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143화 (143/185)

#143화 수색

영주로서의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마왕의 변절자를 제거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특히나 시기가 하수상한 지금은 더욱더 그랬다.

‘드래곤에게 낙사노르 소환 마법진을 알려주고, 콕스에게 경고한 자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루터는 두 가지 일을 벌인 자가 분명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었고,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번 여정은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편하기도 했고 어차피 같이 동행 할 인물도 없었다.

루터는 일단 돌켄 등을 텔레포트로 소른트에 보내기로 했다.

인재를 들이는 일은 중요했지만, 이번 일로 전략의 수정이 대폭 필요했다.

임무를 맡은 엘레나와 돌켄에게 시간을 주는 동시에 효율적인 영입 방법에 대해 구상하라 지시를 내렸다.

아마 돌아가면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큰 사고 없이 영입을 진행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할 계기가 되리라.

콕스는 소른트에 남기로 했다.

루터의 주변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아카데미를 통해 루터와 경쟁을 하는 것에 대해 재미를 붙였다.

모두가 떠나는 날.

그의 배웅 속에서 일행이 텔레포트를 통해 소른트로 귀환했다.

콕스는 루터가 동행하지 않자 그 이유를 물었다.

“일이 생겼나 보지?”

“그래. 긴급한 일이다.”

“내 귀에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소리 같은데, 동행해도 될까?”

“상관은 없지만, 이 일은 마왕의 부하들과 관련되었다.”

마왕의 이름이 언급되자 콕스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워! 그런 일이었나? 혼자 잘 다녀오게.”

이번에는 루터가 물었다.

“마왕과 연관되기가 그렇게 싫나?”

“그는 휘몰아치는 태풍이야. 조용히 지내고 싶으면 태풍 근처는 가지도 않는 게 좋지.”

콕스의 목표는 장수였다.

그런데, 마왕과 엮이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루터는 고개를 끄덕인 뒤, 텔레포트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로스트 왕국의 몰란 영지였다.

루터는 로스트 왕국에 대해 잘 알았다.

남부는 한때, 그의 활동 거점이었다.

그의 과거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만큼 남부는 전쟁이 빈번했다.

그리고 로스트 왕국은 항상 전쟁의 도화선이 발발하던 곳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대대로 왕권이 약하고 지방 귀족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드는 귀족 세력은 전쟁을 일으켰고, 이를 막기 위해 왕권은 다른 귀족을 끌어왔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전쟁을 잠재우면 끌어온 귀족들이 다시 반기를 일으킨다.

악순환의 반복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부는 비가 잦고 날씨가 푸르다.

토양의 질도 좋으며 곡식과 과일 등의 생산이 풍부하다.

먹고 살만 하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지방 귀족들은 그렇게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셈이다.

“오랜만이군.”

로스트 왕국에 도착한 루터는 감상에 젖었다.

푸르른 초원과 맑은 날씨.

그리고 남부 특유의 습한 기온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익숙했다.

허나 마냥 반갑지 않았다.

이곳에 마왕의 변절자가 숨어 있다.

그들은 골치 아픈 존재다.

마물을 소환해 사달을 일으키면 걷잡을 수 없다.

루터는 지핀 불이 겁화가 되어 모든 것을 삼키기 전에 미리 뿌리를 뽑을 생각이다.

로스트 왕국의 지리에 대해 잘 아는 루터가 몰란 영지의 위치를 모를 수가 없었다.

몰란 영지 또한 몇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던 곳이다.

몰란 공작은 야심 찬 인물이었고, 항상 거병할 때를 호시탐탐 엿보는 곳이다.

당연히 몇 번의 큰 전쟁을 일으켰으니 몰란 영지의 위치는 눈 감고도 찾아간다.

혼자 여행을 하니, 적적하다.

허나 적막은 그의 그림자나 다를 바 없었다.

좋은 점이 더 많았다.

행동의 제약이 없다.

일행을 위해 자제했던 행동의 제약이 없자 거칠 게 없었다.

루터는 몰란 영지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시작했다.

‘아마 지금 시기면 한창 전쟁 준비 중이겠지.’

사실, 몰란 영지는 언제 어느 때든 전쟁을 위해 군비를 비축하고 이름난 기사나 능력자들을 영입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실력이 있다면 언제든지 한자리 꿰찰 수 있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조용히 숨어 있으면 은밀히 찾아가 주마.’

루터는 변절자들이 숨는 이유를 알았다.

아마도 키아라와 동행하면서 몇 번 변절자들을 제거했던 것이 계기가 컸을 것이다.

자신들을 제거하는 추격자가 있음을 깨달은 그들이 꽁꽁 숨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숨는 재주는 용케 있는 모양인지, 수색이 어려웠다.

맞닥뜨리면 제거할 수 있겠는데, 숨으니 도통 찾기 어렵다.

그렇다는 말은 자신 역시 은밀히 활동을 개시해야 했다.

‘검사로 행세해야겠어.’

눈에 띄지 않으려면 마법사보다 검사 행세가 훨씬 나았다.

마법사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경계 받는 존재였다.

거짓말이나 눈속임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흔하디흔한 검사로 행세하는 게 나았다.

로브를 감추고 허름한 셔츠와 밑단이 해진 바지로 갈아입었다.

얼굴도 삼십대 중반 수준의 외양을 유지하고 수염을 만들었다.

군데군데 흉터도 새겨놓자 제법 인상이 강했다.

그렇게 맨몸으로 초원을 걷자 무인도처럼 초원에 듬성듬성 난 작은 숲을 발견했다.

그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병장기가 부딪히고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루터는 쓰게 웃었다.

“역시 남부 국가답다.”

남부는 북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도적과 산적이 많다.

먹을 것이 많으니 빼앗고 갈취한다.

게다가 지방 귀족들은 서로를 소 닭 보듯 하거나 원수지간인 경우도 허다해 산적이나 도적에 당하든 신경을 쓰지 않았고, 외려 별동대를 운영해 약탈을 자행하기도 하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루터이니 숲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오히려 평화로우면 되레 의심스럽다.

아니면 태풍 전 고요함이거나.

루터는 숲으로 이동했다.

부러진 깃발이 바닥에 깔렸다.

그는 깃발에 새겨진 문장을 보고 기억을 더듬었다.

‘사피엔트 남작의 문장이로군.’

사피엔트는 대대로 소른의 충성 가문이었다.

‘일이 수월해지겠는데?’

위기를 구하면 인연이 생기고 접근이 쉬워진다.

루터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죽어라! 소른의 개야!”

“뒤져!”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튀기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전황을 보니 소른트 기사들과 도적으로 보이는 무리가 부딪히고 있다.

루터는 도적을 단순한 도적이라 여기지 않았다.

기세가 엄정하고 집단 전투에 능숙하다.

아마도 소른과 척을 지는 영지의 기습일 가능성이 높았다.

도적으로 위장한 기습전은 남부에서 흔한 광경이다.

루터는 죽은 시체의 손에서 숏 소드를 집어 들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웬 놈이냐!”

외친 도적이 사납게 다가왔다.

루터는 상대의 장검을 걷어내고 정확히 목젖을 찔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에 목이 꿰뚫린 도적이 쓰러졌다.

상대하는 도적이 죽자 이번에는 셋이 붙었다.

루터는 일부러 깔끔한 동작을 선보였다.

일전의 용병 행세 때는 실전 검술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기사 검술을 사용했다.

용병 검술과 기사 검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형식이었다.

용병 검술은 투박하고 거칠다.

때에 따라서 침을 뱉거나 바닥의 모래를 뿌리는 거친 방식을 망설이지 않으며 또한 뒤가 없다.

반면 기사 검술은 형식이 존재한다.

동작이 유려하며 깔끔하다.

각 기사가 소속된 곳마다 정도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형식을 중시하는 것은 어딜 가나 똑같다.

현재 선보이는 루터의 검술이 그랬다.

원을 그리는 부드러운 동작 속에 날카로움이 배였다.

상대의 검을 밀착시켜 튕겨낸 뒤, 흐름에 따라 검을 베었다.

빼어난 스텝에 검술 또한 현묘하니, 상대가 곤혹함을 드러냈다.

기사의 존재는 전쟁의 판도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루터가 선보이는 검술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의 개입으로 전황이 점점 불리해졌다.

약 서른의 도적들을 지휘하는 자가 형세가 불리하자 입술을 깨물고 부르짖었다.

“퇴각한다! 모두 물러나라!”

그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도적들이 거리를 벌렸다.

맞서던 스물의 소른 기사와 병사들은 굳이 전투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전투는 소른의 피해가 훨씬 컸다.

부상자도 많고 주어진 임무도 방어에 치우쳤다.

루터는 소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즉각 판단했다.

‘호위 병력이로군. 아마 사피엔트 남작이 안에 있나 보군.’

루터의 짐작은 정확했다.

도적이 물러나자 화살에 의해 꼬치가 된 마차에서 배불뚝이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뚱뚱한 중년인. 사피엔트 남작이었다.

시체 밭에 놀라는 사이, 호위 병력을 지휘하는 기사 대장 칼슨이 다가왔다.

“도와주어 고맙소.”

칼슨은 경어체를 사용했다.

그는 루터의 검술을 보고 기사라 짐작하고 있었다.

루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평이한 어조에 칼슨이 스스로를 소개했다.

“사피엔트 남작가의 기사 대장 칼슨이라고 하오.”

“방랑 기사 루터입니다.”

루터는 신분을 속였지만 이름은 그대로 차용했다.

그의 이름은 대륙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방랑 기사라는 말에 칼슨의 눈에 호의가 떠올랐다.

남부에서 방랑 기사는 전쟁으로 인해 모시는 주군을 잃거나 주인을 찾지 못한 기사일 경우 스스로를 방랑 기사라 부른다.

그리고 남부에서 방랑 기사는 어딜 가든 대우를 받는다.

칼슨이 부탁했다.

“염치없지만 소른으로 가는 듯한데, 가는 동안 동행을 부탁 드려도 되겠소? 도적이 언제 기습해 올지 모르니 그대의 도움이 절실하오.”

“그렇게 하지요.”

“정말 고맙소.”

동행이 결정 되고 곧장 출발했다.

주인 잃은 말에 올라탄 루터에게 칼슨이 접근했다.

“어쩌다 방랑 기사가 되셨소?”

“전투 중에 주군을 잃었습니다.”

“저런!”

짐짓 탄식하던 그가 칼슨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유감이오. 모시던 주군이 누구셨소?”

“동부에 영지를 둔 제이콥 백작 가문이었습니다.”

제이콥 백작은 전쟁으로 인해 멸망한 로스트 왕국의 지방 영주였다.

루터는 제이콥 백작가의 멸문을 익히 기억했다.

그들이 무너지는 바람에 자신의 첫 전투의 행선지가 알리고레 남작과 테페스 자작의 영지전으로 바뀌었다.

제이콥 백작가는 기사 가문이었다.

본인들 스스로도 기사가 얼마나 소속된 지 모를 정도로 방대한 숫자를 자랑했다.

덕분에 적당한 변명 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칼슨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백작 가문의 기사가 되려면 실력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루터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실력도 있고 방랑 기사였다.

하지만 칼슨은 무턱대고 접근하지 않았다.

일단은 친분이 우선이다.

칼슨이 말했다.

“안타깝군. 기사는 모름지기 주군을 모셔야 진정한 의미를 찾는 법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적당히 맞장구를 치자 칼슨이 얼씨구나 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주군은 찾으셨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흠. 곧 그대가 원하는 주군을 찾길 바라오.”

칼슨은 격려를 한 뒤, 곧장 사피엔트 남작을 찾았다.

남작은 칼슨의 이야기를 들은 뒤, 루터에게 접근했다.

그가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지만, 루터는 한 마디로 그의 입을 봉했다.

“소른 공작 각하께서 인재를 찾으신다 하니 일단 의탁을 해 볼까 합니다.”

“크흐흠. 그렇게 하시게.”

사피엔트 남작은 루터가 소른에 간다는 소릴 듣고 이내 포기했다.

소른을 섬기는 사피엔트 가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초원을 가로지르니 황금 들녘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른의 진정한 힘이었다.

저기서 생산 되는 곡식으로 부를 쌓고 인구를 늘린다.

그리고 거기에 바탕 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루터는 끝없이 펼쳐진 황금 들녘보다 본성에 시선을 향했다.

‘저 곳에 변절자가 있다. 어디에 있을까?’

숨는 재주 하난 용한 그들의 행보를 돌이켜 보면, 좀처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주하면 내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키기 마련이다. 어리둥절하며 반문한 질리언이 갑자기 흠칫하며 루터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모든 것들이 이상했다.

질리언이 얼떨떨한 눈으로 물었다.

“저기. 혹시 마도사세요?”

루터는 손에 쥔 마물을 뒤흔들었다.

“이 녀석은 지금 내게 제압당했지만,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 아카데미 전체를 붕괴시킬 힘이 있어. 그런데 지금은 내게 붙잡혀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자, 이만하면 설명이 된 듯 한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 맙소사.”

눈동자가 흔들리며 질리언이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도사는 꿈의 경지다.

질리언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재차 되물었다.

“저, 정말 마도사세요?”

“앞으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루터는 마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기억해 두어라. 내 이름은 루터다.”

충격으로 얼떨떨한 질리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스로를 마스터라 말하는 눈앞의 마법사는 인정하는 자에게만 이름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아카데미에 퇴학당할 처지에 놓인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 주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루터는 성을 꼼꼼히 탐색하자 다짐하며 사피엔트 남작 일행과 함께 본성으로 향했다.

# 14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