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53화>
“이야기 들었어! 타이탄 데몬이라니, 너무 대단하잖아!”
들어가서 앉자마자 자신을 어지간히 기다린 모양인지.
황유길은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더니 늘 그렇듯 이번에도 폭탄주를 내밀었다.
“자, 이건 축하주야. 마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속내가 너무 훤히 보이는 모습에 병준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너무 유명해져 혹시 다른 던전 사무소로 가 버릴까 초조한 것인지.
하지만 밉지 않은 일관됨이다.
“걱정 마세요. 이대로 잘해 주시면 앞으로도 황 소장님이랑 같이할 생각이니까.”
“캬! 역시 우리 병준 아우야. 의리를 안다니까.”
어째 칭호가 병준 아우가 되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뭣보다 순수하게 비즈니스만 봐도 그는 유능한 편이었으니까.
그럼 내친김에.
“일단 의뢰 하나 맡으려는데, 목록 보내 주세요.”
“오케이, 어떤 걸로?”
말만 하면 그런 의뢰로 뽑아 주겠다는 듯 키보드에 두 손을 얹은 황유길.
“가급적 유령종 몬스터가 나오면 좋겠네요.”
마검전에서 3층 진입 단서로 얻은 악령의 돌.
그것의 봉인을 풀려면 유령 타입 몬스터의 마력 핵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기실 마검전에서 나온 뒤, 던전 사무소에 일찍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령종 몬스터라……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그가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더니, 이내 병준의 헌터앱으로 알림이 들어왔다.
그중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 의뢰 번호 : 53442 ]
*내용 : 그슨새의 혼이 깃든 깃털 조각 1KG 이상
*장소 : 안개 숲 던전(추천)
*보상 : 가장 마지막 거래 금액의 1.3배 지급
“황 소장님, 의뢰 번호 53442. 이걸로 할게요.”
“어, 하얀 숲 던전 의뢰로 하려고?”
“네, 보수도 이 의뢰가 제일 괜찮네요. 이걸로 하죠.”
병준이 의뢰 수락 버튼을 누르자, 황유길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혹시나 싶어서 묻는데 무작정 가는 건 아니지?”
“네?”
“유령종 사냥에는 준비가 필요하거든.”
병준은 그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며 옅게 웃었다.
하기야 왜 안 그럴까.
단순한 물리력이나 속성력만 가지고는 유령종에게는 공격도 제대로 안 박히는데.
그렇지만 병준에게는 유리검도 있고, 뭣보다 얼마 전에 블랙 본 소드를 얻은 터.
‘블랙 본 소드는 유령 계열에 강한 권능이 패시브로 붙었지.’
아마 블랙 본 소드의 소재로 인해 붙은 특성.
그 덕분에 병준은 유령종 사냥에 있어서는 딜링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유령종 중에서도 그슨새는 많이 까다로워.”
그 사실을 모르는 황유길이 말을 늘어놓았지만, 병준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걱정 마세요. 유령종 잡을 준비는 다 했거든요.”
“어, 그래?”
짧지만 간결한 대답.
그는 잠시 병준을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하긴 다른 헌터면 몰라도 너라면 문제없겠지. 참 나도 이런 말을 하다니.”
이어서 그는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웃었다.
“혹시 유령종 특공 아이템이라도 얻었어? 그렇다면 오히려 네가 던전 다 깨부술 걸 걱정해야 했나.”
황유길은 농담하듯 툭 말을 던졌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블랙 본 소드가 바로 그랬으니까.
유령종 특공 속성!
‘거참 귀신이 따로 없네.’
바로 저게 짬에서 나오는 촉이라는 건지.
그 사이 황유길도 처리를 다 끝냈는지, 탁! 엔터를 치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다 됐어. 아마 내일 중으로 바로 던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처리될 거야.”
“고마워요.”
병준도 옅게 웃었다.
‘내일이라.’
하얀 숲 던전에서 그슨새를 잡을 날을 기대하면서.
* * *
“여기 수속 부탁드립니다.”
헌터로서 플랫폼 출입에도 익숙해졌는지, 수속은 헌터증을 제시한 뒤 금방 처리되었다.
잠시 후 방송이 나왔다.
-하얀 숲 던전에 들어가는 헌터님들은 대기실 입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콘크리트 돔의 포탈 너머로 펼쳐지는 던전.
시작부터 안개가 자욱했다.
“여기가 하얀 숲이군. 역시 유령종이 나오는 곳 답네.”
던전에는 숲 지형이 많지만, 다 같은 숲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주는 곳이었다.
가시거리가 십여 걸음에 못 미치며 이렇게나 물씬 풍기는 으스스한 분위기라니.
“자칫 길 잃기 십상이겠어.”
물론 병준에게는 공간 장악의 감각이 있지만, 만에 하나 잠깐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쳐다가는 제법 번거로워질 터였다.
달리 말하면 신경을 쓰면서 다녀야 한다는 뜻.
다만 인벤토리에 있는 것을 쓰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침 잘됐네. 다음에 공대장님께 고맙다고 해야겠는걸.”
병준이 꺼낸 건 임대승에게 받은 선지자의 나침반.
[ 현재 위치가 선지자의 나침반에 각인되었습니다. ]
마력을 주입하자 나침반의 바늘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하나 늘어나더니 입구 포탈을 고정적으로 가리킨다.
“오, 신기하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거였군.”
그렇게 나침반을 세팅하는 사이.
무언가 지척거리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이어.
“그어어어어어…….”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정체는 좀비와 스켈레톤이었다.
그슨새는 사람을 현혹하고 생령을 빼앗는 유령종.
저 좀비나 스켈레톤도 아마 그렇게 그슨새에게 당해서 언데드가 된 희생자겠지.
그리고 다음 희생자를 맞으러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병준도 이제 많은 실전으로 다져진 헌터.
긴장하기는커녕 전자 담배를 물었다가 입에서 뗐다.
후우우욱-
연기를 한번 길게 내뿜더니 블랙 본 소드를 투영.
톱날에 검은색 광택에 뼈 재질의 칼이 위용을 드러냈다.
“키키키킷!”
그때 어디선가 어렴풋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지금 비웃은 거냐? 네가 안 보이는지 알지?”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을 조소하듯 병준은 툭 내뱉었고.
잠시 두 눈을 감았다 뜨더니 좀비 따위는 무시하고 지면을 박차며 달렸다.
높이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뼈 칼의 궤적.
패시브 아스트랄 블레이드 권능이 효과를 내자 터져 나오는 귀곡성과 함께.
“끼에에에에엑!”
톱날 검의 궤적이 지난 허공에는 도롱이를 걸친 흐릿하고 시커먼 형체가 선명해졌다.
“어디서 누구한테 장난질을 치고 있어!”
그렇게 드러나는 도롱이 속 흐릿한 새 형상.
[ 퀘스트가 떴습니다. ]
병준의 앞에 반투명한 하얀 칸의 퀘스트가 떴다.
[ 유령종 사냥 ]
*조건 : 유령종 몬스터를 처음으로 대면
*내용 : 유령종 몬스터의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고, 혼자 일정 숫자 이상을 사냥
*진행 : 0/100
*보상 : 마검석 1개
“퀘스트도 떴고, 그만 죽어라.”
병준은 블랙 본 소드에 힘을 주어서 놈을 반으로 갈랐다.
콰투투두두둑-
[ 유령종 사냥_퀘스트의 진행도가 올랐습니다. 1/100 ]
그러자 놈이 조종하던 좀비와 스켈레톤 몇 마리가 같이 쓰러진다.
털썩- 풀썩-
동시에 거기에서 허연 연기 같은 것들이 흩어졌다.
놈에게 묶여있던 원혼인지.
어쨌든 이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은 확실히 알렸다.
살아있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현혹하여 생령을 빼앗기 위해 근처에 있는 놈들이 몰려들 테지.
“그어어어억!”
“그어어!”
아니나 다를까 숲 여기저기 배회하며 흩어졌던 좀비나 스켈레톤들이 온다.
그러나 놈들은 그슨새가 부리는 미끼에 불과한 터.
“키키키킷!”
그 언데드 무리에 시선이 뺏긴 사이를 노려, 은밀히 다가와서 공격하는 그슨새의 습성.
과연 그랬다.
안 그래도 짙은 안개가 낀 터라 알아채기 힘든 터에 흐릿한 것들의 형체가 다가온다.
“일곱 마리, 아니 여덟인가.”
그렇지만 병준은 공간 장악 감각으로 그슨새의 접근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윽고 블랙 본 소드를 가슴 앞에 세우고는 호흡을 고르면서 움직이지 않는 병준.
“끼에에엑!”
기회다 싶었는지 안개가 녹아든 흐릿한 형체들이 병준을 향해 빠르게 덮쳐 오는 순간!
솨아앙- 솨앙- 솨앙-
블랙 본 소드의 검신에서 연달아 허연 형체들이 투사되었다.
[ 블랙 본 소드의 Ⓐ멘탈 디바우러를 발동하였습니다. ]
[ 블랙 본 소드의 Ⓐ멘탈 디바우러를 발동하였습니다. ]
[ 블랙 본 소드의 Ⓐ멘탈 디바우러를 발동……. ]
얼핏 보면 오히려 이쪽이 더 유령처럼 보이는 것들.
그것들은 길게 꼬리를 그리며 날아가 그슨새와 부딪쳤다.
퍼펑- 펑- 퍼퍼펑!
“끼흐엑?!”
흡사 풍선 터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끼에에에엑!”
“끄에에엑!”
높은 주파수 비명이 그슨새 무리로부터 터졌다.
이내 하나둘 은신이 풀리고.
도롱이를 뒤집어쓰고 그 안에 흐릿한 새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검전에서 아이스 프테라를 상대로 멘탈 디바우러를 썼을 때보다 더 극렬한 반응.
아무래도 놈들이 유령종이라 그런지 몰라도.
병준으로서는 놈들을 쉽게 사냥할 절호의 찬스였다.
우우우우웅-
검은 뼈로 만들어진 마검도 어서 유령종 몬스터를 포식하고 싶다 보채는 듯.
그 칼날의 떨림이 손잡이로 여실히 전해졌다.
“걱정 마. 실컷 먹게 해 줄게.”
[ 블랙 본 소드가 당신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
그렇게 마력을 싣자, 블랙 본 소드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묵직함.
[ Ⓐ아스트랄 블레이드에 의해 유령종 몬스터에게 대한 대미지가 더 강력해졌습니다. ]
그 마력의 무게를 느끼며.
병준은 블랙 본 소드를 휘둘러 그슨새를 벴다.
퍼억- 후두두둑-
톱날이 새겨진 칼날에 의해 무참하게 찢겨나가는 도롱이와 시커먼 새의 형체.
비명조차 없이 즉사였다.
유령종 몬스터에게 이런 손맛을 느끼게 해 주다니 과연 특화 대미지라 할까.
녀석이 쓰러짐과 동시에 다가오던 좀비나 스켈레톤이 저절로 허물어지지만.
그 와중에 거리를 좁혀 오는 녀석도 있었다.
“그어어어어억!”
“크어어어!”
하지만 그래 봤자 잡몹들.
공간 장악의 감각으로 다 피해 내며 병준은 나머지 그슨새를 전부 처리했다.
[ 블랙 본 소드의 인연도가 올랐습니다. ]
[ 유령종 사냥_퀘스트의 진행도가 올랐습니다. 7/100 ]
[ 유령종 사냥_퀘스트의 진행도가 올랐……. ]
그리고 마지막 그슨새를 찢어 버리는 것과 동시에.
털써억-
좀비와 스켈레톤도 널브러지고 안개가 자욱한 하얀 숲에는 병준 혼자만 남았다.
첫 유령종 몬스터 사냥.
“깔끔했어.”
자화자찬, 아니 담백한 사냥 평가를 하며 병준은 그슨새 사체에서 부산물을 챙겼다.
검은 형체에서 떨어진 그슨새의 깃털은 의뢰 물품이니 챙겨서 인벤토리에 넣고.
이어서 깃털 사이로 보이는 흐릿한 회색 응어리를 집어 든다.
처음에는 연기가 뭉친 듯 불투명하게 보였지만.
마력을 부여하자, 그것은 손톱 크기 돌멩이가 되었다.
바로 그슨새의 마력 핵!
이것이 기실 다른 던전이 아니라 유령종 몬스터가 나오는 곳을 선택해서 온 이유였다.
“처음에는 연기 같더니만, 결정으로 맺히니 보통 마력 핵하고도 거의 비슷하네.”
중얼거리며 병준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마검전에서 방어전 퀘스트를 하고 얻은 악령의 돌이다.
그것은 꺼내자마자 유령종의 마력 핵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녀석은 미세하게 진동했고.
좀 더 가까이 붙여 보자, 그슨새의 마력 핵은 다시 희끄무레한 연기 형태로 풀리더니 악령의 돌에 흡수되었다.
[ 악령의 돌의 봉인이 아주 약간 풀렸습니다. 0.9% ]
“이런 식이란 말이지.”
드디어 돌의 봉인이 살짝 풀리며 느껴지는 마력.
이대로 그슨새의 마력 핵을 모아 흡수시킨다면, 머지않아 봉인이 풀리리라.
“자, 그러면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