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 6화>
싸우면 싸울수록, 적게나마 쌓이는 마검석이 너무나 달달하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자 자동으로 YES가 수락되었다.
그러니 녀석은 결코 아직 쓰러져서는 안 될 일.
“제기랄, 후회하게 해 주마!”
고맙게도 임석훈 역시 발끈하며 곧바로 팔찌를 착용하더니, 검과 방패를 앞세우며 병준에게 달려들었다.
방패의 어그로를 이용해 방어에만 전념하던 아까 전과는 사뭇 다른 기세.
‘이건 또 새로운 느낌이군.’
병준은 엷게 미소 띠며, 공간 장악의 연기를 넓게 펼쳐 녀석의 움직임을 읽었다.
역시 실전으로 감을 익히니.
이 능력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익숙해진다.
병준은 공간 장악의 감각이 보여 주는 녀석의 빈틈으로, 스텝을 밟아 파고들면서 마검을 채찍처럼 길게 뽑아내서 갈라 쳤다.
“어억, 이익?! 무슨?!”
파파팟- 파팡!
임석훈이 정신없이 뒷걸음질 치며 막았으나 이미 명명백백한 차이.
팔찌의 방어막은 순식간에 명멸하며 몇 겹이 깨져 버렸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뱉으며 일어서다가 휘청거리는 임석훈.
“젠장, 난 아직이야. 다시! 다시 해, 다시!”
녀석은 신경질적으로 새로운 장비를 꺼내서 들었다.
다시-
“난 아직 안 졌어…….”
다시-
“이…… 이…….”
다시-
하지만 결과가 달라질 리 없다.
“으아아아! 죽어, 죽어!”
계속되는 패배에 아예 방패까지 팽개치고 광전사처럼 검을 휘둘러 대는 임석훈.
“이 망할 새끼가!”
병준은 두 발을 처음 그대로 바닥에 붙이고 선 채, 녀석의 공격을 막고 반격했다.
파파파팟- 파파팟-
허공에서 임석훈이 휘두르는 검과 병준의 마검이 부딪치며 불꽃을 피워 낸다.
그럼에도 병준은 오직 감각으로만 마검을 휘둘러, 요격하듯 임석훈의 검로를 쳐 내자.
챙그랑-
그는 그대로 밀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허, 헉!”
이어서 병준은 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임석훈은 주저앉아, 그야말로 괴물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얼굴.
그러나 일어서려던 녀석이 다시 휘청이며 넘어지는 순간.
“쓰러지면 곤란하지. 이제 슬슬 감이 오려는 참인데?”
병준이 다리를 걸어 임석훈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려는 것을 막고, 손을 엇갈리게 잡아 다시 일으키며 말했다.
“계속하자고. 네 말대로 내가 사기라는 것을 찾을 때까지 말이야.”
임석훈이 지쳐 쓰러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병준.
그 말에 다리의 힘마저 풀렸는지, 기껏 세운 하체가 다시 무너졌다.
이윽고 그의 입이 떨리며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그만…… 미, 미안…….”
완벽히 전의를 잃은 모습.
다만 임석훈은 그런 말은 마저 이어지지 못했다.
별안간 그의 뒤로 느린 템포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뜻밖에 훌륭한 대전을 관전했네요.”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손뼉 치는 정장 조끼 차림의 젊은 남자가 연무장 입구에 서 있었다.
“하, 한 상무님!”
임석훈이 비틀거리면서도 겨우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90도로 처박으며 인사했다.
남자는 그 모습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연무장 안으로 들어와 병준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태양 길드 기획실의 한용기 상무라고 합니다. 헌터 협회의 신성장 추진 위원회에서 위원을 겸하고 있죠.”
태양 길드 기획실 소속 상무도 모자라서 헌터 협회 간부까지 겸하고 있다면 꽤 거물급이었다. 더구나 저 젊은 나이에!
“정병준입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어디 길드 소속이신지 여쭤도 괜찮을까요?”
“딱히 소속은 없습니다.”
그렇게 병준이 답하니, 반 발자국 뒤에 서 있던 비서가 다가와서 그의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무슨 소식을 전했는지, 그는 흠칫 놀라며 말을 덧붙였다.
“혹시 오늘 시험의 방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분입니까?”
“소문 참 빠르네요.”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사실.
그러자 한용기는 사뭇 미소를 띠며 탄식했다.
“시험의 방 만점이 간단한 일은 아니니까요. 이름이 같기에 물어봤는데, 마침 앞에 계신 분이라니…… 공교롭군요.”
다시 말문을 트자, 그는 넌지시 물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것도 있고요.”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그 악명 높은 태양 길드 소속이라는 점.
“죄송합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한번 만나죠.”
“헌터 협회 스카이라운지로 모시겠습니다.”
헌터 협회 스카이라운지라면 한 끼 식사가 무려 100만 원을 호가하는 곳!
특히 야경을 내려다보는 전망은 일품이라 세계 유명한 잡지에서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도 언젠간 가 보고 싶은 곳이긴 했지만…….
‘그런 건 나중에 강해지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어.’
병준은 완곡한 거절의 뜻으로 그저 엷게 웃었다.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한용기가 마지막 승부수인지 어떤 물건을 꺼냈다.
“게다가 좋은 인연을 이어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걸 선물로 드리겠습니다만, 어떠신지?”
망치와 장검이 교차하는 문양이 새겨진 검은색 카드.
단출한 디자인이지만 오히려 잡스러운 꾸밈없이 한눈에도 고급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본 임석훈은 흠칫 놀라더니.
“장인 협회의 블랙 티켓……?!”
그것을 알아보고는 떡하니 입을 벌렸다.
병준은 그제야 조금 흥미가 생겼다.
“뭐죠, 그건?”
“장인 협회에 소속된 블랙 등급 이상 장인에게 무구 제작을 의뢰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혹은 그쪽에서 보유한 재료를 요구할 수도 있죠.”
장인 협회에 무기 제작을 의뢰하거나 그곳에서 보유하는 재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니!
태양 길드의 인사와 마주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솔직히 보상이 탐났다.
게다가.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한번 볼까?’
그쪽의 마음대로 되진 않을 테니까.
병준은 눈을 빛내며 답했다.
“그럼 잠시 시간을 내 볼까요?”
* * *
장인 협회의 블랙 티켓을 손에 쥐었으면서도.
막상 스카이라운지에 올라와 자리에 앉자 병준은 창밖으로 던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헌터 협회 스카이라운지가 대단하긴 하네.’
그 정도로 서울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헌터 협회 스카이라운지의 경치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밤하늘 아래 마천루의 스카이라인과 그 아래 도시를 가르는 큰 도로에 휘황한 불빛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
커다란 도시를 내려다보는 기분에 없던 전능감이나 정복감이라도 생길 것만 같았다.
‘이 맛에 이런 곳에 오나?’
생경한 경험.
이런 곳에서 식사하면, 또 그 기분이 어떨지 아직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주문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웨이터가 오자 한용기는 그에게 식사를 주문하고는 병준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럼 식사가 나오기 전에 시간이 좀 있을 테니, 그 이야기부터 먼저 할까요.”
김칫국 마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병준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갔다.
사실 시험의 방 만점을 받은 인재에게 밥이나 먹자고 하면 이유가 뭐겠는가?
‘길드 가입 권유겠지.’
문제는 병준은 길드에 가입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길드 소속이 되면 매니저가 붙어서 여러모로 케어 해 주는 점은 좋다.
그러나 병준은 공무원 일을 하면서 초반의 날치기 계약으로 인생을 저당 잡힌 루키들을 많이 봐 왔다.
그리고 태양 길드는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곳.
심지어 플랫폼에서 근무할 때, 자신은 헌터가 아닌데도 태양 길드의 갑질에 당해 봤다.
그런 태양 길드의 일원으로 들어간다니 절대로 사절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짐작도 못 한 한용기는 손을 비비며 미소를 보였다.
“짐작은 했겠지만 병준 씨에게 태양 길드 가입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어서 그는 비서에게서 태블릿PC를 받아서 병준에게 내밀었다.
“이런 조건으로 계약하게 될 겁니다.”
계약금이 어떻고 한 번 레이드를 나갈 때마다 정산 비율이 얼마나 되고…….
그 외에 부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태양 길드의 시설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병준의 시선이 계약 내용 한곳에 꽂혔다.
“여기 계약서에 투자 정산에 대한 조항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우리 태양 길드는 루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투자 정산은 나중에 받을 돈을 미리 당기는 개념으로…….”
말은 아주 청산유수다.
모르고 들었다면 그의 언변에 홀려서 정말로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태양 길드 자체적으로 설정한 내부 지표에 따라서 투자 정산금을 설정하는 독소 조항.
그렇게 헌터들을 붙잡고 그걸 빌미로 놔주지 않는다.
물론 라인을 잘 타고 충성을 바친 일부는 임원급 헌터로 올라가겠지만, 그게 아닌 대부분의 경우는?
결국 골수까지 착취당하는 것이었다.
갓 각성하여 헌터 된 이들은 모르겠지만 각종 잡다한 일을 몰아받아 처리하던 병준는 익히 들은 바가 있는 태양 길드의 함정.
한용기는 그 함정을 지금 자신에게 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자 정산에 대한 내용이 조금 걸리는데, 이 부분을 빼거나 조정…….”
“그건 곤란하군요. 길드 방침이라 불가능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허리를 도중에 자르며 절대로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요한다.
하기야 왜 그렇지 않겠는가.
계약서에 아무리 좋은 꿀을 발라 놓아도, 투자 정산 조항만 있으면 다 뒤집어엎고 노예로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 말을 병준이 가만히 듣기만 하자 넘어온다 싶었는지, 한용기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자, 지금 바로 여기 사인만 하면 됩니다. 장담하는데 병준 씨는 제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는 어느 틈에 계약서를 꺼내서 병준의 앞으로 들이민다.
자신만만한, 상대방이 절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태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자리에 앉는 순간, 병준이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확실히 좋은 조건이네요.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하지만 저는 태양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는 듯, 한용기가 여전히 그 미소를 띤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뒤늦게 방금 들은 말이 머릿속에 입력되자, 그의 안색에 급격히 노기를 띠었다.
“방금 거절한다고 했습니까? 제가 한 제안을요? 혹시 다른 곳에서 먼저 제안을 받았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려고요. 투자 정산금에 대한 내용도 걸리고.”
“허, 고작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려고 내 제안을 거절한다?!”
대놓고 같잖다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리고는 눈빛으로 사람을 죽이기라도 할 기세로 노려본다.
“아무래도 시간을 빼앗은 듯싶어 죄송하군요.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병준은 목례로 가볍게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병준을 향해 한용기는 언제 사람 좋게 웃으며 이야기했냐는 듯 버럭 소리쳤다.
“앉아! 이거 좋게 말하니까 사람을 호구로 보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기까지 와서, 여태 나불댔는지 알아?!”
역시나 수틀리니까 나오는 본래의 성격.
‘어쩌면 저것도 전략적인 수법일 수도 있겠지.’
갓 각성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헌터에게는, 저렇게 태양 길드의 배경과 상무라는 직책으로 윽박지르면 충분히 먹힐 수 있으니 말이다.
뭣보다 그의 눈에는 병준이 먹잇감으로 보일 터였다.
뭣도 모를 때 단단히 목줄을 채워 놓으면, 두고두고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는 탐스럽고 호구 같은 먹잇감.
“지금 가면 프리랜서든 뭐든 헌터 업계에 발도 못 붙이는 신세가 될 테니 생각 잘하라고!”
그 말에 순간 병준은 우뚝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