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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91화 (91/200)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91화>

“이제 정말 깨어나는구나.”

숙소로 돌아온 뒤, 병준은 인벤토리에서 알을 꺼냈다.

그러고는 푹신한 이불 위로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사아아아아-

알은 마치 절세의 다이아몬드처럼 새하얀 빛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안에 아이가 웅크린 듯한 윤곽은 더욱 선명하다.

아니, 윤곽만 아니라 크기도 자라, 이젠 정말로 어린아이쯤 되는 크기였다.

그걸 보는 병준의 표정에는 그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아빠라도 되는 거 같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막 나오려는 녀석을 보며 괜히 가슴 졸이고 있었다.

오랜 기간 직접 마정석을 먹이고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봐 왔기에 그런 걸까?

“할 수 있어. 그래, 힘내. 조금만 더 힘내라고!”

파츠츳- 파핏!

게다가 마력적으로 연결되어 존재를 느낄 수 있기까지.

아직 희미한 백지 같지만, 자신에게 의존하는 듯한 그 옅은 감정조차 말이다.

그렇게 이어진 마력회로를 통해서 응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닿았던 걸까.

알이 움찔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점점 커지더니 결국.

[ 제검의 서 알이 완전히 부화하였습니다. ]

파직- 파츠츠츳-

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주변으로 퍼진 빛이 중심으로 응축되면서, 웅크린 소녀의 모습이 완전하게 드러났다.

피부가 도자기처럼 하얗고 등으로 흘러내려 약간 거칠게 찰랑거리는 은색 머리칼은 마치 폭포수와 그 아래 퍼져 나가는 포말 같았다.

다만 솜털 같은 하얀 외모와는 다르게 입고 있는 원피스는 마치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했다.

“옷이라도 준비해야 했나.”

괜히 중얼거리자 색감이 대비되는 선홍색의 눈동자가 천천히 자신을 올려다봤다.

“……안녕?”

뭐라고 처음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 병준은 그저 웃으며 녀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난 병준이라고 해. 정병준.”

그러고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오물거리더니 이내 그걸 따라 하는 녀석.

“정…… 브…….”

다만 쉽지 않은지 몇 번이나 실패했다.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에 병준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응원하면서 기다렸다.

“정…… 병…… 준! 정병준!”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완벽하게 이름을 부르자 병준은 희열감을 느꼈다.

녀석도 기쁜지 천사처럼 배시시 웃더니 조그만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레나.”

생글생글 웃으며 꼭 기억해 달라는 듯 반복했다.

“……세레나.”

“네 이름이 세레나라고?”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병준을 가리켰다.

“……정병준!”

서로 이름을 알게 된다.

“그래, 나도 널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가워, 세레나.”

“헤헤헤!”

아주 간단한 행위였지만 첫 의사소통에서 병준은 왠지 모를 가슴 벅참을 느꼈다.

그러나 느껴진 것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후우우우우-

자신과 세레나를 잇는 마력회로가 한층 크게 출렁이더니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단지 느낌이 아니었다.

인연이라는 의미, 서로 이름 부른다는 것.

[ 제검의 서 222페이지를 얻었습니다. ]

그것은 놀랍게도 형체를 이루더니 제검의 서 페이지로 화해서 맺혔고.

병준이 제검의 서를 꺼내자, 페이지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합쳐졌다.

그걸 두 눈으로 보면서도 병준은 얼떨떨했다.

“히든 던전이 아니어도 페이지를 얻을 수 있구나.”

제검의 서 정령인 세레나가 함께이며 새 인연을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다만 이제 갓 세상에 나왔기에, 그것만 해도 피곤한 일인 모양이었다.

“우우웅…….”

눈이 감겨 꾸벅거리더니 몸이 반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소환 해제인가. 금방 나와서 그런지 오래는 못 있네.”

본디 정령이란 그런 것이다.

다른 세계로부터 소환되기에 주인과 연결되어 현현하는 순간부터 시간적 제약이 생기고, 힘을 사용할수록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지는 존재.

“마력이 연결돼서 그런지 나도 괜히 좀 나른해지는 느낌이네.”

스스스스-

반투명해진 녀석은 아까 전 병준이 한 것처럼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었다.

“그래, 잘 자라.”

병준의 인사를 받으며 투명해지던 세레나의 몸은 곧 빛의 덩어리가 되어 제검의 서 안으로 스며들었다.

사아아아아-

그러자 전과 달리 제검의 서가 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제검의 서 책이 뭔가…… 더 묵직해진 기분이군. 아니, 단순히 묵직하다기보다 비어 있던 것이 드디어 채워진 느낌이야.”

아늑한 느낌으로 빛나는 모습에 안도감이 느낄 정도였다.

“후후, 다음에 녀석이 나올 때가 기대되네.”

병준은 즐겁게 중얼거렸다.

* * *

숟가락으로 식판에 담긴 국 떠먹는 남자의 동작은 반듯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군인처럼 각 잡힌 것도 귀족처럼 품위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야말로 반듯했다.

“…….”

씹는 소리조차 없이 밥 한 숟가락에 반찬 한 젓가락 먹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곧 남자는 곧 식판을 깨끗하게 비웠다.

동영상으로 찍어 예의범절 교재로 써도 될 정도였지만 그런 일은 없을 터였다.

그는 죄수복 차림이었기에.

드르륵-

이내 그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퇴식구로 향하자,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자가 그거지?”

“그래, 그 유명한 구룡회의 남궁민수…….”

“허, 결국 저런 거물도 여기 잡혀 들어오는군. 특무대 박철호가 강하긴 강한 모양이야.”

“여태 독방에 있다가 이제야 나온 거래.”

하지만 막상 그가 옆으로 지나가자 모두 조용해졌다.

“…….”

그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미소마저 띠고서 반듯하거늘.

옆으로 지나가자 눈을 못 마주치고 내리깐다.

마치 소음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그가 아닐까 싶었다.

다만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외는 있기 마련.

“썅, 여기 오면 다 같은 처지 아닌가. 심장에 압제 술식이 박혀, 마력도 못 쓰는데!”

키가 2미터를 훌쩍 넘고 근육이 터질 듯한 수염의 남자가 코웃음 치며 일어섰다.

마치 들으라는 듯 소리치며 인파를 밀치고 나서는 녀석.

“여기서 다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그의 앞을 가로막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기서는 여기 룰에 따라야지. 안 그래, 남궁 형씨? 마력을 못 쓰니 순수하게 힘으로 서열이 정리된다, 그게 여기 룰이거든.”

툭- 텡그렁- 타탕!

그가 고의로 툭 치자 식판이 떨어져 요란스러운 소리가 주변으로 울렸다.

“그러면 형씨는 내 위일까, 아니면 아래일까?”

그러더니 이죽거리던 그는 갑자기 주먹을 내질렀다.

마력이 압제된 이상 그와 남궁민수의 체급 차는 명확했다. 주먹이 남궁민수 얼굴을 가릴 정도였으니 어련할까.

텁-

그렇지만 놈의 주먹이 닿는 일은 없었다.

그저 가볍게 손을 움직여 손가락 몇 개로 놈의 주먹을 움켜잡고는 버텨 냈다.

“어엇?”

아니, 버티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단지 잡았을 뿐이다.

“으윽, 이 새끼가!”

오히려 남자 쪽이 용을 써 대기만 한다.

이를 보며 남궁민수는 백면서생 같은 얼굴로 옅은 미소 띠며,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마력으로 제련하여 강화된 육체는 어떤 상황에도 피지컬이 유지된다네. 이른바 존재의 격이라는 것이지.”

다만 예의를 차린 말투와 다르게 손속에 자비는 없었다.

우드드득- 꽈득!

손가락에 힘을 주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수염의 남자가 비명을 토했다.

“끄아아악!”

손가락은 한 마디 이상 그의 손등 살갗을 파고든다.

“그리고 또 하나 정정하자면 모두 똑같은 처지가 아니야.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자의로 들어와서 말이지.”

“끄아아악, 으악!”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보며 남궁민수는 담담히 웃더니 말을 이었다.

“압제를 풀어낸 앞으로의 새 시대를 위해서.”

“으윽, 닥쳐! 젠장, 어서 이 새끼 조져!”

하지만 놈이 소리쳤음에도 패거리인 듯싶은 녀석들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하지만 남궁민수를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전부 당하고 말 거라고.”

“다구리에 장사 어디 있어! 달려들어서 밟으라고! 교도관 놈들 바로 안 나서는 거 보면 상황 파악이 안 되냐?”

그 말을 듣고서야 패거리는 우르르 나섰다.

그걸 보며 남궁민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더 나대다가는 피해자가 늘기만 할 터인데, 쯧.”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퍼퍽- 퍼퍽- 콰쾅!

누군가 뛰어들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십여 명에 달하는 패거리를 때려눕혔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가 희끗하고 초로의 나이에도 체격이 위풍당당한, 딱 백전노장을 연상케 하는 자였다.

그런 백발의 남자가 남궁민수에게 곧장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주님. 마중이 늦었습니다.”

“아니, 타이밍 딱 좋았어. 백한중이 자네도 여전하네.”

이미 교도소에서 한 성깔과 실력으로 유명한 자였는지, 그가 나타난 순간 모두 조용히 흩어지며 더는 아무도 달려들지 않았다.

“안에서 정리는 잘해 둔 것 같군. 요 한 달 동안 귀찮은 일 없게 지낼 수 있겠어.”

“한 달…… 드디어 때가 왔군요. 제가 줍겠습니다.”

“아니, 이 정도는 내가 하지.”

남궁민수는 직접 식판을 주워 들어 퇴식구에 버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옆을 따르는 백한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궁민수는 보지 않고서도 무언가 짐작했는지 웃음 띤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바깥에서와 다르게 심리에 불안이 배었네.”

“예?”

그러자 그는 당황했다가 전력을 다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탓하려는 게 아냐. 어쩌면 당연하지. 막상 직접 압제 술식 당해 보니 이건 뭐, 힘도 제약되고 죽을 맛이지?”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남궁민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물며 나도 그 술식을 받아서 여기 갇혔을 테니까?”

“그건…… 저는 아까 그놈 같은 생각은 절대로 품고 있지 않습니다.”

“한중이, 네 충성심이야 잘 알지. 그러니까 너를 먼저 보냈던 거고.”

“아닙니다.”

“아니지, 아니야. 압제 술식 원천이 되는 아이템을 알아낸 건 정말 의미가 크거든.”

낮게 깔린 목소리가 스산하게 스친다.

감사하다면서 고개 숙이는 백한중을 뒤로, 남궁민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담벼락 아래 그늘이었다.

그 아래, 햇볕을 받지 못해 시들어 버린 잡초들이 누렇게 뜬 채 죽어 가고 있었다.

거기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남궁민수가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압제 술식이란 것이 디폴트인 시절이 있었거든.”

“임팩트 이전 시대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지.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말을 잠시 멈춘 남궁민수는 손가락으로 누렇게 시든 잔디를 가볍게 쓸어 올렸다.

그러자 잔디가 차츰 녹음 되찾더니 줄기에도 힘이 생긴 듯 반듯하게 일어섰다.

“회, 회주님 이건?!”

압제 술식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오랜 기간 이곳에 잠입하며 이 술식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 얼굴로 자신의 회주를 바라보는 백한중을 향해.

“압제 술식 원리를 연산하여 세상의 기억에 가해진 압제를 역산하여 풀어낸다.”

“오오, 그렇다는 말은?!”

남궁민수는 고개 들어 흐린 하늘을 쳐다보더니 미소를 띠며 확언하였다.

“우리가 여기 나가는 한 달 뒤부터…… 그때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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