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수색3
소른의 대부인이 어째서 홍등가를 관리하는 걸까.
그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빌리온이 자신의 입에 검지를 갖다 댔다.
“다들 쉬쉬하지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어째서 그분이 홍등가를 관리하느냐?”
“돈이 되기 때문이죠.”
그밖에도 선술집, 도박장도 운영한다 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기억과 충돌을 일으켰다.
소른 공작의 귀부인은 루터도 알았다.
‘세리엘 귀부인이 그런 사람 일리가 없는데?’
자신이 알기에 그녀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홍등가 등과 관련된 천박하다 여기는 일에 손을 댈 리가 없다.
루터는 턱을 쓸었다.
‘의심이 가는군.’
그러고 보니 귀부인과는 일면식이 없었다.
조만간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홍등가에 도착했다.
수많은 홍등가 중에서도 빌리온의 홍등가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그래도 구색은 갖춰 사람들이 많았다.
벗다시피 한 여자들의 콧노래는 빌리온이 등장하자 뚝 그쳤다.
빌리온은 뒷골목 세계에서도 유명한 칼잡이였다.
그의 사나운 본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루터는 그와 나란히 걸으며 여자를 찾았다.
빌리온의 여자는 홍등가 꼭대기 층에 거주했다.
“제 여잡니다.”
안에 들어선 빌리온이 살인 사건의 발단을 일으킨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루터는 나타난 여자를 훑었다.
박색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평범했다.
허나 분위기가 달랐다.
루터는 여자를 자세히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특이점이 없었다.
그가 물었다.
“자네가 빌리온과 제이슨 패밀리의 갈등을 일으킨 원인인가?”
“네.”
공손히 대답하는 여자의 에네르가 일순간 붉어졌다.
거짓말이란 뜻이다.
루터는 여자를 물끄러미 보다 돌연 빌리온의 목줄을 틀어쥐었다.
삽시간에 일어난지라 뒤따르던 부하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커허헉!”
목이 쥐어진 채, 단말마를 흘리자 부하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살벌한 루터의 시선에 고양이 앞의 쥐처럼 옴짝달싹 못했다.
루터가 나직이 말했다.
“감히 날 속이려 하다니, 겁이 없군.”
빌리온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기세 좋은 부하 한 명이 달려들었다.
루터는 붙잡은 빌리온을 그 부하에게 밀었다.
머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낭자하고 부하와 빌리온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홍등가에서 주먹 쓴다고 눈이 멀었어. 감히 기사를 건드리려 해?”
루터의 삼엄한 시선에 부하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빌리온은 얼얼한 고통 속에서 억울함을 항변했다.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이슨을 데려와 저 여자를 알려주면 사실이라고 말할 것 같으냐?”
“그, 그건?”
“거짓말을 하고도 뉘우치질 않으니 팔 한 짝을 가져가겠다.”
루터는 손칼로 빌리온의 왼쪽 팔을 잘랐다.
츄아아악!
“끄아아악!”
팔이 잘리고 빌리온이 세상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부하들이 벌벌 떨었다.
맨손으로 어깨를 잘랐으니 당연히 공포가 떠올랐다.
잘린 어깨를 지혈한 루터가 재차 물었다.
“다시 묻겠다. 여자는 어디에 있느냐?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면 그때는 팔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혼비백산한 와중에도 죽음의 두려움은 있었다.
빌리온이 아래를 가리켰다.
“지, 지하실에 있습니다.”
“가자.”
루터는 빌리온을 쥔 채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뒤따르는 부하들이 멈칫거렸다.
왠지 엮이면 자신들도 죽을 것 같았다.
루터가 그들을 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기세 좋게 쫓아올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발을 빼려 하느냐. 한 놈도 빠짐없이 뒤따라와라. 도망가면 죽인다.”
부하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뒷돈이나 받아 챙기는 병사들만 상대했으니 기사의 무서움을 몰랐다.
겁에 질린 그들이 뒤쫓고 두려운 적막감이 차올랐다.
순식간에 지하실로 내려간 뒤, 철문 앞에 섰다.
문을 열자 금빛 화려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양탄자가 바닥에 깔렸고 벽은 그림이 걸렸다.
천장의 샹들리에와 중앙의 넓은 침대도 모자라 오픈 욕조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욕조에는 거품을 가득 채워 즐기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발가벗고 있던 그녀는 사내들이 우르르 나타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놀란 교성을 듣는 순간, 루터의 표정이 밝아졌다.
‘찾았군.’
뱉는 목소리에서 어둠의 기운이 묻어 나왔다.
루터가 고개를 돌렸다.
단순 놀라는 목소리에 취한 빌리온과 부하들.
심지어 빌리온은 제 팔이 잘렸는데도 처지를 잊고 여자에게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패밀리의 두목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칼부림을 하여
“문을 열어라.”
지하실이 열리고 인기척이 들리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다가간 루터가 물었다.
“네가 제이슨과 빌리온이 일으킨 갈등의 주범이냐?”
“모, 몰라요.”
여자는 겁에 질렸다.
다름이 아니라 팔 잘린 빌리온이 검게 죽은 얼굴로 루터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두려운 광경에 그녀의 안색이 창백했다.
루터가 그런 그녀를 안심시켰다.
“진정해라. 해 하려 온 게 아니다. 나는 소른의 치안 기사다. 패밀리들의 살인 사건이 발생해 조사를 하던 중 그대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확인 차 온 것이다. 위해를 가 할 생각이 없거니와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
루터는 빌리온의 목을 잡고 흔들었다.
“쉽게 말해 이런 것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속 시원히 대답해다오.”
협조 요청은 금세 이루어졌다.
여자는 루터의 말을 듣더니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녀가 사연을 늘어놓았다.
레이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평범한 농부의 자식이었다가 도적의 급습에 부모가 죽고 노예가 되어 팔려왔다는 얘기였다.
루터는 얘기를 듣다 묘한 점을 발견했다.
말하는 목소리가 무척 고왔는데, 이게 사람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이거 봐라?’
고운 목소리가 마음을 흔든다.
그녀의 하소연이 이어질 때마다 빌리온과 패밀리들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음심이 떠올랐다.
헌데 레이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사연이 계속 이어졌다.
소른의 홍등가로 팔린 그녀는 몸을 팔다 빌리온과 제이스의 눈에 띄어 지금에 이르렀다.
루터가 물었다.
“혹시 홍등가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느냐?”
“네. 유혹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어디서?”
“세이렌의 노래라는 홍등가에요.”
“누구에게 배웠지?”
“그곳의 책임자께 배웠어요.”
“어쩌다 제이스에게 가게 되었느냐?”
“그가 절 납치했어요.”
“빌리온도 널 노린 모양이구나. 널 제이스에게서 빼앗은 걸 보면.”
“네. 단골손님이었어요.”
루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찾았다.”
레이첼의 목소리에서 아주 미세하게나마 어둠의 힘이 담겼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사건의 결론은 납치 살인 사건으로 종결하고 빌리온과 패밀리. 그리고 제이슨 모두 처벌을 가했다.
루터는 레이첼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어째서 네게 집착했는지 아느냐?”
“아니요.”
“그건 네 목소리가 상대방의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빌리온이 지하실에 가둔 이유도 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독점하기 위해서라는구나.”
레이첼의 안색이 창백했다.
“전 어쩌면 좋나요?”
“원한다면 내가 해결해주마. 이걸 먹으면 나을 거다. 단, 이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
루터는 가짜 약을 내밀었다.
레이첼이 간절하게 말했다.
“제 목소리가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해결하고 싶어요.”
“홍등가에 팔렸는데, 앞으로 어찌하고 싶으냐? 원한다면 해방시켜 주마.”
“하지만 전 팔려 왔어요. 빚을 갚기 전에는 절대 탈출하지 못할 거예요.”
“이걸 주마.”
루터는 제이슨과 빌리온에게서 받은 뇌물을 건넸다.
“이걸로 네 빚을 청산하고 자유롭게 살아라.”
“저, 정말인가요?”
“그래. 네 업보는 어쩌면 내 책임이기도 하다.”
변절자 제거 작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놈들이 모조리 숨어 버렸다.
조용히 해결했어야 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덕분에 레이첼과 같은 피해자가 생겼다.
루터는 책임을 절감했다.
“고, 고맙습니다.”
“이제 문제를 해결했으니 가라.”
“감사합니다. 기사님.”
레이첼을 보내고 루터는 재조사를 시작했다.
사건은 끝났지만 수색은 멈추지 않았다.
세이렌의 노래의 주인을 알아보니 빌리온의 말대로 소른 공작의 귀부인 소유였다.
“거짓말인 줄 알았건만, 진짜였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루터는 신중을 기했다.
“설마 노래에 마력을 섞다니, 그것도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야.”
노래를 부르니 형태가 있을 리가 없다.
헌데 일부러 노래를 부르게 하는 이유는 뭘까.
“직접 보는 게 낫지.”
아무래도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루터는 세이렌의 노래라는 홍등가를 찾았다.
도착하고 보니 홍등가가 아니었다.
“고급 살롱이었군.”
돈 많은 자들의 은밀한 장소였다.
들어선 그는 안내원에게 요청했다.
“여기 노래를 잘하는 아리따운 여인들이 많다던데, 사실인가?”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루터. 소른의 치안 기사이다.”
“죄송하지만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들어올 수 없다는 말에 루터가 재차 물었다.
“왜 들여 보내주지 않는 거지?”
안내원이 여상하게 말했다.
“평기사는 입장할 자격이 안 됩니다.”
“너무하군. 빌리온이나 제이스 같이 천박한 패밀리 따위들도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치안 기사라 꺼리는 건가?”
“그럴 리가요. 그들은 아마 귀족분들과 동행하여 들어 올 기회를 얻었을 겁니다.”
루터는 혀를 찼다.
순간, 안내원을 매혹 마법으로 속이고 들어갈까 고민했지만 이내 관뒀다.
정체를 숨겼으니 조금의 빌미를 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스스로의 능력으로 입장해야 한다.
루터가 방법을 물었다.
“기사가 입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석 기사 이상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
최소 기사단 소속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곧 다시 오지.”
재방문을 알린 루터는 다음날 곧장 기사 인사권을 담당하는 에르손을 찾았다.
그는 직접적인 용건을 꺼내지 않고 권한 확장을 요청했다.
“수사권 확장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범죄에 연루된 귀족이나 기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직접 조사를 해야 합니다.”
에르손은 난처했다.
“평기사는 권한이 없습니다.”
치안 기사의 신분 부족이라는 말에 루터는 그제 서야 목적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수석 기사를 요청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간단합니다. 기사 단장께 공증을 통한 대련을 요청하면 됩니다. 실력을 입증하면 수석 기사가 되실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신청하지요.”
에르손의 시선이 묘했다.
“소른의 기사 단장분들은 모두 익스퍼트 상급입니다. 그분들에게 검증을 받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당당한 자신감에 에르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누구로 하시겠습니까?”
“아무나 좋습니다. 동시에 이 말도 전달해 주시지요. 체면 구기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대련을 치르자고 말입니다.”
에르손이 눈을 깜빡였다.
“정말 도발을 하실 겁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시일을 앞당기지 않겠습니까?”
“허허. 무모한 용기로군요.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사실이니 상관없습니다.”
루터는 일어났다.
“가급적 빨리 진행해 주세요. 지금도 범죄자들은 어디선가 활개를 치고 있을 겁니다.”
그가 돌아가고 에르손이 턱을 쓸었다.
“묘한 인물이야. 아니면 단순히 무모하거나.”
어느 쪽이건 좋다.
간만에 소른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에르손은 일부러 기사단장 중에서 가장 자존심이 센 자를 찾았다.
당연히 기사단장은 고함을 지르며 분노를 토했고, 순식간에 일정이 잡혔다.
루터의 상대는 볼락 기사단의 기사단장 제릭 볼락 기사단이었다.
자신의 성을 기사단의 이름으로 붙였다.
그만큼 기사단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 만큼 자부심이 상당하는 뜻이다.
동시에 기사단장의 이름을 달아줄 만큼 가문 내에서 제릭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릭은 체면 구기지 말라는 루터의 도발에 맞서 내성의 모든 사람들을 대련에 초대했다.
체면은커녕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압살하겠다는 뜻이었다.
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소른의 모든 기사가 찾아왔고, 귀족들도 참관했다.
사태가 커졌지만 루터는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참관하길 바랐다.
루터는 기사들의 생리를 잘 알았다.
기사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기사가 실력이 나으면 박수를 치며 앞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찍어 눌러 떠나게 하거나 못살게 군다.
그럴 바에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수석 기사가 되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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