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89화>
“그럼 한번 가 볼까.”
파치칫- 파츠츳!
병준의 오른손에서 섬전을 흩뿌리는 건 하얀 칼날 검, 바로 초치검이었다.
[ 초치검이 자신이 활약할 기회를 기대합니다. ]
하긴 용종 몬스터 사냥하는 것도 오랜만이니 초치검의 이런 반응도 당연했다.
그리고 이어서 왼손에 포스 블레이저가 투영되었다.
“이 조합도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지.”
얼굴에 짙은 미소 떠올리며 병준은 포스 블레이저의 권능을 끌어올렸다.
[ 포스 블레이저의 Ⓐ드래인 스파이럴을 시전하였습니다. ]
드래인 스파이럴 권능으로 마력이 몰려든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마력회로를 매개로 초치검으로 전했다.
우우웅- 우우웅!
초치검이 안달하며 검신을 떨어 대는 순간, 그레이트 리저드의 무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병준은 포스 노바의 권능을 일으켰다.
다만 포스 블레이저가 아닌, 초치검에 옮겨서 구현했다.
[ 포스 블레이저와 초치검이 연계되었습니다. ]
[ 초치검에 의해 포스 블레이저의 Ⓐ포스 노바 권능이 시전되었습니다. ]
콰앙! 콰아아아아아아아-
순간 굉음과 함께 초치검의 새하얀 칼날이 번쩍이더니 말 그대로 빛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순백의 빛줄기.
게다가 본래 초치검 권능은 빛을 일직선으로 쏘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특유의 성질로 인해, 자양분으로 삼을 용종 몬스터가 없으면 힘의 원천이 될 마력을 모으기 어렵는 것.
반면 포스 노바는 힘을 모으기는 쉬우나, 외부로 방출하면 퍼지는 성질이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조합하면?
후우우우우웅-
소용돌이를 그리며 흡수한 마력이 병준의 마력회로를 매개로, 포스 블레이저에서 초치검으로 전달된다.
본래라면 꽤 오랜 시간 차징 해야 하는 것이, 그 위력은 적지만 순식간에 모였다.
그리고 초치검은 마력을 다듬어내어 순백의 칼날로 강력한 빛줄기를 뿜어냈다.
콰앙! 쿠와아아아아-
곧 굉음과 함께 그 빛줄기가 지나가자, 마치 지우개로 도화지 위의 그림을 지우듯.
“크에에에엑!”
그레이트 리자드의 무리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후, 생각보다 화끈하네. 그 대신 마력 효율은 개선할 여지가 많겠어.”
중얼거리며 병준은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상당한 수를 쓸어버렸지만, 아직도 그 숫자는 많다. 게다가 어디서 오는지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그레이트 리자드 킹도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는지, 주춤하고는 있지만 건재했다.
그렇지만 병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좋아, 일단 급한 불도 껐겠다 차근히 정리해 볼까.”
그 순간.
[ 제검의 서 알이 당신의 무용에 반응합니다. ]
“어?”
뜻밖의 메시지가 떴다.
병준은 그것을 잠시 확인하더니, 이윽고 옅은 미소를 띠었다.
“아하, 그렇다는 말이지.”
부화 퀘스트에서 말한 것이 어떤 내용인지 슬슬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할 차례.
파치칫- 파츠츠츠츳!
두 자루의 마검이 섬전을 휘두르며 청백으로 빛난다.
“후웁, 후우우!”
호흡도 가다듬으며 마력을 끌어올린다.
아니, 단순히 양적으로 끌어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 호흡에 팔 색 숨결과 마검전의 마력까지 빌려 와 질적으로 더욱 가다듬었다.
쿠후후후- 후우우우우-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마력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도 그 진가가 모두 드러나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청백 두 자루 칼날에 깃든 진정한 힘을 끌어내면 과연 어느 정도일지.
병준 자신조차 그 위력이 기대됐다.
“여긴 제가 맡을 테니 가드분들은 이 주변에 다른 무리가 있는지 봐주세요.”
갑작스러운 참전에 엄청난 위용.
순간적인 상황 변화에 잠시 넋을 잃고 멍하니 보던 가드들은 그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서로 시선을 맞추더니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주변에 다른 무리가 있는지 탐색하여 시설 방호 등 다른 임무를 하는 편이 나으리라.
“그럼!”
파츠츠츠츠츠츳!
병준은 가다듬은 그 힘으로, 다시 한번 포스 노바의 권능을 시전했다.
그레이트 리자드 무리가 그 위용에 본능적으로 움찔한다.
그렇게 조금씩 녀석들을 몰아넣는 와중.
“크, 크륵?!”
물러서던 우두머리 녀석이 무언가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물러서다 갑자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공포심에 흐릿해진 눈동자의 붉은색이 점점 다시 진해지더니 놈은 괴성을 뱉어냈다.
“크캬오오오오!”
과연 우두머리답게 녀석의 포효에 담긴 피어의 효과가 물결처럼 번진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물러서기를 멈추더니 하나둘 병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바로 달려들었다면 모를까 이미 늦었어.”
드래인 스파이럴에 의해 충전이 끝난데다, 아까 처리한 놈들로 인해 마력을 흡수하여 더욱 중첩이 쌓인 상황.
빛을 머금은 검배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병준은 잡았던 고삐를 놓듯, 다시금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아아아-
그러자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빛기둥이 일어나더니 달려들던 그레이트 리자드 킹을 삼켰다.
놈을 시작으로 뒤따르는 나머지도 예외일 수 없었다.
“크케에에엑!”
하얀빛이 사그라졌을 때 병준의 전방으로는 부채꼴 모양으로 지형이 패여 있었다.
거기에 남은 것은 그레이트 리자드였던 잔해뿐, 마력 핵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크, 크르륵…….”
머리를 잃자, 그제야 남은 녀석들은 허겁지겁 육중한 몸을 돌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쪽에 테이머 헌터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그것도 제법 실력이 높은 녀석으로.’
방금 완전히 전의를 잃었던 그레이트 리자드 킹의 눈동자가 붉게 변한 후, 다시 달려드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놈들은 마력 조작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지금도 그렇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 일정 방향을 향해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즉, 놈들을 추적하면 수괴를 잡을 수 있을 거야.’
병준은 그대로 기척을 숨기고는 그 뒤를 쫓았다.
츠파팟- 파파파팟-
그렇게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갑작스런 이명과 함께 마력이 거세게 격돌하는 파장을 감지했다.
병준은 공간 장악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노이즈가 끼는 듯한 기류가 더 확실히 느껴졌다.
“으아악!”
그리고 그 거친 마력 반응과 함께 소음이 들린다.
콰쾅! 콰콰콰콰콰콰-
틀림없는 폭발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문득 병준은 오상수가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젠장, 하필이면 작전으로 자리를 비운 순간에……
그 작전이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땅을 박차 가장 높게 솟은 나무의 꼭대기에 오른 후, 주위를 내려다보자 어떤 상황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선이 고착화되었어.’
무너질 벽을 바리케이드처럼 삼은 군벌 병사들의 총질이나 포격은 성가셨다.
마력이라는 새로운 자원이 개발되며 화기류 역시 어느 정도 개선이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자기들의 홈 어드밴티지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으니 더 그렇겠지.
다만 고작 그 정도라면 헌터 부대가 밀리지 않았을 터였다.
“크캬아악!”
곳곳에 몬스터의 각 부위를 섞은 키메라 몬스터가 군벌 병사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하물며 놈들의 특성은 대개 방어 특화였다.
역장이나 갑각으로 헌터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두두두두- 콰콰쾅!
그 사이, 군벌 병사들이 마력으로 강화한 총탄과 폭탄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심지어 수십 마리에 달하는 키메라 몬스터들이 라인을 형성해 철벽을 이룬다.
“크캬아아아!”
“젠장, 4시 방향 주시해! 그레이트 리자드 무리가 합류했다, 후방을 엄호해!”
거기에 병준에게 쫓겨 온 그레이트 리자드 무리 역시, 어떤 신호를 수신한 듯 눈동자가 붉어지며 합류했다.
‘이대로는 위험하겠어.’
고착된 전선의 추가 단숨에 상대 쪽으로 기울 거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우드득- 두드득-
고개를 가볍게 털어 몸을 풀고는, 걸음을 옮겨 전선 가운데로 나섰다.
그리고 양손에 각각 간장과 막야를 투영한다.
파치치칫- 파츠츠츳!
스파크를 휘두르며 병준이 간장을 떨치자, 막야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한밤에 돌연 태양이라도 뜬 듯, 청백색 빛을 흩뿌리며 마력 광풍이 몰아치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막야가 놈들의 한가운데에 직격했다.
퍼퍼퍽- 쾅!
“크아악!”
단 일격에 정면에 있던 바리케이드 벽이 무너지며, 그 너머 키메라 몬스터 갑각이 쪼개지며 즉사했다.
고속 회전하며 흩뿌린 섬전에 휩쓸린 군벌 병사들도 감전되어 쓰러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막야는 그대로 비스듬히 궤적을 그리며 옆에 있는 진지들까지 차례로 쓸기 시작했다.
콰쾅- 쾅- 쾅-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에 키메라 몬스터의 역장이나 갑각은 도미노처럼 파괴된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력으로 강화한 화기류를 손에 넣었어도 쏟아지는 능력을 맨몸으로 버틸 수는 없었으니까.
순식간에 병준이 선 장소를 중심으로 좌측의 진지가 무력화되었다.
그러고는 되돌아오는 막야를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투영을 해제했다.
파치치칫-
마력이 끊김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막야.
하지만 병준의 손에는 어느새 다른 마검이 들려 있었다.
바로 모비딕 크라잉과 불싸라기검이었다.
지맥과 연결한 뒤 그 축을 매개로 마력을 불어넣자, 순간 지면이 갈라지고 그곳으로 마력이 솟구친다.
일전에 썼던 그 불의 소용돌이가 현실에 다시금 현형 했다.
화르르륵- 콰아아아아-
거칠게 뿜어지는 불줄기에 우측의 진지 역시 불과 몇 초 만에 무너졌다.
아직 잔당이 일부 남았지만, 헌터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타이밍을 노려 돌격하여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병준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가드 부대 책임자인 루이 박입니다. 곤란하던 터였는데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원을 나오신 겁니까?”
루이 박이 손 내밀자 병준은 악수를 받았다.
“정병준입니다. 뭐, 지원 온 셈이기는 하죠. 그보다 입구가 저기였군요.”
무너진 벽과 흩어지는 검은 연기 사이로 저 너머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보였다.
아마 군벌의 수괴로 짐작되는 테이머 헌터는 바로 저곳에 숨어 있을 터였다.
“네, 덕분에 뚫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루이 박이 입구로 가더니 바닥에 앵커를 박았다.
끝에 뭔가 장치가 박힌 아티팩트는 병준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팔공산 레이드 때였다. 위치 특정하는 이 앵커를 여러 곳에 박아서 맵핑을 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바로 출발…… 응?”
다만 루이 박은 앵커를 밟고 안으로 들어가다 고개를 갸웃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앵커 끝의 바늘이 핑핑 도는 모습은 딱 봐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이게 왜 안 되지?”
곤란해하는 루이 박과 달리 병준은 바로 이유를 알아냈다.
공간 장악에 읽힌다.
탐지 계열의 마력회로가 작동하는지, 어떤 마력 파장을 퍼트리며 방해해 온다.
“이쯤이겠군.”
이내 병준은 입구 바닥을 강하게 짓밟았다.
콰쾅! 콰지지직-
그러자 콘크리트 바닥이 깨지고, 그 밑에 숨겨진 어떤 장치가 박살이 났다.
“놈들이 방해 파장을 내뿜는 장치를 숨겼군요. 이걸 먼저 제거해야겠습니다.”
“돈도 없는 녀석들이 이런 아티팩트까지……. 하아, 어쩐지 키메라 몬스터를 동시에 조작한 것도 이 장치를 쓴 덕분이군요.”
밑으로 통하는 계단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지하에서는 훨씬 많은 듯싶었다.
“후, 이건 저로서도 제법 성가시겠는데요.”
마력 파장으로 이 아티팩트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지상의 군벌 세력 진지 규모를 생각하면 지하 스케일도 작지는 않겠지.
아티팩트에 발목을 잡히면, 그만큼 물리적으로 지형을 탐색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이 지하 시설이 미로 같은 구조로 만들어졌다면?
비상 상황을 대비하여 곳곳 함정이나 몬스터를 숨겨 두고 있다면?
‘아니, 이건 벙커처럼 보이니 무조건 그럴 거야. ’
다만 모든 일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병준은 루이 박을 봤다.
“혹시 이 아래 지형, 대충이라도 파악된 것이 있나요?”
“예, 정보원을 통해서 미리 조사해 뒀습니다.”
그 물음에 루이 박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이 적중하자, 병준은 옅게 미소 띠며 말했다.
“길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제가 다 뚫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