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11화>
자신이 품은 생각을 그대로 실현한 듯 고블린을 참하는 반투명한 실루엣.
환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5, 6초를 넘지 못한다.
투영할 수 있는 숫자도 마력 조작 한계로 서넛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환영은 고블린을 부락 안쪽으로 발을 묶었다.
마력 소모가 큰 대신, 효과는 확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블린 한 놈이 너무 놀란 나머지 헛숨을 들이켰다.
“케흑, 크후웁?! 크겍!”
그 바람에 흩어지며 녀석의 코와 입으로 들어가는 환영의 연기!
그로 인해 병준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봤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듯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혼자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난동을 부리는 고블린의 모습.
“설마 연기를 마시면 환각을 보는 건가?”
[ 일루셔니스트 ]
*계열 : 환영검, 마력검
*등급 : ★★★
*인연 : 224
*Ⓐ환영 맺기
*Ⓐ환영 투사
┗Ⓐ환각 부여
[ Ⓐ환각 부여 ]
*투사한 환영을 흡입한 대상에게 환경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환각을 보게 할 수 있다.
“맙소사.”
병준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나왔다.
“환각이라고?”
뜻하지 않던 수확.
이후 병준은 환영 투사에 좀 더 신경을 써서 고블린들이 환영 연기를 마시게 유도했다.
그 결과 부락 바깥쪽에는 장관이 펼쳐졌다.
구석에서 벌벌 떠는 놈부터 시작해서 질질 짜는 놈도 있고, 헬렐레하는 녀석도 있다.
촤아악-
펼쳐지는 마검 자락에 무력화된 고블린이 썰려 나갔다.
이내 부락 바깥쪽에 잔존한 마지막 고블린을 처리하며 마검 투영을 거두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좋은 검이네.”
예상보다 더 좋은 성능. 그리고…….
[ 일루셔니스트가 당신의 활약과 승리에 크게 기뻐합니다. ]
적당한 타이밍에 메시지가 뜨는 걸 보면 아양을 부리는 느낌도 있고 말이다.
필요한 정보만 전달해 주던 실피드 페리온과는 사뭇 다르다.
‘마검마다 이런 식으로 특징이 다르기도 하구나.’
마치 사람 같다.
그러고 보면 실피드 페리온은 그때 꿈에서 나오던 모습과도 닮은 느낌이다.
고고하고 엄격한, 그러면서도 감싸는 선생님 같은.
그에 비해 일루셔니스트는…….
휙-
갑자기 병준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있는 나침반.
설마 했는데 나침반 팔찌의 바늘에 적색 신호가 떴다.
그 말은.
“가까운 곳에 보물 고블린이 있다고?”
[ 퀘스트가 떴습니다. ]
[ 무력화 ]
*조건 : 처음으로 보물 고블린을 발견
*내용 : 적을 상처 입히지 않고 무력화
*진행 : 0/1
*보상 : 마검석 3개
!!!제한!!! 적이 1회 상처를 입을 때마다 보상이 차감되며 3회 이상 상처 입으면 실패
[ 본 퀘스트는 타 퀘스트와 중첩 적용됩니다. ]
병준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마침 딱 좋군.”
나침반 바늘이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더니 좌우로 까딱거린다.
병준은 공간 장악의 감각을 펼쳐 나침반이 수신하는 마력 흐름을 역으로 추적했다.
마력 흐름은 그대로 11시 방향으로 뻗어나가다 잠깐 우로 틀었다.
그에 맞춰 몸을 돌리는 순간, 다시 좌로 꺾이며 9시 뱡향을 향하는 바늘.
그것을 쫓아, 맞는 방향으로 움직이자 느낌이 왔다.
빠르지만 못 잡을 정도는 아니다!
그것을 깨달은 즉시 직선으로 접근하며 거리를 급속히 좁힌다.
“이쪽이다!”
후두둑- 투둑-
돌진하는 병준의 몸에 부딪히며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얼마 뒤 저편 나무 사이로 금빛 고블린이 보였다.
병준은 곧바로 급습했지만.
휘익-
그 공격은 빗나갔다.
고블린 주제에 아슬한 위치에서 곡예 같은 몸놀림으로 피하는 모습은 예술에 가까울 정도.
‘확실히 우려할 만하네.’
처음 사냥하는 초심자라면 무조건 실패했을, 병준이라도 쉽지 않았을 난이도.
게다가 이번에 나온 퀘스트에서 말하는, 상처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병준에게는 이제 환영 능력이 있다.
더구나 마시면 환각 효과를 동반하는 환영검 일루셔니스트의 권능!
그는 보물 고블린을 상대하며 시시각각 타이밍을 노렸다.
파앗-
보물 고블린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병준은 재빨리 환영을 투사했다.
이번에도 녀석은 곡예처럼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병준은 오히려 옅은 미소를 띠었다.
‘성공이다.’
일부러 형체를 느슨하게 투사한 환영은 스치듯 회피한 보물 고블린의 움직임만으로 무너졌으며 그 연기는 바로.
“크히익! 크케켁, 켁?!”
* * *
갑자기 훅 들어오는 연기에 보물 고블린 필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포탈을 쓰면 도망치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컥컼 커억. 헉…….”
다행히 금방 숨은 돌아왔으나 매운맛이 아직 목에 남아 있었다.
‘간악한 인간 같으니.’
저 도둑들은 매번 임무를 방해하기 일쑤다.
별의별 방법을 이용해서 묶고, 그에 당한 동료들도 많다.
하지만 필케는 베테랑이었다.
벌써 몇 년이나 이 일을 지속한.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번의 적은 한 명, 게다가 평소처럼 마법 같은 것을 쓰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타이밍에 맞춰서 포탈을 쓰면 도망치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가즈아! 저 귀찮은 공격만 떨칠 수 있으면 이런 인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지.’
이어서 인간 남자가 공격했지만 멋들어진 동작으로 피한 후에, 씨익- 미소 한 번 날려 주고는 그대로 도망쳤다.
“언젠가 또 보자고, 친구!”
하지만.
‘뭐, 뭐야?!’
따돌렸을 터인 인간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필케는 다시 한번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나무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혹시 일행이 더 있었나?’
그래, 그럴 것이다.
자신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기다렸다가 급습하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하기야 인간은 대체로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그럴 수 있어. 괜히 식겁했네.’
그렇지만 악몽은 끝이 아니었다.
아무리 달려도 포탈은 나오지 않는데 계속 인간 남자가 튀어나와서 앞을 가로막았다.
한 번.
두 번.
또 다시.
계속해서.
‘뭐냐고, 대체?!’
나중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울고 싶을 정도였지만, 마침내 행복의 순간은 찾아왔다.
‘오, 드디어!’
저 앞에 포탈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의 착각만은 아니었을 터다.
필케는 전력으로 달려서 포탈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포탈로 뛰어들었을 터인데-
퍽!
느껴지는 것은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감촉이 아니라 이마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이었다.
“키힉! 어, 어째서…….”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나무가 뻗어 있는 하늘과 함께,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악몽과 같은 인간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 * *
[ 무력화_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퀘스트 보상으로 마검석 3개를을 얻었습니다. ]
“달달하구먼!”
마검석 3개! 게다가 돌아가서 납품하면 마검석을 더 얻을 수 있었다.
단숨에 이렇게나 얻다니, 금방 또 뽑기를 할 수 있을 거 같다.
“활용도 나름 나쁘지 않았고 말이야.”
환각에 취해 악몽이라도 꾸는지 벌벌 떠는 보물 고블린.
그런 녀석을 보며 자화자찬을 하는 병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피드 페리온의 권능으로 보물 고블린을 찾았고.
일루셔니스트의 권능을 응용하여 녀석을 쉽게 잡았다.
다만…….
“진짜 불쌍해 보이네.”
처음 공격을 피할 때는 무척 얄밉게 보였다.
하지만 환각 권능에 당하고 나서는 정반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다가 비명을 지르더니 종국에는 스스로 바위에 달려들어 머리를 박는 모습까지 본 뒤라 그런가.
“이런 녀석을 잡는 건 아무래도 좀…….”
쪼그리고 누워서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씁, 그래. 의뢰도 사체는 포함이 안 되어 있었으니까.”
정확히 자루를 가지고 오라는 내용.
랜덤 박스와 같이 무작위의 아이템이 나오는 보물 고블린의 자루.
중요한 건 자루였다.
병준은 자루를 챙기며 안쪽을 봤다.
공간 장악의 감각을 펼치자 아주 복잡하고 정밀한 마력회로가 자루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병준이 느낄 수 있는 수준은 딱 거기까지.
자루에는 잠금 기능이라도 있는지 이내 그 마력회로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 본다고 내가 알 리가 없지.’
이제 이것을 납품하면 의뢰도, 퀘스트도 완료다.
이어서 병준은 숲 저편으로 향해 걸음을 뗐다.
“이번 의뢰는 정말 득이 많네.”
환영검 계열의 마검 일루셔니스트에, 보물 고블린의 자루, 그리고 연계 퀘스트로 인한 많은 양의 마검석까지.
“뭐, 생각보다 일찍 끝났으니 기왕 온 거 조금만 더…….”
그렇게 중얼거리다 흠칫했다.
주변 마력에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체력도 회복되자 그제야 뭔가 느낀 것이었다.
마력의 응어리가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외에도 미약하게 마력 반응이 세 군데 더 있었지만, 이내 거대한 마력 응어리를 피하기라도 하듯 멀어졌다.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야.’
오히려 자신이 환영을 투사하며 펼친 마력 조작 반응을 읽고 다가오는 느낌이다.
심상치 않은 예감에 병준은 공간 장악으로 근처를 더듬다 표정이 굳었다.
거친 마력 반응!
저쪽에서 자신을 향해 뭔가를 쐈다.
파파팟- 맹렬히 회전하며 공간을 가로지르는 빛줄기는 세 발의 마력 화살이었다.
실피드 블레이드 권능으로 마검을 채찍처럼 휘둘러 막으며, 병준은 시선을 던졌다.
‘고블린?!’
아니,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마력 응어리의 정체는 여느 고블린과 달랐다.
낡은 후드 로브를 걸쳤으며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었고, 다른 손에는 단검을 쥐었다.
크기도 더 크다.
무엇보다 왠지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흥분한 모습.
갑작스런 조우가 당황스러울 만도 했지만.
[ 긴급 퀘스트가 떴습니다. ]
[ 긴급 퀘스트가 떴습니다. ]
[ 무력화Ⅱ_던전 보스 ]
*조건 : 던전 보스와 처음 대치
*내용 : 마검을 사용하여 던전 보스를 사냥
*진행 : 0/1
*보상 : 사냥 성적에 따라 차등 지급, 최대 마검석 5개
[ 메이지 사냥꾼 ]
*조건 :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와 대치
*내용 : 마검을 사용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 사냥
*진행 : 0/1
*보상 : 마검석 2개
“긴급 퀘스트가 동시에 두 개?”
게다가 각각의 보상이 어마어마했다.
다 합치면…….
‘녀석을 잡는 것만으로 마검석이 7개야!’
바로 10연속을 돌릴 수 있는 숫자.
계산이 끝나자 순간적으로 눈이 번뜩인다.
조금 지친 것을 제외하면 아직 충분히 여력이 있었다.
뭣보다, 선빵을 받았으니 답례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즉시 환영을 투사하며 본신도 앞으로 달리는 병준!
“키익?!”
돌연 둘로 나뉘어 쇄도하는 모습에 고블린 주술사가 허둥거리며 물러섰다.
‘좋았어.’
이대로 쉽게 놈의 숨을 끊을 수 있겠다 싶었으나, 오판이었다.
“웃는다고?”
녀석의 입술이 비틀리며 미소가 떠오른 순간-
‘젠장, 처음부터 환영인 걸 알고 있었나? 교활한 녀석!’
겁먹은 척 물러나며 스태프를 떨치며 마력 화살을 날렸다.
다른 헌터였다면 놈의 교활한 수작에 직격으로 맞았을 터였으나.
병준은 공간 장악 감각으로 조짐을 감지하며 한 발자국 빠르게 옆으로 굴렀다.
파파팟- 병준이 구르고 지나간 자리에 마력 화살이 꽂힌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고블린 주술사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마력 화살을 쏟아냈다.
“키이익!”
“그럼 그렇지, 이 많은 보상이 그렇게 쉽게 줄 리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