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65화>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는지 병준은 마검을 투영했다.
뜻밖에 이 화염 영역에서 꺼내든 마검은 마름모꼴의 비늘로 덮인 익시드 스케일.
마검을 바꿈과 동시에 병준은 우보법을 해제했다.
“크아아악!”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맹렬하게 덮쳐 오는 파이어 골렘.
놈을 피해 뒤로 물러날 때 검끝은 이미 바닥에 꽂은 상태였다.
파칭- 끼기기기깃!
땅바닥을 익시드 스케일로 긁으며 움직였다.
그에 따라 파이어 골렘이 흩뿌리는 불은 익시드 스케일이 낸 검흔을 따라 일어났고.
병준은 공격을 피하기만 하며 점점 많은 검흔을 남겼다.
불길이 닿으면 도화선의 심지처럼 작용하는 권능에 의해.
화르르르륵- 퍼퍼펑!
벽과 바닥을 온통 긁어낸 검흔을 따라, 불은 끝도 없이 타오르며 폭발했다.
그 화염 폭발 속 마력의 호흡으로 버텨 내면서.
놈을 보는 병준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드리웠다.
“통하네.”
기실 원리는 간단했다.
심지를 무수히 새겨, 놈의 화염을 끄집어낸다.
놈의 마력 핵이 불길을 지펴내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렇게 불길을 소모시키는 거다.
물론 아직 남은 열기도 강력하지만, 저 정도라면 자신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하지.”
마지막 남은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며, 그 손에는 브로든 글라시아를 꼬나쥐었다.
화르르륵! 쿠화하하-
그리고 놈이 마지막으로 짜낸 화염을 피하며.
냉기 속성을 실은 칼날을 파이어 골렘의 목에 꽂았다.
퍽- 콰자작!
“그어어어어어어엉!”
비명을 토하는 파이어 골렘.
심지어 놈의 머리통 위에 눈 모양이 생성됐다.
[ 대상에게 Ⓐ얼음의 표적 권능이 시전되었습니다. ]
기세가 붙자 병준은 마력을 실어 연격으로 놈에게 브로든 글라시아를 휘둘렀다.
콰직! 파치칭-
묵직한 한 방 한 방이 놈의 몸통에 깊게 박혀 들어간다.
거기에 열기가 약화된 놈의 몸통에 어리는 냉기는 카운터 대미지를 입히고.
“흐아아아아아!”
병준은 기합을 내지르며 묵직하게 최후의 한 방을 떨쳤다.
퍽! 파츠층!
“그으으으으…….”
주변에 퍼진 불길을 다시 빨아들이며, 놈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 발악했지만 이미 늦었다.
쿠쿵! 쿵! 쿠우우우-
끝내 무너지는 몸뚱어리.
[ 파이어 골렘 처치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마검석 2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그 앞으로 하얀 창이 떴다.
“후,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거 같은데. 이번에도 진땀을 뺐네.”
“주군! 괜찮으십니까?”
“아저씨, 어디 안 다치셨죠?”
걱정하는 명수와 루시에게 괜찮다며 고개 끄덕이면서도.
병준은 더 강해질 필요가 있겠다 실감했다.
그리고 시선을 옮겼다.
저기 동굴 출구를 막아서듯 비스듬히 꽂힌 마검.
“역시 지금보다 강해지려면 마검을 더 얻어야 되겠지.”
자신의 힘의 원천이 바로 마검들 이니까.
다가가자 염상 필드에 묻혀 흐릿하던 마검의 형상이 더욱 분명하게 보였다.
마치 용암 지대의 암석을 철봉처럼 이어 놓은 특이한 디자인.
그 연결 부위에는 마치 모자이크처럼 틈새가 있으며.
정말로 용암이라도 흐르는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영역에 발을 디디자 마치 성질이라도 내듯 불길이 거칠어졌다.
[ 화염 속성의 어떤 마검이 폭주합니다. ]
[ 퀘스트가 떴습니다. ]
제멋대로 구는 망나니처럼 난폭해지는 불의 기세를 맞서 가는 중에 하얀 창이 떴다.
[ 마검 제압 ]
*조건 : 파이어 골렘 처치 진행
*내용 : 폭주하여 현현한 마검을 제압
*진행 : 0/1
*보상 : 마검석 1개
“폭주하여 현현한 마검이라. 초치검에 때하고 비슷하네. 3층부터는 이런 녀석들도 그냥 필드에서 나오는 건가.”
물론 초치검에 비하면 이 녀석의 폭주야 애교 수준이다.
“명수야, 루시 데리고 잠시 물러나 있어. 아무래도 이 녀석과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예.”
화르륵- 콰아아!
이미 파이어 골렘에 힘의 큰 부분을 쓴 탓인지.
이미 꽤나 약해진 화력.
병준은 동굴의 바닥에서 흔들리는 불꽃을 지르밟으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아직 남은 화기가 그의 몸을 침투하려 했으나, 이를 막아 가며.
그렇게 마침내 놈의 바로 앞에 섰고 손을 뻗어 검병을 쥐었다.
화아아아악-
최후의 저항처럼 불꽃이 일어나서 삼킬 듯했으나 억눌렀다.
“가만히 있어.”
그리고 나지막하지만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하고는. 마력을 활성화해서 마검의 불길을 완전히 눌러 버리자, 눈앞에 줄줄이 창이 떴다.
[ 어떤 마검의 폭주가 당신의 힘에 의해 진압됩니다.]
[ 마검 제압_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마검석 1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 화령용아검(★★★★)의 진명이 드러납니다. ]
이윽고 흐릿해지더니 작은 조각만을 남기며 사라진 녀석.
그렇지만.
이제 그 인연이 닿았으니 여기서 끝이 아니리라.
‘초치검 때와 같다면…….’
[ 인연에 따라 마검석을 소모하여 특정 마검을 확정적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
[ 소모 마검석 : 10개 ]
“역시!”
그래, 이게 뜰 줄 알았다.
망설일 것도 없이 병준은 확정으로 녀석을 뽑았다.
휘우우우우우-
마검석이 빛줄기로 화하는 이펙트와 함께.
마검은 형체가 확실해지며 병준의 손에 쥐어졌다.
[ 화령용아검 ]
*계열 : 마력검, 소환검
*등급 : ★★★★
*인연도 : 312
*Ⓐ화염 예열
*Ⓐ파이어 골렘 소환
[ Ⓐ화염 예열 ]
*처음에는 휴면 상태이지만 마력을 실어서 가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강력한 화염 속성을 내뿜게 된다.
[ Ⓐ파이어 골렘 소환 ]
*화령용아검에 깃든 화기의 힘을 부여하여 암석에서 화염 속성의 골렘을 소환한다.
*Ⓐ화염 예열 권능이 충분히 시전된 상태로 시전 가능
*인연도와 마력에 따라 파이어 골렘 내구도와 공격력 차이
마검의 성능을 직접 봤기에 대략 짐작했지만.
“화염 예열 권능도 좀 특이하지만 역시 그런 것이었나…… 파이어 골렘 소환이라.”
인연도와 마력에 따라 그 성능에 다소 차이가 있다지만.
파이어 골렘 소환 권능이라니 병준의 입가에는 이내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이제 진짜로 끝난 거예요?”
그때 명수와 함께 아직 뒤에 피해 있던 루시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제 동굴을 막고 있던 녀석을 완전히 처리했으니, 이쪽으로 와도 괜찮아.”
병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는 총총 명수를 앞서 걷더니, 이윽고 손가락으로 동굴 출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를 지나면 출구가 나오고 거기 수정꽃이 있어요. 제가 안내할게요.”
루시를 따라 동굴 출구를 향해 나아가자 잠시 후, 바깥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트인 공간이 나왔다.
“저거예요.”
그리고 루시가 다시 곳곳을 가리키는 곳에는.
폭주한 화령용아검으로 막혀, 들어갈 수 없던 위치에 밖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 곳곳에 수정이 맺힌 듯한 꽃이 자라고 있었다.
“저게 완전한 시약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는 말이지.”
병준은 동굴 저편 통로 너머 바깥에 잠시 시선을 던졌다.
‘내전을 찾든, 관리자를 찾든 하려면 저기로 나가야겠지.’
다만 시간이 부족했다.
이미 파이어 골렘과 싸우고 마검을 제압하느라 마력을 제법 썼기에 한계가 다가온다.
‘이 너머의 필드를 둘러보는 것은 다음에 마검전에 들어와서 다시 해야겠군.’
지금은 꽃을 캐서 마을로 돌아가는 일이 우선이었다.
* * *
“오오, 가지고 오셨군요?!”
병준이 내미는 수정꽃에 존 촌장은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 꺼내자마자, 동굴의 그 불의 거인을 물리쳤단 말이 아닌가.
“그럼 이제 시약을 마저 완성하실 수 있을까요?”
병준이 크리스탈 파편을 보여 주며 묻자, 그제야 존 촌장은 정신을 차렸다.
기실 병준의 말이 아니어도 그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물론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효과도 상승하고 지속 시간도 지금보다 늘릴 수 있죠.”
“그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병준은 시약 크리스탈을 건네고는 다시 물었다.
“어느 정도나 걸릴까요?”
“못해도 닷새…… 더 걸리면 엿새쯤 걸립니다.”
엿새 걸린다는 말에 병준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하기야 현실에서는 구하기도 드문 물건이거늘, 그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
이른 시일 내로 된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다만 그렇다고 여기서 마냥 죽치고 기다릴 수도 없는 일.
슬슬 마검전의 쿨타임이 다 되기도 했고 말이다.
병준은 시선을 옮겨 명수와 앰버를 봤다.
이제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눈치였다.
“돌아가시렵니까?”
“아! 주군 벌써 가세요?”
……인 건 명수만 그렇고 역시 앰버는 좀 맹했지만.
“마력이 다해서 별수 없네. 나갔다 올 테니 너희가 당분간 3층에 좀 있어 줘.”
기꺼이 그리하겠다는 듯 대답하는 명수와 앰버.
“그럼 다음에 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넵, 잘 지키고 있을게여.”
그 모습을 보며, 이내 병준이 마력을 거둠과 동시에 마검전은 해제되었다.
* * *
“그…… 요새 만주나 북한 쪽 분위기가 꽤 심상치 않다는군. 몬스터 임팩트가 세게 터지고는 마경이라 불릴 정도였으니까.”
탁- 치이익!
코블러를 흔들며 이야기를 풀어놓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마나 농도가 높아져서 오히려 기회의 땅이 되었다 이 말이지.”
내용물을 털어 잔에 담고 내미는 그는 바로 황유길.
잔을 받으며 병준이 말했다.
“만주나 북한 쪽 이야기도 좋지만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한테 이번에 지명 의뢰 여러 개가 들어왔다면서요?”
“어, 맞아.”
기실 병준이 오늘 황유길의 던전 사무소에 온 이유.
마검전에서 나왔더니 부재중 메시지가 몇 개나 와 있었는데, 지명 의뢰가 무려 다섯 개나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널 지명한 곳 간판이 나름 쟁쟁하거든.”
황유길은 자판을 조작하더니 특유의 마침표를 찍는 듯한 동작으로 엔터키를 탁 쳤다.
띠링- 헌터앱에 알림이 왔고.
“자, 이 중에 하나 골라서 가기만 하면 된다고.”
브리핑이라도 하듯 황유길이 설명을 보탰다.
“일단 첫 번째는 그 유명한 백산 아이템 공방…….”
다만 이제 실력 못지않게 안목도 같이 올라, 어지간한 지명 의뢰는 눈에 차지 않았다.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지명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한 특별한 이득.
예컨대 통상적으로는 갈 수 없는 던전을 들어갈 수 있거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눈에 안 들어온다.
“음…… 별로 괜찮아 보이는 게 없는 거 같은…… 오?!”
그렇게 내용을 넘기던 중.
마지막에 있는 한 의뢰가 병준의 눈에 들어왔다.
[ 의뢰 번호 : 62547 ]
*내용 : 카리나 나무 기둥에 기생하는 카리나 웜을 제거하여 원목 확보
*장소 : 카리나 늪지대(추천)
*보상 : 물건 상태에 따라 최소한 시세 2배 이상 지불
*지명 의뢰(대상 : 정병준)
*조건 : 장인협회의 박재룡 장인이 동행하여 직접 의뢰품의 품질을 체크 및 가공
!!!추가!!! 이 의뢰는 장인협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송되었으며 모든 요청 장비 지급
!!!추가!!! 의뢰 품목을 장인협회 자재부까지 호송
“장인협회라.”
병준이 중얼거리자.
황유길은 바로 알아듣고는 말을 보탰다.
“아, 카리나 늪지대 의뢰 말이지. 보수가 괜찮긴 하지만, 사실 장인협회 지명 의뢰는 어렵기로 유명하거든.”
“장인이 동행해서 품질을 본다는 조건 때문인가요?”
“그래, 장인들이 좀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서.”
어느새 잔을 비운 병준에게 새로운 잔을 채워 주며.
“대신 그 조건에 맞춰 줄 수 있다? 그럼 단순히 보수 떠나서 괜찮은 의뢰인 건 확실해.”
황유길은 덧붙였다.
“장인협회는 한번 믿은 사람한테는 전적으로 퍼 주고, 신뢰를 보내니까 말이야.”
즉, 급이 되면 단지 돈으로만 책정할 수 없는 하이 리턴이 수중에 들어오는 의뢰인 셈.
“이번 의뢰, 이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