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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45화 (45/200)

<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45화>

병준은 내심 놀랬다.

화랑 길드가 큰 길드긴 했지만, 폐쇄 레이드의 사업권을 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던전 폐쇄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닌 만큼, 경쟁도 치열했을 거다.

그 과정에서 얻는 던전 핵을 비롯한 질 높은 부산물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리고, 그 레이드에 병준 헌터님도 우리 파티로 초대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를요?”

설마 싶으면서도 막상 직접 듣게 되니 조금 얼떨떨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 여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수익이 큰 만큼, 그 권리를 독식하기 위해서 외부 헌터를 기용하지 않는 업계의 추세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주 드물게 전력 부족으로 몇몇 자리가 나지만, 그마저 인맥으로 채우지.

‘즉, 그 빈 자리를 내가 차지하게 된 모양이군.’

병준은 머릿속으로 관련 내용을 계산해 봤다.

이 레이드로 얻을 이해득실을.

병준이 잠시 침묵하자 전혜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실 거죠? 네? 네?”

이환우도 슬쩍 태블릿 PC를 꺼내며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계약 조건을 지금 바로 보여 드릴까요?”

이런 좋은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있나.

설령 거절하더라도 조건은 봐 두는 편이 좋겠지.

“그러죠.”

“그럼 보시면서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업계 표준보다 좋은데 이거는…….”

이내 이환우는 병준에게 태블릿 PC를 보여 주며 계약 조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병준의 입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 * *

“그럼 이렇게 진행하도록 하죠.”

자리를 옮겨 화랑 길드의 한 회의실에서, 병준은 책상 건너로 이환우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앞에는 각각 계약서 한 부씩 놓인 상황이다.

피차 검토는 다 한 터.

사인한 서류를 교환하면서 그렇게 계약은 잘 마무리됐다.

“감사합니다. 계약금은 오늘 중에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서를 챙기며 이환우가 말하던 그때.

철컥-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계약은 다 끝난 모양이네요?”

끄덕이는 이환우의 대답.

“오, 그러면 이제 병준 씨랑 같은 파티라는 뜻?!”

기대감에 찬 어조로 묻는 사람은 잠시 자리를 비켜 있던 전혜린이었다.

“그렇게 됐네요. 이번 레이드에서 제가 임시로 들어갈 팀은 혜린 씨가 파티장이죠? 잘 부탁합니다.”

“에이, 그냥 뒤치다꺼리할 사람이 필요해서 맡은 거지, 저희는 그런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에요.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악수를 청하며 내민 병준의 손을 전혜린이 맞잡았다.

그렇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는데, 회의실에 들어온 사람은 전혜린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

“으흥, 병준 씨? 자기가 저번에 혜린이 파티를 구해줬다던 바로 그 헌터시구나.”

자기? 특이한 말투에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혜린이는 내게도 친동생 같은 아인데, 정말 고마워요.”

콧소리 섞인 목소리에 전혜린보다 큰 키. 그리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전 이서진이라고 해요. 이번 팔공산 레이드에서 공략 1팀의 척후를 맡았죠.”

말하며 손을 내미는 그녀.

“정병준입니다.”

병준은 악수를 받으며 간단한 눈인사를 나누었다.

“병준 씨, 이 언니랑 친하게 지내요. 무려 B급 헌터라구요!”

“에이, 쑥스럽게 왜 그래. 마이너스 B라 턱걸이야.”

이서진은 손을 내저었지만, 전혜린이 치켜세울 만도 했다.

‘B급이라면 상급 헌터네.’

물론 상급에서 아래쪽이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하물며 이번 공략에서 공략 1팀에 속했다지 않은가.

다시 말해 던전 핵을 찾아서 처리하는 주력 공략팀의 일원이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이 레이드에는 주력 멤버라는 뜻이겠지.

전혜린을 구했던 덕인지, 그녀는 먼저 호감을 보이며 병준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화는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띠링-

문득 울린 메시지 착신음에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필 이런 때 연락이 오고 그러네.”

“일이 있으신가 보죠?”

“네, 레이드 관련해서 보자고 매니저가 부르네요.”

골치 아프다는 듯, 잠시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 그녀.

마치 자주 이런 일이 있었는지.

하아, 한두 번도 아니고. 라며 작게 푸념하던 이서진은 이내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봐요.”

“네, 그럼 레이드 때 다시 뵙기로 하죠.”

그리고 이미 아는 사이인 전혜린과 이환우에게 간단하게 눈짓을 한 뒤, 그녀는 회의실을 나섰다.

* * *

“흠, 밀회도 아니고 왜 이런 구석으로 불렀대.”

엘리베이터를 타서 층을 이동하고 복도를 한참이나 가로질러 다다른 방 앞.

이서진은 작게 노크를 했다.

“김 매니저, 나 왔거든. 왜 사람을 이런 곳으로 불렀어? 답 없어도 들어간…?!”

그리고 문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무슨?!”

척후를 맡은 능력자답게, 이 방에서 풍기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순간, 돌아서 나가려 했으나.

츠팟-

어둠 속에서 번뜩인 은빛이 한층 빨랐다.

“…크흑!”

“쉿!”

순식간에 허공에 붉은 수가 놓이고, 이서진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입술 위에 내려앉은 하얗고 곧은 검지에 마지막 비명조차 막혔다.

“옳지, 옳지. 그렇게 조용히.”

이내 쓰러진 이서진 아래로 피가 자신의 영역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앞에 드리우는 두 실루엣.

한쪽은 선이 각진 근육질 거구의 남자이고.

그 옆은 대조되듯, 여리여리한 몸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피 냄새는 언제나 향긋해. 뒷정리 맡겨도 되겠죠?”

그 실루엣 가운데, 여자가 묻자 남자는 이서진의 시체에 무언가 액체를 뿌렸다.

그러자.

치이이익-

시큼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나 싶더니, 살벌하게 끓으면서 삽시간에 녹아내린다.

“물론이다. 주은화, 너야말로 임무 수행 빈틈없이 해내라.”

“나도 알아요. 남궁 회장이 붙잡히면서, 우리 쪽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거.”

주은화라 불린 여자는 고개 돌려 남자를 보더니 되물었다.

“그래서 오상철 씨랑 같이 일하고 있는 거잖아요.”

“……해내리라 믿는다.”

오상철의 격려에 미소로 답하고서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끼이이익- 철컥!

저절로 닫히는 문을 뒤로하면서 드러난 모습.

복도를 얼마간 걷자, 마침 지나가는 화랑 길드의 사무직원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여기 계셨구나.”

“네?”

“아까 파티장님이 찾으시던데, 혼나지 마시고 얼른 가 보세요, 이서진 헌터님.”

가느다란 눈매로 서글서글 미소를 드리운 그녀의 얼굴.

“어머, 그러면 가 봐야지. 알려 줘서 고마워요, 자기.”

음색과 어조까지도, 방금 전 살해 당한 이서진의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 * *

수백 년은 방치된 듯한 콘크리트 장벽은 곳곳이 허물어지고 덩굴이 자라나 있었다.

수 킬로미터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또 다른 콘크리트 장벽 역시 거의 비슷한 상태.

팔공산 필드형 던전의 소멸 결정이 내려진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장벽에 시행한 특수한 마력 공법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던전이 빠르게 팽창했기에.

덜컹- 쿠르르-

그리고 그 영역 안에 터놓은 길로 화랑 길드의 수송차량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곧 두 번째 콘크리트 장벽 통로를 지난다.

“저기 보이는 장벽이 마지막입니다. 저쪽 통로 바로 옆에 레이드 베이스캠프가 있죠.”

“흠, 그렇군요.”

“기초 레이드는 몇 주 전에 시작했거든요. 던전 핵 위치도 특정했고 이제 진짜 레이드에 들어가는 거고요.”

운전대 잡은 길드 직원이 그렇게 말하자, 이에 뒤질세라 뒷자리의 전혜린이 덧붙였다.

설명을 들으며 병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비 물량이 굉장히 많네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동하는 차량에 실린 장비만 해도 컨테이너 몇 개의 분량이었다.

하물며 마지막 장벽 통로를 지나 캠프에 들어서자.

“하하, 여기는 더 많죠?”

이미 지금 들여온 것의 몇 배에 달하는 장비가 있었다.

대부분 부산물을 위한 것.

예를 들면 방치되면 이내 산화하는 몬스터 사체를 보존하기 위한 마력 용기.

식생을 이식할 캡슐들.

그리고 그 부산물을 옮기기 위한 짐꾼들의 전용 장비까지.

스케일을 보면 아예 던전을 통째로 뜯어서 가져갈 생각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기야 어차피 소멸시킬 던전이고, 뭐든 뜯어내면 돈이니 길드로서는 당연하겠지.

“그럼 헌터님들, 고생하시고 무사 레이드 도십쇼.”

직원의 인사를 뒤로하고 차에서 내리자, 전혜린이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일단 보급고로 가요.”

“보급고요?”

“네, 이따 거기서 팀원이랑 만나기로 해서요. 게다가 병준 씨 장비도 챙겨야죠.”

장비라.

마검이 있는 자신에게 딱히 장비는 필요 없지만.

“주력 공략팀도 개인적인 아이템 외에도 거기서 쓸 만한 장비들을 챙기거든요.”

“설마 그냥 주는 건가요?”

“에이, 설마요. 물론 큰 공을 세우면 공대장 허가로 주기도 하지만 드물죠.”

“공대장 허가로 되는 방식이라면 부담도 있겠네요.”

전혜린은 고개 끄덕이면서도 곧장 덧붙였다.

“그래도 대형 길드 좋은 게 뭐겠어요. 이런 거는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죠.”

그리고는 귀로 손을 가져다 대더니.

“사실, 알게 모르게 계속 가져다 쓰는 사람도 많아요.”

라고 말하면서 웃어 보였다.

이어서 자신이 써 본 장비들을 손으로 꼽아 가며, 늘어놓기 시작하는 전혜린.

뭐, 쓸 수 있는 것을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럼 그 보급고라는 곳으로 한번 가 보죠.”

* * *

전혜린에게 이런저런 레이드 정보를 듣는 사이, 보급고에 도착했다.

겉보기는 공장 창고나 가설 건물의 느낌.

그렇지만 방어형 마력회로를 부설하여 보안이 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출입 시설 역시 그랬다.

보안 절차를 거쳐 들어가자 다소 어둡지만, 내부는 마트처럼 깨끗하고 넓었다.

“안녕하세요, 헌터님. 찾는 아이템 종류가 있으세요?”

상주해 있는 안내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특별히 찾으려는 장비는 없고, 그냥 뭐 있는지 구경하려고요.”

“그럼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주세요.”

병준은 안내원에게 가볍게 목례 하고, 옆 진열대의 아이템을 살펴봤다.

나무를 그대로 뜯어 만든 듯 거친 통파, 앤티크 한 단검, 뱀 가죽 문양 부츠 등등.

저마다 코팅된 상태창이 뜨지만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음, 마력 소모가 너무 크네. 이 정도는 마검 쪽이 더 효율적이야. 이건 지속 시간이 너무 짧고…….”

새삼스럽게 마검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다시금 확인할 기회가 됐달까.

하지만 모두 그렇지만은 않았다.

“여기는 이게 전분가? 그러면 이쪽은…… 음?”

그리고 그중 흔하지 않은 디자인에 바로 눈길을 끄는 물건.

“바늘? 아니, 이 정도면 꼬챙이나 말뚝이라 봐야 하나?”

푸른 꼬챙이에 시선이 닿자 옵션 창이 떠올랐다.

[ 스턴 니들 ]

*종류 : 장비 아이템

*계열 : 보조, 투척

*등급 : 희귀

*특수 : 멘탈 스턴 링크

*아라그마 벤크에 의해 제작 및 아이템 창 각인

[ 멘탈 스턴 링크 ]

*피를 묻힌 상대와 일시적으로 마력회로를 연결한다.

이때, 멘탈 피해의 심도에 따라 스턴이 발동.

“오, 이런 것도 있었네.”

나름 재미있는 효과의 물건도 있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확인하는 사이.

안내원이 전혜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혜린 헌터님, 그리고 보니 공략 5팀 박지호 헌터님께서 남기신 메모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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