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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144화 (144/200)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44화>

각 원탁 자리마다 홀로그램으로 투영된 인사들의 면면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미국, 일본, 영국 등 헌터 강국으로 평가받는 나라의 고위 관료들이나, 네임드로 통하는 헌터들이었다.

“발언하겠습니다.”

특히 사제복을 입은 백발 남자의 얼굴은 이 가운데 모르는 이가 없었다.

“바티칸 시국의 알베르토 마코입니다.”

예를 갖춰 알베르토 마코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바로 바티칸 시국의 대표였기에.

“음, 사안이 사안인지라 역시 거물이 참석했군.”

한국어로 통역된 목소리를 들으며 회의실 한쪽에 대기하던 박철호는 옆에 있는 병준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축성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바티칸에서도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진면목은 다른 지위에 있지.”

“다른 지위라면?”

병준이 사뭇 쳐다보자 그는 말을 이었다.

“바티칸 시국 최후의 검이라 불리는 13기사단 부단장이기도 하거든. 나조차 승리를 확실히 장담 못 하는 실력자야.”

박철호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확실히 그만큼 대단한 인사일 터였다.

“아직 대외적으로 공개하진 않았지만, 바티칸에서도 동 시간대에 한국에서와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발언하는 내용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의 무리가 성궤를 탈취하려 시도했고, 어떻게든 저지했습니다만 놈들에 의해 한차례 아카식 레코드가 열렸습니다.”

“음, 심상찮은 데이터가 티레니아해에서도 관측되었기에 설마 했거늘…….”

“당시 크리스 단장님이 큰 대가를 치르고서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같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그 누구도 알베트로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맞는 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각국 협회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합니다.”

성조기 약장을 단 애꾸눈의 라틴계 미국 대표가 발언권을 얻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취지에서, 지금까지 바티칸과 우리 미국이 협력해 습득한 정보를 여기서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삐비빅-

그가 콘솔을 조작하자, 이내 원탁 중앙에 자료가 전송되더니 커다란 홀로그램으로 떴다.

“최근 장미십자단을 내세워 세력을 불리는 조직의 뒷배를 파악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그 주요 인물들이지요.”

이윽고 홀로그램에 다섯 사람의 프로필이 확대되었다.

“…….”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다섯 사람 가운데 병준은 이미 셋이나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단지 봤을 뿐일까.

“이 중 잭 클리어리는 이번 사태에서 사망했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얼굴에 붉게 엑스 표가 그어진 잭 클리어리와는 생사를 걸고 싸웠다. 그리고 그 옆에 뜬 사진의 남궁민수와도 마지막 순간에 한 수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 둘은 장미십자단 산하 상징연구회란 비공식 단체 소속으로…….”

‘어라, 저 여자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의외의 얼굴까지.

다름 아닌, 공동묘지에서 우연히 만나 장미십자단의 브로치를 흘리고 간 여자였기에.

“예지와 현실 조작 계열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렸으며, 이번에 균열을 여는 행사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는 요주의 인물입니다.”

더구나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발표할 정도면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흉수라는 뜻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그 방식으로는 균열을 낳아서 아카식 레코드를 강림하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바티칸과 미국의 발언이 끝나고 회담의 다음 순서는, 또 다른 사건의 당국인 한국의 브리핑이었다.

박철호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병준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한국의 S급 헌터인 정병준입니다. 이번 사태 아카식 레코드 개방을 직접 막았으며, 몇 가지 정보를 브리핑하겠습니다.”

병준은 헌터 협회와 의논하여 미리 준비한 데이터를 각국 대표에게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모두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증폭되는 아카식 레코드의 마력을 버티지 못하면 되레 역류해서 몸이 터져 버리다니 그런…….”

“이건 바티칸 때보다 심각하군요. 이런 일이 도시에서 벌어졌다간 끔찍합니다.”

“음, 핫라인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일이 꼭 필요할 듯싶군요.”

그렇게 조직의 신설이나 그 산하의 무력 집단이나 핫라인 등에 대해 틀을 잡고 다음을 기약하며 회담은 끝났다.

그리고 병준과 박철호가 대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뜻밖에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어, 박 국장! 오랜만이구먼.”

한 노파가 질끈 묶어 넘긴 머리칼 위로 선글라스를 얹으며 스스럼없이 인사한다.

그에 더해 폭주 라이더 같은 가죽 바지와 재킷 차림도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오, 답신이 없어서 못 오실 줄 알았는데 와 주셨군요.”

안면이 있는지 박철호도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았다.

“후후, 뵙게 되어 반갑군요, 유하남 장인님.”

“와야지. 내가 설계한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직접 현장을 보느라 늦었어. 이해해 줘.”

그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옮겼다.

“흠, 그쪽이 이번 사건을 막은 정병준 헌터인가? 난 유하남이라고 하네.”

그녀가 손을 내밀자 병준도 손을 맞받으며 답했다.

“예, 정병준입니다.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군요.”

“그래? 나를 만나고 싶었다고?”

전자 담배를 처음 얻었을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었는데, 오늘에서야 만나게 됐다니.

그나저나 의외였던 사실은.

‘박재룡 장인님이 편하게 노인네 어쩌고하기에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여자였다니, 더구나 이런 파격적인 이미지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지만. 병준은 전자 담배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 줬다.

“혹시 이게 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엇, 그건?!”

그녀는 상아색 전자 담배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허어, 이거 참. 허!”

아니, 단순히 알아본 수준을 넘어 몹시 반가워하며 연신 감탄사를 토했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다니 공교롭군.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자네가 가지고 있었다니.”

“후후, 이거야 대체 그 전자 담배가 뭐기에 그러십니까?”

결국 박철호가 호기심을 못 견디고 먼저 물었다.

“이건 그 아이템에서 떨어진 파편으로 만든 거야. 마력 억제 술식 핵으로 제련하다 떨어진 조각을 이용했지.”

“마력 억제 술식…… 그 아이템이라 하신 게 설마?”

“그래, 옥문도에 있던 에픽급 아이템인 만파식적 말이야. 그 잔흔은 못 찾았지만, 술식을 파훼했다면 뻔하지. 그걸 부수지 않고는 불가능하니까.”

그 모습에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웅얼거렸다.

“하필 그걸 박살 내 버린 이가 가지고 있었다니 묘하구먼.”

“그것도 그렇지만 만파식적의 조각으로 전자 담배를 만들다니, 위원회에서 알았다면 난리 났을 겁니다.”

박철호가 반쯤 농담 반쯤 추궁으로 묻자, 유하남은 쾌활하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야…… 응?!”

그러다 그녀는 흠칫하더니 전자 담배를 다시 보며 감탄했다.

“허어, 놀랍군. 내가 만들었을 때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는데 말이야.”

“예? 그게 무슨 뜻인지?”

그 말에 오히려 병준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니? 구체적인 효과는 몰랐어도 소체로 마검을 투영할 때 분명히 마력 작용이 있었거늘.

“말 그대로야. 애초에 이걸 만든 것도, 떨어져 나온 파편은 아무 효과가 없었기에 장난삼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전자 담배를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본래 만파식적에 비하면 미약하고 불안정해도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어.”

만파식적과 같은 효과라면 증폭일 터였다.

‘미숙할 때 마검을 투영할 수 있던 것도 그래서인 모양이네.’

“좋아, 이것도 인연이겠지!”

그때 문득 그녀가 무언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말했다.

“자네만 괜찮다면 이걸 아이템답게 제대로 업그레이드해 주고 싶은데?”

“후후, 유하남 장인님이 직접 손을 봐주시겠다니 이거 드문 일이군요.”

박철호가 부럽다는 듯 툭 병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그래봐야 조각이니 당연히 본래 만파식적에는 훨씬 못 미치겠지만…….”

내친김에 어떻게 개량할지 머릿속에 영감이 막 떠오르는지 그녀는 호방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내 보장하지. 증폭 아이템으로는 수준급이 될 거야. 그냥 지니고만 있어도 말이지.”

이젠 그도 성장해서 전자 담배 없이도 마검을 투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강력한 마검은 매개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이 높으며, 지니고만 있어도 증폭 효과를 받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으리라.

“비용은 당연히 무료로 해 주겠네. 다만 재료는 자네가 좀 준비해 줘야겠어.”

“감사드립니다. 재료 정도야 문제없죠.”

“감사하기는. 참사로 번질 수 있던 사건을 막았잖나. 자네는 그만한 자격 있어.”

그녀는 병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더구나 향후 일을 생각하면 말이야. 내 능력이 자네에게 도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장인으로서는 뿌듯한 일이지.”

그러고는 손에 든 것을 허리띠 가죽 주머니에 꽂고 돌아서며 말했다.

“아무튼 필요한 재료는 공방에서 제대로 견적 내서 조만간 다시 연락을 주겠네.”

* * *

지이잉- 지잉- 기이잉-

여러 개의 기계 팔에서 쏜 레이저가 중앙에 놓인 전자 담배에 닿았다.

그러더니 마력에 의한 염동 장치가 작동하며 섬세하게 분해한다.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군. 끊어졌던 마력회로가 다시 이어져서 작동하다니.”

작업용 고글을 쓴 유하남은 전자 담배의 핵심 재료인 만파식적의 옥색 조각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토했다.

아주 진귀한 예술품을 감상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더 특이하네. 하, 최신 기계라더니 스캔이 뭐 이리 느려. 궁금해 죽겠구먼.”

작업을 도와줄 스캔 모듈의 로딩을 보면서 그녀는 구시렁거렸다.

그만큼 이 일에 몰입했다는 뜻이리라.

“아무튼 핵심 마력회로는 살아났으니 증폭 효과를 조율할 재료들로 다시…….”

머릿속에 그려 낸 설계를 주절거리며 스캔 완료를 기다리는 사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에이,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어떤 놈이 전화하고 지랄…… 오! 재룡이잖아.”

그녀는 욕을 하다 말고 반갑게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대뜸 물었다.

“재료는 다 구한 거야?”

-아니, 전화 받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냐?

“아, 재료 구했냐고?”

그녀와 투닥거리며 대화하는 이는 바로 장인협회 소속 마에스트로인 박재룡. 예전에 병준이 장인협회의 의뢰를 할 때 함께 간 바로 그 장인이었다.

-쳇, 다른 놈들 부탁이라면 절대로 안 들어줬을 거다. 내가 방방곡곡 다 수소문해서 겨우 구했다고.

“오, 구했다는 거네? 그러면 진작 말했어야지.”

-누가 당신 좋아서 열심히 구한 줄 알아? 병준 헌터가 쓸 거라서 구했어.

발끈거리며 쏘아대는 말에 유하남은 피식 웃더니 지지 않고 받았다.

“나도 어지간한 일이었으면 너한테 부탁도 안 했어.”

-하여간 젊었을 적부터 한 마디를 안 지는군. 됐고 물건은 당신 공방으로 보낼게.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라고.

“걱정일랑 말어. 그렇게 땍땍거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뭐 땍…….

삐릭!

김재룡이 한층 더 발끈하는 순간 스캔 완료 신호가 떴고. 유하남은 가차 없이 바로 통화를 종료했다.

“타이밍 최고네. 재료도 다 수급했고, 이제 회로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설계를 해 볼까…… 응?”

그러곤 바로 모니터 앞에서 설계도처럼 펼쳐진 마력회로를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거? 허, 이게 이런 식으로 됐다고? 이건 그냥 기능 복구 수준이 아니라 한층…….”

그녀는 모니터 여기저기 표시하더니.

“그렇군, 이 흔적들은 순간적으로 강한 출력의 마력회로를 덮어씌운 것이야.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된 거였어.”

새로 선을 잇거나 수치를 계산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끊긴 마력회로가 이어졌을 뿐 아니라 덮어씌운 마력회로에 의해 더 확장된 거고.”

스슥- 스스슥- 스스슥!

그녀는 이제는 혼잣말도 없이 마치 화가처럼 모니터에 뭔가 마구 적고 표시하고 선을 그렸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중앙의 마력 핵으로 통하는 몇 개 선을 완성하자, 뒤로 물러나 전체적인 설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했지만 환상적이군! 증폭뿐만 아니라 그 기능까지 추가해 줄 수 있겠어.”

다만 그림 군데군데 그녀가 붉은 선으로 표시한 곳이 더러 있었다.

“문제는 동기화가 필요한 이 재료들인데 전속 아이템이 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력회로를 몇 번 더 개량하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이 재료는 그 녀석이 직접 구해줘야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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