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52화>
아이스 프테라 100마리를 사냥한 보상으로.
손등에 마검석이 새겨진다.
[ 날카로운 사냥꾼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마검석 1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사실 더 빨리 해 낼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조금 더 걸렸다.
블랙 본 소드의 시험도 중요했지만, 본래 필드로 나와서 하려던 일이 있었기에.
덕분에 미니맵 보는 병준의 표정은 후련한 듯싶었다.
“마검전에 있는 시간도 꽤 지났는데, 쿨타임이 다 되기 전에 늦지 않아 다행이야.”
반투명한 미니맵.
그 한쪽에는 어두운 부분이 전부 밝혀졌지만, 그 너머 더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수직 절벽.
이곳 너머가 바로 2층 필드 끝이었다.
“가자, 앰버. 협곡보다 더 험준하니까 잘 따라와.”
“넵!”
병준은 다시 움직였다.
얼음 절벽의 돌출된 부분을 박차며 뛰어오른다.
파팟- 츠파- 파파팟-
오라를 북돋우며 끌어올린 신체 능력은, 거칠고 가파른 절벽을 단숨에 치고 나가서.
이내 병준은 얼음 절벽의 정상에 다다랐다.
뒤이어 조금 가쁘게 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앰버.
그리고 앞에 펼쳐진 광경.
기대한 것보다, 아니 예상치 못한 장관에 넋을 놓고 말았다.
“아…….”
입을 살짝 벌린 채 가만히 눈동자에 담고 있는 모습.
“……아름답네.”
절벽 너머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병준도 중얼거렸다.
세상 가장 푸른빛.
그것을 모아서 이 너머에 담아 놓은 듯한 잔잔한 수면.
끝도 없이 펼쳐진 그것을 보노라면, 근심이 날아가고 가슴이 트이는 듯싶다.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에 병준은 흐뭇하게 웃었다.
“저, 경계의 끝에 온 것은 처음이에요.”
엠버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조그만 두 주먹을 가슴 앞으로 모아서 꽉 쥐었다.
마치 바다를 처음 보는 듯 계속 응시하는 눈.
이어서 고개 돌려 그 맑고도 초롱초롱한 에메랄드빛 눈으로 병준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감사드려요.”
“응?”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주군!”
어지간히 감동했는지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은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관리자라는 녀석이 이렇게 감동하다니, 반대로 된 거 아닌가 싶지만 어떠하랴.
“여기서부턴 좀 걷자.”
“네!”
병준은 바다를 따라 나란히 절벽 위를 거닐었다.
그 뒤를 따르는 건 앰버.
미니맵도 가장자리를 따라서, 병준이 가는 방향으로 점차 어두운 부분이 밝아졌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가다 갑작스레 병준이 멈칫했다.
“응?”
“왜 그러세요, 주군?”
“잠깐만…….”
미니맵을 보며 걸음 다시 옮기는 병준.
그도 그럴 게 미니맵 한쪽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걸쳐서 푸른색 문양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쪽으로 다가가자 또렷해진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 푸른 문양이 있는 방향, 절벽 틈새로 비스듬히 길이 있었다.
“앰버, 이게 뭔지 알겠어?”
혹시나 싶어 물어봤지만, 고심하더니 앰버는 약간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모르겠어요.”
“뭐 죄송한 것까지 있나. 내려가 보면 되지.”
병준은 천천히 그 틈새 길로 내려갔다.
그러자 뒤와 옆이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채로 앞이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 끈 건.
“마검주?”
그리고 그 트인 곳에는 마검주와 함께, 원형으로 층계를 쌓은 제단이 있었다.
[ 얼음 절벽 끝_마검주가 등록되었습니다. ]
제단으로 가니 중앙에 위치한 꺼진 횃불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제단이나 횃불도 그렇지만, 이런 곳에 괜히 마검주가 있지는 않을 텐데…….”
묘한 끌림이 느껴진다.
[ 퀘스트가 떴습니다. ]
그리고 자신의 마력에 반응하여 미약하게 불씨가 피어오르는 순간, 반투명한 창이 떴다.
[ 영역 수호 ]
*조건 : 필드 끝의 특정한 장소에 위치한 제단 발견
*내용 : 횃불의 마력 영역이 완성될 때까지 몰려드는 망령 무리를 막아 내기
*진행 : 10:00:00
*보상 : 마검석 1개, 마검전 3층 진입의 단서
새로운 종류의 퀘스트.
[ 시험을 시작하려면 횃불에 마력을 주입하십시오. ]
연이어 뜬 반투명한 창.
그럼에도 그 어느 것도 병준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보다는.
“마검전… 3층 단서라고?!”
뜻밖에 마검전 3층으로 가는 단서를 얻게 됐다니.
“흠, 그렇게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안 해 볼 수 없잖아.”
병준은 즉시 제단 중앙 횃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화하학- 화르르륵!
불씨는 순식간에 마력을 머금고 짙게 타오르나 싶더니, 횃불에서 푸르스름한 막이 번졌다.
그러자 일대에 그 푸르스름한 막의 영역이 얹힌다.
이어서.
발밑으로 진동이 전해지고 절벽 곳곳에 균열이 생기며.
[ 영역 수호_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
마침내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창이 열렸다.
[ 남은 시간 09:59:99 ]
퍽! 푸스슥- 후두두두둑-
이내 사마귀처럼 좌우로 벌어지는 하악골이 파편을 털어내며 구멍으로 나왔다.
한 마리 나오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뒤엉키며, 버글거리는 건 지네 몬스터였다.
수십 쌍의 다리는 마치 물결치듯 넘실거렸다.
그야말로 징그러운 광경.
그걸 보는 순간 앰버는 기겁하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으…… 으으! 저, 저건 아이스 웜이에요.”
“아이스 웜?”
그리고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네, 저렇게 땅속에 있다가 마력에 반응해서 나오는데, 열기에 약해요. 눈알이랑 갑각 마디 사이가 약점이고요.”
그 사이 더듬이를 떨어 대며 몰려오는 아이스 웜.
프스스슷- 스스스스슷-
앰버는 울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발을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물러나 있어.”
“주군은 안 무서우세요?”
병준은 그저 웃었다.
“글쎄.”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성큼 나서는 병준.
“열기에 약하고 눈알과 마디 사이가 약점이라…….”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해답을 알고 있는 문제가 무서울 이유는 없지.”
비스듬히 떨친 손에서 곧게 뻗어 나오는 깊은 붉은색.
병준의 손에 레이피어 같은 형태의 불싸라기검이 투영되었다.
“간만에 불쇼 한번 해 볼까.”
앞발을 디디고 상체를 약간 틀고서 검극은 앞으로.
이어서 마력을 싣자, 검극에 서서히 불꽃이 맺히더니 소용돌이치며 기세를 높인다.
그리고 찌르는 일격!
화르륵- 쿠화화!
맹렬히 회전하며 덮쳐 가는 불꽃의 파편들.
그것들은 시야를 아예 가릴 정도로 거세게 퍼지며, 아이스 웜을 덮쳐 갔다.
‘어?! 이 정도 화력이라고?’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해진 위력에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그동안 인연도가 높아지고, 마력이 강해진 효과를 여기서 톡톡하게 보는 건지.
[ 불싸라기검의 인연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
심지어 그게 또 불싸라기검 인연도를 높여준다.
“끄에에에에에엑!”
“끄헤에엑!”
왠지 위력이 더 강해졌다고 느끼면 착각일까.
아이스 웜 무리는 비명을 토하며 동그랗게 말렸다.
불싸라기 권능은 멎었지만.
여남은 불씨 파편은 바닥과 아이스 웜 사체에 붙어, 마치 벽처럼 드리웠다.
그로 인해 열기를 피하려다 아이스 웜끼리 마구 뒤엉키며 막히는 진로.
레이드에서 체득한 심득이 고스란히 발휘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잠시 번 병준은.
팟- 츠파아앗-
몇 번 크게 도움닫기를 하여 불의 벽을 넘어가더니, 아이스 웜에게 꽂아 넣는 찌르기 공격.
퍼- 퍽! 아이스 웜의 붉은 눈알이 터지고.
스스슥- 츠아앗! 갑각 사이 마디로 찔러 넣은 칼날은 놈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씌에에에엑!”
칼날 자체에 화염 속성이 깃들었기에 바로 즉사하는 아이스 웜들.
그리고 쿨타임이 끝나면.
여지없이 불싸라기검의 끝이 향하는 방향으로 꽃잎이 날린다.
콰촤하하하-
전과 비교해 한층 강렬하게 일대를 휘감는 불씨!
그렇게 단 한 놈조차 푸른 영역으로 용납하지 않는 사이.
[ 남은 시간 05:02:99 ]
영역 수호 퀘스트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막 5분 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무난하게 성공…….”
하나 싶은 그때!
쿠구구구구구구-
지축을 흔드는 거친 진동!
그와 동시에 아이스 웜들이 흠칫 더듬이를 떨며 급히 땅을 파고 물러났다.
“이거 막판에 와서 뜻밖의 손님이 오는 모양이네.”
병준도 잠시 검을 멈추었다.
땅 울림이나 아이스 웜의 조짐이 아니라도 느껴졌다.
거대한 놈이 온다는 걸.
“하긴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지.”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한쪽 지면으로 시선을 향하는 병준.
그때.
쾅! 쿠와아아아-
바로 그곳에서 다른 놈보다 네댓 배는 거대한 아이스 웜이 솟구쳐 나왔다.
특히 시커멓게 번들거리는 갑각은 장갑차를 연상케 할 정도.
굳이 이름 붙이면 그레이트 아이스 웜이 아닐까.
심지어 다른 아이스 웜과는 다르게, 놈은 불씨를 보고도 피하려 하지 않았다.
불싸라기 권능의 여파로 이 주변에는 불씨와 열기가 있건만,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
콰하하하하-
갑각으로 불씨를 튕겨 낸다.
그러면서 흉악스러운 기세로 병준을 덮쳐왔다.
그리고 아래쪽 마디와 다리로 지탱하면서 상체를 곧추세우더니.
두터운 몸으로 병준을 짓누르겠다는 듯 처박았다.
쿠와아앙!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앗?! 주군, 괜찮으신가요?!”
앰버가 걱정하며 소리쳤지만, 이내 드러난 모습.
그레이트 아이스 웜 대가리 위에 병준이 서 있었다.
“구우우웅?!”
병준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는지, 수십 개 겹눈을 번뜩이며 두리번거리는 놈의 머리통.
바로 그 위에서.
갑각이 붙은 화염 내성이 번거롭지만 상관없다.
두 손으로 불싸라기검의 손잡이를 잡고, 검극을 아래로 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병준.
[ 남은 시간 2:34:65 ]
시간은 3분도 남지 않았다.
머리통과 그 바로 아래 갑각 사이 틈을 노려.
병준은 마치 불씨를 정련한 듯 붉은 검신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푸화홧- 퍼펑!
속살에 닿자 칼날에 깃든 속성에서 불꽃이 터지고.
“끄에에에에엑!”
놈이 몸을 뒤집고 마구 비틀어 대며 비명을 질러 댔지만.
푸슈슛- 콰아악!
불싸라기검을 더 깊이 박아 넣으며, 그걸 손잡이처럼 잡고는 버텨 내는 병준.
“갑각이 화염 면역이라면 이런 방법도 있거든.”
그리고 칼날이 달아오르며 불꽃이 넘실거렸다.
“……안에서부터 태운다.”
놈의 머리통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불씨.
그 일부는 밖으로 흩날리며 대부분은 칼날과 검극을 통해서 갑각 사이로 쏟아졌고.
퍼펑- 퍼퍼펑! 퍼퍼퍼펑!
갑각 속에서 불꽃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열기와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쓰으으으으으…….”
요동치듯 마구 흔들어 대는 상체에서 힘이 빠지고.
쿠우웅!
놈의 몸이 거목처럼 무너져 내렸다.
[ 남은 시간 0:13:04 ]
“13초 남았네.”
남은 시간을 기다리고.
3…… 2…… 1…….
[ 영역 수호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마검석 1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손등에 맺히는 익숙한 마검석의 문양을 바라봤다.
다만 마검석도 좋지만, 이번 퀘스트에서 진짜 기대한 보상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마검석 3층의 단서!
대체 뭐가 나올지?
[ 보상으로 악령의 돌을 습득하였습니다. ]
기다렸더니 발치에 파란 돌멩이가 떨어져 구른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 들자 새로운 창이 떴다.
[ 악령의 돌 ]
*마검석 3층 진입 재료로 봉인된 마력을 활성화하여 내전 제단에 안치
*현재 봉인된 상태
*봉인된 마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유령 계열 마력 핵이 필요
“봉인된 상태라.”
이를 풀기 위해 유령 계열 몬스터의 마력 핵이 필요하단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블랙 본 소드가 있는 병준에게 유령종 사냥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로 다름 단계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령종 몬스터가 어느 던전에서 나오더라…….”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그 순간, 횃불이 푸른 막을 흡수하며 머금더니.
“응, 뭐지?”
파아아아앗-
제단의 횃불이 상공으로 빛기둥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높이 일어선 빛기둥에서 한 줄기가 방향을 틀었고.
그것은 필드 아주 먼 곳 어딘가 내리꽂혔다.
[ 마검전 3층 개방_연계 퀘스트가 떴습니다. ]
동시에 병준의 눈앞에는 또 다른 창이 드리운다.
[ 마검전 3층 개방 ]
*조건 : 마검전 3층 개방을 위한 재료 수집
*내용 : 마검전 3층 개방을 위한 재료 3개를 찾아서 봉인을 해제하여 내전 제단에 안치
*진행 : 0/3
*보상 : 마검석 3개
“하나가 아니었군. 하기야 무려 3층으로 가는 길인데 하나일 리가 없지.”
그렇게 중얼거릴 때는 이미 주변은 거의 투명해진 상태.
어느새 마검전 쿨타임이 다 되어가는 것이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필드의 끝도 봤고.
덕분에 마검전 3층의 단서도 얻었으니 성과가 컸다.
“주군!”
뒤늦게 헐레벌떡 달려오는 앰버의 귀여운 얼굴은 덤인가.
“미안하지만 같이는 못 돌아가겠네. 쿨타임 다 되면 다시 올 테니까 먼저 돌아가.”
병준은 그렇게 웃으며 말하고는 부산물을 인벤토리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