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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클 영주님-150화 (150/185)

#150화 뜻밖의 조우3

회심의 일격이 막히자 당황한 질리언은 재차 공격을 발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루터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여기까지 하자.”

그의 시선을 받자 독기 어린 질리언의 눈이 스르륵 풀리며 그대로 혼절했다.

루터는 질리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지도 마법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당황한 지도 마법사는 이내 구함을 받은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질리언에 대한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멍청한 녀석이 낙제점을 받았다고 제게 원한을 품은 겁니다.”

“낙제점? 누가? 질리언이?”

“이름을 아십니까?”

“그래. 주목하고 있었다.”

지도 마법사는 루터가 아카데미에 온 사연을 알았다.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낙제점을 준 소년을 주목했다.

지도 마법사가 크게 당황했다.

“어, 어째서 저 모자란 녀석을 주목하셨습니까?”

루터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어째서 질리언에게 낙제점을 주었느냐?”

“그야 당연히 실력이 모자라서…….”

“실전 시험이 뭐였지?”

“일정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맞히는 시험이었죠.”

“하나도 맞추지 못했나?”

“일단 전부 맞추긴 했는데…….”

지도 마법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래도 스스로 찔리는 모양이다.

루터가 좀 더 추궁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였나?”

“힘이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태도가 불성실했습니다.”

“시험 평가에 태도 점수가 있었나?”

“반영하는 편입니다.”

루터는 매듭을 지었다.

“간단히 말해 건방져서 낙제점을 주었다는 말이군.”

지도 마법사는 그가 내린 결론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루터는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었다.

‘심기를 거슬렀나 보군.’

마법사는 자존심이 세다.

당연히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특히나 자신의 성적을 평가하는 마법사일수록 더욱 그랬다.

질리언의 지나친 자신감이 마법사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지도 마법사는 화제를 바꿨다.

“저놈을 당장 처분해야겠습니다.”

“어떻게 할 텐가?”

“일단 퇴학이고 절 죽이려 했으니, 사형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지도 마법사의 강한 어조에 루터는 그를 말렸다.

“퇴학 처분만으로 충분할 것 같네. 그래야 자네의 면목도 서고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도 마법사가 수련 마법사한테 죽을 뻔했다는 소문이 돌길 바라나?”

그제야 지도 마법사가 흠칫했다.

“퇴학으로 끝내야겠군요. 그런데 좀 전에 질리언을 주목하고 있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퇴학을 해도 마탑에 들어가면 문제다.

지도 마법사의 질문에 루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구함을 받았는데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내색조차 안 하는 자다.

그와의 대화는 여기까지다.

루터는 그를 무시하고 질리언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처로 질리언을 데려와 침대에 눕혔다.

루터는 그를 보며 일말의 사고에 대해 결말을 내렸다.

‘아무리 질리언의 성격이 강해도 과격하진 않다. 어둠의 힘이 부추긴 듯한데, 근원이 어디서 흘러들었을까.’

아무래도 깨워 질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루터는 일단 어둠의 힘을 걷어내었다.

안색이 평온해진 그를 깨우자 눈이 뜨며 이내 마주쳤다.

“제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당황한 시선에 루터는 사실대로 말했다.

“지도 마법사를 공격한 걸 알고 있느냐?”

“뭐, 뭐라고요?”

놀란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다급히 물었다.

“제가 지도 마법사를 공격했더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루터는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말의 과정을 설명했다.

질리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제가 그랬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믿든 안 믿든 현장의 지도 마법사와 학생들이 모두 조우했다. 조만간 네게 처분이 떨어질 거다. 아마 퇴학 처리를 당하겠지.”

“마, 말도 안 돼요. 그럴 리 없어요.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억울한 질리언은 퇴학이라는 말에 입을 떡 벌리더니 다급히 항변했다.

루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다른 이들은 믿지 않을 거다. 눈앞에 벌어진 사실만을 믿을 뿐이지.”

질리언은 몸을 떨었다.

“퇴, 퇴학은 안 돼요. 퇴학할 수 없어요.”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가만두지 않겠다며 날뛰는 지도 마법사를 달래어 퇴학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어. 이 정도 처분이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루터는 질리언의 퇴학을 오히려 반겼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질리언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그럴 만도 했다.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면 다시는 마법사로서 활동을 하지 못 한다.

그러니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이리라.

루터는 그보다 다른 데에 더 집중했다.

“내가 왜 널 믿는다고 한 줄 아느냐? 나는 누군가 네게 충동질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충동질이요?”

“지도 마법사에게 낙제점을 받고 난 이후로 네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아라.”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누명은 벗어야 하지 않느냐?”

“그, 그렇군요.”

질리언은 그의 조언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당시엔 너무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제 시험은 문제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거라 기대했어요. 과녁에 마법을 정확히 맞추었거든요. 그래서 항의하려고 하는데, 받아주지 않아 혼자 분풀이를 했어요.”

“돌아다녔던 장소를 모두 말해 봐라.”

“숙소 뒤뜰에 있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지하 도서관에 갔는데…….거기서 기억이 끊겼어요.”

“지하 도서관?”

되물은 루터가 몸을 일으켰다.

“그곳이 모든 원흉의 시작이었군. 한 번 살펴봐야겠다.”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물론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너도 알 자격이 있다.”

루터는 질리언과 함께 지하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한창 실전 검증이 진행 중이라 공부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조용한 도서관을 훑던 루터는 질리언을 바라봤다.

“혹시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

궁리하던 질리언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도서관에 들어왔던 기억이 마지막이지만 아마 제가 무엇을 읽었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게 뭐냐?”

“더블 캐스팅이요. 언젠가 꼭 이루고 싶거든요.”

루터는 속으로 웃었다.

과거의 질리언은 더블 캐스팅을 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달성하지 못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날 유독 싫어했던가.’

당시의 자신은 유연하게 더블 캐스팅을 다뤘다.

이제 보니 질리언이 자신을 두고 그렇게 불타오른 것은 경쟁의식이 아니라 질투였을 지도 모른다.

“꿈은 클수록 좋지.”

“꿈이 아니에요. 언젠가 반드시 이뤄낼 겁니다.”

질리언은 반드시 해내겠다는 듯 결연히 말했다.

둘은 더블 캐스팅과 관련된 도서 항목으로 이동했다.

주변에 손대지 않고 훑기만 하는 루터와 달리 질리언을 책장을 펴고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 우연히 꺼낸 책을 펼치자 종이가 스스로 페이지를 넘겼다.

“앗!”

놀라는 질리언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니 책의 종이에서 흡입력이 일어나 질리언을 끌어당겼다.

펼쳐진 책이 사람을 삼킨다.

루터는 다급하기보다 기가 막혔다.

“별걸 다 보게 되는군.”

“도와주세요!”

어찌나 놀랐는지 새파랗게 질린 질리언이 애타게 부르짖었다.

어느새 그의 옆에 선 루터가 넌지시 제안했다.

“책이 부르는 듯하니, 초대에 응하는 게 어떻겠느냐?”

“예?”

“빨아들이는 책 속으로 가 보자.”

“자, 잠깐만요!”

당황하는 질리언과 달리 루터는 흡입력이 일어나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책 속에 들어갔다.

안은 도서관보다 넓었다.

천장은 별이 박혀 반짝였고, 바닥은 석판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질리언은 경황이 없었다.

“여, 여기가 어디죠”

“뭐긴. 책 속이지.”

“책 속이라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죠?”

“원래 세상은 놀라운 일투성이다. 이것도 그중 하나이고.”

정신없이 둘러보던 질리언이 루터를 쳐다봤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이것보다 더 놀라운 광경을 많이 접해 면역이 되었나 보다.”

“이보다 놀라운 일이 있나요?”

“있지. 보고 싶으냐?”

질리언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루터가 손바닥을 전방에 내밀었다.

“잠시 후에 이 책의 주인이 나타날 거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진이 나듯 붕괴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부수고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끄아아악!”

“으아아악!”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괴이한 형체에 질리언도 마주 비명을 질렀다.

질리언이 비명을 지를 만했다.

외관이 흉측했는데, 싯누런 피부에 눈알이 수도 없이 달려 있었다.

루터가 마물을 질리언에게 들이밀었다.

“어떠냐? 놀라우냐?”

“으악! 괴물이다!”

질겁한 질리언이 뒷걸음질을 쳤다.

루터는 마물을 잡아당겨 물었다.

“변절자는 어디에 있느냐?”

“살려줘!”

마물이 비명을 질렀다.

단순히 쥐고 있을 뿐인데 고통의 비명을 내내 지른다.

지켜보던 질리언이 혀를 내둘렀다.

“처음 봤을 때는 끔찍했는데, 엄살이 심한 괴물이네요.”

“엄살이 아닐 거다.”

“아니라고요?”

“그래. 마법을 쓰는 중이거든.”

루터는 마물을 쥔 손바닥을 떼었다.

닿은 부위가 시뻘겋게 녹아내렸다.

질리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하신 건가요?”

마법을 쓴 내색이 없었다.

루터가 설명했다.

“마법의 수준이 극에 이르면 굳이 캐스팅과 룬어 수식을 결합할 필요 없이 의지로 조종하게 된다. 그 정도가 되면 마법을 변형, 조종이 가능하지. 이런 것처럼 말이야.”

루터는 파이어 볼을 꺼낸 뒤, 바늘처럼 가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한 것 같으냐?”

질리언은 혼란스러운 상황도 잊고 마법에 집중했다.

심각한 얼굴로 관찰하던 그가 의견을 표현했다.

“부피를 줄이신 건데, 어떻게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부피를 줄인 게 아니라 압축했다. 색을 보면 알 거다. 좀 전의 파이어 볼은 붉었지만, 이것은 백색을 띠고 있다. 열기가 강할수록 색깔도 바뀌는데, 파이어 볼을 압축했으니 고온으로 올라가 백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놀랍네요.”

“아까부터 이걸 이 녀석의 몸에 주입하고 있었어. 그러니 아프겠지.”

루터는 마물의 몸에 바늘을 주입했다.

“끄아아아악!”

마물이 비명을 질렀다.

질리언은 자신이 당한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엄청 아프겠네요. 괜히 비명을 지른 게 아니에요.”

“그래. 마법사를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른 것이지. 좋은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 잘 배웠습니다. 빙계 마법사신데, 화염계 마법도 잘 다루시네요.”

“빙계 마법사는 어지간해선 화염계 마법을 다루지 못한다. 마나의 형태 자체가 극점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정 반대되는 성질을 지닌 화염계 마법을 다룰 수 없지.”

“그럼 어떻게 파이어 볼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신 거죠?”

“간단하다. 마도사가 되면 가능하다.”

“마도사요?”

어리둥절하며 반문한 질리언이 갑자기 흠칫하며 루터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모든 것들이 이상했다.

질리언이 얼떨떨한 눈으로 물었다.

“저기. 혹시 마도사세요?”

루터는 손에 쥔 마물을 뒤흔들었다.

“이 녀석은 지금 내게 제압당했지만,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 아카데미 전체를 붕괴시킬 힘이 있어. 그런데 지금은 내게 붙잡혀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자, 이만하면 설명이 된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 맙소사.”

눈동자가 흔들리며 질리언이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도사는 꿈의 경지다.

질리언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재차 되물었다.

“저, 정말 마도사세요?”

“앞으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루터는 마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기억해 두어라. 내 이름은 루터다.”

충격으로 얼떨떨한 질리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스로를 마스터라 말하는 눈앞의 마법사는 인정하는 자에게만 이름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아카데미에 퇴학당할 처지에 놓인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 주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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