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137화 (137/185)

#137화 계략2

엘레나는 검을 고쳐 쥐었다.

나타난 마법사 무리를 노려보는데,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돌켄과 고든이 엉망인 채로 혼절해 있었다.

흠칫한 그녀의 반응을 본 마법사 하나가 이죽거렸다.

“계집. 꼼짝 마라. 네 일행을 잡고 있으니 말이다.”

마법사가 쓰러진 돌켄을 가리켰다.

엘레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돌켄은 과거와 달리 어설픈 애송이가 아니다.

익스퍼트 상급이었고, 익스퍼트 상급이라는 얘기는 검사로서 절정의 기량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헌데, 그가 마법사에게 붙잡혔다.

그렇단 얘기는 상대가 익스퍼트 상급을 제압할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다.

‘영주님이 필요해.’

지금 당장 자신들을 구원해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함부로 행동하진 않았다.

자칫 마법사들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다간 인질로 잡힌 일행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기에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엘몬트에서 고든을 데려가려는 거냐?”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죠?”

“어떻게 알긴, 이 멍청이 놈이 떠벌렸으니 알았지.”

노회한 마법사가 얼굴이 피범벅인 고든을 가리켰다.

고든은 전처럼 웃지 않았다.

창백한 안색에서 사안의 경중함을 알리고 있었다.

엘레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엘몬트는 인재가 필요하고 고든 마법사님은 뛰어난 치료사죠. 그래서 모셔 가려 했어요. 문제 될 게 있나요?”

“아주 큰 문제지. 고든은 베르뉴 마탑 소속이야. 알고 있었나?”

“아니요. 전혀 몰랐어요.”

“시치미 떼지 마라. 네년은 기적의 마법사가 베르뉴 마탑의 마법사를 데려가려는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겠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요? 고작 그 이유 때문에 저흴 공격하는 건가요?”

“고작? 고작이라고?”

노인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빌어먹을 년! 우리가 바보로 보이더냐! 네 연놈들이 고든을 데려가 베르뉴 마탑의 비밀을 캐려는 걸 내 모를 줄 알았더냐! 감히 어디서 개수작이야!”

마법사의 분노 어린 외침이 울려 퍼졌다.

긴장감이 감돌고 포츠 후작가의 일원은 되레 당황했다.

어설프게 참견하려다 괜히 엮이게 생겼다.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한다.

후작가의 일원 중 하나가 도리스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혼전이 이는 와중에 도리스는 살아 있었다.

일단 저놈을 제거해야 한다.

긴장 어린 시선 교환이 이루어지는 틈을 타, 도리스에게 접근했다.

갑자기 마법사가 나타나자 잔뜩 겁에 질린 도리스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다가간 상대는 다급했다.

눈을 보니 도리스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슬금슬금 다가가던 것과 다르게 그의 손이 재빠르게 출수했다.

허리춤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쏜살같이 도리스의 목젖을 향했다.

도리스가 외치려는 찰나였다.

“도와 주…….”

촤아악!

도리스의 목에 단검이 박혔다.

동시에 마법사들이 캐스팅을 시작했다.

“스톤 볼!”

“어스 필드!”

“스톤 미사일!”

땅 계열 마법이 엘레나를 비롯하여 여관을 휩쓸 것처럼 들이닥쳤다.

휘몰아치는 돌무더기에 엘레나와 포츠 후작가의 사람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다급히 돌을 쳐냈다.

전면에서 무거운 돌덩이가 날아오고 머리 위로는 날카로운 암석 파편이 쏟아진다.

갈라진 바닥에선 송곳처럼 날카로운 암석이 치솟았다.

혼비백산한 와중에 엘레나의 상황은 훨씬 더 안 좋았다.

그녀는 혼자의 몸이 아니었다.

바네사와 에릭이 장내에 있었고 이들을 지켜야 했다.

당연히 움직이지 못한 채, 방어를 해야 했고, 덕분에 몸에 상처가 더더욱 늘어났다.

마법사들은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는 눈이 타고났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제약적이니 당연히 약점을 파고드는 게 당연시되었다.

엘레나의 태세를 지켜보던 마법사들은 쓰러진 사람을 지키느라 행동에 제약이 걸린 사실을 알았고 그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일부러 인질을 노려 마법을 난사하자 엘레나는 더욱더 다급해졌다.

결국 온전히 검으로만 방어를 할 수 없으니 이 대신 잇몸이라고 온 몸을 던져 막아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돌 알갱이가 전신에 박히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엘레나가 숨을 헐떡였다.

그런 그녀보다 사정이 더 안 좋은 자들이 있었다.

암살자를 투입해 엘몬트에서 온 자들에게 계획된 도움을 의도했던 포츠 후작가의 일원들이었다.

바로 로시 기사단장과 페비벤 기사 단장이었다.

두 사람은 익스퍼트 중급과 상급 사이의 수준이다.

당연히 제약이 걸린 엘레나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크아아악!”

발등을 뚫고 암석이 튀어 올랐다.

이대로는 둘 다 죽는다.

로시 기사단장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우연을 가장한 연극은 여기까지다.

그가 부르짖었다.

“멈추시오! 멈추란 말이오! 우린 포츠 후작가에서 왔소!”

명망 높은 귀족 가를 언급하자 마법사들이 공격을 멈추었다.

마법사를 진두지휘하던 노인이 눈을 부라렸다.

“네 놈들도 엘몬트와 합세한 것이냐?”

“아, 아니오. 우연히 길 가다 갑자기 암살자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도움을 주려 했던 것뿐이오. 얼떨결에 끼어든 겁니다.”

로시의 변명에 노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역시 포츠 후작가를 알고 있었다.

아무리 베르뉴 마탑이 대단해도 포츠 후작가를 업신여길 수는 없었다.

“그게 사실이냐?”

“그, 그렇소.”

“일단 너희들은 물러나라. 상황을 정리하면 나중에 추궁하겠다.”

아무래도 저들의 말만 믿자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도와주러 왔다면서 구석에 벌벌 떨던 중년인을 죽였다.

노인은 도리스에 대해 몰랐으니 당연히 저들을 의심했다.

그사이 틈이 생긴 엘레나가 힘없이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물감이 잡히자 그녀가 간절히 말했다.

‘루터 님. 도와주세요.’

알려준 대로 이름을 언급하자 마나석에서 빛을 발했다.

마법사들이 낯을 찌푸렸다.

갑자기 엘레나의 몸에서 빛이 일어났다.

오해한 노인이 외쳤다.

“저년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둘러 죽여라!”

그 말에 마법사들이 다급히 메모라이즈 된 마법을 쏘았다.

캐스팅 없이 즉발로 나간 마법이 엘레나를 덮쳤다.

콰가가강!

폭음이 일어나고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다시 가라앉았을 때에는 현장에 없던 인물이 서 있었다.

루터는 다 죽어가는 엘레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가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엘레나는 루터의 등장에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이내 혼절했다.

그가 있으니 안심이다. 엘레나는 간신히 붙잡던 의식을 놓았다.

엘레나가 루터를 부르기 전.

루터는 콕스와 함께 여전히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콕스와 루터의 내기는 콕스의 승리였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마나 고리를 만들었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스물다섯의 학생들이 일제히 훈련용 더미를 향해 깔끔하게 1서클 마법을 쏘았다.

누구 하나 실패한 이가 없었다.

루터는 솔직한 심정으로 적잖이 놀랐다.

보통 마법을 입문한 사람이 고리를 이루는 데에는 적게는 한 달. 많게는 평생 이루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마법의 입문은 그 진입 장벽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콕스는 일주일 만에 해내었다.

루터는 그제 서야 콕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물허전이군. 역시 드래곤의 이름값이라 이건가?”

득의양양한 콕스가 어깨를 폈다.

“어떤가?”

“뛰어나다. 흥미롭기도 하고.”

루터는 콕스의 방식을 보고 배울 점이 많았다.

그는 자신과 다르게 가르치는 데에 능숙했다.

아마 경험이 많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방식이 전혀 달랐다.

루터는 절제된 분위기 속에 엄정하게 가르쳤다면 콕스는 마치 애들 놀이하듯 했다.

마나 수련을 하고 싶으면 했고 평상시에는 그냥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놀아주는 것도 콕스의 잘난 체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에게 화려한 마법을 선보이면서 부러움과 존경심을 이끌었다.

현재에 와서는 아이들의 인식이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콕스의 수업은 즐겁고 화기애애했다면, 자신은 진지하고 엄격해 어려워했다.

그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신은 일주일 동안 마나를 주입하는 것에 그쳤지만, 콕스는 단 일주일 만에 아이들의 고리를 만들었다.

누가 가르치느냐에 따라 성취가 남달랐다.

루터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어떻게 한 거지?”

그의 겸허한 질문에 콕스가 빙그레 웃었다.

“이봐, 친구. 누군가를 가르칠 때에는 사고방식이 자유로워야 해. 자넨 아직 꽉 막혀 있다고.”

“하지만 진지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실수를 범할 때, 대처 능력을 잃게 된다.”

“그건 나중에라도 좋아. 잘 듣게. 마나는 사람과 같아. 숨을 쉬고 밥도 먹고 뛰어놀기도 해야 해. 즐겁게 익혀야 마나에 대한 접근이 더 쉽다는 말이야. 초장부터 어렵게 갈 것 없다고. 그건 스스로 마나에 대한 정립이 세워졌을 때나 시도해도 좋아.”

“그래. 내가 졌다.”

순순히 자신의 부족을 인정한 루터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확실히 자신에게서 배울 때와 다르게 얼굴이 무척 밝았다.

그들에게 다가간 콕스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모두 잘했다. 역시 내 제자라 그런지 아주 뛰어난걸!”

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이 콕스를 에워싸며 선생님 소리를 한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과 콕스의 웃음소리가 아카데미 내에 울려 퍼졌다.

야심한 시각이 되고 루터는 콕스와 진지하게 대화했다.

“이제 떠날 건가?”

“내 에고 검은 어디 있나?”

“여기 있다.”

혹시 몰라 마련해 놓은 에고 검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내기로 인해 내주게 될 줄은 몰랐다.

콕스는 평범한 장검을 여기저기 살피더니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게 뭐야? 별 것 없잖아?”

“평상시에는 그렇지. 하지만 일단 발동을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그 발동은?”

“예고에게 말을 걸면 알겠지.”

“호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볼까?”

장검을 쥔 콕스가 말을 걸었다.

“자, 나타나거라.”

[네. 마스터.]

“호오. 네가 이 장검의 에고인가?”

[그렇습니다. 전투를 개시하시겠습니까?]

“그래. 일단 한 번 본 모습을 드러내 보아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장검에 빛에 휩싸이자 황금빛 손잡이와 순도 짙은 푸르른 미스릴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검 전체에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콕스는 그제야 만족을 드러냈다.

“에고 검이라면 응당 이래야지. 그래서 기능은 뭐가 있지?”

[상대의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전투력을 측정한다고?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이 진짜야?”

콕스의 질문에 루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측정이 가능하다.”

“허용 가능 범위? 그게 어디까진데?”

“능력이 닿는 데까지지. 아무래도 주입하는 마나의 주인은 자네니까.”

“진귀한 기능이군. 그럼 내 전투력은 몇이지?”

[650만입니다.]

“대체 그 전투력의 기준이 뭐야?”

[상대방의 마나를 측정하여 전투력으로 환산합니다.]

“호오라! 그러면 이 친구의 전투력은 몇이지?”

[측정 불가입니다.]

“측정 불가? 어째서?”

[능력 밖 수치는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콕스의 표정이 묘했다.

그가 루터에게 물었다.

“에고 말로는 자네의 전투력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앞서 말했듯이 능력 밖의 전투력은 측정을 할 수 없네.”

“그렇단 말은 자네가 나보다 훨씬 강하단 말인가?”

“내가 괜히 드래곤을 이 잡듯이 뒤져가며 사냥한 게 아니야.”

콕스가 혀를 내둘렀다.

“인간으로 태어나 드래곤을 능가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야.”

루터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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