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84화>
올드원에게 삼켜진 헌터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자비는…….
‘그나마 아직 저들이 인간일 때. 인간으로서 죽게 해 주는 것이겠지.’
파칫- 파치치칫!
올드원이 헌터들을 완전히 삼켜 버리기 전에 그 존재를 먼저 말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병준은 포이즌 대거를 역산한 마력회로에 포스 노바까지 더해 이중으로 투영했다.
“하아앗!”
기합과 함께 병준은 포스 노바의 권능을 뽑아내서 휘둘렀다.
[ 엑스칼리버의 Ⓟ호수의 가호가 Ⓐ포스 노바 효과를 더욱 극대화합니다. ]
거기에 호흡과 함께 전신을 감싼 갑옷의 마력회로마저 융화되어 시너지를 냈다.
쿠쿠쿠쿠쿠쿠- 콰아아앙!
극한으로 압축된 마력이 세로로 그어지는 칼날 궤적을 뒤따라 폭주한다!
“크크큭, 그으으윽, 마…… 거어엄!”
올드원은 여러 개의 팔을 교차하며 막으려 했다.
그러나 아직 놈의 존재가 불완전한 탓인지 팔은 속절없이 갈라지고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그대로 머리통과 몸통마저 양분될 상황이었으나, 이때 마력 결절점 중핵이 반응했다.
파치치치칫- 파치치치칫!
강렬한 섬전이 일고, 시커먼 암흑마력 운무가 쏟아져 나오더니 촉수로 몰아친다.
그리고 그것들이 올드원의 몸에 빨려들어 간다.
놈이 죽으면 자신 역시 끝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아직 불완전한 올드원을 빠르게 완성시키겠다는 듯 기운은 시시각각 더 맹렬해졌다.
-마검을 죽여라!
그 기운과 접촉하는 순간, 육성이 아닌 뇌리로 목소리들이 전해졌다.
-드디어 만났구나, 마검전의 주인이여!
-멸하라, 멸하라, 멸하라!
목소리가 직접 전해진 탓에 놈들이 퍼트리는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정신에 압박이 느껴지자마자 하얀 빛무리가 병준을 감쌌다.
[ 홀리 버드 공능이 당신의 정신을 보호해 줍니다. ]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전율하게 만드는 정신계 공격이라. 후우, 장난이 아니네.’
그렇다면 더욱더 저게 완성되도록 둘 수 없다.
병준은 깊어진 조화경의 호흡으로 엑스칼리버가 가진 호수의 가호 공능을 더 끌어내 시너지를 일으켰다.
후우우웁- 후우우!
그리고 포스 노바를 거두고, 대신 드레인 스파이럴을 투영하여 한 걸음씩 놈을 향해서 내디뎠다.
우우우웅- 구우우웅!
“그으윽, 크으으그!”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놈이 물러서려 했으나, 드래인 스파이럴의 마력 와류는 모든 것을 병준에게 끌어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척 거리에 이르렀을 때, 마검은 주변 온갖 마력이 뒤섞인 채 응축되어 시커멓게 일렁였다.
“하아앗!”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렇게 내려치는 검광에 녀석도 결국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빛으로 된 거대한 벽이 놈에게 넘어지듯 하얗게 공간이 출렁인다.
그것이 주변의 검은색을 지워 가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크에에엑!”
빛에 묻혀 모든 소리가 작게 들리고, 마력 결절점 중핵도 불안하게 흔들린다.
비명과 함께 올드원의 몸뚱어리가 산산조각으로 찢어졌다.
[ 올드원 제거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퀘스트 보상으로 마검석 5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 특전으로 마검석 4개를 추가로 습득하였습니다. ]
후우우욱-
퀘스트 완료와 보상 창이 연달아 떴다.
동시에 올드원의 몸뚱어리에 파묻혔던 희끄무레한 형체들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촉수로부터 떨어지며 하나둘씩 흩어졌다.
병준은 부디 저것이 희생당한 헌터의 영혼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죽는 순간만큼은 저 괴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기에.
“그럼…….”
병준은 시선을 위로 옮겼다.
-으어어…… 다시…… 힘…… 모아!
올드원은 이미 소멸해 버린 상태.
마력 결절점 중핵도 당연히 온전치 못했다.
마치 급류에 풀어진 실타래처럼 흩어진다.
마력 결절점 중핵은 다시 기운을 회수하려는 듯 주변 마력 스트림을 마구 끌어들였지만.
쿠와아아아아-
“최후의 발악이냐…… 음?”
병준은 검격을 날려 마무리하려 했다.
그 순간 중핵의 중심에서 모자이크처럼 흐릿하게 무언가가 비쳤다.
저번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리나가 건재했던 걸까?
‘아니, 이리나가 아냐.’
배경은 흐릿하나 그곳에는 나치 제복 차림의 녀석이 허둥거리고 있었다.
“컥! 뭔……?! 크허어어억!”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마력 결절점 중핵의 스트림에 연결된 듯 열심히 손을 휘저으며 마력을 조율한다.
녀석은 아직 마력 결절점을 통해 엿보는 법을 모르는 듯 어설프게 행동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 비친 존재가 아닌, 올드원들.
-새로운 숙주!
-만족스럽지 않아. 저번에 그것보다 약해…….
-통로를 열 매개체…… 충분!
새로운 숙주를 향해 다 죽어 가던 놈들이 다시 남은 힘을 모아 발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껏 승기를 잡았거늘 놓칠 수는 없다.
“어느 놈이건 상관없지. 이번에도 끝장내 주마.”
마력 스트림이 밀집한 저 중핵을 흩어 버리기 위해선, 강한 마력 출력으로 만들어 내는 급류가 필요하다.
후우욱- 후우우우-
더 깊어지는 마력호흡, 이 정도면 4성 이상의 메인급 마검을 한 자루 더 투영해도 문제없을 터.
병준의 손에 마검이 겹쳐지더니 융합하였다.
모비딕 크라잉까지 중첩하여 투영한 병준은 그 마력회로에서 뽑아낸 강력한 기운을 칼날에 실어, 그대로 쏟아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센 파도처럼 쏟아지는 마력의 폭풍은 그대로 암흑마력를 분쇄해 갔고, 이에 버티지 못한 마력 결절점 중핵은 결국 그대로 소멸했다.
자연히 마력 스트림에 깃든 연계 전승도 와해되며, 주변을 가득 채운 독무도 흩어진다.
-마검…… 반드시…… 멸…… 한다…… 기다리는…….
발악하듯 전하는 목소리도 이제는 완전히 없어졌다.
파치치칫!
“후, 또 하나 억제했군. 키케온도 일 잘하고 있으려나.”
그 자리엔 이제 키케온의 표식으로 명멸하는 마력 패턴만이 각인되어 빛나고 있었다.
***
거대한 차원각성진이 금방이라도 지상에 추락할 듯 낮게 드리운 동유럽의 한 고성 필드.
“바우젠하우어 녀석, 늘 만들겠다 하더니 결국은 했군.”
남궁민수는 읊조리며 마력 스트림이 마구 흘러 다니는 필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캬아아악!”
이내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뱀파이어들이 나타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열려 있는…… 문…… 그대…… 힘…… 강력해지리라.
-막을…… 수…… 없도다…… 뚫고…… 안으로…… 더…… 더욱…… 더!
-아직…… 올드원…… 으로…… 진화…… 조차 못 한…… 가소로운…… 잡류!
그렇거늘 뇌리로 직접 때려 박는 목소리가 들리자, 눈앞에 덮쳐 오는 뱀파이어보다 거기 더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저들에게는 아무런 용건도 없지.”
남궁민수는 그저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그를 범접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두두두둑- 뿌드득!
몸을 덮으며 시커먼 오라가 피어오르더니 몸 곳곳에 핏발 선 눈알들이 마구 생겨난다.
이어 그 눈알의 주변으로 수십 가닥도 넘는 촉수가 돋아나며 뱀파이어들을 훑더니.
촤아아아아아악!
“크캬아악!”
지나간 자리에는 시뻘겋게 피를 뿌리며 잔해만이 흩어졌다.
그마저 곧 마력 스트림에 흡수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저벅- 저벅-
그렇게 오래지 않아 고성에 다다른 남궁민수가 손짓하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고성 특유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홀이 나타났다.
“이거 뜻밖의 손님이 오셨군.”
그때 누군가가 홀 정면에 있는 계단을 내려오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남궁민수께서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창백한 피부에 무감정한 목소리. 마주 선 것만으로도 피가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남자였다.
물론 남궁민수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자네가 그랜들인가? 바우젠하우어에게 말은 들었지만, 처음 만나는군.”
오히려 그를 향해 성큼 다가가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바우젠하우어가 이곳에 대해서는 종종 말했었지. 동유럽에 터를 잡은 건 의외이긴 한데. 뭐, 분위기는 괜찮군.”
“분위기가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자네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마찬가지 기조 없는 어조로 대꾸하며 붉은 오라를 흉악하게 일으킨 그랜들 역시 움직였다.
그는 마주 다가가며 남궁민수에게 경고했다.
“바우젠하우어을 만나러 왔다면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어 곤란해. 다음에 다시 오도록.”
우뚝-
잠시 멈춰 서더니 남궁민수는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더듬듯 보더니, 뭘 느꼈는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면 차원에 접속 중인가. 이리나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공들여서 만든 티가 나는군. 아주 좋아.”
자신의 작품을 제멋대로 평가하듯 하는 말에 그랜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당신의 명성이 높다지만 아무 데서나 안하무인으로 굴면 안 되지 않나.”
“아무 데서가 아니라, 합당한 제안을 하러 온 것이다. 무엇보다 자네는 나를 막지 못해.”
파칫-
마지막 발언이 신경을 건드렸는지, 순간 그랜들이 사라졌다.
“감히 이 필드에서 뱀파이어의 힘을 이어받은 나를 도발하다니…….”
촤아아아아아악!
주변의 마력 스트림이 그랜들에게 깃들며 그의 오라를 한층 부풀렸다.
“연계 전승인가.”
그렇지만 남궁민수는 그저 간단히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팔에 눈알이 생기고 촉수가 돋아나며, 순식간에 마력 스트림에 깃든 연계 전승을 삼켰다.
“어떻게?!”
연계 전승이 전해 주는 힘이 돌연 사라지더니, 오히려 저쪽에서 암흑마력을 뿜어내자 그랜들은 당황했다.
쿠쿠쿵! 콰아아아아-
돌연 고성 안쪽에서 들려온 거센 폭발음과 함께 마력 스트림이 뒤틀리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당했으리라!
“커흑!”
그 틈에 그랜들은 겨우 몸을 돌려 물러섰다.
반면 남궁민수는 손속을 거두더니 성안 깊은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마침 바우젠하우어도 올드원들의 목소리를 들었겠군.”
“……무슨?”
그랜들이 물었으나, 이미 남궁민수는 그를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마력 스트림이 뭉친 거대한 마력 결절이 보였다.
“크윽, 으으으…….”
그 앞에서 바우젠하우어는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역시 이리나와는 다르군. 그녀는 버텼거늘. 역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
말하며 남궁민수는 허공으로 손을 휘저었다.
“커헉, 크으으! 소, 소리가…… 어어거? 안 들려?”
그제야 발작하듯 몸을 떨어대던 바우젠하우어가 반응을 보였다. 횡설수설하던 그는 뒤늦게 남궁민수를 확인하곤 흠칫했다.
“자네가 그 목소리로부터 날 구했나?”
“역시 들었군. 하기야 차원각성진 술식을 만든 것도 자네였으니 그럴 만하지.”
그리고 남궁민수는 저 너머, 홀을 채운 유리관을 보며 덧붙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안에 든 실루엣들을 보며.
“다만 자네가 그토록 찬양에 마지않는 아리안 혈통에 부담을 분산해도 역시 무리였지? 인간 이상, 신의 존재감을 감당하기는 말이야.”
“그 목소리가 신이었다고?”
언제나 여유만만하던 평소와 달리, 그는 끔찍한 경험이라도 한 듯 어깨를 흠칫 떨며 물었다.
“신이든 뭐든, 어떻게 부르는지는 상관없지. 분명한 건 한계를 벗어난 존재라는 것이며, 우리를 그런 세상으로 인도할 열쇠라는 것이지. 장미십자단에 가세한 이유가 그것 아닌가.”
남궁민수의 말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끄덕거렸다.
“하기야 그렇긴 하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아리안 혈통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면야.”
“문제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육체는 너무 약해.”
“아니, 아리안 혈통은…… 젠장!”
바우젠하우어는 반박하려 했으나 바로 직전의 경험을 상기하고는 입을 닫았다.
간신히 접속한 마력 결절점 중핵이 폭주하면서 연계 전승이 마구 뒤엉켰다.
심지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존재들이 나타나 연계 전승을 먹어 치우며 자신의 뇌리에 목소리를 남겼다.
웅웅 울렸기에 그 의미를 확실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 강렬한 외경심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설마 그 암흑마력 존재들, 그 목소리를 너는 감당할 수 있는 건가?”
“아니, 나도 완벽히는 안 돼. 말했듯 태생적인 인간의 육신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지.”
다만 그는 덧붙였다.
“그렇지만 내게 없는 게 네게는 있고, 네게 없는 게 나에게는 있지.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존재로 진화할 수 있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그는 중얼거리며 유리관 속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아리안 혈통의 호문클루스들을 봤다.
“물론 저들도 한층 우수한 혈통으로 진화해서 새로운 제국의 나치 군단이 되겠지.”
바우젠하우어는 잠시 남궁민수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을 곱씹더니 이내 답했다.
“좋아, 뭘 원하나?”
그러자 기다리던 대답을 들었다는 듯, 그는 짙은 미소를 드리우며 그의 귀에 대고 말을 옮겼다.
“우리가 할 일은…….”
올드원의 목소리가 그토록 속삭여 온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