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131화 (131/185)

#131화 아카데미2

엘몬트 영지민들은 습관적으로 중앙 광장에 모인다.

이유는 별 게 없었다.

광장에는 영지의 소식을 접하는 게시판이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영지의 일과나 앞으로의 계획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게시판에는 아카데미를 모집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카데미 모집의 내용이 심상찮았다.

“영주님이 직접 가르치신다네.”

“이거 정말 혹하는걸?”

“나도 배울 수 있을까.”

사람들의 눈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허나, 일전의 사례를 떠올린 몇몇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마법을 배우는 건 쉽지 않아.”

“칼루아 님의 마법 아카데미도 벅찼었지.”

“맞아. 결코 쉬운 학문이 아니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엘몬트의 아카데미는 첫 신설이 아니었다.

이미 일전에도 아카데미는 존재했다.

그러나 성과는 미진했다.

마법은 부리는 건 멋져 보여도 그 부리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들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룬어를 외워야 했으며, 복잡한 수식어를 암기뿐만 아니라 응용까지 해내야 한다.

거기에 룬어와 수식어를 복합적으로 다루어야 했고, 무엇보다도 마나의 재능이 뒤따라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내려면 재능과 인내심. 그리고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줘야 그나마 한 사람의 마법사가 될 수 있다.

자세히는 몰라도 간략한 사정을 아는 이들은 벌써부터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는 복잡한 마법을 다루는 것보다 목수를 하는 게 더 편해.”

“요즘은 어부 일도 괜찮다고.”

“가축 기르는 재미도 빠질 수 없지.”

사람들은 영주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있다 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하기 싫은 게 아니었다.

영지민들은 선택 사항이 많았다.

굳이 마법사가 되기 위해 매달리지 않아도 현재도 충분히 인생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니 괜히 골치 아픈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달랐다.

마법사는 평민도 귀족 취급받는다.

엘리트 학문인 데다, 학습을 잘 따라가면 마법사가 될 수 있다.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은 치맛바람으로 각자의 아이들을 이끌고 광장의 게시판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들이 자식을 두고 일장연설을 펼쳤다.

“알겠지? 꼭 이 마법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아이들이 입을 헤 벌렸다.

아카데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마법 아카데미가 뭐에요?”

“마법을 배우는 곳이야.”

“마법?”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어린아이들도 마법이 어떤 건지 잘 안다.

마법이란 말에 모두가 혹하는 심정이었다.

“나 마법 배우고 싶어!”

“마법사가 될 거야!”

열의를 드러내는 아이들이 있으면 심드렁한 아이들도 있었다.

“엄마. 꼭 배워야 해? 나는 그냥 놀고 싶은데.”

“그냥 안 하면 안 돼?”

“안 돼! 무조건 해야 해! 마법사가 되면 출세한단다.”

“출세가 뭐야?”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마음에 어머니들이 불을 붙였다.

바야흐로 그녀들에 의해 엘몬트는 마법 아카데미에 대한 열정이 불고 있었다.

모집 게시 당일.

루터는 해안가를 따라 줄줄이 나타나는 인파의 면면을 확인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세 살배기부터 허리 굽은 노인까지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숫자는 압도적으로 어린아이가 많았다.

루터가 케인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마법에 관심이 많은 가 보지?”

케인이 헛웃음을 삼켰다.

“마법이 좋은 건 알겠지만, 어려서 공부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대부분 부모님이 등 떠밀어 참가하는 순진한 아이들입니다.”

“왜 마법을 시키려고 하나?”

“아무래도 마법사가 되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아마 엘몬트 내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왔을 겁니다.”

루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딜 가도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고 하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 막 걸음걸이를 시작한 아이까지 데려오는 걸 보면 열정이 과도하다 싶었다.

케인은 루터를 연신 힐끗거렸다.

루터가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라.”

“정말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직접 가르칠 계획이십니까?”

“그래. 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주님의 앞길을 괜히 발목 잡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우려에는 이제까지 루터가 보인 행보 때문이었다.

루터의 그릇이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 가르치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제까지 그의 모습이 그러했고, 그래서 지금도 우려가 들었다.

“괜히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케인은 루터가 더 위대한 일을 하고도 남음을 알았다.

그런데 고작 아카데미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루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 가질 것 없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교육하는 것 역시 내 계획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초석을 잘 닦는 게 중요하다. 언젠가 저들이 엘몬트의 미래가 될 테니까.”

“하지만 영주님은 좀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됐다.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겠지만, 나는 관심 없다.”

케인의 속내는 뻔했다.

아마도 대륙 정벌 같은 거창한 계획을 염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루터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 없었다.

지금도 엘몬트를 경영하는 것도 벅찬데, 세계를 지배하는 등의 일에 힘을 쏟고 싶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입성한 사람들이 장내의 훈련장으로 모여들었다.

단상에 선 루터가 그들을 훑고는 아카데미 학생의 모집 방식을 알려 주었다.

“모두 엘몬트 마법 아카데미에 온 것을 환영한다. 게시판을 통해 확인을 했겠지만 이번에 세울 아카데미는 엘리트 마법사를 배출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니 모두 합격시킬 순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 마법적 소양을 최소한이라도 갖추었는지 시험한 뒤, 그를 통해 합격과 불합격의 결정 하겠다.”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던 중년 아낙이 손을 번쩍 들었다.

“영주님. 시험은 어떻게 하나요?”

“간단하다. 일단 마나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마나의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결코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중년 아낙의 얼굴에 근심이 떠올랐다.

혹여 제 자식이 테스트에 떨어질까 염려한 탓이다.

루터가 그녀에게 나직이 말했다.

“헛된 희망을 주어 일생을 괴롭게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다. 혹여 마법사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애초에 가야 할 길이 아닌 것뿐이다.”

“예. 영주님.”

사람들은 서글펐지만 미리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다.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방법은 예전보다 더 간단했다.

세계의 근본을 꿰뚫는 루터는 마법사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육안으로도 구별이 가능했다.

테스트를 시작하고 시험대에 오른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섰다.

루터는 그들을 지나치며 합격생을 골랐다.

한 줄에 백여 명이 넘게 섰지만, 뽑히는 이는 고작 5명 남짓이다.

뽑힌 이들은 기뻐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좌절했다.

루터는 떨어진 이들을 위로했다.

“세상은 수많은 길이 있다. 마법사도 그중 하나일 뿐이니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하나 달래 보아도 슬퍼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총인구의 4분지 일이 참가한 합격 테스트에 고작 스물다섯 명이 합격했다.

루터는 이 정도라도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했다.

마법사의 자질은 만 명 중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였다.

그리고 지금 테스트는 무려 스물다섯 명이면 충분하다.

사정을 아는 케인은 그래서 만족했다.

“꽤 많이 나왔군요.”

“아니. 아직도 부족하다.”

“이 정도면 꽤 나쁘지 않은 숫자이지 않습니까?”

“케인. 나는 모든 영지민을 마법사로 만들 거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앞서 말했듯이 지금 뽑히는 학생들은 엘리트 마법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들을 성장시켜 마법을 좀 더 쉽고 간단하게 배울 수 있게 만들 거다. 앞으로 성장한 이들이 내 의지를 이어가겠지. 그 때에 가서는 마법이 보편화 되어 누구나 기본적인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케인의 얼굴이 흔들렸다.

단순한 아카데미를 세우는 줄 알았는데, 계획이 훨씬 더 거창했다.

“그런 게 가능할까요?”

“두고 보아라. 곧 엘몬트는 마도학의 중심이 될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카데미를 세우지 않았다.

루터는 자신의 계획은 시기의 문제일 뿐, 실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카데미 의복은 새하얀 튜닉 조끼와 검은 바지였다.

조끼에는 금빛 단추가 달렸고, 룬어를 형상화한 붉은 수실이 가슴에 박혔다.

어깨 단추에 고정된 망토는 붉은색이었고, 정 중앙에 보호 마법 기능이 달린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색의 조화 속에 갖춰진 복식이 꽤 그럴 듯하다.

루터는 입학식을 치렀다.

뿌듯한 입학생들 사이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한센과 에밀리.

둘은 루터를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루터가 말했다.

“엘몬트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기대하마.”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카데미 내에서 루터의 명칭은 선생이었다.

아이들의 낭랑한 대답 속에 학생들과 대면을 마친 루터는 모두에게 신신당부했다.

“엘몬트 마법 아카데미는 엘리트 인재 양성소다. 너희들의 역할은 사람들을 도와 마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모두가 인정할 수 있게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엘몬트 마법 아카데미가 사람들에게 그런 인정을 받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네!”

“좋다. 오늘은 첫날이니 배부르게 먹고 편히 쉬어라.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마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시작하겠다.”

루터는 트리플 피쉬를 내놓고 맛있게 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언젠간 나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겠지.’

지금은 영지민을 보호하고자 전면에서 활동해야겠지만, 그의 꿈이 영주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물러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대체 할 인재가 필요했다.

루터는 자신의 후임으로 아카데미 학생들로 낙점했다.

이들이 자신을 대체하리라.

그는 아카데미를 세움과 동시에 자신의 영주로서의 은퇴 계획까지 설계해 놓은 상태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복식을 갖춰 입은 학생들이 둥글게 앉아 루터의 말을 경청했다.

“마법사는 마나를 체내에 담아 인위적인 형태로 발출하는 술사이다. 미리 경고하건데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마법은 평생 학문이라고 부르지. 일평생 동안 정진해야 하며, 나태함을 멀리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좋다. 일단 가장 기초적인 마나를 느껴보도록 하자.”

바닥에 스물다섯 개의 마법진을 만든 루터가 모두에게 마법진에 서도록 지시했다.

마나를 형상화하여 드러내자 허공에 반투명한 공기 방울이 나타났다.

“와아아!”

“이게 마나야!”

“신기해!”

아이들의 호들갑 속에 루터가 조언했다.

“앞으로 매일 마나를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연습을 하거라.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는 숨 쉬는 공기와 같다.”

아이들은 루터의 지시대로 마나를 느끼려 애를 썼다.

마나에 대해 느낌이 와 닿지 않으면 안 된다.

직접 느끼고 만져 자신만의 감각을 다듬어야 한다.

이는 중요했다.

앞으로 속성 마법을 다룰 때, 어떤 분야가 자신에게 적합한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에밀리가 가장 먼저 감상을 말했다.

“촉촉하고 부드러워요.”

“넌 앞으로 물 속성 마법을 주력으로 익히면 된다.”

한센도 뒤이어 말했다.

“딱딱하고 굳은 것 같아요.”

“너는 땅 속성이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느낌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력 속성을 스스로 인지하자 이제 다음 과정으로 이어졌다.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마나 연공법이다. 엘몬트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니 엘몬트 마나 연공법이라고 부르겠다.”

마나 연공법으로 이어지자 아이들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나 연공법을 배우면 마법사가 되는 건가요?”

“그래. 맞다.”

“얏호! 신난다!”

“벌써부터 좋아하지 마라. 성취가 낮으면 마법 하나 구사하기도 벅차다. 너희들의 험난한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루터는 엄포를 놨지만, 아이들이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루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벌써부터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군.’

마법은 끝없는 고난의 행군이다.

지금은 기뻐하겠지만, 머잖아 앓는 소릴 내게 될 것이다.

루터는 자신이 창안한 마나 연공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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