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드디어 인간계로
뒤쪽에는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데카드를 바라보는 요르와 덩치에 안 맞게 옆에서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하고 있는 고오른.
티이라도 이제 정말 가버린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범벅이 된 표정이었고, 레오는 꼭 가야겠냐는 눈빛을 보냈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표정 짓지들 마라.”
데카드는 자신의 양완에 자리 잡은 어마무시한 양의 마나를 보았다.
이런 마나로 펼치는 마법은 공간을 뚫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는 대신 그 대가가 참혹하리만큼 커다랗다.
대가는 모든 서클의 소멸.
그리고 지금 데카드의 눈앞에 있는 마수들은 지배자급 마수로 9서클이 아니면 인간계로 소환할 수 없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지금 데카드의 팔에 끼어있는 4마리 마수들의 마나가 담긴 물건들.
모두 몸에서 떼어온 것이기 때문에 고유의 마나가 아주 듬뿍 들어갔다고 볼 수 있겠다.
“직접 대면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는 마.”
4마리의 마수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편 짹짹이는 늘 그러던 대로 데카드의 옆에 붙었다.
“마수왕을 잘 보필해라 짹짹이!”
“네가 남자라 다행이야! 여자였다면 질투가 나서 미쳤을 텐데!”
“부럽다! 짹짹이!”
“…….”
마수는 하급부터, 중급, 상급, 최상급, 지배자급까지 나눠져 있고 저 4마리의 마수는 마수계의 탄생 때부터 지배자급이었다.
하지만 짹짹이의 종족은 다크로우, 하급 마수다.
그러니 원래의 기댓값이 낮아 아무리 현재 지배자급의 마수로 진화를 한 짹짹이라 해도 데카드와 함께 마수계를 탈출할 수 있는 거다.
힘의 제약은 당연히 받겠지만 그래도 저 4마리의 마수들과는 상황이 달랐다.
“원래도 항상 내가 주인님을 보필했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해라.”
짹짹이가 순식간의 칠흑의 깃털로 만든 코트로 변하며 데카드에게 걸쳐졌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이 나고 남은 것은 마법의 전개뿐이다.
“개문!”
콰아아앙-!!
천지가 울리고 개벽할 소리가 마수계에 울려 퍼지자 모든 조류형 마수들이 깜짝 놀라 날아올랐다.
휘오오오-
“그래, 저거야…….”
데카드가 1000년 전 빨려 들어갔던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져있는 공간.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여기 빨려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전투용 로브.
그때 구해준 3학년의 귀여운 후배만 없다고 하지만 1000년전과 똑같은 상황이다.
“출구도 확실해.”
입구는 마법으로 어떻게 뚫는다 해도 돌아갈 때는 인간계가 아닌 엉뚱한 4차원이나 다른 차원으로 길을 잃을 수 있었다.
원래 이런 목적으로 쓸 생각은 없었지만 다행히 후배에게 걸어준 목걸이에 마나를 조금이라도 넣어놨으니 자신의 마나와 목걸이에 담긴 마나가 이끌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계로 인도해줄 것이다.
“이제 간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인간계, 집으로 돌아간다.
“나중에 보자!”
데카드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허공에 생긴 균열은 순식간에 사라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무탈하시길…….”
레오가 데카드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변함없이 밀려오는 구토감.
몸을 훑는 차가운 느낌도 동일하다.
파앙-!
허공에서 튕겨져 나오며 데카드가 바닥을 구르려 하자 깃털 코트에서 까마귀의 날개가 돋아나 중심을 잡아주었다.
“고맙다, 짹짹아.”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은 청록색의 숲속.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데카드는 추락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푸덕-
마수왕의 인간계 귀환치고 참으로 멋이없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의 마나가 너무 급속도로 다는 바람에 날개를 유지할 마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데카드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썰물 빠지듯이 허공을 향해 흩어져 가는 푸른 입자들이 보였다.
“내 1000년의 고생이 다 날아가는구나.”
주인의 강함은 곧 마수의 강함.
지금 데카드는 기존의 있던 9서클이라는 엄청난 힘을 포기함으로써 인간계로 올 수 있었고, 그나마 마수 계약이라는 편법으로 겨우 1서클을 지켜냈다.
“너희가 지배자급이 아니었다면 결속력이 약해서 또 모든 계약이 끊어졌을 거야.”
위에서 말했던 편법조차 영혼의 결속력이 9서클 마법사와 지배자급 마수 간에 이루어진 계약이었기에 공간조차 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힘들겠어?”
힘을 거의 몽땅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데카드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이미 7서클까지는 인간계에서도 도달했었다.
7서클까지는 두번 간 길이고 9서클 조차 한번 가봤는데 또 가는 게 어려울까.
“짹짹아, 너는 얼마큼 약해졌냐.”
소환사가 약하면 소환수도 약하다.
지금 이 상황.
1서클 마수 소환사가 지배자급 마수를 거느린 이 상황에서는 데카드 쪽이 짹짹이와 반응해 평준화가 되면 좋겠지만 짹짹이가 데카드와 평준화되어버렸다.
“처음 주인님과 만났을 때가 떠오릅니다.”
“크흠…… 많이 약해졌구나.”
“하지만 주인님보다는 강할 겁니다. 다크로우 종족이 쓸 수 있는 기술들은 마나가 부족해서 할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육체적 힘은 아직 쓸만하거든요.”말하면서 짹짹이가 주먹을 땅으로 내려쳤다.
콰앙-!
그대로 주먹의 모양이 남으면서 쑤욱 파여 들어간 땅은 흔적 근처에 일제의 균열도 없이 깔끔하게 주먹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크크큭, 그래서 반서(反噬)라도 하게?”
반서는 계약한 마수가 자신이 소환사보다 강하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강제적으로 계약을 끊어 새로운 소환사를 찾는 걸 말한다.
그래서 마탑의 마수학 교수들은 마수들과의 친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늘상 가르쳤다.
“그런 거 해서 뭐하겠습니까, 주인님보다 뛰어난 소환사가 있을 리 없는데.”
“킥킥, 너 아부 많이 늘었다.”
먼저 일어난 짹짹이가 아직까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데카드를 일으켜 주었다.
“일단 저쪽에 강이 있었으니까, 그 강을 따라가 보자.”
물 주위에는 사람이 있길 마련.
분명 사람이 지나갔던 흔적이나 마을이 있을 것이다.
“10년이면 내가 알던 사람들도 아직 살아있겠지?”
데카드는 분명 마수계에서 1000년을 있었지만, 그곳과 인간계는 아예 다른 공간이라 시간 개념도 전혀 다르다.
이곳 인간계는 현재 데카드가 실종된 지 10년째 되는 날.
레오와 나누었던 많지 않은 대화 중 이 부분에 관한 걸 들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흐흐흥…….”
인간계의 공기가 폐를 순환하고 다시 이산화탄소로 변해 빠져나가는 이 당연한 순리조차 신기하고 꿈 같았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럼! 고향에 돌아왔는데!”
이곳은 그냥 숲 한가운데에 불과했지만 데카드에게는 인간계 어느 곳에서나 이곳을 자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오! 짹짹아 이걸 봐봐!”
강을 찾던 도중 사람들을 더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데카드의 눈에 들어왔다.
“……길이 나 있군요.”
“그래! 길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거란 말이야! 그럼 이 길을 따라가면 뭐가 있을까?”
데카드는 어서 맞춰보라는 듯 짹짹이의 어깨를 잡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방방 뛰었다.
“사람이 있겠죠.”
“네 말이 맞아! 사람이 있어! 사람이!”
1000년 만에 보는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
마탑의 총장님은 날 기억할까.
그때 내가 구해준 후배는 잘 지내고 있을까.
온갖 생각과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에 잔뜩 설레며 꽤 오랜 시간을 길을 따라 걸었지만, 전혀 힘든 줄 몰랐다.
“제가 날아가서 마을이 어디 있는지 보고 오겠습니다.”
짹짹이의 몸이 마수화하며 까마귀로 변하려던 걸 데카드가 한쪽 손을 들어 올려 막았다.
“어차피 길은 하나밖에 없고, 계속 가다 보면 뭐가 나오겠지. 마을을 찾았을 때 느끼는 그 쾌감! 나는 그걸 느껴보고 싶어.”
“……알겠습니다.”
짹짹이는 데카드가 마수왕이 되고 난 이후부터 이렇게 들떠 하고 흥분해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거의 몇백 년 만에 다시 보는 주인의 즐거워하는 표정은 방해하고 싶지 않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을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한밤의 산은 여리디여린 1서클 마법사가 감당하기 힘든 곳이다.
그렇게 2시간 정도를 걷다 보니 내리막길의 끝에서 나무가 없는 평지가 펼쳐져 있고 사람들의 마을과 논이 보였다.
“마을이다!!”
만드라고라를 땅에서 뽑아낸 약초꾼처럼.
오리하르콘을 캐낸 광부처럼.
숨겨진 황제의 무덤을 찾은 도굴꾼처럼.
데카드는 마을을 찾고 산이 떠나가라 포효를 질러댔다.
“가자 짹짹아!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천천히 가십쇼, 뛰어가다 넘어지면 다치십니다.”
신나서 발밑에 뭐가 있는지도 신경쓰지 않으며 데카드는 내리막길을 거의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갔다.
“스읍……! 하아…….”
마을의 입구까지 도착한 데카드는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마수들의 털가죽 냄새나 똥 냄새가 아닌 사람들의 살결이 뿜는 냄새와 빵 굽는 냄새, 요리하는 냄새, 땀 냄새 여러 복합적인 것들이 섞여서 데카드의 코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지!”
또 소리는 어떠한가.
상인들이 자신의 물건을 홍보하는 소리.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지글지글 무언가가 구워지는 배고픈 자를 위한 오케스트라.
“드디어! 다른 소리가 귀에 들려!”
포이즌 스컹크의 방귀 뀌는 소리, 밤마다 문 울프가 울어대는 소리 따위는 집어치우고 드디어 1000년이 지나도 익숙한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안녕! 세상아! 안녕 문명아! 하하하하!!”
데카드는 마을의 안에서 고개는 하늘로 들고 두 팔은 양쪽으로 활짝 벌리며 빙글빙글 돌면서 이 시간을 만끽했다.
“하하하하!”
“주인님, 알고 계실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주인님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응? 쳐다보라지! 지금은 즐길 거야!”
이제는 돌지 않아도 세상이 빙그레 돌아갈 만큼 돌고 나자 데카드는 만족하며 멈춰 섰다.
“후우……! 그래도 다른 나라 같지는 않네!”
공간이동을 하면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가 없어 걱정했지만 그래도 원래 데카드가 태어난 나라와 마을 근처 숲에 운 좋게 떨어질 수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렇게 방패에다가 국기 모양을 그려 놨잖아!”
집집마다 기둥에 국기 모양의 방패를 걸어둔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다행히 돈은 많단 말이지?”
데카드는 마탑을 졸업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임무나 귀족들이 내거는 퀘스트를 주야장천 돌았고 그것에서 힘을 키우거나 수련을 병행했다.
물론 들어오는 짭짤한 돈들은 덤.
“이거 작동은 하려나?”
로브 안에 들어있는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낸 데카드는 어디 금이 간 곳은 없나 살펴봤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그게 뭡니까?”
“체크카드라는 건데 음…….”
데카드는 이 카드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고민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고 제일 좋은 방법은 실습이다.
“일단 봐봐!”
당당하게 카드를 들고 빵집으로 들어간 데카드는 초코빵 두 개를 들고 계산대에 올려놨다.
“6동화입니다.”
“여깄습니다. 잘 봐봐 짹짹아, 카드는 이렇게 쓰는 거야.”
삐빅-
“잔액 부족이라고 하는데요, 손님.”
순간 마주친 종업원의 눈빛에서 ‘어떻게 너는 카드의 6동화도 없냐.’라는 생각이 읽혀졌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종업원의 말 이후로 망부석인 양 움직임이 없는 데카드를 보며 짹짹이가 물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가게를 나온 데카드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카드를 바라보기만 했다.
1000년 만에 듣는 사람들의 소리라면 쌍욕이라도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릴 것 같다고 마수계에서 한탄했었는데 잔액 부족이라는 말은 쌍욕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잔액 부족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데 그러십니까?”
“너는 지금 내가 지금 어때 보이냐?”
갑작스러운 데카드의 말에 짹짹이는 데카드의 말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뜯어보았다.
자신과 같이 검은 머리에다가 검은 눈동자를 가졌고 잡티 없는 피부에다 날카로운 눈매는 마수계를 휘어잡던 마수왕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강한 장난기가 서려 있어 천방지축의 꼬마 느낌도 나고 이목구비가 굉장히 뚜렷했다.
옷은 마탑에서 졸업하게 되면 선물로 주는 로브로 10년 전이라 감안해도 세련되고 데카드의 몸에 딱 맞게 제작돼 있어 귀족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멋있으십니다.”
“그래, 지금 나에게 잔액 부족이라는 말의 뜻은 내가 허우대만 멀쩡한 거지라는 소리야.”
“아아.”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