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88화>
비록 피로에 안색이 초췌했지만, 유하남은 그 어느 때보다 열의를 보이며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케빈, 한국의 옥문도와 일본 수해 던전 관측치 지금 전송해 줘.”
“예, 알겠습니다.”
“제시카는 얼마 전에 아카도바와 하와이 던전 관측치에 라플라스 함수 대입한 결과값을 바로 계산해서 보내 주고.”
“10초, 아니 딱 7초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얼추 추산한 계산이 지도에 반영된 결과를 보고 팀원들도 무언가 감을 잡았는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데이터가 들어오는 즉시 그걸 다시 변환하고 계산하여 입력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전 세계 곳곳에 찍혀있던 차원각성진과 영역들이 이어지는 선들이 차츰 좁혀진다.
그러는 동시에 일정 영역에 띠를 그렸다.
“이건…… 처음부터 우연이 아니었군. 옥문도부터 시작해서 일본 수해에 멕시코 아카도바에 하와이 던전…….”
북반구의 중위도 부근을 지나가는 띠가 점차 또렷해진다.
“거기에 쿠바의 드래고니안 던전에 이란 마슈하드 던전까지 일정한 흐름이 있어.”
“헉, 순식간에 이걸 다…….”
누군가 감탄하는 것도 잠시.
“방금 다른 던전들 데이터를 산입해봤는데 일치 확률이 90퍼센트 이상 나왔습니다.”
“그 말은 조금만 더 파면 차원각성진의 중심, 장미십자단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아직 호들갑들 떨지 말어!”
소리치면서도 유하남의 눈은 중위도 벨트를 훑었다.
‘가능성 있는 곳은 대여섯 군데가 있어.’
동아시아, 동유럽, 서유럽을 차례로 훑어 간다.
‘아니면 대서양 가운데거나.’
그러다 서유럽을 지나 대서양으로 시선을 옮겨가는 찰나.
삐이익- 삐이이익-
마침 그녀의 시선을 붙잡기라도 하듯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에서 신호가 발생했다.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아프리카와 유럽에 위치한 세 군데 차원각성진을 중심으로 그 영역이 확장해 가고 있었다.
“팀장님, 지브롤터 해협 쪽에 융합 반응입니다!”
‘음, 역시 중위도 벨트에 위치하고 있어. 더구나 마침 쿠바와 마슈허드를 동시에 해결하자 이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확장되다니.’
한 곳의 마력 결절점 중핵이 파훼되면 거기 흐르는 마력 스트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었다.
‘아직은 가설일 뿐이지만.’
이 타이밍에 돌연 중위도의 쿠바와 마슈허드 사이 있는 지브롤터 해협의 차원각성진이 확장된 건이 과연 우연일까.
‘일단은 데이터가 더 필요해. 뭣보다 저곳을 그냥 둘 순 없지.’
유하남은 곧장 백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마슈하드의 스핑크스 던전에서 행한 차원각성진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마력 결절점 중핵을 파훼했고 필드 확장은 억제되었다.
이제 마무리하고 전용기로 돌아가는 길이건만 백강철은 벌써 다음 임무와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음, 아무리 차원각성진을 줄여도 줄여도 늘어나는 수가 더 많다니…….”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해도 해도 발에 치일 정도로 임무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만큼 움직여서 조금이라도 줄어들고 있지 않나.”
그나마 옆자리에 로버트의 말대로 헌터가드에서 움직여서 이 정도였다.
문제는 역시 겨우 수습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 숫자가 느는 것도 문제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네.”
백강철이 태블릿PC를 몇 번 터치하자 화면에 전 세계 지도가 뜨고, 거기에 점과 면으로 차원각성진이 표시되었다.
“차원각성진 수가 늘고 그 필드들이 급속히 팽창해면서 몇 필드가 맞닿을 확률이 대폭 올랐다는 보고야.”
“맞닿는다. 융합…… 을 우려하는 것인가.”
로버트의 말에 백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접한 던전끼리의 융합이야 예전에도 간혹 있었지만, 그게 차원각성진이 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 아니, 큰 놈이 작은 걸 삼킨다고 봐야 하려나.”
그는 화면을 돌려서 로버트에게 보여 주었다.
“기하급수적으로 팽창 속도가 빨라지고 뭣보다…….”
화면에서는 점과 면이 합쳐지면서 주변으로 더 많은 점과 면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삐빅- 삐빅-
신호음과 함께 일정 간격을 두고 시뮬레이터가 이후 상황을 예상한다.
삐비비비비비빅-
신호음은 점점 급박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면적 절반 넘게 차원각성진의 필드에 삼켜졌다.
그 모습을 끝으로 백강철은 화면을 껐다.
“본 것처럼 이대로는 정말로 세계 자체가 차원각성진의 필드 안에 삼켜지게 될 수도 있어. 장미십자단 녀석들이 바라는 게 이런 건지.”
“으음, 보고서를 봤지만, 이 정도로 진행이 빠를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그야 자네 말대로 우리들이 막고 있기 때문이지. 가까워지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음?”
지이이이잉-
그 순간,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긴급 신호가 왔다.
“지브롤터 쪽으로 간 팀이…… 실패했군.”
“지브롤터 쪽이라면 발할라 던전 아닌가?”
로버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버트는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지브롤터 해협 쪽 던전의 임무 실패를 확인했는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레이드가 실패했다는 말, 이어서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비대의 2안도 실패했다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위험해. 최악의 사태로 번진다면…….’
로버트의 시선이 다시 방금 백강철이 보여 주었던 태블릿PC 화면으로 향했다.
좋지 않은 예감은 항상 적중하기 마련이라더니 설마 했던 것이 딱 들어맞았다.
지브롤터 해협은 인근에 세 개의 차원각성진이 생성되었고 그 필드들이 급속히 팽창하여, 융합이 우려되는 장소였다.
삐이익-
그리고 이 순간에도 백강철의 태블릿 PC은 실시간으로 보내지는 정보를 정리하며 신호음을 내보내고 있었다.
삐빅- 삐비빅- 삐비비비빅!
점점 더 긴박한 신호음을 울려 대며 지브롤터 인근 필드가 급속히 팽창했다. 아까 시물레이션과 동일한 상황이다.
“젠장, 다른 곳도 위험한 곳이 있는지 파악해 주게. 그리고…… 유하남 장인님에게 들어온 전화가 있다고? 바로 연결해 주게.”
곧 전화는 유하남이 걸어온 선으로 연결되었다.
-백 길드장. 바로 받아서 다행이군. 지금 지브롤터 해협 쪽 반응 봤나?
“예, 안 그래도 봤습니다. 세 군데가 갑자기 확장되서 융합이 우려된다는…….”
-안 그래도 그에 대해서 알아낸 정보가 있네. 일단 바로 데이터를 보내 주겠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강철의 태블릿PC에 헌터가드 본부의 연구팀으로부터 직접 보내온 정보가 수신되었다.
그것은 자동으로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수치를 반영하여 선을 그려 냈다.
-축약된 버전이라 생략된 부분이 많네만, 우선 간단하게 설명하겠네. 일단 중요한 것은 중위도를 지나는 벨트가 보이는가?
“예, 보입니다.”
띡- 띡- 띡- 띡-
소리와 함께 중위도 부근의 점들은 연결하며 그 주변의 영역들이 붉게 칠해지며 벨트를 완성해간다.
그 벨트가 통과하는 한 곳, 한 곳을 보며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백강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이건…….”
-그래, 익숙하지. 한국의 옥문도, 일본 수해, 하와이, 아카도바, 심지어 자네가 지금 있는 모슈하드까지 이 벨트에 있어.
그리고 유하남이 추가로 데이터를 입력하자 이번에는 세로축으로 선들이 그려졌다.
-다른 위도 차원각성진 필드의 마력 스트림도 그 벨트로 모이고 있어. 같은 벨트 내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지.
“음, 이번에 터진 지브롤터 해협의 세 군데 필드가 이 벨트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겠군요.”
-그렇지.
“혹시 놈들의 본거지일 가능성도 있는 겁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이내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자세한 건 데이터를 봐야 알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지. 놈들이 그렇게 쉽게 자기 본거지를 드러낼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연구에 진전을 보였다는 건 대충 가닥을 잡았다는 거고, 이번에 지브롤터 해협 차원각성진을 억제하면 마력 스트림 흐름으로…….”
-그래, 그걸 추적하면 놈들 흔적을 쫓을 수 있을 거야.
그 대답을 듣자 백강철의 두 눈에 열의가 타올랐다.
“고생하셨습니다. 지브롤터 해협의 현장 데이터도 바로 보낼 테니 분석해 주십쇼.”
-그 말은 역시 바로 들어가겠다는 거겠지?
“예, 물론이죠.”
답하고는 통화를 끊자마자 옆에 있던 로버트가 물어왔다.
“유하남 장인님 뭔가 새로운 정보를 알아낸 건가?”
“차원각성진의 큰 궤적을 예측하신 모양이야. 지금 터진 지브롤터 해협도 무관하지 않고.”
백강철은 말하면서도 헌터 명단을 추리고 팀을 짜며 그에게 답했다.
“이번 지브롤터 차원각성진 필드에서 얻은 데이터가, 어쩌면 놈들을 추적할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어.”
“후우, 쉴 틈이 없겠군. 지금 우리 인력만으로 감당 가능할지”
백강철 역시 그게 고민인지 표정이 무거웠지만, 그때 스마트폰에 다시 착신음이 울렸다.
* * *
뉴욕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 올라 병준은 창밖으로 보이는 차원각성진 필드를 봤다.
슈우우우우-
여기 올 때만 해도 무섭게 확장하던 기세는 이제 완전히 사그라졌다.
마력 결절점 중핵을 억제한 탓에 필드는 더 이상 아카식 레코드 내면을 분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터였다.
그렇지만 그걸 보는 병준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두웠다.
‘차원각성진을 파훼할수록 숫자는 줄지만……. 남은 것이 더 강해지고 있어.’
생각해보면 마력 스트림은 흘러서 다른 마력 결절점 중핵을 찾아간다.
아카식 레코드 내면에서는 마력 스트림이 끊임없이 흐를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걸 내버려 둘 수도 없겠지만…… 결국 차원각성지만 막는 것은 미봉책이겠지.’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마검전에서 키케온도 움직이고 있으며, 물론 헌터가드에서도 쉬지 않고 알아보고 있다.
‘그리고 본거지를 알아내면…….’
그때는 진정으로 놈들과 최종전을 벌이게 되리라.
“뭘 그렇게 멍하게 보세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행기의 좌석에 먼저 자리를 잡은 벨이 물었다.
“아, 이번 레이드나 앞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요.”
“레이드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진짜 성실하시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옅게 웃고는 말을 고쳤다.
“아니지, 그렇게까지 하기에 이렇게 강한 거겠죠.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진짜 놀랐거든요.”
“벨 씨도 충분히 강합니다.”
“그야 그렇지만 규격 외라는 말도 있듯 드래고니안 던전을 이렇게 빨리 처리할 줄 몰랐죠.”
그녀는 창밖으로 던전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반나절 안 지나서 같은 길을 돌아가고 있으니.”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요. 아무튼 덕분에 크게 배웠어요.”
S급의 던전을 둘이서, 그것도 하루 만에 처리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업적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도 안목을 한층 넓히게 되었으리라.
그때, 둘의 스마트폰에서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삐비빅-
액정을 본 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또 긴급 임무가 발생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죠?”
“음, 이건!”
알림 내용을 확인한 병준은 나직이 침음을 흘렸다.
“지브롤터 해협에서 세 개의 필드가 급속히 팽창해서 융합되고 있답니다.”
“아, 거기라면…… 후우, 또 동료들이 죽었겠군요.”
“네, 분명히 이런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전력을 충분히 보강해서 갔을 텐데도 유감스럽게…….”
병준은 침울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이어서 백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강철 길드장님, 저 병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