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79화>
“캬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실루엣은 암흑마력을 거세게 발산하더니, 몸을 부풀리며 덮쳐 왔다.
그러나 경계를 넘지는 못했다.
파치칫-
아카식 레코드의 내면 영역을 나오는 순간, 섬전이 튀며 그 몸뚱어리가 산화했다.
그러나 마치 깊은 원한이라도 맺힌 듯이 억지로 넘어오려 계속 시도한다. 그리곤 끝내 한 줌 연기로 소멸해 버렸다.
“끄르르르릅…….”
푸쉬이익- 푸쉬이이이이-
“헉, 언제 저런 놈이?!”
“안에서 봤던 다른 놈들보다 훨씬 강해 보였습니다.”
연구팀원들의 감사 인사에 병준은 괜찮다는 듯 그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어서 필드 밖으로 벗어나죠.”
녀석은 다른 게 아닌 마검에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아하니 아카식 레코드 밖으로는 못 나오는 것 같지만, 방심할 순 없어.’
이곳은 적지, 지금은 빠르게 벗어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목숨도 목숨이지만 특히 저 영역에서 얻은 데이터.
이를 연구 시설로 보내 분석한다면 차원각성진의 대응에 귀중한 전력이 되리라.
“음, 그런데 이 디바이스는 밖으로 나왔는데도 내비게이션 기능은 먹통이구먼, 쯧.”
“제 것도 그렇습니다. 작동은 되는데 좌표가 엉망이네요.”
“아무래도 안에 있는 동안 망가졌는지…….”
유하남과 연구팀원들이 난감해하자 병준이 앞으로 나섰다.
“이쪽에서 마력 신호가 느껴집니다.”
그러며 앞서 걷자 유하남과 연구팀원들이 뒤따랐다.
그렇게 마력 신호를 따라 필드에서 나오자 일행은 뜻밖의 상황에 직면했다.
“잠깐만, 대기! 모두 멈춰, 몬스터가 아니라고.”
군복 차림 헌터가 외치는 소리는 한국말이 아니었다.
‘영어?’
“어라, 저 마크는 헌터가드잖아. 왼쪽 팔뚝에는 미국 헌터 협회 마크도 붙었고…….”
던전 필드 앞에 방어 태세를 취한 이들을 둘러보며 유하남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봐도 이곳은 동탄이 아닌 듯했다.
“헌터가드 소속 특수상황대응국의 쿠퍼입니다.”
그러다 그중 하나가 병준을 보며 긴가민가하더니 이내 조심스레 다가와서 물었다.
“실례지만 정병준 헌터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병준이 신분증을 보여 주자, 자신을 쿠퍼라고 소개한 헌터는 마치 영웅이라도 만난 듯 반색했다.
“저, 정말이었군요! 정병준 헌터님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이어서 유하남 일행의 얼굴을 스캔하여 신원이 확인되자 헌터 부대의 경계가 풀렸다.
“그런데 이곳 던전에 들어가셨다는 보고는 받은 적 없는데 어떻게 되신…….”
그는 물었다 아차 싶었는지 급히 덧붙였다.
“아, 비밀 작전 중이시면 죄송합니다. 불문에 부치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 있는 던전입니까?”
“예?”
질문에 다른 뜻이 있는지 궁리하는 듯 고민하던 그는 곧 정중하게 답했다.
“탈키트나 던전입니다. 앵커리지에서 북쪽으로 좀 떨어진, 그러니까 알래스카입니다.”
그 말에 이번에는 유하남과 연구팀 반응이 방금 전의 쿠퍼 헌터처럼 바뀌었다.
마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은 듯이.
“알래스카…… 음, 하긴 그렇게 되는 건가.”
병준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곧 납득했다는 듯 끄덕였다.
‘아카식 레코드 내면 차원 안에선 마력 흐름이 응어리진 소용돌이가 보였지.’
흐릿하지만 그 너머로 언뜻 보인 실루엣 같은 것들.
그리고 유일하게 선명하게 비쳤던 이리나의 모습.
‘어쩌면 그게 더 확장되면 포탈이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리나가 아카식 레코드를 조율하는 능력으로 워프하는 것도 납득이 되었다.
문제는 이게 좋은 징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네 뭔가 짚이는 게 있나?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차원각성진으로 연결된 모양인데?”
조심스레 묻는 유하남의 목소리에서도 어떤 가능성을 떠올렸으나, 믿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맞는 듯싶습니다. 아카식 레코드 내면 차원을 지날 때 봤는데, 마력 흐름이 뭉친 곳에 덜 여문 포탈이 있더군요. 몬스터들은 연계 전승을 통해 변태하는 듯하고요”
병준은 간단히 축약해서 말해주자 유하남은 흠칫하며 깊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포탈이나 던전의 기원은 오랫동안 학계의 관심사였다.
그 비밀이 여기서 풀릴 수도 있다니.
“뭣보다 최근의 사태들은, 차원각성진이 공명하여 반응을 더 촉발하는 듯싶었습니다.”
“허, 그런! 차원각성진이 그렇게나 공명하고 있다는 말인가? 예상보다 더 빠르구먼.”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점 심각하게 굳어졌다.
“가장 최악은 보셨다시피 아카식 레코드 안에 흐르는 마력 흐름이 점점 확장돼서 밖으로 나오게 되면…….”
이어지는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뭐라 할지 예상했는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럼에도 병준은 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어디서든 연계 전승을 통해 강림한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죠.”
* * *
뉴욕 헌터가드에 긴급히 간부회의가 소집되었다.
“……차원각성진 추이 및 예측 상황은 보고한 바와 같습니다. 아카식 레코드 내면 차원의 데이터는 화면에 로딩한 정보를 참고해 주십시오.”
정장을 차려입은 유하남이 버튼을 누르자 간부들 자리마다 모니터에 데이터가 떴다.
“이게 유하남 장인이 목숨을 걸고 얻어 낸 그 정보란 말이지. 고생하셨습니다.”
“그보다 이거 심각하군요. 확실한 거죠?”
“여기 같이 참석한 정병준 헌터님이 자문하셨다지 않습니까. 대책이 시급합니다.”
간부들은 앞서 유하남이 한 보고와 데이터를 종합해 보고는 술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기에.
“마지막에 이 예측대로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연계 전승을 통해 강력한 몬스터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바였다.
아카식 레코드의 내면 차원에서야 더 말할 것 없겠지.
“차원각성진으로 모든 필드가 이어지는 거 말입니다.”
진짜로 충격을 준 것은 방금 물어본 내용이었다.
“한 달, 최대한 보수적으로 예측한 겁니다.”
유하남의 대답에 간부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이마를 짚는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차원각성진의 모든 필드가 연결되는 건 곧 이 세상 자체가 던전이 되는 것이니…….’
그녀 역시 이런 말을 하는 게 편치만은 않았는지 이를 꽉 깨물었다.
하기야 아무리 성격이 대찬 그녀라도 이런 보고를 하는 건 간단하지 않으리라.
그나마 그녀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던 건 회의실 한편에서 같이 있어 준 병준의 존재 덕분이었다.
“더구나 영역 확장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며 메인 스크린 쪽으로 돌아섰다.
메인 스크린에 표시된 세계 지도에는 곳곳 붉은 점에 수십 개의 선이 이어져 있었다.
“마력 스트림이라고 명명한 마력 흐름이 본질적인 위협 요소입니다. 모두 익히 아시는 연계 전승을 일으키는 근본이자 암흑마력의 온상이지요.”
달칵-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수십 개의 선은 이내 수백, 수천 개 넘게 늘어났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아예 지도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뒤덮어 버렸다.
달칵- 달칵!
다시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이번엔 스크린 한쪽 귀퉁이에 악마의 실루엣이 비쳤다.
아카식 레코드 내면에서 유하남과 연구팀을 공격했던 실루엣이었다.
“아까 보고했던 놈들이군요. 더미 몬스터던가요?”
“저게 연계 전승에 의해, 던전에서 몬스터로 리젠된다면서.”
간부들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예, 말했다시피 더미는 연계 전승으로 몬스터가 됩니다만, 문제는 지금처럼 마력 스트림이 강성해진다면…….”
“음, 저 더미란 놈들도 더욱 강하게 영향을 받겠군요.”
“설마 다수 연계 전승에 동시에 영향받을 수도 있습니까?”
“가능성…… 아주 높습니다.”
이어지는 대답에 회의실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잠시 후 여태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헌터가드의 부회장, 백강철이 입을 열었다.
“상황에 대한 보고는 이제 충분히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럼 대안에 대해서는 보고하실 내용이 없는지요?”
유하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이크를 입에 댔다.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대답이 나올지 그녀의 표정과 숨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설령 최선을 다해서 길을 찾겠다는 식으로 좋게 끝맺더라도 이 상황 자체가 간부들에게는 고역이겠지.
“첫 번째는 들어가는 겁니다.”
그때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병준이 나섰다.
“차원각성진과 그 필드의 확장은 마력 스트림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곳을 헤쳐 나오며 느낀 건데, 혼돈 같지만 묘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말도 뚜렷하게 해답을 내놓은 건 아니었다.
그러지만 병준이라는 존재의 전적과 지금 당당한 태도과 분위기를 바꾸었다.
“마력 스트림의 흐름을 돌리거나 파훼할 방법을 찾는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병준이 한마디, 한마디를 더 할수록 간부들의 눈빛에도 희망이 돌아왔다.
“그래, 그렇지. 현장에 나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바로 출발점이지.”
“실제로 아카도바에서 병준 헌터가 활약해 준 덕분에 차원각성진의 진행이 더뎌졌다면서? 이번에도 방법이 있을 거야.”
희망과 영감을 얻은 건 유하남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길이 있다면 데이터를 모아서 마력 스트림의 매핑을 만드는 것이 시작이겠죠.”
“결국 현장에 나설 헌터들이 핵심이군.”
“뭔가 지원을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주게나.”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이자, 병준은 입을 열고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필요한 건…….”
* * *
병준이 요구한 건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이렇게 바로 되다니.’
선별된 헌터들이 실시간으로 차원각성진과 던전 관련 데이터를 받아, 대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구축이었다.
여기에는 던전 특성과 헌터들 호흡 등을 고려한 파티 구성도 포함됐다.
그리고 다른 헌터들이 파티를 구성하는 사이, 병준은 먼저 출격하게 되었다.
혼자서도 여러 전투에 투입 가능한 전력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빨라서 나쁠 건 없지. 낭비할 시간도 없는 처지에.’
바로 그 결과.
“어서 오십쇼, 정병준 헌터님! 바로 들어가실 수 있도록 준비해 뒀습니다.”
현재 병준은 현재 북미 대륙에서 가장 차원각성진이 활성화된 윈저 던전에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웅-
확장하는 필드 경계를 막는 헌터들을 뒤로하고 다가가자.
콰아아아아-
과연 아니나 다를까 상공에 부유하는 차원각성진은 강력한 마력 파장을 뿜어낸다.
그것을 중심으로 뻗어 가는 수많은 마력 흐름이 보일 정도.
“기분 탓인가. 병준, 저거 저번에 봤던 것보다 밑으로 더 내려온 거 아냐?”
“아니,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
심지어 세레나의 말처럼 차원각성진이 지표로 더 가까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저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아카식 레코드 내면 차원은 더 깊을 거라는 뜻이다.
“세레나, 어떻게 할지 알지? 저번처럼.”
“응, 아카식 레코드 내면 차원으로 빨리 도착할 수 있게 간격 조작으로 원호할게.”
병준은 세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걸음을 옮겨 필드 경계를 넘어섰다.
파치칫- 파치치칫-
섬전으로 된 막을 넘어서자 필드가 펼쳐진다.
그곳엔 마치 서부 시대처럼 누런 황무지에 기차가 다니는 철로가 깔려 있었다.
다만 기차는 없고 여기저기 짐칸의 잔해가 널려 있고.
“키르르르르르륵!”
“키르르륵!”
타이탄 앤트라는 이름 붙은 거대한 개미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