 아름다운 곳 같습니다.”

“맞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1000년 동안 개지랄을 했지.”

짹짹이는 데카드의 등 뒤로 와 수건으로 축축해진 머리를 닦아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뭐가?”

“인간계가 지금도 주인님이 마음에 들어 할 만큼 아름다워서 다행입니다.”

“크큭. 나도 너와 같이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야.”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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