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프로피로 가는 길
“이리 와볼래?”
데카드는 정말 가설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머리가 얼얼하면서도 검사 몇 개를 해보았다.
첫 번째.
계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소환사의 명령을 잘 듣느냐.
끼기긱-
우드 몽키는 데카드의 말에 1초에 고민도 하지 않고 달려와 머리를 손에 비비며 애교까지 부렸다.
“짹짹아, 넌 지금 마수학의 신세계를 보고 있다.”
이 사실을 직관 중인 짹짹이는 정작 관심이 없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데카드는 지체없이 두 번째 검사를 실시했다.
“장작을 조금 모아줄래?”
두 번째.
이 마수가 능력을 쓰면 소환사와 마수, 둘 중 누구의 마나가 달까.
기본적으로는 마수의 마나가 먼저 단다.
인간계의 오고 유지하는 데에 드는 마나는 소환사가 부담하고 능력적인 것은 마수가 부담하는 게 원래의 형식이었다.
우드득-
우드 몽키가 어렵지 않다는 듯 손으로 땅을 짚고 몇 초간 집중하자 얇은 나뭇가지들이 올라왔다.
“이건 기존하고 똑같네.”
마수가 능력을 썼음에도 추가적인 마나 손실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 세 번째,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지.”
세 번째.
중복 소환이 되느냐.
같은 마수를 여러 마리 거느린 소환사는 많지 않아도 존재하기는 한다.
그런 모습들은 고서클로 갈수록 없어지긴 해도 4~5마리 이상 모인 같은 종의 마수들은 장관을 연출한다.
“우드 몽키 한 마리 더 소환!”
짹짹이가 나눠준 마나가 아직 여유분이 있어 우드 몽키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화악-!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었고 데카드의 양손이 또 빛으로 물들면서 소환 마법진이 허공에 나타났다.
끼끽!
순식간에 땅에 얌전히 앉아 있는 우드 몽키 두 마리가 생겨났다.
“와아…… 이건…….”
생각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힘이다.
“마탑에서 계약 소환할 때 원하는 마수 안 나와서 뺑뺑이 오지게 돌았던 거 생각하면…….”
현자타임이 강하게 데카드를 찾아왔다.
“지금이라도 이 힘의 존재를 알았으니 다행 아니겠습니까.”
짹짹이의 손이 토닥토닥 데카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너희들은 일단 돌아가 있어.”
빛 무리와 함께 우드 몽키들이 마수계로 역소환됐다.
“정말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1서클 마수 하나 데리고 다니려 했던 데카드의 계획이 너무나 좋은 방향으로 망가져 버렸다.
“완전 깜깜해졌네.”
소환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침침했던 하늘은 이제 완전한 밤의 모습이었다.
“소환!”
우우!
이제 불을 피울 수 있게 됐으니 아까 역소환한 레드 폭스를 다시 인간계로 소환했다.
“여기에 불 좀 피워줄래?”
레드 폭스가 기다랗고 털이 풍성한 꼬리로 장작 위를 한 번 스윽 쓸어가자 불씨가 옮겨붙으면서 불은 장작을 머금고 빠르게 몸집을 키워나갔다.
화르르-
“고마워!”
우우-
할 일을 마친 레드 폭스는 빛과 함께 다시 마수계로 돌아갔다.
“우리도 자자.”
밤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최소한의 방어막도 얻었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자는 일만 남았다.
“안녕히 주무십쇼.”
“그래 짹짹아.”
* * *
산속을 걸어 다닌 지 이제 이틀째가 되는 날.
길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똑같은 나무들과 땅이 둘을 반겨주고 있었다.
먹는 시간도 아끼기 위해 육포 봉지를 뜯고 먹어가면서 산길을 걷고 있다.
사각 턱이 될 정도로 육포를 씹고 삼켜내니 어느 정도의 포만감이 배 안에서 채워졌다.
“짹짹아.”
“네 주인님.”
사사삭-
바람은 전혀 불지 않고 있는데도 움직이는 풀숲들.
새들은 무언가에 놀라 하늘로 푸드덕 날아오르고 나뭇잎 바스러지는 소리가 귀를 간질거린다.
“너도 느끼고 있냐?”
“뭘 말씀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인간의 기척이라면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짹짹이가 평온한 어투로 말을 끝마치자마자 양쪽 풀더미에서 인형들이 튀어나오더니 둘에 앞뒤를 전부 막아 퇴로를 없앴다.
“이 인간들은 누굽니까?”
허리에는 이가 나간 칼 같은 냉병기를 찼으며 간혹 활 같은 무기도 보이긴 하는데 화살 수급이 어려운 듯 화살통에 꽂힌 화살이 몇 개 없다.
옷은 또 마음 아프게 군데군데 찢어지고 흙으로 더러워져 있어 측은함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직업이다.
이들은 데카드가 집행관이었을 때 가끔씩 만나던 이들로, 만났을 때마다 처음 꺼내는 말이 전부 같았다.
“가진 돈 다 내놓으면 목숨 만은 살려주지.”
“가진 돈 다 내놓으면 목숨 만은 살려주지!”
아니다 다를까 데카드가 조용히 중얼거린 대사하고 남자의 대사가 정확하기 맞물렸다.
“크하하하!!”
이렇게 또 인간계로 돌아왔다는 실감을 맛보게 해줄 줄이야.
데카드의 입장으로는 참으로 고맙고 또 웃긴 일이었다.
“형님, 저 새끼 웃는데요?”
“몰라, 미치기라도 했나 보지!”
앞에 5명, 뒤에 5명 총 10명의 산적들은 갑자기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을 터뜨리는 데카드를 보고 그 옆에 있는 깃털 코트에 무표정인 남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미친 새끼가 상황파악이 안 돼?”
“다리에 화살 하나 박혀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돈이 없어 화살이 별로 없는 산적 궁수 하나가 큰 맘 먹고 화살 하나를 뽑아 활시위에 걸었다.
“하하하하!”
데카드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짹짹이도 별다른 명령이 없는 지금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맛 좀 봐라!”
피유웅-!
데카드의 하체를 노리고 날아간 화살은 그 촉이 거의 닿을 뻔했을 때 누군가가 끼어들어 막혀버렸다.
“화, 화살을……!”
짹짹이의 손에 들려있는 낡은 화살.
화살촉에 피가 말라붙어 있는 게 쓰고 나서 여러 번 재탕한 것이 보였다.
“대, 대장! 저희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데요?”
“닥쳐! 이 새끼야!”
짹짹이는 처음 보는 물건에 호기심으로 몇 번 만져보자 뚜둑 하며 화살이 반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주인님에게 무언가 날아오길래 잡았습니다.”
“그래? 크흠! 아 너무 반가워서 웃음이 안 멈췄네.”
너무 과도하게 웃어서 쉬어버릴 뻔한 목을 조금 풀어준 후 데카드는 이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산적들을 제대로 눈에 담았다.
“너희들 뭐냐?”
대장은 이 인원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남자에게 없다는 걸 느꼈다.
“우, 우리는 이 산을 지배하는…….”
“푸흡! 아 미안미안, 계속해!”
데카드가 또 터질 뻔한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 산적 대장이 말을 끝마치게 배려해주었다.
“이 산을 지배하는…….”
“크흡……!”
“…….”
뭔 말을 하려고 하면 계속 웃으려 하는데 자신이 코미디언도 아니고 더 이상 이 짓거리를 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대장은 부끄러움에 빨갛게 물든 얼굴로 산적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목숨은 살려주려 했는데 안 되겠구나! 얘들아 죽여라!”
“”네엡!””
허리에서 모두 저마다의 무기를 뽑으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는 모습은 이 짓도 한 두번 한게 아닌 듯 매우 익숙해 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주인님.”
“죽이진 마!”
“알겠습니다.”
충분하게 거리를 좁힌 산적들은 이제 단숨에 끝을 내기 위해 하늘 높이 무기를 들어올렸다.
“소환.”
후우욱-!
갑자기 근거리에서 펼쳐지는 마법진의 빛무리가 눈이 제대로 떠지는 것을 방해했다.
“으윽!”
“뭐냐!”
빛무리가 점점 사라지고 그 안에서 나온 건 추운 극지대에 사는 펭귄에 모습을 한 마수, 프로스트 펭귄이다.
그것도 프로스트 펭귄들의 무리 안에서 대장의 위치를 가진 강한 개체.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같은 마수들 안에서도 강함의 정도까지 조율하여 소환하는 게 가능하단 걸 알 수 있었다.
한 무리를 이끄는 대장급의 강함을 가진 이 프로스트 펭귄이라면 2서클의 위력도 충분히 낼 수 있다.
프로스트 펭귄이 인간계로 소환되자마자 그 부분을 중심으로 발아래에 서리가 껴나가기 시작했다.
빠악-!
“크허헉!!”
누런 이빨 몇 개가 허공을 날아가며 그와 같이 산적의 몸이 하늘로 붕 떠 날아갔다.
“그런 냄새 나는 몸을 주인님께 가까이하지 마라.”
정신 못 차리는 산적들 중 데카드와 가장 근접한 산적하나를 짹짹이는 일권에 날려 바닥을 구르게 했다.
“이, 이런 젠장! 빨리 공격해!”
또 누가 저렇게 당해버리기 전에 얼른 이 둘을 죽여야 한다!
“펭귄아.”
끼엑!
쩌저적-!
펭귄이 짧은 두 팔을 쭉 뻗자 산적들의 검을 든 팔에 어깨 부분이 얼어붙어 무기를 휘두를 수 없게 됐다.
“이,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너희들이 사람 잘못 봤다는 거지!”
데카드와 짹짹이의 주먹이 빠르게 산적 두 명을 더 녹다운시켰다.
“도망쳐라!”
역시 잔뼈가 굵은 산적 대장은 자신이 제일 먼저 뒤도 안 돌아보고 무기도 다 내던진 채 산속으로 뛰어갔다.
“펭귄!”
끼에에-!
대장과 같이 자신들이 지리를 잘 알고 도망치기 편리한 산속으로 도망치려는 잔당들은 아쉽게도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바, 발이!”
남아 있던 모든 산적들의 두 발이 얼어붙으면서 달리는 건 물론이고 걷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처와 자식이 있습니다!”
마치 클리셰처럼 이 대사조차 다른 산적들에게 들었던 대사와 똑같다.
“그래그래. 토끼 같은 자식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펭귄은 할 일을 다하고 마수계로 빛과 함께 역소환됐다.
“수고했어! 펭귄아!”
“다, 당신은 혹시 마법사이십니까?”
“그걸 이제 알아봤냐?”
어떻게 이걸 못 알아챘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도련님 두 명이 호위도 없이 산에 온 줄 알았는데 알 고 보니 호위가 필요 없는 마법사였다.
마법사라면 아군의 수가 몇이든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정말 압도적인 차이가 아니라면 공격해서는 안 되고 만약 그런 차이가 난다 해도 마법사는 대부분 귀족이기 때문에 건드렸다가는 바로 인생 종 칠 수가 있다.
“가진 돈 다 내놓으면 목숨 만은 살려주지!”
데카드는 언젠가 꼭 한번 날려보고 싶었던 대사를 외치며 작은 소란을 마무리했다.
“흐음…… 이게 다야?”
“저, 정말 그게 답니다!”
산적들이 모아놨던 자금을 전부 털어서 손에 들어온 돈은 2은화.
아껴서 살면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돈이다.
“뭐 이 정도면 살려주도록 할까?”
“감사합니다! 뭐해! 너희도 얼른 인사드려!”
““감사합니다! 형님!””
데카드는 소중한 2은화를 품속에 넣고 아직 기절해 있는 산적 셋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을 눈에 하나하나 각인시켰다.
“오늘은 살려주는데 또 마주치면 그때는 죽거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만들어줄 거야. 알았어?”
““넵! 알겠습니다!””
우렁찬 산적들의 대답소리가 산에 메아리쳤고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았다.
“짹짹아 가자!”
“알겠습니다.”
영 마음에 안 드는 듯 산적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짹짹이도 다시 데카드에게 돌아왔다.
둘이 길을 넘어 이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지자 산적들은 꿇었던 무릎을 피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와아…… 하마터면 뒤질뻔했다.”
“저놈들은 뒤진 거 아닙니까?”
부하 산적이 손가락으로 쓰러진 세 명을 가리키며 물어도 대장은 그런 것 따위 관심 밖이었다.
“몰라. 저놈들 운명이 그런 거겠지. 이제 돌아가자!”
산적 대장은 저 길 앞쪽에 자신들과 같은 산적 무리가 두 개쯤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놈들도 좆돼보라지.’
저런 자연재해를 자신만 당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