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19화>
바로 직전에 봤거늘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에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 건 바로 마검전 5층에서 봤던 용암의 강이었다.
“용암이라니.”
처음 봤을 때부터 영감을 자극했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물론, 막상 매개될 용암이 눈앞에 없기에 오로지 기억과 감각에만 의지해야 하나…… 비슷한 속성으로 이를 보충한다면.
“일단 해 보는 수밖에 없네. 세레나, 근처에서 장작 좀 모아 줘.”
“응!”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군요. 저도 거들겠습니다.”
병준은 고맙다는 뜻으로 끄덕이고는 한 손에는 화령용아검을 투영했다.
이내 세레나와 아크리스가 모아 온 장작에 병준은 화령용아검으로 불을 붙였다.
후우우욱- 화르르르르륵-
장작은 강한 마력의 출력에 이내 거세게 타올랐다.
병준은 그 불을 보더니, 다음 순간 주저 없이 손을 그대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오라를 끌어올려 손에 감싸, 화기로부터 보호하면서 마력의 흐름을 지각했다.
화염은 자유롭게 발산했다.
파치칫!
그것을 뒤따라 다섯 개 반지에서는 마력사가 풀려났다가 이내 흩어진다.
앞선 시도에서는 이 형태를 계속 유지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흐르는 용암은 그렇게 억지로 형태를 유지하려고 할 필요가 없지.”
그렇기에 이번에는 그대로 두었다.
“자연스럽게 두고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자.”
마치 자기 암시라도 하듯 중얼거리며 병준은 실이라는 형태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흐름에만 집중했다.
열기를 느끼며 용암의 모습을 심상 가득히 그려 내며, 마력을 끊임없이 흘려 넣었다.
스스스스스스스-
역시나 마력사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내 흩어지며 가닥들이 날렸다.
흩어지는 불씨와 마력 흐름.
이대로 실패인가 싶었으나, 병준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더 많은 마력사의 가닥이 쏟아지며 끊어지고 흩날린다.
피스스슷- 파츠츳!
낱알이 몇 개의 덩어리로, 덩어리는 점차 기다랗게 늘어지더니 연결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자 이번엔 저들끼리 반응하여 진한 점성으로 서로 엉겨 붙었다.
그렇게 뭉치고 뭉쳐져 하나의 선으로 각각 이어지면서 이는 곧 다섯 가닥이 되었다.
이글거리는 마력 흐름이 그려 내는 경로를 따라 마력사는 더 선명해졌다.
“아!”
순간 연상한 이미지 그대로 마력사의 감각을 얻은 병준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거다, 느낌 왔어!”
그렇게 확신을 얻은 순간.
흐릿하던 마력사에 색이 덧칠해지기 시작했다.
방사형으로 퍼지며 진하게 빛나는 은백색.
파츠츠츳- 파치치치치칫!
마치 거미줄 그려 내는 듯한 형세로 마력사가 빚어진다.
츠스스스스스스-
“성공했어!”
쾌재를 부르며 병준은 본능적으로 마력사를 조종했다.
“신기하네. 마치 손가락이 더 길어진 것처럼 내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여.”
동시에 마력사가 닿는 주변 마력 동향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공간 장악처럼 일반적인 감각은 아니었다.
“안 좋은 기운이라 하는 게 맞으려나. 그런 것이 유독 잘 느껴지는데…… 아!”
그러다 이내 병준은 나직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랬나. 그 방식이면 치유도 가능하겠어.’
뭔가를 이해했는지 병준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마침 근처에 피어난 꽃으로 다가갔다.
마침 잎에 얼룩이 생겨 병든 참이었다.
츠스스스-
손을 가져다 댐과 동시에, 마력사가 꽃을 감싸더니 스몄다.
‘역시 안 좋은 마력이 꽃을 해하고 있어.’
병준은 마력사를 매개 삼아, 자신의 마력을 주입했다. 그렇게 꽃을 병들게 한 안 좋은 마력을 몰아내려는 것이었는데.
파칫- 파칫!
“음?!”
자신이 흘려보낸 마력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하기도 전, 마력사가 먼저 반응했다.
은백색이 점차 불그스름하게 물들더니 불이나 용암처럼 달아오른다.
그것은 꽃에 스민 마력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맥처럼 두근댄다. 그 모습은 마치 혈관이 붉게 물드는 것 같았다.
후우욱- 후욱-
그리곤 꽃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싱싱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게 마력사의 능력인가?’
“허! 마력사를 뽑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그 정도로 응용을 하다니……”
아크리스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였다.
“정말 대단하군요. 어쩌면 제 조언이 따로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뇨, 덕분입니다.”
병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얻은 마검 가운데,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섬세한 감각을 요하는 터였다.
그가 알려 준 노하우가 없었다면 얼마나 걸렸을지…….
후우우욱-
마력사가 사그라지더니 불씨가 서서히 꺼졌다.
“그럼 바로 신조를 치료해 보죠. 지금도 녀석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테니까요.”
“예! 저도 돕겠습니다.”
아크리스는 바로 옆으로 따라오며 보조해 주었다.
그우우웅-
“젠다, 상처를 좀 보여 줄래.”
그가 속삭이자 신수는 몸을 일으키더니 커다란 날개를 펼쳐 옆구리를 내보였다.
그와 함께 가려졌던 상처가 드러났다. 시커멓게 썩어 가고 있는 그 상처는 한눈에 봐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환부 자체도 깊을뿐더러 옆으로 번져 가고 있어.’
병준은 상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우우우우우우웅!”
살짝 손가락 끝이 닿았을 뿐인데 신조는 이내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치료해 주려는 거야.”
병준의 말에 이어 옆에서 아크리스가 녀석을 안고 다독이자 다시 잠잠해졌다.
병준은 그 틈에 마력을 흘려 검에서 마력사를 뽑아냈다.
츠스스스스-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마력 가닥이 붉게 물들며 서로 얽혔다.
그렇게 마력사가 환부를 파고들면서 신체 조직과 마력회로를 스캔했다.
파치치칫!
그리고 아까와 같이 마력사를 따라 흘려보내자, 환부의 시커먼 부분에 닿는 순간 크게 반발했다.
치이이익-
마치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들이부은 것처럼 마력사를 중심으로 뿌옇게 거품이 일었다.
“그우웅”
신조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환부를 악화시키는 무언가를 제대로 정화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실제로 붉은 혈관이 도드라지며 검은 부위가 점차 줄고 있었다.
‘됐어, 느낌이 온다.’
더구나 마력사가 안 좋은 기운을 몰아내는 흐름을 따라서, 신조의 자가 치유 능력까지 증진된 듯.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스스스스스- 후우욱!
이 페이스라면 신조 치료 퀘스트의 완료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때.
파치칫!
환부 깊은 곳에서 시커먼 기운이 몰려오더니 이제 겨우 회복되려는 부위에 거칠게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우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신조 젠다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토했다.
시커먼 기운은 마치 이곳은 자신이 점령한 곳이라는 듯, 붉게 물든 혈관을 밀어내며 거칠게 퍼져 나갔다.
파치칫- 파칫- 치치치치칫!
“암흑 마력입니다! 본디 회복했어야 할 젠다가 이상하게 못 한다 했더니, 저것이 신성력을 억누르고 있었군요!”
아크리스는 모든 것을 깨달은 듯 소리치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신조를 다독이며 말했다.
“저 암흑 마력을 몰아내야만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의 눈이 병준에게로 향했다.
“검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크리스의 말투와 태도는 무척이나 정중했다.
“물론이죠.”
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검의 공능에 더욱 집중했다.
마력사는 기본적으로 뭔가 정화하는 속성이 있는 듯싶다. 그렇기에 그 성질에 반발하는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이쪽에 기운이 집중적으로 뭉쳐 있어.’
부상의 뿌리와 같은 곳이다.
여기에 도사리는 암흑 마력을 완전히 몰아내야만 신조의 치료가 가능할 터였다.
츠스스- 스스스스-
병준은 마력사를 전력으로 뽑아내며 힘을 밀어 넣었다.
파치칫!
예상대로 환부에 뭉친 암흑 마력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붉고 검은 두 기운이 뒤엉키자, 연기와 뿌연 거품이 섞였다.
츠츠츠- 푸르르르-
검은 영역 위를 마력사가 덮어 정화되나 싶으면, 다시 불쑥 올라오며 시커멓게 변하는 일진일퇴의 공방.
“구우우웅…….”
그 와중에 젠다의 체력도 급격히 소진되고 있으니 결코 병준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순간 이채가 흘렀다.
“이건…….”
마치 드디어 승기를 확실히 잡았다는 듯한 표정.
그도 그럴 것이 이와 비슷한 싸움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래, 이건 마검전 3층에서 땅따먹기와 비슷해.”
신조의 신체 조직을 지반으로 치고, 마력회로를 이쪽이 지킬 영역이라 한다면.
마력사를 얽어 마력회로를 강화하는 건, 마력지맥을 읽어 그 흐름을 보강하는 작용과 같다.
츠스스스스스-
병준은 마치 타일을 맞추어 나가는 것처럼, 마력사를 얽어 마름모꼴의 영역을 만들었다.
파치칫!
그 순간, 그것을 깨트리고 찢기 위해 암흑 마력이 거친 섬전을 일으키면서 덮쳐 온다.
그렇지만 병준은 이미 예측했다는 듯이 도리어 주변을 에워싸며 이를 가로막았다.
3층 때처럼 자연스럽게 흐름을 끊고 전격적으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몰아치던 암흑 마력의 시커먼 영역은 순식간에 세가 약해지며 사그라들었다.
그럼 이젠 반격할 때.
파치치칫-
병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서 마력이 움직인다.
반전해서 경맥을 따라 흐르며, 전방위로 암흑 마력을 몰아붙였다.
“그우우우우우우웅!”
젠다 역시 힘을 냈다.
마력의 흐름에 맞춰 암흑 마력을 몰아내는 데 온 힘을 보탠다.
츠스스스스-
움찔거릴 때마다 구석에 몰려 있던 신성력들이 반응하며 자가 치료되고.
환부 테두리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끓으면서도 시커먼 기운이 밀려난다.
츠츠츳- 츠츠츳-
“후우우!”
병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끝을 놓지 않았다.
지금이 제일 중요할 때.
‘바로 끝장내야 해.’
어느새 젠타의 경맥을 사이로 둔 싸움을 주도한 덕에 마력사의 움직임도 익숙해졌다.
순간 병준은 손에 힘을 주며 다섯 선을 한 번에 움켜잡았다.
콰지직-
[???와의 인연도가 올라갔습니다]
눈앞에 창이 뜬 것과 암흑 마력이 사라진 것은 동시였다.
젠타의 몸에서 하얀 빛무리가 일더니 환부가 눈으로 보일 정도로 아물어 간다.
이내 완치된 녀석은 하얀 오라에 휩싸여 기지개 켰다.
“그우우웅!”
그 울음소리는 더 이상 골골거리는 것이 아니라 힘차고 우렁찼다.
마치 자신의 부활을 주변에 알리려는 듯이.
“오, 다 나았군요!”
아크리스가 말대로 활력이 느껴진다.
이내 녀석은 친근하게 다가오더니 뺨을 비비며 소리를 냈다.
“그루루루룽!”
“젠다가 당신에게 고맙다고 하네요.”
병준도 깃털을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오히려 제가 고맙죠. 녀석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준 덕에 이 녀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 마검 조각 각성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의 진명이 드러납니다. ]
그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드리웠다.
[ 오환은사검(★★★★)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합니다. ]
주변이 흐릿해지는 와중, 그의 손에 있는 마검이 덧씌운 듯한 세피아 색을 벗으며.
더 또렷이 자신의 빛을 내기 시작했다.
[ 오환은사검 ]
*계열 : 마력검, 치유검
*등급 : ★★★★
*인연 : 3571
*Ⓐ마력사
*Ⓐ정화
그 위로 겹치며 두 권능의 설명창이 병준의 시야를 빠르게 스쳐 갔다.
[ Ⓐ마력사 ]
*다섯 개의 반지로 마력으로 빚어낸 실을 뽑아낼 수 있으며 마력사로 연결된 대상의 상태를 면밀히 느낄 수 있다.
[ Ⓐ정화 ]
*마력사에 닿은 대상의 마력 회로에 있는 독이나 불순한 마력을 정화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완전히 각성한 모양이군요.”
그때 아크리스가 말했다.
주변과 마찬가지로 거의 흐릿해져 그의 모습은 유령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진심은 여실히 전해졌다.
“그럼 그 검을 잘 부탁…….”
말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사라지는 그에게 병준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 * *
짧다면 짧은 만남이었지만, 깊다면 또한 깊은 인연이었다.
“다시 만날 순 없겠지.”
멸망한 세계의 깨진 아카식 레코드의 잔영이라고 그 스스로 말했으니.
약간 허한 기분도 들었지만, 병준은 손에 남은 오환은사검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띠리리-
그때 전화가 왔는지 벨 소리가 울렸다.
처음 보는 모르는 번호.
과연 누구인가 싶으며 받아 봤는데.
-안녕하세요, 정병준 헌터님이시죠.
“네, 그런데 어디 신지?”
-저는 헌터협회 기획총괄부 김지영 팀장이라 합니다.
다름 아닌 헌터 협회였다. 그렇다면 짐작 가는 일이 있다.
드디어 시험의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참가하신 상급 헌터 시험의 결과를 알려 드리려고요. 혹시 지금 통화가 가능하실까요?
“네, 물론 가능하죠.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잠시의 침묵 후.
-시험 결과, 정병준 헌터님께서는 S급으로 승급하였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상했지만 막상 S급이라는 결과 통보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전해진 내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
-그리고 추후 있을 헌터 임명식 일정에 대해서…….
그것은 바로 임명식에 관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