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31화>
마력 가닥이 소용돌이를 그려 내며 병준에게 몰려든다.
가히 한 공간을 구축한 무게감에 짓눌려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압력을 다 감내할 필요는 없었다.
포스 노바의 권능으로!
콰아아아-
시커먼 폭우와 바다를 욱여넣은 불꽃처럼 빛은 맹렬히 타올랐다.
다만 빛줄기로 방출하더라도.
“크으윽!”
그 힘의 뿌리로 지탱하는 건 육신과 마력회로이기에.
마력이 쌓일 때와는 또 다른 고통이 엄습해 온다.
힘줄이 마구 불거지고.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눈에는 핏발이 붉게 섰다.
“큿, 그렇지. 이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이미 각오한바.
그렇게 병준이 이를 앙다물며 전력으로 힘을 일으킬 때, 뜻밖에도 부담이 서서히 줄었다.
‘뭐지?’
찍어 누를 기세로 쏟아지는 마력의 압박이 가벼워진다.
마치 누가 힘껏 거들어 주는 것처럼 포스 노바의 거친 마력 출력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혹은 마력 흐름을 친절하게 에스코트해 주는 것처럼.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설마 네가 도와주는 거니?’
마검을 보며 던진 질문에 답하듯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 어떤 마검이 당신의 집념에 강하게 반응합니다. ]
‘역시 그랬나. 그렇다면 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게.’
끝까지 간다, 해내고 말 것이다.
“으아아아아!”
거친 기합과 함께, 마침내 검푸른 빛의 세상은 희미하게 그 색이 바래져 갔다.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
병준은 더욱더 몰아붙였고, 이윽고 어떤 벽을 지나 버린 듯 무엇도 느낄 수 없다.
그때,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바다 내음이 느껴지고.
눈앞에 뜬 메시지!
[ 마검전 2층 내전 탈환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마검석 20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후우, 겨우 성공했나.”
망령 심상이 걷히니, 병준은 침엽수가 우거진 땅에 서 있었다.
저편에 내려 보이는 설원으로 짐작건대, 동굴의 미궁에서 이어지는 절벽 위쪽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로는 침엽수림 너머로 하얀 고성이 보인다.
마검전 2층 내전인 듯싶지만.
마력을 소진한 탓에 주변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 덮인 바닥 사이, 원과 선의 문양이 새겨진 바위에 그의 몸이 닿는 순간.
[ 마검전 2층_하얀 숲의 마검주가 등록되었습니다. ]
“주군, 역시 해내셨군요!”
“괜찮으세요?”
다가오며 외친 명수와 앰버의 물음에.
“그래. 성공했지.”
병준은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다만 둘을 돌아보기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건.
[ 어떤 마검과 당신의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
[ 인연의 깊이에 따라 마검석을 소모하여 어떤 마검을 확정적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소모 마검석 : 22개 ]
“확정이라고?”
처음 보는 문구를 병준은 잠시 쳐다봤다.
“뽑기가 아니라 마검석을 써서 확정으로 얻다니, 이런 것도 있었나?”
순간 의문이 들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병준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검을 잡고 있었던 손을.
마검을 뽑아냈던 손을.
이미 방금 사력을 다한 탓에 마검전은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병준은 자신을 어루만지는 듯 깊이 엮이는 어떤 마검의 인연과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 인연에 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사아아아-
마검석 문양이 순백의 빛줄기로 화하여 감겨든다.
그 빛줄기를 힘껏 손아귀에 휘어잡는 순간, 검이 형체를 이루었다.
[ 초치검(★★★★★)이 인연에 반응하였습니다. ]
“나왔다… 정말로 와 줬구나!”
순백의 검신-
망령의 심상 세계에서 절벽에 꽂혀 있던 바로 그 검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검신 전체를 감싸던 귀기가 사라졌다는 것.
하물며 병준은 초치검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설마 네가 초치검이었다니.”
[ 초치검 ]
*계열 : 마력검, 도검
*등급 : ★★★★★
*인연도 : 579
*Ⓐ사룡참살
*Ⓐ수상 활보
그제야 전생검 각성에서 무엇을 봤는지, 새삼 이해가 됐다.
그리고-
[ Ⓐ사룡참살 ]
*강력한 마력을 검에 실어, 가히 용을 죽일 일격을 발산한다.
!!!특수!!! 수 속성의 마력을 흡수하면 검기가 변하여, 그 농도에 따라서 더 강력한 위력
!!!특수!!! 용종의 피에 의해 더 강력한 검기의 위력
[ Ⓐ수상 활보 ]
*수면에 닿는 신체에 마력을 도포하여 미끄러지듯 활보한다.
초치검에 붙은 두 개의 권능은 과연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더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이미 옆에서 명수와 앰버가 하는 이야기조차 안 들린다.
마검전이 해제되고 있었다.
* * *
그렇게 현실로 돌아온 병준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마검전에서는 마지막 할 일이 남았기에 버텨냈지만, 이젠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밀어닥치는 피로!
문자 그대로 뻗었다.
다만 병준은 의식 못 하는 사이, 뭔가 변화의 싹이 움텄다.
아니, 싹이 움튼 건 이미 마검전에서 그랬을지도.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희미하겠으나.
아지랑이 같은 마력 기운이 호흡을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 * *
이미 날은 밝아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간.
병준은 그제야 기지개를 크게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아아, 잘 잤다.”
스마트폰에 뜬 시간을 보더니, 병준은 피식 웃어 버렸다.
공무원을 할 때는 이렇게 늦잠 자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휴일? 주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공무원이라 하면 워라벨이 좋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병준은 휴일이고 주말이고 일해야 했다.
당연히 건강은 나날이 나빠지고 근육은 빠지고 뱃살만 늘었다.
나름 건강 챙기겠다며 트레이닝복도 샀지만.
한 번 제대로 입어 보지 못하고 장롱에 처박아 두지 않았던가.
‘아직 있으려나.’
문득 생각나서 장롱을 열어 보니 역시나 트레이닝복은 그대로 있었다.
“기껏 샀는데 오늘은 한번 입고 조깅이나 해보자.”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밖에 나와 몸을 푸는 병준.
달린다-
그렇게 골목을 돌아 큰길로 나왔다.
“한강으로 가 볼까.”
제법 먼 거리였지만 각성하여 헌터가 된 병준에게는 아니었다.
더구나 밤에 숙면을 하고 일어난 덕분인지, 아니면 몇 년이나 묵혔던 트레닝복을 드디어 입은 기분인지.
달리면 달릴수록 몸이 개운했다.
각성하면서 예전보다 몸이 한층 좋아졌지만, 지금은 또 어제보다 한 단계 가뿐한 상태.
처음에는 단지 기분 좋아서 그렇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 변으로 나란히 달리며 확실히 깨달았다.
“…달라졌어.”
병준은 한강 흐르는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광장에 멈춰 섰다.
적어도 헌터는 자기 몸 상태는 스스로 잘 안다.
그리고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혹시?!”
눈빛에 이채가 흐르더니 숨쉬기 운동이라도 하려는 듯 자세를 가다듬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후우우욱-
팔 색 숨결과 마력 체화!
마력회로의 운용으로 힘이 충만하게 솟아오른다.
다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소와 다른 흐름-
아니, 다르면서도 익숙한 흐름으로 마력이 전개되었고.
전에는 존재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벽.
마력회로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 벽을 넘어 버렸다.
그 결과, 보일 듯 말듯 빛이 피어올라 일렁거렸다.
“이건…?!”
병준은 직감했다.
“이건 오라잖아!”
그때 병준의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이 있었으니.
초치검을 뽑는 마지막 순간.
그 순간 탈진할 듯 힘을 쓰며, 느낀 감각과.
순간 느꼈던 바다 내음.
그것은 포스 노바를 최대로 발휘하며 닿은 한계에, 초치검의 도움이 더해져 강제로 뚫린 마력회로였다.
그 경로를 몸이 기억하는 것이었다.
“하하하, 무슨 주입식 교육도 아니고 이런…….”
얼떨떨한 기분에 혼자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드리웠다.
“진짜로 최고의 결과잖아.”
초치검을 구하니 이런 좋은 보상을 또 얻는다.
누군가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기분.
띠리리리리리-
그리고 마침 걸려오는 전화에 병준은 피식 웃었다.
-잘 지냈어, 병준이?
“아저씨도 양반은 안 되네요.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캬, 역시 우린 통한다니까!
빡빡이 근육질에 안 어울리게 하이 텐션이 진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황유길이 말을 이었다.
-그런 김에 사무소에 한번 올래? 지명의뢰가 들어온 참이거든.
지명의뢰.
게다가 이야기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건 강력히 추천할게. 위쪽 던전 가려면 슬슬 등급 올리는 일도 생각해야 했잖아.
“등급이라.”
아닌 게 아니라 헌터 등급에 대해서는 흥미가 돋는 병준이었다.
대표적으로 S는 특급, A와 B는 상급, C와 D는 중급, E와 F는 하급.
던전과 헌터에 이러한 급이 매겨지며, 그에 따라 헌터는 출입 던전에 제한이 걸린다.
그리고 특별 추천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개 시작은 F등급이다.
연줄 없는 프리랜서 출신인 병준도 F급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실적이 제법 쌓인 상태.
각 의뢰가 하나같이 굵직한 덕에, 몇 없었는데도 벌써 E등급이었다.
기여 점수는 충분하니, 이제 승급 시험을 통과하면 중급인 D등급이 될 터.
문제는 그 시험을 치기 위한 과정인데…….
-의뢰주 쪽에서 자네를 만나고 싶은 눈치거든. 한번 괜찮아?
조심스레 묻는 황유길의 말에 병준이 답했다.
“일단 무슨 의뢰인지 내용 좀 보내 줘 봐요.”
* * *
바텐더처럼 글라스를 닦던 손을 슬며시 들며 인사를 하는 황유길.
그리고 그런 그의 바로 앞자리에 한 남자가 민트색 칵테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이곳 분위기와 사뭇 겉도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한 잔 말아 줄게. 거기 앉아.”
병준이 앉자 정장 남자는 정중히 말을 걸어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손병호라 합니다. 이인경 사장이 정병준 헌터님을 추천하더군요.”
이어서 그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새하얀 명함에 박혀 있는 음각.
그리고 그사이에 은은한 펄로 코팅된 문자가 빛난다.
반도정공 소속의 팀장.
장비 아이템에 들어가는 부속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나름 입지가 탄탄한 곳이었다.
“정병준입니다. 그럼 정식으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해 볼까요?”
그 말에 손병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문을 열기에 앞서, 황유길을 봤다.
그리고 그가 자판을 두드리자, 헌터 앱으로 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 의뢰 번호 : 43851 ]
*내용 : 2등급 이상 리자드맨 어금니 1KG 채취
*장소 : 맹크루 늪지대(추천)
*보상 : 상품 상태에 따라 시세의 1.5배 지급
*지명 의뢰(대상 : 정병준)
*필요한 장비 지급
*특전으로 의뢰를 완수하면 중급 헌터 시험 추천장 발급
“맹크루 늪지대 던전에서 리자드맨 사냥이라.”
간단한 사냥은 아니었다.
늪지대라는 지형 자체부터 기동에 매우 불리하니까.
더구나 리자드맨은 무리를 지어서 다니며, 서로 연계 공격을 하기에 여간 까다로울 수밖에.
그럼에도 반도정공에는 리자드맨의 어금니를 급히 수급할 이유가 있을 터였다.
보상으로 시세의 1.5배나 내걸면서 자신에게 지명 의뢰를 제안한 것은 그 때문이겠지.
다만 병준에게는 그다지 페널티가 없는 싸움이었다.
‘공간 장악의 감각으로 리자드맨의 동태를 느낄 수 있으면 연계 공격은 파훼할 수 있어.’
늪지대 지형?
그에 딱 맞는 마검의 권능을 하나 얻지 않았던가.
수상 활보-
바로 물 위를 걷는 권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