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17화>
문을 열기 위해 그쪽 바닥으로 다가갔다.
멀리서는 몰랐는데, 가까이 가니 사뭇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
후우욱-
문틈으로 희미하게 아지랑이 같은 기류가 흘러나온다.
그와 동시에 병준은 문과 바닥에 얽힌 마력회로를 읽을 수 있었다.
“아, 여기 열기를 차단하는 마법이 걸려 있어여.”
같은 걸 느꼈는지 관리자들 중, 나름 마법에 소양이 있는 앰버가 말했다.
“마법이 걸렸는데 이 정도면 밑은 훨씬 뜨겁다는 거네.”
병준은 심호흡하고는 문고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끼이이익-
그러자 금속과 벽돌이 부대끼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지하통로가 드러났다.
급경사로 이뤄진 계단이 몇 미터는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서 시뻘건 불빛이 아른거린다.
더욱 후끈거리는 뜨거운 열기는 덤.
그리고 한층 선명히 들리는 금속을 두드리는 울림.
까앙- 까앙- 까아앙-
소리를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천천히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자, 이내 뺨 끝 스치는 열풍이 불어왔다.
이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군데군데 숭숭 뚫린 구멍으로 열기가 뿜어지는 검붉은 대지가 있었다.
그것도 끝없이 아득히 펼쳐진.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스케일 크군.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라니.’
하물며 주변을 둘러보니 그 감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대지 저편에 움푹 파인 곳이 있다 싶어 가 보니.
‘이건, 설마…….’
구르릉- 후두두두두둑-
고작 1, 2미터 아래, 시뻘건 용암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지역 전체를 물들인 불그스름한 불빛도 모두 용암에서 번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눈에 계속 담아 두고 싶은 비경(祕境).
이 용암 강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이 넓은 곳을 가득 채우고 있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깊은지.
“으으, 3층에서도 용암은 있었지만, 여기가 훨씬 뜨거운 것 같아여.”
“후, 앰버에게 동감입니다.”
관리자들이 이러한 반응도 당연하였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스케일 크군.”
용암에 마력이 배어 엉기는 모습을 잠시 동안 감상했다.
이런 걸 불 멍이라, 아니 용암 멍이라 해야 하려나.
마력이 배어 엿가락처럼 끈끈하게 늘어지다니.
당장 뭐가 어떻다는 확신을 주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을 간질거리며 묘한 영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계속 그것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까앙- 까아앙-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듯한 쇠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기에.
마침 시선을 돌린 방향에는 길도 나 있었다.
그것도 자주 다녔던 것처럼 잘 닦여 있는 길이.
‘용암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으니 다시 가 볼까.’
그렇게 길을 따라 얼마나 갔을까, 마침내 절벽 끝의 툭 튀어나온 곳에서 뭔가 보였다.
그것은 막사였다.
아니, 대장간이라 하는 편이 더 맞을까.
[ 절곡 대장간_마검주가 등록되었습니다. ]
마검주 등록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병준은 대장간에 들어갔다.
깡- 깡!
그리고 거기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놓인 모루에서 누군가가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어?”
관리자가 대장장이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느꼈던 이미지는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풍성한 수염의 드워프였다.
흔히 대장장이 종족이라는 이미지는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여자?”
하지만 간편한 옷차림에 드러낸 팔다리는 드워프라기엔 너무 길쭉했다.
아니, 인간치고도 무척 긴 모델 체형.
게다가 건강미마저 느껴지는 가무잡잡한 피부 위로 보이는 것은…….
“엘프?”
쇠 두드릴 때마다 찰랑이는 금빛 단발머리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귀.
“그렇다면 설마 다크엘프란 뜻인가.”
다크엘프 대장장이라니…… 정말 상상치도 못했다.
병준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불렀다.
“흠, 잠깐만.”
까앙! 까앙! 까아앙!
하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집중해선지, 바로 앞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쇠를 두드리는 소음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잠깐만!”
다시 소리쳐 불렀으나 반응 없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대장장이 일을 오래 했다고는 해도, 청각이나 감각이 예민하기로 유명한 엘프가 이리 둔하다니.
아무리 소리쳐도 반응이 없자, 병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응?”
그제야 돌아본다.
뒤에 서 있는 병준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살짝 물러섰다가 다른 관리자들을 발견하더니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오! 명수, 앰버, 페르드에 드웨인까지! 잠깐, 그렇다는 건?”
그녀의 시선이 새삼 병준에게 향했다.
“혹시 주군?”
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앗, 저는 마검전 5층의 관리자 카트리나입니다!”
그녀는 바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갖추었다.
“반가워, 난 병준이야.”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하는 카트리나.
곧이어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 뾰족한 귀가 쭈뼛거리고만 있었다.
‘뭐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던 찰나.
“아아!”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손을 귓속으로 집어넣고는, 그 안에 든 마개를 꺼냈다.
그간 저 마개 때문에 아무것도 듣지 못한 모양.
병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기소개했다.
“난 정병준이다.”
“으음, 명수 옹처럼 발음이 어려우시네요.”
“그냥 편하게 불러. 아무튼 주변을 보니 5층은 대장간 같은 느낌이네.”
“하핫, 예! 저야 취미로 이걸 두드리고 있지만, 실은 다 주군을 위해 준비된 것들이죠.”
‘나를 위해?’
무슨 뜻이냐는 듯 쳐다보자, 카트리나는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5층까지 오셨다면 이미 주군께서는 마검 조각도 많이 얻으셨겠지요.”
“뭐, 많이 얻었지…… 그렇다면, 혹시 그 조각으로 뭘 만들 수 있는 건가?”
“옙!”
그녀는 가슴을 쭉 펴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더니, 모루 쪽으로 움직였다.
병준이 따라가자 카트리나는 커다란 망치를 들었다.
“여기요.”
그리곤 병준에게 들어 보라는 듯, 두 손으로 정중하게 건넨다.
“묵직하네.”
물론, 그저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검석과 비슷하게 인연의 매개체로 작용하는 듯한 속성이 느껴진다.
[ 당신이 지닌 마검 조각이 망치에 반응합니다. ]
그때 반투명한 창이 뜨더니, 망치에서 빛줄기가 풀려나며 어른거린다.
마검석으로 마검을 소환할 때보다 살짝 약하지만, 그와 비슷한 이펙트였다.
다만 기능에서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마검 조각이 이 망치에 반응하고 있어.’
즉, 마검석과 다른 방법으로 마검 소환이 가능하리라.
더구나 마검석을 소모하지 않으니 어떻게는 더 이득이라 할 수도 있었다.
“아니, 결국 조각도 마검석을 써서 얻은 것이니 그렇게 큰 이득도 아니려나.”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정해진 터였다.
병준은 상체를 벗고 제대로 쇠를 두드릴 준비를 했다.
그때 카트리나가 한쪽에 놓아두었던 호리병을 들더니, 슬쩍 내밀며 물었다.
“주군! 한 잔 드릴까요?”
이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그녀는 마치 드워프처럼 시원스럽게 웃더니 말했다.
“하핫, 술입니다.”
“술?”
“안 그래도 뜨거운 이곳에서 달군 쇠를 두드리면 더 뜨거울 텐데, 이걸 마시면 냉기가 돌면서 좀 낫거든요.”
“오, 그런 것도 있었어?”
“잘 찾아보면 드물게 냉기 머금은 꽃이 피거든요. 그걸로 담금주를 빚었더니 이런 기능이 생기더라고요.”
처음부터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고 얻어걸린 듯하지만, 어쨌든 병준에게는 매우 유용한 물건이었다.
지금도 모루에는 찌는 듯한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잘됐네. 그럼 술 두어 모금 빌릴게.”
벌컥- 벌컥-
따로 메시지가 뜨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것은 확실히 몸에 스며들며 마력을 자극하더니.
후우욱- 후욱-
냉기가 휘돌고 몸을 식히며 열기를 몰아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호흡으로 자극하자 냉기의 효과가 더욱 커진다.
그 사이 카트리나는 대장간의 조수처럼 쇠막대를 꺼내 모루에 두었다.
“이 철괴를 두드려서 주군의 인연을 깃들이면 마검의 조각이 반응할 겁니다.”
“고맙다. 쇠 두드리는 건 처음이거든.”
“하핫, 스킬 같은 건 도와드리겠습니다만, 사실 주군께는 기술 같은 것보단 마검의 인연이 핵심이니 잘 해내실 테죠!”
짧은 응원에 뒤이어 쇠 두드리는 스킬에 대해서 설명이 이어졌다.
호흡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거나 망치에 싣는 힘의 무게 중심이나 균형감 등등.
아예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생소했지만, 병준은 이 또한 검 휘두르는 일이라 생각해 봤다.
‘그래, 크게 다를 게 없어. 손잡이를 잡고 휘둘러서 최적의 경로를 그려 내는 방식이잖아.’
먼저 망치를 몇 번 고쳐잡으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균형감을 느꼈다.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두르자 빛무리가 일었다.
뭔가 닿을 듯싶었다가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부족해. 이 느낌이 아냐.’
후우웅-
검을 휘두르듯 다시 한번 휘둘러 본다.
그렇게 몇 번 휘두르자 마지막에는 빛무리가 강하게 일었다.
순간 바로 이것이라는 직감을 받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병준은 본격적으로 모루 위에 놓인 철괴를 망치로 두드렸다.
까앙- 까아앙- 깡!
쇠 두드리는 울림이 묘하게 가슴에 닿는다.
후우욱- 스스스
그때마다 망치에서 퍼지는 빛무리가 광채를 터트리며 철괴에 녹아들었다.
여러 번 망치질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리고.
내려칠 때마다 그 빛은 점점 강해지며, 흩어지는 빛무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까앙- 츠스스스스-
그러곤 이내 철괴에 스며들더니, 형형색색으로 번져 가며 그 형태를 가느다랗고 기다랗게 빚어냈다.
그것은 망치가 두드려대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각의 인연이 어떤 형태를 불러내는 듯싶었다.
형태가 점차 틀이 잡혀가자 인연 가닥은 더 강하게 끌려온다.
점점 형체를 갖추어 가는 검.
까아아앙-
까아앙-
후우우욱- 스으으-
이윽고 마지막으로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화아악-!
병준의 몸에서 한층 진한 빛줄기가 솟구치더니, 빛은 그대로 검에 쏟아져 들어갔다.
[ 퀘스트가 떴습니다. ]
그 인연을 느끼는 순간 메시지가 떴다.
[ 마검 조각 정제 ]
*조건 : 마검 조각으로 보다 깊은 인연을 끌어낼 것
*내용 : 마검 조각으로부터 끌어낸 인연을 담아낼 수 있는 검의 형태로 정제
*진행 : 0/1
*보상 : 마검석 1개, ??
인연을 담아, 조각으로 검을 완성하다니…….
이런 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병준은 더욱더 집중하여 쇠를 두드렸다.
물리적인 법칙을 그대로 적용했다면 더 정교한 작업과 긴 시간이 걸렸겠지만, 마검전에서 중요한 것은 인연과 의지!
무엇보다 병준은 마검전의 주인으로서 굴레에 속박되지 않는 존재였다.
망치에서 풀려난 빛줄기가 철괴에 깃들 때마다 확연하게 검의 형태로 변해 갔다.
사아아아아아-
병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오라가 철괴에 깃들면서 형태는 더욱더 뚜렷해졌다.
까앙!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을 내리치자, 철괴는 꿈틀거리며 명확한 모습을 남겼다.
파아아아아앗-!
칼날 없이 손잡이만 있는 모양.
더 특이한 것은 손잡이에서 손가락이 감기는 위치마다 각각 다섯 개의 반지가 있어 사슬로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이게 마검이라고? 이런 디자인은 처음인데.”
그 모습에 순간 흠칫했으나 마검이라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마검주인 자신이 만든 물건이었기에.
인연이 닿은 작용은 그 무엇보다 확실히 느꼈다.
“대체 어떤 마검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