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14화>
“아니, 진짜 석준규잖아. 직접 여기까지…….”
“격려라도 해 주러 온 건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나?”
다른 응시자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병준은 그의 팔에 박힌 엠블렘을 봤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는 칠성 마크.
병준은 그걸 보자 전에 한 의뢰 하나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마덕배 장인 찾으러 금지구역 들어갔을 때, 칠성이랑 같이했지.’
칠성 길드는 전직 군인으로 이루어진 터라 그런 티가 팍팍 났었다.
그리고 석준규는 그런 칠성 길드의 대표 S급.
핵심 멤버라 그런지, 특히 더한 거 같았다.
아예 군인 같다는 수준을 넘어서 현역처럼 전투화에 군복 바지차림에 심지어 목에는 군번줄까지 걸고 있었기에.
‘직접 보니 뭐…… 진짜 군인 그 자체네. 엄격한 성격도 왠지 이해되는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석준규가 말했다.
“2차 시험에 대해 말하겠다. 빌런이 나타나 시가지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상황을 가정한 모의전이다.”
“그 빌런을 제압하면 된다는 건가요?”
누군가 대뜸 물었다.
반지 효과로 여전히 실루엣만 보이지만, 그 모습이나 반응을 통해서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백수연이리라. 특무대의 일원으로서, 늘 하던 작전과 비슷한 내용이라 몸과 마음이 저절로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 빌런을 제압해서 시가지 파괴를 저지하는 것이 제군들의 미션이다.”
“석준규 헌터님이 짰다기에 기대했더니 뭐, 간단하네요.”
백수연이 짐짓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는 요것 봐라 라는 듯한 눈빛으로 잠시 보더니, 이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미션 중 내가 계속 제군들을 저격하며 방해를 할 것이다. 이를 피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건 결코 쉽지 않겠지.”
그럼에도 기 싸움에 지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역으로 도발했다.
“물론이죠. 아예 특기이신 권총과 단검을 쓰셔도 괜찮고요.”
“만약 그리 만들면 무조건 S급을 주지.”
“후후후, S급이라.”
벌써부터 S급을 따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병준은 살짝 감탄하고 있었다.
‘스물도 안 된 것 같던데 그래서인지 혈기 넘치네.’
단순히 그녀는 따박따박 말대꾸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유의 살기를 흘려보내며 석준규를 탐색하는 낌새를 읽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준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어떤 식으로 반응하든, 석준규가 어떤 타입인지 대충 엿볼 수 있겠어.’
병준은 공간 장악을 펼쳐서 기감을 집중했다.
그러나 백수연이 열심히 찌르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재밌다는 듯 미소를 띠더니.
“활달한 것은 좋군. 자신감도 넘쳐. 하지만 S급의 무게를 너무 간단히 보지는 말게나.”
말하며 돌연 기운을 일으켜 기파를 터트렸다.
파앙!
“으윽!”
다른 응시자들이 순간 그 기파를 감당 못 하고 휘청거렸다.
시험을 앞둔 응시자들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한 건 물론 아닐 터였다.
그렇지만 적절한 긴장감을 주기에는 충분했으리라.
“큭, 역시 소문으로 들은 것처럼 엄하시네요.”
심지어 백수연조차 살짝 비틀거렸을 정도였다.
다만 단 한 명 예외가 있었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서 있는 병준이었다.
석준규는 다시 응시자들에게 훈계하려는 모습을 보이다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더니 이채를 발하였다.
“이거 이번 시험에 역대급 재능들이 있다더니만, 그럴 만한 근거가 없지는 않았군.”
이내 허공에 병준과 눈빛이 부딪히던 그는 흥미롭다는 듯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리곤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다 그대로 돌아섰다.
“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겠지. 실력으로 말할 뿐. 그럼 제군들의 건투를 빈다.”
그 말을 남기고 석준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우, 손이 떨려.”
“그러게. 아까 석준규 헌터님을 보고 난 뒤로 긴장감이 안 없어지고 있어.”
“젠장, 나도야. 이게 S급의 존재감이란 거겠지.”
그렇게 잠깐의 휴식 시간 후, 스피커에서 기다리던 방송이 나왔다.
-10분 뒤, 2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2차 시험에 맞추어 시가지 형태로 맵이 조정됩니다.
그와 동시에 폐허 사이사이 새겨져 있던 마력회로가 딸각- 하며 활성화되더니 그 형태를 변하기 시작했다.
파치치칫- 파칫-
아까처럼 작은 맵의 변화가 아니었다.
갈라지고 붙고 하면서, 맵이 아예 완전히 바뀌었다.
쿠쿠쿠쿠쿵-
슬레이트 지붕과 빌라. 혹은 건물 옥상이 들쭉날쭉한 선을 그리는 가운데, 간혹 고층 건물이 솟구쳤다.
그 모습은 더 이상 폐허가 아닌, 도심을 살짝 벗어나면 흔히 있는, 딱 그런 시가지였다.
“젠장, 저격이라더니 이거 완전히 자기한테 유리한 맵으로 바꿨잖아.”
“시가지 파괴도 그래. 맵이 이러면 이동도 어렵겠어.”
“빌런이 금방 제압할 레벨이냐 아니냐가 관건일 것 같은데…….”
시가지 맵을 보며 한마디씩 하는 사이, 이미 시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듯 안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쿠쾅- 콰콰쾅!
그와 동시에 시커먼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콘크리트 파편이 튀었다.
하물며 그러한 변화는 한 군데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쾅! 쾅! 콰쾅- 쾅!
이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산발적으로 불길과 폭음이 일었다.
-방어막이 깨지면 해당 응시자는 탈락입니다.
-제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빌런을 막지 못할 경우, 모든 참가자는 2차 시험 실패입니다.
-지금부터 제한 시간이 카운트다운 됩니다. [ 29:59 ]
“30분이라고? 시간이 너무 촉박하잖아.”
“이거 진짜 A급 이상은 절대로 안 주겠다는 거 아냐?”
“서로 협력을 하…….”
픽-
“……는, 어?”
챙그랑!
말하는 사이, 파란 빛줄기가 지나더니 그의 방어막은 깨져 유리 파편처럼 흩어졌다.
저격을 당한 놈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건지, 아니면 너무 허무해서 그런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
-98번 탈락입니다.
스피커가 그의 탈락을 알릴 때까지도 그랬다.
피핑- 핑- 피핑!
반면 다른 응시자들은 달랐다.
그래도 2차까지 온 실력자들.
뒤늦게라도 저격을 당하지 않으려 회피기동을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 지점에는 달리 엄폐물도 없는 상황.
“제기랄, 시작부터 이렇게 쏴 대는 게 있냐고! 일부러 엄폐도 안 되는 곳에 배치하고…… 이거 완전히 노린 거잖아.”
“시작하자마자 다 죽이고 퇴근하겠다는 거야 뭐야?!”
핑- 틱!
가끔 땅에 박히거나 그런 듯한 소리도 들렸다.
“이거 진짜로 시작하자마자 모두 끝내려는 기세잖아.”
파팟- 팟-
더군다나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백수연은 저격탄이 집중적으로 자신을 노리고 날아온다고 느꼈다.
만약 다른 이였다면 진작 탈락했으리라.
“칫, 그 아저씨. 은근히 아까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백수연은 감각적으로 피하며 움직였다.
“A급 허들이 그렇게 높은 건지 몰라도…… 일단 어울려 주지.”
그리고 보란 듯 빌런을 잡아내서 한 방 먹여 주리라 했거늘.
피슈웅-
돌연 저격탄 가운데 하나의 궤적이 비틀리며 아슬아슬하게 빗겨 갔다.
“앗?!”
그나마 하나가 이 정도면 모르겠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저격탄이 죄다 이렇다면 회피하기 간단하지 않으리라.
그 순간 구세주처럼 저격탄을 막아 주는 것이 있었다.
티팅- 팅-
하늘에 여섯 개의 원반이 방패처럼 드리우더니 저격탄을 튕겨 냈다.
그야말로 찰나였지만 당장 위기를 넘기기에는 충분했다.
‘누군가의 스킬인가? 나이스 타이밍이네. 하긴 2차 시험을 넘으려면 가능한 많은 응시자가 살아남을수록 유리하니…….’
백수연은 그 틈을 타서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곤 개활지 같은 영역을 벗어나 그나마 엄폐할 수 있는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 * *
2차 시험은 철저히 실전을 가정한 전장이었다.
그런 만큼 병준은 반드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생각이었다.
파칫- 파츠츠츳!
우선 헥타드 아다만트를 투영하여 권능을 시전한다.
그러자 여섯 자루 검이 회전하더니 나란히 원형 방패처럼 펼쳐지며 드리웠다.
이어서 손을 좌에서 우로 휘두르자, 그에 따라 방패가 펼쳐지면서 쏟아지는 저격탄을 막았다.
푸슉- 티팅- 팅-
이는 그저 능력이나 자랑하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번 시험의 목표는 빌런을 막는 것.
“그리고 민간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지.”
그렇다면 아군의 수를 많이 유지하는 편이 나았다.
“비록 다른 응시자들이 빌런을 찾지 못하더라도, 저격수의 눈을 분산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야.”
만약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저들이 민간인의 구조를 원호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실전을 가정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다른 세 명이 건물 사이로 들어갔을 즘.
파치치칫-
병준은 비어 있는 왼손에 또 다른 마검을 투영했다.
후우욱- 후욱! 후우욱-
순간, 일루셔니스트로 뽑은 환영이 사방으로 내달렸고.
그와 동시에 병준은 투명 장막을 펼쳤다.
주변에 녹아들 듯 사라지며 반투명한 윤곽만 남아 반대쪽이 그대로 내비친다.
이로써 저격수의 시야로부터 완전히 자신을 숨겼다.
스스스슥-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환영이 내달리는 방향의 땅에선 연신 흙더미가 튀고 있었다.
피슉- 퓨슉-
“후우, 아까 못 맞춰서 더 사나워진 거 같네.”
여느 헌터라면 저격만 해도 어렵게 여기며, 다른 장애물은 생각조차 못 했을 터.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겠지. 분명히 저격 외에 뭔가 함정이 더 있을 거야.’
병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결과에 따라선 S급까지 오를 수 있는 시험.
게다가 1차 시험에서 보였던 성향을 고려한다면 간단할 리가 없었다.
콰쾅- 콰콰쾅!
그렇게 나름 머리를 굴리고 있는와중, 생각을 방해하려는 듯이 아까 폭음이 터진 곳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팟- 츠파팟-
병준은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며 폭발 현장으로 내달렸다.
바로 아래 골목의 다른 응시자들 역시 그랬다.
“여기 빌런이 있다는 거지. 그놈만 잡으면 A급이 확정이고?”
“모두 긴장해!”
이윽고 폭발음이 들린 곳까지 다다르자, 세 사람은 의욕이 앞섰는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후우욱- 화르륵-
단순한 폭발로만 붙은 불은 아닌지, 폭발이 일어난 건물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불안정하게 뒤틀렸다.
그로 인해 건물이 부서지고 파편이 날리건만, 응시자들은 지체없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과연 나름 B급을 확정 지은 상급 헌터라는 것일까.
문제는 이들의 기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젠장, 벌써 다른 데로 튀었…….”
콰쾅!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음이 터졌다.
“벌써 이동했다고?”
더 이상 빌런이 활개 치지 못하게 빨리 제압해야 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음이 일어난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지만.
피슝-
그 순간 여지없이 울리는 파공성.
그와 함께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다시 근처 건물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뒤틀리더니.
콰쾅!
폭음과 함께 불길이 휘몰아쳤다.
“큭, 건물 파편에 방어막 안 깨지게 조심…….”
“저격도 방심하지 마!”
“아까 처음에 저격을 막은 방어막은 누가 쓴 거야? 다시 써 줄 수는 없어?”
방어막은 병준이 펼친 것이었지만 이들이 알 리 없었다.
“난 아냐. 혹시 탈락한 녀석 스킬인 거 아닌…… 억!”
챙그랑-
순식간에 유리 파편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응시자가 탈락했다.
9시에서 저격한다면 절대로 맞출 수 없는 각도.
석준규가 계속 위치를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피슉- 챙그랑!
그렇게 다음 폭발 장소에 도착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른 하나의 방어막도 깨졌다.
-49번 응시자 탈락입니다. 맵에서 퇴장해 주십시오.
콰쾅!
거기에 이곳과는 떨어진 다른 곳에서 다시 폭음이 터지며 방송 소리를 묻어 버렸다.
응시자들이 그곳으로 향하기 무섭게 또 파공성이 일었다.
무대를 장악한 록가수의 독주처럼 저격 소리와 폭음이 정신없이 몰아친다.
그에 휩쓸려 응시자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때.
우뚝!
“설마…….”
병준은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곤 뭔가를 눈치챘는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