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95화>
삼흥 토건의 재건 사업은 제주도 남서부 필드형 던전에서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슈우우웅-
그 물자를 나르기 위해 전용 수송기가 오늘도 제주도 공항에 착륙했다.
다만 이번에는 수송 물자뿐 아니라, 한반도 본토에서 색다른 손님이 함께 온 터였다.
활주로에 내려서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에게 곧 두 사람이 다가왔다.
“정병준 헌터님, 오셨군요! 통화했던 주성일 실장입니다.”
먼저 정장 차림의 주성일 실장이 유명 인사라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인사했고.
뒤이어 다가오는 남자도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환영합니다! 오재훈입니다.”
자신을 마중 나올 두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다.
삼흥 토건 제주도 사업을 담당하는 지사 기획실 소속의 실무 책임자.
병준은 둘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답했다.
“오늘 날씨가 불안정한 것이 난기류가 심했을 거 같은데, 혹시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나요?”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수송기는 처음 타 보는데, 생각보다 탑승감이 좋네요.”
“하하, 수송기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손님을 모시는 자리라 특별히 개조를 부탁했거든요.”
“어쩐지 쿠션이 푹신하고 좋더군요.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마련한 자리인데 비행 일정으로 합류 못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후두둑-
제주도라 그런가, 바람이 거세지고 빗줄기도 조금씩 굵어고 있었다.
그중 돌림노래라도 받듯 익숙하게 오재훈이 이어 이야기했다.
“게다가 북한 쪽 던전에서 활약한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더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
리듬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이어지는 둘의 말은 마치 그룹 가수인가 싶을 정도였다.
척척 맞는 둘의 호흡을 보니 파트너로서 콤비 플레이라 할지, 그들의 제휴가 어림짐작이 갈 정도였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물건도 여기 준비해 뒀습니다.”
“특상품으로 다섯 뿌리죠.”
이어서 주성일과 오재훈이 밴에 들어와 익숙한 디자인의 케이스를 건넸다.
일전에 북한에서 받은, 만드라고라를 보관하던 것와 같은 것이었다.
“아, 감사…….”
그때 자신과 연결된 마력회로를 통해서, 사뭇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반응이 느껴졌다.
‘녀석, 하여간 알일 때나 지금이나 먹는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반응하네.’
달칵!
바로 열어 보자, 안에는 만드라고라 다섯 뿌리가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병준은 사뭇 고맙다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두 사람과 밴에 탔다.
부릉-
밴이 바로 제주도 필드형 던전을 향해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는 빠르게 도로 풍경이 지나갔다.
순식간에 어둑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사이, 둘은 서류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처음에는 서류를 받고 놀랐습니다. +C급이라 되어있던데 그런 활약을…….”
“그러게 말이죠. 아마 본사 오 상무님께 이야기를 못 들었으면 뭔 착오라도 있는 모양이라고 오해를 했을 겁니다.”
“이거 아무래도 얼른 상급 시험을 치든가 해야겠네요.”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밴은 계속 이동했다.
얼마 후, 시원하게 도로를 달려서 제주도 남서쪽으로 이동한 밴의 앞으로 저 멀리 콘크리트 장벽이 보였다.
“곧 검문소입니다. 이미 청소 레이드가 진행 중이라 출입이 제한되는 상황이죠.”
“그래도 병준 헌터님은 바로 들어갈 수 있으실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핫.”
두 사람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이 장벽을 향해 직선으로 쭉 이어지는 도로 앞으로 검문소가 보였다.
현대 사회의 일상과 마경의 경계를 나누는 시설.
다만 검문소를 지키는 군의 분위기가 수선스럽게 느껴진 건 착각이었을까.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응? 갑자기 이게 뭔 일이야?!”
그때 밖에서 검문을 보는 군인들이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기사가 군인과 대화하는 분위기로 보아,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싶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계급 높은 군인까지 나왔으니.
“제가 잠시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오재훈이 차에서 내리더니 군인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병준은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남아 있는 주성일에게 물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무슨 일이죠?”
“음, 그게…… 던전에 긴급 상황이 발생한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출입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는 것 같네요.”
즉 봉쇄 조처가 내려졌다는 뜻이다.
심지어 레이드를 도는 헌터가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봉쇄라니…… 결코 여간 일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고조시키듯 빗줄기도 점점 거세졌다.
쏴아아아아-
공항부터 우중충하던 날씨는 던전에 가까워질수록 심해지더니, 이젠 천둥을 동반한 번개마저 치고 있었다.
우르릉- 콰쾅!
“혹시 이레귤러 몬스터라도 나타난 겁니까?”
“자세한 상황은 저도 아직 이야기를 못 들어서요. 지금 바로 부하에게 전화해서 자세한…….”
그리고 전화를 들어 번호를 누르려 한 순간, 때마침 군인과 이야기하던 오재훈이 돌아와서 상황을 말해 주었다.
“내부 거점에서 연락이 왔다는데, 드래곤 계열 몬스터의 마력 패턴이 관측됐답니다. 지금 S급 지원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중이라는군요.”
“드래곤이 나왔다고?!”
주성일이 흠칫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드래곤이다.
리자드맨과 같은 어중간한 용족과 다르게, 드래곤은 그야말로 재앙 수준.
설령 가장 약한 개체라 해도 AA급 이상은 되리라.
그들의 비늘은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을 완전 무력화시키기에 아무리 많은 인원이 달려 붙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여기 책임자 반응을 보면 뭔가 더 있는 듯싶습니다.”
드래곤이 있다는 것만 해도 놀랍거늘,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고?
그 말에 주성일은 입을 벌린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상은 더 말해 주지 않더군요. 이곳 책임자도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눈치를 보더니, 그는 조심스레 속삭였다.
“저쪽에서는 S급의 지원 전에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저희의 권한을 이용한다면, 들어갈 수는 있을 겁니다.”
마치 그럼에도 들어갈 거냐고 묻듯, 그가 조심스레 쳐다봤다.
병준은 그 뜻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괜히 이번 레이드 도중에 끼어서 이력에 흠집만 남길 수도 있다는 건가.’
특이 사항으로 엉망이 된 레이드.
굳이 위험 부담을 감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기다리면 S급 헌터도 도착할 것이다.
S급 헌터와 함께라면 이건 그야말로 버스를 타며 레이드를 끝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병준은 그러지 않았다.
“가죠.”
들어가지 않겠다는 답을 하리라 예상했는지.
두 사람이 흠칫 놀라며 쳐다보자 병준이 말을 이었다.
“기회가 필요해서 레이드 참가를 요청하긴 했지만, 숟가락 얹으러 온 게 아닙니다.”
필드형 던전에서 풍겨 오는 먹구름은 더욱 시커메져서, 이젠 거세게 뇌우를 퍼붓고 있었다.
마치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 엄포를 놓듯.
우르르릉- 콰콰쾅! 콰쾅!
그야말로 천지를 뒤집는 듯 울리는 소리에 다 큰 어른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럼에도 병준은 신경 쓰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라면 더욱 들어가야죠. 애당초 계약 내용도 몬스터를 청소한다며 온 거니까요.”
그러곤 웃으며 덧붙였다.
[ 퀘스트가 떴습니다. ]
“무엇보다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긴 거 같거든요.”
[ 드래곤 토벌 ]
*조건 : 드래곤의 마력으로 인한 여파 감지
*내용 : 마검을 사용하여 드래곤 토벌
*진행 : 0/1
*보상 : 마검석 5개
무려 마검석을 다섯 개나 주는 퀘스트였다.
그렇다면 이건 가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 * *
검문소를 통과하고 얼마 후, 밴은 필드형 던전 외곽에 있는 거점에 도착했다.
그곳은 던전 전체를 내려다보듯 등대같이 생긴 높은 건물이었으나.
쏴아아아아-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여, 쏟아지는 폭우와 낙뢰를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은 오히려 위태롭게 보였다.
필드형 던전 깊은 곳으로 뿜어내는 빛조차 거센 빗줄기에 파묻히는 듯하다.
검문소에서 반응으로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곳으로 들어가자 느껴지는 분위기는 생각보다 더 어수선했다.
“1조부터 5조까지 아직도 연락이 안 돼!”
“가장 외곽으로 나갔던 6조부터는 어때? 아무 소식 없어?!”
“중앙에서 뿜어지는 마력 파장이 더 강해집니다!”
병준 일행이 들어오자 거점 직원들은 반색하며 물었다.
“실장님! 벌써 S급 헌터의 지원이 온 겁니까?”
구세주라도 만난 듯 시선이 병준에게 향했지만, 이내 누군가 말했다.
“아냐, 오기로 한 분은 우리 판테온 길드의 백강철 길드장님이라고. 저 사람은 아니야.”
상주 인원으로 보이는 자의 유니폼을 보니 판테온 길드 마크가 있다.
아마 이곳에서 두 단체가 모종의 프로젝트를 협업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병준이라고 합니다. 삼흥 토건의 소개로 이번 레이드의 중반부터 참가할 예정이었는데…….”
“그 도중에 참가할 예정인 헌터라면 C급이잖아?!”
C급이라는 말이 나오자 더욱 절망감이 퍼지고, 곳곳에서 한숨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필드에 나간 헌터들은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
“네, 아직도…… 그보다, 지금 중앙에서 마력 관측치가 더 높아집니다.”
“드래곤의 마력 패턴이 있는 지점인데, 곳곳에 비슷한 마력 파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요!”
“젠장,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드래곤의 마력 파장이 하나만 잡히는 게 아닌 건가.’
슬쩍 보니, 관측기 모니터에 나타난 표시는 누군가가 마구 점을 찍는 것처럼 안쪽부터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하물며 필드에 나간 헌터들 연락은 안 된다.
미칠 것 같은 상황이겠지. 그렇다고 아무 헌터나 함부로 내보냈다가는?
드래곤에게 좋은 먹잇감이나 되고 말 터이니 말이다.
“S급, 그 백강철 헌터님은 언제쯤 도착하신다는 거야?”
S급 기다리는 일 말고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니 속이 타들어 가리라.
다만 그것조차 사치였음을 그들은 이내 깨달아야만 했다.
삑- 삑- 삑-
경광등이 붉게 돌며 거점 내부를 훑더니, 경보음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모니터로 향했고, 그것을 보자 그야말로 넋을 잃었다.
“저, 저거…… 왜 저 마크가 갑자기 여기서 나타나는 거야?”
누군가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거점 주변으로 부채꼴을 그리며 점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옆에 표시된 마력 파장의 패턴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아까부터 보이던 드래곤의 그것과 흡사했다.
상식적으로 드래곤 계열의 몬스터가 저렇게 많을 수 있을까?
진상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기회……라 생각한다면 그건 간이 배 밖에 나온 인간일 터였다.
콰쾅- 쿠콰쾅- 쾅!
그리고 이를 상기시켜 주듯, 지축이 크게 흔들렸다.
“외부 방어막이 깨졌습니다. 나가야 합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젠장, 매뉴얼 23조에 따라 모두 여…….”
“아! 다른 방향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이, 이건! 갑자기 3차 방어막까지 다 깨졌습니다.”
“뭐라고?! 그렇다는 건?”
이곳 거점에 모인 이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 이유는 누가 말할 필요도 없이, 관측기의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었다.
빼곡한 점으로 표시된 것이 빠르게 들이닥치더니, 거점을 둘러싸며 퇴로를 차단했다.
“지금 가도 늦었다는 말인가. 미치겠군.”
“반나절, 아니 몇 시간 전만 해도 레이드는 순조로웠는데 어디서부터 이런…….”
어느샌가 지척까지 방어막이 다 깨진 상황, 과연 이 인원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여기서 다 죽으리라.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쿠쿵! 쿠콰쾅- 콰쾅!
“놈들이 여기, 거점 문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