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58화 (58/200)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58화>

“여기 계셨군요. 오늘 간담회 느낌은 어떠신가요?”

발코니 난간에 팔을 대고 야경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문득 다가와서 묻는 이가 있었다.

돌아보니 어렴풋이 기억에 떠오르는 얼굴.

“혹시 양보아 씨?”

구룡회 사건 때 자신이 구한 헌터이자 동시에 양정남 국회의장의 손녀.

“기억하시네요. 진작 뵙고 인사드려야 했는데 그때 입었던 부상이 완치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몸 상태부터 신경을 쓰셔야죠.”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다닐 정도로는 회복했어요.”

두 팔을 들어 보이는 그녀.

당시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지금 활기에 찬 모습은 확실히 많이 나아진 듯싶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할아버지도 병준 씨를 꼭 만나고 싶어 하셨거든요.”

말하며 그녀는 홀 중앙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는 정갈한 감색 양복 차림의 어떤 노인이 몇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병준도 그리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 저 사람은?!’

그도 그럴 것이 양복이 터질 듯한 거구.

입술 두툼한 저 얼굴을 한번 보면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마침 슬쩍 고개를 돌리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듯한 미소는 덤.

병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보아가 홀 중앙으로 안내했고.

던전 상임위 간담회가 열리는 이곳 홀에서 국회의장 양정남과 헌터 특무대 국장 박철호가 모인 가장 거물급 자리.

거기에 병준이 합류했다.

“중요한 이야기 중이세요?”

그러자 그들의 이목이 단숨에 집중되었다.

“오, 드디어 만났구먼. 내 정식으로 소개하지. 국회의장 양정남이라 하네. 손녀를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

“정병준입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이죠.”

“하하, 겸손까지!”

양정남이 먼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낯설지 않은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가 끼어들었다.

“후후후, 저도 보고는 들었습니다만, 여러 운이 작용했다고는 해도 대단한 실력이더군요.”

시선을 옮긴 곳에 박철호가 짐짓 잊었다는 듯.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정식으로 인사하기 전이죠? 후후. 그쪽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친숙해서 그만.”

이내 그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철근 다발처럼 굵은 손을 먼저 병준에게 내밀었고.

“괜찮습니다. 특무대 국장인 박철호 씨는 모를 수가 없죠.”

악수하며 적당히 힘을 주어 잡은 손에서.

병준은 힘을 느꼈다.

상투적인 말이나, 태산 같은 기개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는 단단한 손.

서로 맞닿은 손만으로도 과연 소문처럼 그의 무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이게 한국의 톱 급이자 헌터특무대 국장의 레벨…….’

그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자신을 그에게 견준다면?

물론 대책 없이 밀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싸움이란 상황에 따라 여러 변수가 작용하며.

자신에겐 여러 마검들과 이젠 제검의 서라는 변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후후, 느껴지는 기운이 매우 좋군요. 힘도 좋고.”

순간이었지만, 밀리지 않은 병준의 기세에 박철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런 신인은 오랜만이기에.

“신예 헌터에 병준 씨 같은 분이 있다니 좋네요. 도움 필요한 일이 생기거든 연락 주세요.”

그렇게 한층 호의 짙은 목소리로 명함을 내밀었고.

“허, 찬밥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거늘 이 친구가 내가 할 말을 먼저 채 가는구먼.”

이내 양정남도 웃으며 말을 보태자 병준은 눈을 빛냈다.

마침 부탁할 것이 있었으니까.

“그럼 실례가 아니라면…….”

* * *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양복 차림 두 남자가 내렸다.

가슴에서 작열하는 태양 브로치.

“한 상무님, 이 모임에서 그 던전에 갈 수 있는지 확실하게 정해지는 겁니까?”

뒤따르는 큰 키에 창백한 피부의 남자가 묻자 앞선 걷던 한 상무라고 불린 남자.

한용기는 그 말에 몸을 돌리며 답했다.

“물론이지! 사전 작업은 다 해 뒀어. 오늘은 얼굴도장 찍고 확인하는 것뿐이야.”

보는 것만으로 흐뭇한지 한용기는 어서 오라는 듯 그에게 손짓하며.

“클리어리 가의 핏줄을 이은 자네 정도 인재가 왔잖나.”

한용기는 옆에 다가가 짐짓 어깨동무하고는 홀에 들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미 모든 로비가 마쳐진 상황이지. 게다가 레이드 비용도 전부 우리가 지불하는데, 생각이 있으면 위쪽도 안 된다고는 말 못하…… 음?”

한용기가 웅변이라도 하듯, 거기까지 열띠게 말했을 때.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추었다.

바로 국회의장 양정남과 헌터특무대 국장 박철호가 있는 곳.

“오, 저기 있군!”

오늘 이곳에 방문한 목적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한용기 얼굴에는 무척이나 반기는 기색이 번졌다.

‘이제 제이슨만 생추어리 던전에 꽂으면 클리어리 가문과 관계를 확실히 할 수 있어.’

그리고 그의 눈이 빠르게 주변의 이들을 스캔했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쏴야 하는 법.

박철호 옆에 있는 소녀는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이쪽 업계에서도 위쪽 바닥에 살짝 발을 걸쳤다 하면 절대로 모를 수 없었다.

“이름이…… 그래, 백수연이었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철호가 매우 공을 들여서 키우는 헌터이자, 사실상 헌터특무대의 돌격대장 같은 존재.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남자.

“응……?”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뒤돌아보고 있어서 누군지 도통 알아볼 수 없었다.

한용기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에 온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으니.

그는 멀리 보이는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어떻…… 잉?!”

그리고 뒷모습만 보인 남자 얼굴을 보는 순간, 한용기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온 경악성.

그도 그럴 것이 전에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하물며 직접 본 건 한 번이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다.

태양 길드의 상무인 자신의 계약 제안을 거절해서 무안 준 것도 모자라.

찌끄래기 주제에 보복하면 얌전히 당할 것이지, 감히 자신에게 엿을 먹인 괘씸한 놈!

“정병준……?!”

“아, 한 상무로군. 근데 둘이 아는 사인가?”

의아해하는 양정남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한용기는 뒤늦게 정신 차리고는 감정을 숨겼다.

하물며 박철호까지 특유의 미소를 띠며 말을 보탰다.

“후후후, 그러면 이야기를 더 빨리 진행할 수 있겠군요.”

“네…… 에?”

이야기라니? 대체 무슨?

계획대로 된다면 자신이 야심 차게 스카우트한 제이슨을 소개해야 하는데.

페이스에 휘말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생추어리 던전 건에 대해 말이네만?”

하물며 분위기를 보면 뭔가 이야기가 다 된 느낌.

것도 자신이 공을 들인 생추어리 던전 건 관련해서 말이다.

“아, 네. 안 그래도 생추어리 던전에 대해…….”

“악마종 몬스터만 나오는 그 던전을 열려면 새어 나오는 마기를 정화하는 비용이라거나 거기에 들어가는 소모성 완충재라거나 제법 많이 들지?”

“네, 그렇습니다만 태양 길드에서 전부 지불할 테니 의장님께서 지원을 좀 해 주시면…….”

한용기는 틈을 봐서 재빨리 자신의 할 말을 끼워 넣었다.

“그래. 그렇게 해 주겠네.”

“저, 정말이십니까?!”

양정남의 입에서 쉽게 답이 나오자 눈에 띄게 밝아지는 표정.

다만 이어진 말에.

“생추어리 던전을 여는 김에, 여기 정병준 헌터도 같이 들어간다면 말일세.”

순간 한용기는 벙쪘다.

그리고 뒤늦게 말뜻을 이해하고는.

어디서 숟가락을 얹어?!

라는 말이 목구멍 밑까지 차올랐으나 간신히 억눌렀다.

다만 한용기가 그 던전에 꽂으려 데리고 온 당사자.

“태양 길드는 제 레이드를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한 겁니다만, 지금 저더러 이런 자와 그걸 나누라는 겁니까?”

옆에 서 있는 제이슨은 불쾌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흘깃 병준 쪽을 볼 때는 더 노골적으로,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뼛속까지 우월의식이 뱄는지 아주 당연하다고 나오는 태도.

격식과 예의를 갖추어야 할 자리에서 저런 태도라니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병준이라면 더욱.

“이 사람, 누군가?”

양정남이 던진 물음에 다소 냉랭한 기운이 느껴졌다.

분위기가 뜻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자 한용기는 수습하기 위해서 얼른 나섰다.

“하하, 클리어리 가문 출신의 제이슨 정이라는 헌터입니다. 이번에 태양 길드에서 스카우트한 인재인데, 생추어리 던전을 개방해 주시면 들어가기로 한…….”

구질구질하게 이어지는 변명에 양정남은 긴말하지 않고 짧게 물었다.

“뭐, 저 친구가 누구인지는 충분하니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지.”

“하던 이야기라 하심은?”

생추어리 던전 건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 아니었나?

한용기는 그런 의구심을 품었으나 애초에 양정남에게 그 내용은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빚을 진 병준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

“이번 레이드에서 정 헌터도 같이 지원한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주지.”

“그, 그건…….”

곤란해하는 한용기.

옆에서 제이슨의 표정은 더 차가워지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저기 얼마나 로비해서 밑 작업을 해 뒀는데, 여기서 공든 탑을 차 버리는 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애써 화를 누르고, 한용기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 물론입니다. 참가할 수 있도록 세팅하죠. 하하, 하…….”

* * *

고급 세단이 자취방 빌라 앞에 멈춰 섰다.

이어서 운전석에서 기사가 내리더니 열어 주는 뒷문.

거기서 병준이 내렸다.

“오늘 감사드립니다. 의장님 덕분에 이야기가 잘 풀렸네요.”

“자네 같은 인재가 더 강해진다면, 그건 투자를 아낄 수 없는 노릇이지. 신경 쓰지 말게나.”

만약 한용기가 들었다면 레이드에 들어가는 잡다한 비용을 치르는 건 태양 길드라며 속을 또 끓였을 이야기.

하지만 병준과 대화 나누는 상대는 다름 아닌 양정남이었다.

“그럼 다음에 기회 되거든, 식사나 같이하세나.”

오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허허허 웃었다.

차창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세단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반지하 집으로 들어온 병준.

“후우, 오늘은 정말 얻은 게 많은 날이었어.”

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는 미소가 걸렸다.

“한용기가 다 세팅을 해 둔 덕분이려나. 그 인간도 살다 보니 쓸데가 있을 줄이야.”

피식 웃음이 나와 버렸다.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어. 너도 그렇게 생각해?”

문득 병준은 시선을 던졌다.

[ 제검의 서_??의 알 ]

*??

*부화율 : 10.02%

거실 한편 쌓아 둔 마력 핵 안쪽에 놔둔 알을 보자 부화율은 어느새 10퍼센트.

아직 알이지만 보다 보니 녀석에게 정이 들었다.

하긴 직접 마력 핵을 부수고, 정제된 마력을 먹여 가며 손수 키웠으니 당연한가.

“얼른 부화해라. 대체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얼굴 좀 보게.”

제검의 서의 정령.

혹여 제검의 서와 마검전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단서를 얻을지 모르니.

다만 조급히 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마검전과 제검의 서 모두 자신의 능력인 터.

자신은 양쪽 모두 궁극에 다다를 테니까.

이를 위해서는 결국 마검과 제검의 서 스킬을 많이 다루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해답은 던전 레이드!

마침 며칠 뒤에는 생추어리 던전 일정이 잡혔으니.

더구나 악마종이 나오는 그 던전에서는 마검전 3층을 가기 위한 타락의 돌 퀘스트도 같이 수행하게 된다.

병준은 새삼 주먹을 꽉 쥐며 다부지게 의기를 다졌다.

“후, 기다려지는데.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

* * *

철원 플랫폼은 세간에 잘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또한 출입이 제한되는 곳.

그렇지만 병준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허가를 받고 들어왔기에.

그렇게 오늘 레이드를 나름 구상하며 기다리는데.

“헌터 둘이 길잡이 둘이라, 이거 생추어리 던전에 이런 레이드를 하는 날도 오네.”

“그러게요. 그만큼 두 분이 강하다는 뜻이겠죠?”

대기실로 헌터 협회의 마크가 붙은 차림의 두 남자가 들어왔다.

길잡이 겸 짐꾼으로 파견된 헌터일 터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같이 들어가는 정병준입니다.”

“어, 먼저 와 계셨군요.”

그제야 먼저 와 있는 병준을 발견하고는 두 사람이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전 유준호라 합니다. 협회에서 주시 대상 던전 매핑을 맡고 있죠.”

“아, 안녕하심까! 전 조수인 김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복을 입은 몇 사람이 단단하게 잠긴 케이스를 옮겨 대기실에 쌓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이는 태양 마크 박힌 케이스들.

“이거 이번에 태양 길드에서 지원하는 보급품입니다.”

거기 대고 유준호가 카드를 찍자, 이내 잠금이 풀리더니.

철컥! 푸쉬이이이-

연기를 뿜어내며 케이스가 열리고 안에 있던 물품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각종 소모품을 비롯한 이런저런 효과의 포션까지.

병준의 케이스에서 한 마력 포션을 집었다.

외부에 따로 유통하지 않고 자체 개발하여 쓰는 포션이라 그런지 역시 효과가 괜찮았다.

“이 마력 포션들 저도 같이 써도 괜찮겠죠?.”

“물론이죠. 어차피 챙겨서 가니, 보시고 필요하면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병준은 태양 길드가 보급한 물품을 살폈다.

과연 하나 같이 다 최상품.

문득 간담회에서 본 그 마른 체구에 창백한 인상의 사내를 떠올리며 병준이 물었다.

“이런 지원을 해 주다니 지금 기다리는 그 헌터, 엄청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