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163화 (163/200)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63화>

“나미코 씨,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도와주신 덕분에요.”

문득 그녀는 병준의 옆에 있는 세레나를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 아이는 병준 씨 일행인가요?”

“일행이라기보다 정령이죠.”

정령이라는 말에 이어서 세레나가 척 인사를 했다.

“안녕! 세레나야.”

“응, 안녕. 난 나미코라고 해.”

그녀는 그런 세레나를 보고 귀엽다는 듯 살포시 웃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검사였는데 정령과 계약까지 하시다니, 역시 병준 씨는…….”

“아까부터 봤는데 여기저기 잡혀 있느라 이제야 만났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백 길드장님, 아니 여기서는 부총장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병준의 말에 백강철은 말도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어휴, 협회장님 등쌀 때문에 했지만 여간 힘든 자리가 아냐. 그보다 이쪽은 일본의 나미코 양이시군.”

“저번 한일 회합 이후로 처음이죠.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백강철 길드장님.”

그는 나미코와 인사하고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세레나에 시선이 닿았다.

“안녕, 난 세레나야. 병준의 정령이야.”

“정령? 호오, 어쩐지 강한 마력이 느껴지더라니.”

“말하자면 검의 정령입니다.”

원래는 제검의 서의 정령이지만 이를 설명해 주기엔 너무 복잡하니.

‘사실 검의 정령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병준이 간단히 더한 설명에 그는 과연 대단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더글라스 헌터를 만났다는 말은 들었지만, 거기서 뭔가 있었나 보구먼.”

“깨달음을 얻었죠. 이 자리에 더글라스 헌터님도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자리엔 모습을 잘 비치지 않는 사람이니 말이야. 대신 마이클과 벨 헌터가 참석한다고 들었네만…… 아, 저기 있군.”

하지만 이내 다시 세레나에게 시선을 향하며 놀랍다는 듯 연신 감탄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과연 자네는 대단해.”

“사실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밝힐 타이밍이 맞지 않았죠.”

그 말에도 백강철은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세레나를 조카처럼 흐뭇하게 보며 인사했다.

“안녕, 아저씨는 백강철이라 한단다. 만나서 반가워.”

“응, 나도!”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자, 계속 서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디 앉지.”

모인 김에 자연스레 일행이 되어 세팅된 테이블의 한자리에 앉았다.

“오우, 병준 여기 있었구나. 교류회 때 만났던 나미코 양도 있었잖아. 잘 지냈어?”

“백강철 부총장님이시네요. 저희도 이 자리에 같이 앉아도 괜찮겠죠?”

마침 마이클과 벨도 이쪽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합류하여 담소를 이어 갔다.

“역시 세레나도 있었구나. 잘 지냈……냐고 묻기에는 며칠밖에 안 지났네.”

“며칠밖에 안 지났어도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세레나, 어땠어? 잘 지냈어?”

이미 그날 대련하고 나오며 안면을 튼 마이클과 벨은 그녀를 바로 알아봤다.

“응, 너무 좋아. 그치만 역시 더글라스랑 정령들이랑 놀았던 게 제일 재밌었어. 햄버거도 맛있었는데…….”

“또 가고 싶다는 거지? 그래, 시간 날 때 또 가자.”

“역시 병준은 내 맘을 잘 안다니까! 다음에는 피자도 해 준다고 했었거든.”

병준의 말에 세레나는 한껏 웃으며 기뻐했다.

“스승님도 기뻐하시겠네. 안 그래도 물어보라고 하셔서 말이야.”

“진짜 잘됐어. 다음에 올 때 우리도 들어와서 된다고 허락해 주셨거든.”

벨과 마이클의 말이 끝나자, 슬쩍 눈치를 보던 나미코도 슬며시 끼어들며 물었다.

“아, 정신계 능력자로서 정령과 소통은 저도 관심이 많았는데 혹시 저도 참석해도 되는지 여쭤봐 주실 수 있을까요?”

“더글라스 그 친구가 나랑 개인적인 친분도 꽤 깊고 종종 대련도 하는데, 내가 연락해서 물어보지. 병준이 간다면 나도 슬쩍 끼고 싶어서 말이야, 하핫!”

“음, 더글라스 스승님의 성격에 허락하실지는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잠시 후…….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사이, 단상에 올라간 사회자가 마이크 대고 멘트를 쳤다.

드디어 발족식이 시작한다.

* * *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자유롭게 다니며 서로 정보를 나누거나 교류했다.

영국 왕세자와 왕립기사단 단장이 참석했으며.

“바우젠하우어와 나치들이 최근에는 동유럽의 흡혈귀 관련 아이템에 눈독을 들인다는 정보가 있던데…….”

바티칸에서도 산하 외교장관 대주교와 13기사단 부단장이.

“바이킹 쪽 유물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첩보가 들어옵니다. 협력하겠습니다.”

폐쇄적인 성향의 북유럽 국가들도 함께였다.

“한국의 정병준 헌터님이죠? 옥문도에서 있던 사건은 익히 들었습니다.”

“한국에는 박철호 헌터님과 백강철 헌터님만 알고 있었는데 당신 같은 헌터도 있었다니, 역시 세상은 넓군요.”

“언제 유럽에 오시거든 연락 주십쇼. 제 직통 번호입니다.”

특히 병준은 가장 인기 있는 셀럽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여러 헌터들이 병준에게 다가와서 교분을 나누었다.

“저분은?”

그러다 오가는 인파 사이 한 사람을 발견하자, 병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주변 헌터들과 자못 심각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분위기가 무거웠으나, 이내 병준을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병준, 자네였구먼. 다시 만나다니 너무 반가워.”

“토템은 잘 쓰고 있습니다. 로버트 헌터님을 봬서 저도 정말 기쁘군요.”

병준의 인사말에 S급 토템 술사인 로버트는 활짝 웃으며 병준과 진한 악수를 나누었다.

“발족식 때 안 보여서 못 오신 줄 알았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그는 다시 사뭇 무거워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연계 전승과 무관하지 않은 건이거든. 그걸 위해 설립한 헌터가드인데 발족식 때문에 밀어 놔서야 어불성설이겠지.”

로버트의 말을 듣고, 병준은 망령수 던전에서 유하남이 던진 언질이 떠올랐다.

‘연계 전승과 아카식 레코드 관한 사건이 미국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했지.’

그녀가 받은 데이터도 미국에서 보내 준 것이었다고 했었고.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이 일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병준은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카식 레코드와 관련된 아이템이 있다면 씨앗의 진행률을 높일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이 미국에 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뭣보다 로버트 헌터님이 이렇게 곤란한 표정 지을 정도면 작은 건은 아니겠군.’

병준은 자연스럽게 로버트가 언급한 화제로 대화를 이어서 물꼬를 텄다.

“관심이 생기는데 혹시 그 건에 관해서 물어봐도 실례가 되진 않겠죠?”

“실례라니 오히려 고맙군. 자네 텍사스의 놀이동산 던전이라고 들어 봤나?”

병준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안 그래도 필드형 던전 규모가 큰 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곳이라죠? 달리는 광대 던전이라고도 불린다 들었습니다.”

“맞아, 측정키로 반경 320킬로미터에 달하지. 팽창을 막기 위해 특히 주 정부가 엄격히 봉쇄하고 있는 던전인데…….”

그는 다시 생각해도 문제가 난감하다 싶은지 미간에 깊은 세로 주름을 새기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인근 마을과 도시의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거든. 한데 이 일이 그 던전과 관련되어 있어.”

“예?”

병준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던전은 기본적으로 안과 밖이 완전히 분리된 공간, 그렇기에 멋대로 던전에서 나와 활개 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데 아무리 인근이라지만, 던전 밖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의 원인이 던전이라 단정하다니.

이건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음, 하지만 로버트 헌터님이 그렇게 말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믿기 힘들겠지. 나도 처음에 그래서 더 정밀한 조사를 지시했는데…… 결과가 나왔어.”

병준이 답을 기다리는 듯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던전 몬스터들의 소행이지”

“그런?!”

“그래, 보통 일이 아니지.”

로버트는 씁쓸히 웃더니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필드가 유독 마력을 강하게 풍기는 날이 있어. 그런 날에 몬스터가 필드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을 납치……했다. 납치 상황을 기록한 영상과 그날 마력 조류를 대조해본 결과 수십 건의 납치 사건에서 같은 경향을 보이더군.”

“그건 사실상 던전 확장, 아니. 심하면 몬스터 임팩트의 전조 아닌지요?”

병준이 흠칫하며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더군다나 파견대의 보고에 따르면, 납치된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다 하네. 문제는 몬스터들이 납치한 이들을 풀어놓고 사냥을 하는 것 같다고 해.”

아직 살아있다는 점은 다행이겠지만 납치된 이들이 몬스터가 노리개가 되었다는 사실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병준이 물었다.

“잠시만요, 아까 그 던전 면적이 엄청 크다고 그러셨죠?”

“안 그래도 그게 걱정이야. 여기 온 이유도 그 때문이지. 레이드 멤버야 솔직히 팀을 짜기 어렵지 않거든.”

로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구조팀에 합류할 헌터일세. 그 면적을 커버하는 탐색력에 기동력과 무력까지 갖춘 헌터가 많진 않아.”

‘음, 확실히 세계적으로 봐도 그런 헌터가 많지는 않지.’

다만 병준이야말로 바로 그 헌터였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모인 이중에서도 톱이라 자신할 정도로.

‘필드가 넓지만, 스켈레톤을 소환해서 퍼트리고 그걸 전신 기지국처럼 삼아서 공간 장악의 감각을 극대화하면…….’

벌써부터 견적이 나온다.

“그래서 급히 추가로 멤버를 구하러 온 것이야.”

그 말을 꺼내는 로버트 옷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양복 밑에 갖춰 입은 장비가 보였다.

뭣보다 그의 표정에서 절박한 기색이 느껴졌다.

병준은 이내 입을 열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아이템에 관한 건은 저도 관심 많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기꺼이 합류하겠습니다.”

“오, 고맙네. 계약 조건은 자네의 몸값을 고려해서 제대로 쳐 주겠네. 따로 넣고 싶은 조건이 있으면 말해 주게.”

“특약이라면 별 건 없고 이 건의 보스를 잡고 아이템이 나온다면 저도 견식 하고 싶군요.”

자신은 잠깐 접촉하여 푸른 마력의 씨앗에 진행률을 높이면 되니까.

병준의 답에 감동했는지 로버트는 굳은 표정에 두 손으로는 병준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고맙네.”

* * *

카일은 혹이 놓칠세라 동생 사라의 손을 꽉 붙잡고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주변은 언뜻 보기엔 그저 평범한 밤의 놀이동산이었으나 실제로는 아니었다.

“끼히히히히힛! 끼히힛!”

기괴한 웃음소리를 뱉어 내고 시뻘건 눈알을 굴리는, 키가 3미터에 이르는 광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

“끄아아아아악!”

자신들처럼 영문도 모르게 이곳에 끌려온 누군가가 붙잡혔는지 또다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오빠, 너무 무서워. 우리도 이대로 죽는 걸까. 흐흐흑!”

사라가 울음을 터트리자 카일은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냐, 조금만 버텨. 조금만 버티면 분명히 불스 길드의 헌터님들이 구하러 올 거야.”

“흐흑, 불스 길드 헌터님들이?”

불스 길드라는 이름을 듣자 그제야 사라는 좀 진정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단 마을뿐 아니라 이 일대에서 불스 길드의 존재는 그야말로 정신적인 지주였기에.

카일 역시 무서웠지만, 분명히 구하러 와 주리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래, 반드시…….”

“끼히히히히히힛!”

하지만 카일의 격려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근처에서 광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숨어야 해. 이쪽으로…… 아!”

깜짝 놀라며 얼른 숨으려는 카일은 여동생의 손을 잡아끌다가 멈칫했다.

“오…… 빠?”

“이제 살았어. 봐봐, 헌터님이 오셨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카일이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동생에게 말했다.

사라 역시 헌터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훔쳐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헌터는 늠름한 모습으로 다가오나 싶었으나 그 순간.

촤아악-

광대 몬스터들이 달려들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툭- 데구루루르!

그리고 잘린 헌터의 목이 둘의 앞으로 굴러오자 둘은 망연자실해졌다.

“아, 아아…… 말도 안 돼.”

“끼히히힛, 끼히히힛!”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즐거운 듯 더 날카로운 웃음을 터트리며 광대가 다가왔다.

그가 양손에 쥔 곡도가 시퍼런 날을 빛내며 번들거린다.

툭-

그러다 언제부터 뒤에 벽이 있었는지?

카일과 사라는 막다른 길에 다다라 더 이상 도망칠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끼히히히히히힛!”

마지막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광대가 덮쳐왔다.

카일은 여동생을 안으며 등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챙그랑!

그때 뒤를 막은 벽이 돌연 유리창처럼 깨지는가 싶더니 누가 튀어나왔다.

“헌……터님?!”

그리고 그가 카일과 사라를 지나쳐 광대의 앞을 가로막고 서자, 어느새 주변 모든 것이 유리처럼 깨져 흩어졌다.

“정신 차려, 뭘 봤건 마음 속 공포를 반영한 가짜야!”

그렇게 소리치는 헌터의 등에 불수 길드의 소 뿔을 형상화한 엠블럼이 있었다.

“본대가 곧 구하러 올 거야. 그때까지 피해 있거라. 어서!”

“네, 네!”

카일과 사라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달아났다.

“끼히히히히힛!”

광대 몬스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쭉 찢어진 입으로 하이톤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로 도망치든 찾아내서 사냥하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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