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135화 (135/200)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35화>

황유신은 한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인파가 움직이는 가운데 한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에서 그는 배전실로 가는 듯싶더니, 다시금 그 옆에 있는 통로로 슬쩍 빠졌다.

찌지직- 찌직-

오래된 전조등이 껌뻑거리는 어두컴컴한 길.

그렇게 얼마쯤 가더니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달칵-

이 건물 설계에 빠삭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위치에 있는 비상문이 열렸고, 그는 그 통로로 빠져나갔다.

이걸 한 번도 아니고 서너 차례나 복잡하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터벅- 터벅-

그렇게 한 빌딩 비상계단에 들어온 황유신은 그곳을 올라갔다.

터벅- 터벅-

한 템포 늦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약간 뒤처진 인영이 하나 뒤따르고 있었다.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모습.

황유신은 그가 제대로 따라오는지 확인하고는 문 앞에 섰다.

삐리릭!

보안 카드를 가져다 대자 잠금장치가 풀리고. 그 너머로는 앞서 지나온 통로보다 더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비밀장소.

그곳은 마치 안가처럼 소파 등의 그럴듯하게 쉴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오오, 그사이에 우리 길드의 임시 룸도 제법 그럴듯하게 변했네요.”

황유신이 기척 내자, 곧이어 소파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그를 맞아 주었다.

“어, 왔냐.”

두 사람은 바로 황유길과 병준이었다.

미리 주문한 짜장면을 먹고 있는 둘을 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

“에이, 뭐야. 나 없이 둘이서 먼저 먹다니 서운하네.”

그가 짐짓 너스레 떨며 앉자 황유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운할 게 있냐? 넌 정식 멤버도 아니잖냐.”

“브로커는 브로커로 있을 때 최고의 실력을 내는 법이라고. 전속이 되면 고객 중에 선을 끊는 사람도 생기거든.”

황유신도 젓가락을 뜯어서 탕수육 한 점을 집어먹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길드에 최고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내 깊은 뜻을 너무 몰라 주네. 안 그래요, 길드장님?”

그가 짐짓 물으며 쳐다보자 병준은 옅은 미소를 띠며 피식 웃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도 나름대로 일리 있었다.

“공식적으로 길드에 얽매지 않는 선도 필요하죠.”

“거봐, 길드장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잖아.”

병준은 그렇게 말하며 짐짓 입구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황유신을 따라온 실루엣이 경계하며 들어오지 않고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 이런 비밀장소가 있는 사무실을 소개해 준 것도, 지금 같은 일를 상정해 둔 거겠죠?”

“네, 아무래도 의뢰주가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만큼, 비밀장소에서 기다리게 하는 수고를 끼치게 했네요.”

입구에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던 의뢰주. 즉 황유신이 물어 온 용병 일이라는 뜻이었다.

‘S급이 되고 나서 받는 첫 의뢰인 셈인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조심스러운 것도 이해는 가지만, 이젠 슬슬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병준이 지그시 쳐다보자 곧 그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사무실의 조명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며 의뢰주가 목소리를 냈다.

“정말 병준 헌터님이시군요. 후우…… 다행입니다.”

예전의 살집 두툼하던 때에 비해 홀쭉해졌지만, 분명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어, 마덕배 장인님?!”

동탄의 금지구역에서 병준이 구해 준 바가 있던 장인협회의 마덕배였다.

그는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고생을 많이 한 듯 얼굴이 퀭했다.

특히 그 표정은 한눈에 봐도 수심이 가득했다.

“예전에 비해 너무 마르셨습니다. 그런 모습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병준이 묻자 그는 허겁지겁 바로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 지금 동탄 금지구역에 용병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실상 빌런이나 다름없는 녀석들도 많고요.”

“예?”

이건 듣자마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금지구역에 용병들이 몰리고 있다니?

하물며 용병 중에서도 질이 나쁜 이들인 듯싶었다.

허나 동탄 금지구역은 한국 던전연구소에서 직접 관리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거늘. 그런 곳에 용병과 빌런이 몰려들고 있다면 이건 간단히 치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음, 비슷한 것을 들은 적은 있어.”

역시 소식통답게 황유길은 이미 그에 관한 정보를 들은 바 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이번에 금지구역에서 A급 수준의 헌터나 용병들을 모아, 몬스터를 청소한다고 말이야.”

그 말에 마덕배는 절대 아니라는 듯 바로 부정했다.

“위장된 겁니다. 연구소에서 그런 식으로 정보를 흘려서 조작했지요.”

“예? 그러면 더 이상하군요. 연구소장이 어째서 그런?”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세차게 흩트리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믿어 주십쇼. 모두 사실입니다.”

‘일단 황 사무장님도 들은 정보라면 헌터나 용병들이 모이는 건 사실일 테고…… 문제는 내용인데.’

초조하게 물들여진 그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연구소장은 헌터협회뿐 아니라 정부 부처에까지 선이 닿아 공식 루트로는 알릴 수도 없습니다. 정보통제가 철저히 되고 있는 상황이지요.”

게다가 그는 그 금지구역을 직접 탐사했던 이, 자연히 더 깊게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런 초췌한 모습이 되어서는, 비밀스러운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여기로 왔다는 건. 필시 그만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뜻일 터였다.

“심지어 헌터협회 사무장을 통해서 연락했더니, 오히려 감금당할 뻔까지 했죠. 정말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전 지금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역시나…… 그렇다면 그가 알고 있는 내용은 그만큼 심각한 것일 터다.

“병준 헌터님, 직접 겪어 본 당신만 믿을 수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병준은 문득 마덕배를 구할 당시의 정황이 뇌리에 스쳤다.

‘확실히 그때 의문스러운 부분도 있었고, 정황이 석연치 않기는 했는데…….’

그래서 확인하듯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때 거기서 쓰러졌던 일도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 물음에 마덕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당시는 아직 추측에 불과해서 말하기 조심스러웠지만, 이제 확실합니다.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저를 잡아 구금했으니까요.”

“그렇게까지…… 대체 무슨 일입니까?”

드디어 본론으로 넘어가자, 마덕배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힘을 주며 운을 띄었다.

“혹시 연계 전승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연계 전승?! 하기야 마덕배 장인 정도 되면 충분히 알 법한 내용이긴 하지만…….’

기실 학계에도 이미 있는 용어였고, 일전 백강철도 향후에는 연계 전승이야말로 시대를 주도하리라 했었다.

그렇지만 이 타이밍에 듣게 되다니.

“연계 전승에 대해서는 이미 아시는 눈치군요.”

“예, 그 잠재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갑자기 연계 전승은 왜?”

마덕배가 말을 이었다.

“필드형 던전을 인위적으로 구축하고, 특정한 이벤트를 일으킴으로써 연계 전승을 발동한다. 그렇게 해서 그간 못 써먹었던 불완전한 에픽급 아이템을 완성시킨다는 것이 그 프로젝트의 골자였습니다.”

“음? 이야기만 듣고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굉장한 거 아냐?”

황유길이 말마따나 혁신적인 기술일 수도 있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능력껏 협력했던 것인데…….”

마덕배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침중한 표정으로 한숨을 깊이 내쉬더니, 스마트폰에 뭔가 열어 슥 내밀었다.

“지금 금지구역에서 연계 전승으로 완성시키려는 에픽급 아이템이 바로 이겁니다.”

병준의 눈동자에 비친 액정 속의 물건은 정밀하게 조각된 백색의 정육면체였다.

황유길이 옆에서 보곤 흠칫 놀라며 중얼거렸다.

“옥…… 새?!”

“예, 흔히 전국옥새라고 불리는 물건이죠. 아마 제대로 그 효과가 발동하면…….”

꿀꺽-

황유길이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덕배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어떤 방향으로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추측으로는 절대명령이라거나 광범위 결계, 혹은 소환 스킬…… 어쩌면 그 전부 붙을 수도 있고요.”

“미친 성능이긴 한데 옥새 정도나 되면 납득이 가는군.”

“하지만 단순히 성능이라면 비슷한 아이템은 이미 몇 개 있지 않습니까? 큰 문제가 될 거 같진 않은데요.”

그 말에 마덕배는 수긍하면서도 씁쓸히 웃었다.

“문제는 아이템의 옵션은 전승에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특히 옥새는 아시다시피 유난히 피 냄새가 진한 물품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람의 탐욕을 부추기는 전승들을 보면…….”

“어쩌면 소지한 자가 그런 심리에 잠식되게 만드는 부작용이 붙을 수도 있겠군요.”

“어우, 에픽급 아이템을 가진 헌터가 싸이코패스가 된다면 무서운데.”

“이미 은근히 그런 조짐이 나고 있지요. 심지어…….”

황유길이 흠칫 몸을 떨었고 황유신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덕배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각성을 위해 진행하려는 연계 전승 이벤트가 진짜 문제입니다.”

그 말에 모두는 그 연계 전승 이벤트가 뭐냐 묻듯 쳐다봤다.

“……무차별 살육전입니다.”

“살육전이요?”

“예, 그들은 연구 결과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조직이 된 지 오랩니다. 기술에 미친 광신도나 다름없습니다.”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자, 그도 이런 말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듯 잠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서 설마 용병들을 일부러 모았다는 겁니까? 한국 던전연구소에서 직접요?”

“일부러 한정적인 정보를 풀어, 금지구역 중앙부의 던전에 끌어들인 뒤 일종의 고독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장인협회 중에서도 워낙 폐쇄적인 조직이라 알려지는 내용이 적긴 했지만, 설마 그런 일까지 벌이고 있을 줄이야!

실질 인체실험과 다를 바 없는 행위기에 이것만으로도 이미 세계 헌터법 조항의 다수를 어긴 상황이었다.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다.

역시 그들은 이미 아티팩트에 홀렸다고 봐야 함이 옳을지도…….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네요.”

병준의 물음에 마덕배는 간절해진 눈으로 덧붙였다.

“어떤 식이 되었든 저는 그 일에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된 이상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빛은 진실했다.

‘……옥새라.’

그리고 병준도 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소장은 목표는 오직 옥새의 완성이고, 이후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흉한 일로 완성된 아이템이 빌런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대체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될지…….’

그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할 일이었다.

“지금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마덕배가 간절히 부탁하자 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관련 정보를 주세요.”

* * *

“고대 동양에서 옥새는 피비린내 잔뜩 밴 물건이었다지?”

태블릿PC 화면에 뜬 옥새의 사진을 보는 여자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렇기에 옥새를 탐하는 자들은 모두 죽이고 최후의 생존자가 얻어야 연계 전승이 극대화된다는 거죠.”

“후후후, 마음에 드네.”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덧붙였다.

“슬슬 떡밥을 문 피라미들이 몰려들 시간이군요.”

“네, 마침 한 무리 보이네.”

여자가 말하며 난간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는 몇몇 헌터가 던전 탐색에 쓰는 GPS 기기 좌표를 보며 이동하고 있었다.

파치칭-

여인은 손바닥 위로 얼음 구체를 소환하여 빙글빙글 굴리며 물었다.

“장소는 전에 말한 거기겠고, 숫자는 몇 명쯤?”

“넉넉하게 50명 정도에게 정보를 뿌렸습니다. 유난히 탐욕스러운 녀석들로 말입니다.”

“너무 급 낮은 애들로 모은 것은 아니겠지?”

“모두 A급 이상입니다.”

정보는 알음알음 퍼지기 마련.

즉 A급 이상의 용병과 빌런이 최소 수십 명은 모인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만족스럽다는 듯 여인이 웃었다.

“역시 연구소장쯤 올라간 사람이라 그런지, 일 처리가 확실하네. 유세찬 소장님 당신은 믿을 수 있어서 좋아.”

“그쪽에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기꺼이 그 정도는 해 줘야죠.”

유세찬 소장은 안경을 슥 올리더니, 일순간 학자 같은 인상 뒤에 숨겨 왔던 광기가 눈빛으로 드러났다.

“뭣보다 옥새를 완성하기 위해서니까요. 그걸 위해선 파리 같은 놈들 목숨 따윈 값지게 쓰이는 거죠.”

“후후, 유세찬 소장은 그렇게 말할 때 눈빛 매력적이라니깐.”

여자가 사악한 미소를 띠며 돌아서는 순간.

파아앙!

손바닥 위에서 돌아다니던 얼음 구체는 어느새 발사되어 저기 있던 헌터들을 피떡으로 만들며 살해했다.

“우리 소장님이 이렇게 공을 들여서 기껏 완성한 옥새가 혹시라도 벌레 같은 놈들 손에 들어가면 곤란하겠지?”

“물론이죠, 녀석들은 연계 전승을 위한 소모품일 따름. 바로 그걸 위해서 앨리스 아가씨께서 와 주신 거고요.”

“그래, 저마다 임무가 있지.”

파치칭- 콰차차차착!

대화하는 사이 얼음 구체가 날아가 남은 헌터들도 모조리 살해했다.

“뭐 그렇게나 모인다면 몇 마리 정도는 가기 전에 죽여도 상관없겠지?”

그러고는 짐짓 어깨를 으쓱거리며 돌아서는 그녀는 바로 엘리스 클리어리였다.

“예, 다만 지금부터는 부디 손속을 아껴 주시기를.”

그런 그녀를 보며 유세찬은 부추기듯 말을 덧붙였다.

“기왕 옥새의 연계 전승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타이밍에 모든 걸 집중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삐빅- 삐빅!

“아, 이런! 시간이 됐군요.”

그가 말하던 중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이 이벤트를 위해, 몇 군데 손볼 곳이 남았거든요.”

“호오, 시작하기 직전에 한껏 지맥을 활성화겠다?”

“예, 말했잖습니까. ‘극대화’하겠다고요.”

그 말에 그녀가 그럼 가 보라는 듯 턱짓하자, 그 역시 웃으며 답했다.

“가 보겠습니다. 그럼 앨리스 님은 예정된 시간에 좌표로 가서 즐기시면 됩니다. 저도 시간에 맞춰 가겠습니다.”

“그래, 곧 다시 보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