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30화>
아름다운 검이었다.
양날의 검신은 순백이며 주변으로는 검푸른 빛을 몇 겹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검푸른 빛무리 안에서도 곧게 뻗어 색의 대비를 드러내는 마검!
순백의 검신과 그 곁으로 휘두른 검푸른 빛이 대조되어.
그 모양새는 칼날에 살짝만 닿아도 영혼까지 깊이 베일 듯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귀기가 서린 것 같네.’
촤아아악-
그때, 갑자기 검게 펼쳐진 바다를 찢어 내며 기다란 실루엣이 일어섰다.
절벽에 꽂힌 마검과 갑판에 선 병준 사이를 막아서는 듯, 역천의 기둥처럼 솟은 그림자!
시커먼 폭우 속에서 이쪽으로 내리꽂히는 한 쌍의 안광은 시뻘겋게 타오르는 것처럼 도드라졌다.
그 모습은 마치.
“이무기인가.”
아마도 절벽에 꽂힌 마검이 망령으로 형상화된 모습이리라.
게다가 마검의 망령은 병준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우우우우우우우웅!
온 바다를 뒤흔드는 듯 거친 소리를 한껏 토해 내더니.
바위라도 한입에 삼켜 버릴 듯 커다란 입이 쩍 벌어지며, 그 앞으로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그래, 나도 격하게 반갑다.”
너스레 떨면서도.
저걸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강력하며 방어적인 성능을.
‘후, 시도해 보는 수밖에.’
이윽고 그의 손에 들리는 포스 블레이저.
병준은 이를 앞세워 권능을 발동했다.
드레인 스파이럴 권능에 의해 주변의 마력이 병준에게 나선처럼 휘말리며 이끌린다.
그것을 한껏 응축하고, 응축하고, 응축하고, 응축하고, 응축하고-
이무기 형상으로 빚어진 망령이 열화판 브레스 같은 마력의 광선을 토해 내기 직전.
[ 포스 블레이저의 Ⓐ포스 노바를 발동하였습니다. ]
극한까지 포스 노바의 힘을 짜내서 칼날에 건다.
그러자 검푸른 색채의 빛줄기가 폭발하듯 병준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이무기의 열화판 브레스!
그 순간, 정통으로 꽂히는 마력 광선과 검푸른 빛줄기의 포스 노바가 맞부딪쳤다.
쾅! 콰아아아아-
“크흑!”
머리로만 알고 있는 기술을 갑작스럽게, 그것도 바로 실전으로 사용하다니.
저절로 신음이 샌다.
금방이라도 검을 놓칠 듯 팔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럼에도 흔들거리는 갑판에 위태롭게 서서, 이를 해내는 병준!
[ 어떤 마검의 마력이 당신의 접근에 반발합니다. ]
[ 어떤 마검의 마력이 당신의 인연에 순응합니다. ]
[ Ⓐ드레인 스파이럴이 어떤 마검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
그리고 그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메시지들.
‘망령이라도 원래는 마검전의 검이라는 거냐.’
그리고 마검전의 주인이기에.
병준은 망령 이무기가 쏟아 내는 마력 광선을 받아 내며, 그 일부를 드레인 스파이럴로 흡수했다.
스스스스스-
그러자 조금씩 깎이는 마력 광선.
병준은 거기서 더 파고들며 검신을 비스듬히 틀었다.
콰아아! 콰츠츠츠츳-
포스 노바의 힘을 휘감고, 수평으로 눕힌 칼날에 마력 광선을 맞부딪친다.
마치 칼날을 흘리는 것처럼!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크으으윽!”
격류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빛무리.
마력의 일부를 흡수하고 위력을 비스듬히 흘려내도, 서서히 육체의 한계는 다가오고 있었다.
하물며 예기치 못한 것은.
마력을 뿜어내고 받는 이것도 인연이라는 건지.
선명한 감각은 아니지만, 조금씩 흘러 들어오는 어떤 기억과 감정의 파편들.
[ 어떤 마검에 Ⓟ전생검 각성이 발동하였습니다. ]
‘전생검 각성까지 된다고?’
그 기억에는 어떤 사악한 용이 세상에 있었고-
무신은 바다에 사는 그 사악한 용을 참하였으며, 꼬리에서 한 자루 신검을 얻어 보물로 삼았다.
신검은 수호자의 상징으로 귀중하게 보관되었지만.
점차 그 의미는 변질되어.
권력을 탐하고, 왕좌의 상징적인 의미를 위하여 서로 신검을 훔치고 목숨을 빼앗았다.
이에 결국, 신검을 보관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던 이는 한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바로 신검을 부러뜨리고 찾지 못하게 바다에 버리는 것.
잘못한 것은 인간인데 어째서 자신이 부러져야 하는가?
분노, 저주, 원한, 복수, 망집-
그런 강렬한 감정이 만들어 낸 망념이 덮쳐들었다.
찰나라고 해도 한낱 인간이 감당하기엔, 정신 자체가 망가질 수 있는 강렬한 사념이다.
“주군, 위험합니다!”
“해일이!”
명수와 앰버의 다급한 외침에 병준은 정신이 돌아왔다.
쿠하아아아-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집채 같은 파도의 벽!
위험하다.
이미 뱃머리는 위로 기운 상황.
해일을 맞으면 그나마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이 균형마저 깨진다.
벗어날 방법은-
그 순간, 병준은 뒤를 생각하지도 않고 전력으로 포스 노바의 힘을 짜냈다.
해일이 막 덮쳐 오기 직전의 타이밍을 기다려서.
그리고 해일이 넘실대는 순간, 전신 근육이 터질 듯한 고통을 견뎌 내며 검을 크게 휘둘렀고.
콰앙! 촤아아아악-
마력 광선은 완전히 옆으로 굴절되어, 바다를 거칠게 갈랐다.
그 반동에 틀어지는 선수!
그리고 포스 노바의 반동에 충격을 받은 듯, 망령 이무기가 휘청거리다 고개를 쳐들었을 때는.
이미 해일이 앞에 있는 것을 모조리 폭우 저편으로 쓸어 가 버린 뒤였다.
* * *
“후우-”
깊숙하게 호흡을 내뱉으며, 병준은 빠르게 체력을 회복했다.
“괜찮으신지요?”
명수가 조심스레 묻자 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애초에 제가 내전을 빼앗기지만 않았더라면…….”
앰버가 의기소침해서 말했지만, 직접 마검의 망령을 상대해 봤기에 병준은 알 수 있었다.
“네 탓 아니야. 저건 다른 망령하고는 아예 격이 달랐어.”
앰버를 위로하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그리 말하며 병준의 시선은 장막처럼 바다를 시커멓게 휘감은 폭우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마검의 망령이 구현한 폭우에.
그에 비하면 이쪽은 망령의 영향력이 덜 미친다는 방증인지 다소 우중충해도 잠잠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안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앰버도 말하지 않았나.
원래 2층 내전은 이렇지 않으며, 이것은 망령의 심상이라고.
즉, 여기에 계속 있는다면 영원히 갇힌 신세라는 뜻이다.
다시 저 검은 폭풍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시 저기로 갈 방법, 있겠지?”
“네, 가능해요.”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지 앰버가 얼른 답했다.
“마검전의 진정한 주인은 주군이시고, 어쨌거나 여기도 마력으로 된 곳이니까요. 아마 의념을 강하게 품으면…….”
“내 마력으로 이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지.”
즉, 강한 의념으로 덮어씌우면 된다는 소리다.
마치 땅따먹기같이.
앰버의 말을 듣고 병준은 이 심상 공간을 구성하는 마력의 구조에 집중했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낀, 처음과는 달리.
그렇게 집중하자 다른 감각보다 이 공간을 구성하는 마력회로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물리적으로 구현될 정도의 정교한 마력회로의 얼개!
보통이라면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겠지만.
자신은 마검전에 속한 모든 것의 주인이기에 그 모든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빈약한 마력으로는, 아직 공간 자체를 뒤엎는 건 불가능할 터.
그렇지만-
“배를 움직이는 정도라면 내 마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겠어.”
병준은 정신을 집중해서 마력회로에 간섭했다.
처음에는 잠잠했으나.
바람이 분다-
이윽고 돛이 부풀고 물살을 가르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병준은 마력을 거두었다.
어차피 당장 저기로 들어갈 것도 아니니 지금 마력을 쓸 필요는 없기에.
오히려 결전을 생각한다면, 마력을 비축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들어간 다음의 일이겠지.
이무기 망령을 물리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절벽에 꽂힌 검이야말로 망령의 실체.
이무기는 마력의 외연에 불과하니까.
“근본적으로는 그 마검을 소멸시켜야 모든 것이 끝나.”
하지만…… 그게 맞는 방법일까?
문득 전생검 각성에서 본 것이 뇌리에 스쳤다.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끝내 세상에 버려진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강한 망령.
하지만 그 이전에 마검전에 속한 자신의 검이다.
‘어쩌면…….’
그 마검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주군?”
명수가 조심스레 부르자, 병준은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났다.
“다음 격돌에서는 정면으로 맞부딪칠 생각이야.”
문득 꺼낸 병준의 말에.
“주군, 외람된 염려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은지…….”
“저, 저도 주군이 걱정됩니다!”
그 반응에 이해된다는 듯 병준은 씁쓸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받아 내면서 느꼈거든. 흘려도 소용없어. 힘의 우열로만 논하면 내가 밀려.”
“그렇지만 주군께서는…….”
명수가 옹호하려 나섰으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검전의 주인이지. 그건 힘의 우위로만 논할 수 없는 거고.”
명수가 흠칫했고.
“그렇기에 정면에서 더 깊이 전생검 각성으로 파고든다.”
앰버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검전의 주인으로서 그에 맞는 격으로 포용하고 군림할 거야.”
병준은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날 믿어 줘.”
* * *
몸을 회복한 병준은 다시 뇌우 속으로 들어갔다.
우르르릉- 쏴아아아아!
절벽으로 다가가자 예상대로 이무기 망령이 막아선다.
선수에 고고히 버티고 선 병준.
드레인 스파이럴 권능에 의해 마력은 이미 소용돌이처럼 병준에게 휘말리고 있었고.
곧 있을 격돌에서 전력을 불사르겠다는 듯 포스 노바의 빛줄기는 거칠었다.
저편도 마찬가지였다.
이무기는 다시금 입을 벌리며 마력을 모으더니 이윽고 광선을 토해 냈다.
쿠콰아아앙-
빠르게 가까워지는 빛무리!
병준은 그것을 흘려 내는 것이 아닌, 정통으로 받아 냈다.
그리고.
으득, 으드득.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부하에 온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크흑, 역시 장난 아니네.”
마치 폭포 밑에서 우산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은 형세.
도저히 버티기 힘들 것 같은 힘이지만, 그래도.
[ 어떤 마검에 Ⓟ전생검 각성이 발동하였습니다. ]
이를 악물며 마력의 격류 속에 섞인 감각을 선명히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찰나조차 수없이 쪼갠 듯한 영겁처럼.
-검에 파고들었다.
소름 돋는 망념에 위축되어 물러났던 아까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의념의 바닷속-
온갖 망념과 원한이 유령처럼 떠도는 그곳에서, 두 동강이 나서 침잠하는 마검의 조각이 저기 보였다.
병준은 그 두 동강 난 마검을 살포시 양손으로 쥐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감싸는 부모와 같이.
이해한다. 위로하듯, 속삭이며.
파츳- 콰아아아앙!
마검, 아니 마검에 깃든 망령의 측면은 놓으라는 듯 강력한 파장을 뿌리며 반발했다.
그러나 놓치지 않는다.
이해하며 끌어안은 만큼.
검전의 주인이기에 힘의 논리를 벗어난 그 격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 많이 외로웠겠지.”
몰랐다면 모르나, 알게 된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지금도 겉으로는 이렇게 반발하고 있지만, 참된 이면의 녀석은 그저 조금 더 외로움을 잘 타고…….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니까.’
전생검 각성이 닿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 그랬을 터!
병준은 다시금 강한 의념을 담아 반발하는 검을 더욱 휘어잡았다.
그리고 침잠하려는 마검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한 현재의 새 인연이 전생검 각성에 덧씌워지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돌아온 병준은.
포스 노바를 전력으로 펼쳐 광선을 받아쳤다.
쿠왕! 콰아아아아아아-
흐지부지 힘 잃고, 여러 갈래로 쪼개져 각기 다른 방향으로 굴절되는 마력 광선.
그와 동시에 이무기가 흐릿해졌다.
“허억, 헉…….”
그러나 아직 그 형체가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망령으로 변질된 사예한 마력이 잔재의 악의를 붙들어 두는 것이다.
이제 그 심장부를 노릴 순서다.
병준은 선수를 박찼다.
그리고 거센 폭우를 뚫어 내며 절벽에 착지했다.
그 앞에 보이는 비스듬히 꽂힌 검!
……느낄 수 있었다.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마력에 병준은 감탄했다.
일대의 시커먼 바다와 폭우와 천둥이 자신을 적대하여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짓누르는 듯싶다.
그렇지만 결국 주인 없이 홀로 존재하는 마검이다.
마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그걸 다 끄집어냈을 때 망령이 머물 곳은 없다.
그렇기에.
한 손에는 포스 블레이저를 투영하여 쥔 상태로 병준은-
다른 손은 순백의 검으로 가져가 쥐고는.
전력으로 드레인 스파이럴의 권능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