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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클 영주님-126화 (126/185)

#126화 트리플 피쉬2

에네르 소울을 펼친 루터는 바다를 관조했다.

그의 영역은 넓었고 지평선 저 먼 곳까지 시작하여 심해까지 이 잡듯 뒤졌다.

그러다 보니 칼루아의 정보 속에 나왔던 바다 생물의 모습을 포착했다.

루터는 공간 이동을 시작했다.

에네르 소울은 이래서 좋았다.

굳이 좌표를 찍지 않아도 공간과 공간을 가로질렀다.

첫 번째 바다 생물은 다랑어였다.

정보대로 몸이 날래다.

허나 어디까지나 물고기 중에서였다.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루터의 손아귀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루터는 다랑어를 포획했다.

손으로 낚아챈 뒤, 그대로 꼼꼼히 살폈다.

등 푸른 생선이었는데, 큰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그렇게 맛있다고?’

중얼거린 그는 어깨를 으쓱인 뒤, 알상어와 문어를 잡아 아공간에 넣은 뒤, 첨탑으로 되돌아갔다.

조리를 하려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바르코즈의 저택으로 향했다.

정원이 딸린 2층 목조 주택에 다다른 그는 문을 두드렸다.

열린 문으로 바르코즈가 초췌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르코즈는 루터를 보고는 흠칫했다.

“영주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루터는 대답 대신 그의 몰골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얼굴 꼴이 말이 아니군.”

“그게…….”

망설이던 그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부터 계속 머릿속에 결혼식장에서 먹었던 음식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드래곤 고기 말이로군.”

“영주님. 정말 드래곤 고기가 맞습니까?”

“맞아.”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바르코즈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드래곤 고깁니까?”

“내가 거짓말을 한 걸 본 적이 있나?”

바르코즈가 입을 벌렸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그가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 드래곤을…….”

“알려 하면 피곤할 거다. 그보다 언제까지 밖에 내버려 둘 참이냐.”

“아, 이거. 내 정신 좀 보게. 어서 들어오시지요.”

바르코즈가 비켜서자 제집처럼 내부를 둘러보던 그는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루터의 행동을 물끄러미 보던 바르코즈가 의문에 찬 눈으로 물었다.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요리.”

흠칫한 그가 더듬었다.

“호, 혹시 드래곤 고깁니까?”

“아니다. 왜 먹고 싶으냐?”

“아마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어떤 친구는 어제 맛본 드래곤 고기와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래? 꼭 드워프들 같군.”

“드워프요? 그건 누굽니까?”

“있어. 드래곤 고기에 환장한 이종족들.”

루터는 아공간에서 요리 재료를 꺼냈다.

다가온 바르코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건?”

“아는 종인가?”

“알다마다요. 하나같이 진귀한 식재료 아닙니까. 다랑어에 문어, 게다가 알상어까지.”

믿기지 않는 듯 바르코즈가 눈을 깜빡였다.

“이것들을 다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어디긴. 전부 바다에서 사는 생물 아닌가.”

“직접 잡으신 겁니까?”

“그래.”

바르코즈가 저도 모르게 툭 물었다.

“대체 영주님의 정체가 뭡니까?”

다랑어를 막 기절시킨 루터가 그 질문에 뚱하니 대답했다.

“자네 눈엔 내가 뭐로 보이나?”

“평범한 인간 같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 봤군. 그럼 적응해라.”

일방적인 통보를 한 뒤, 루터는 다랑어를 자르기 시작했다.

노숙 경험이 많아 생선 손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바다 생선은 민물 생선과 미세하게 손질법이 달랐다.

그래도 내장을 제거하고 뼈와 가시를 없애는 건 어렵지 않았다.

능숙하게 제거한 뒤, 루터는 정보대로 살을 먹기 좋게 베어 바르코즈에게 손짓했다.

“먹어 봐라.”

“생선 손질 솜씨가 한, 두 번 해 보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감탄한 바르코즈가 불그스름한 다랑어의 속살을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음. 좋습니다.”

“날로 먹어도 맛있단 말이지?”

“다랑어는 날로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겁니다. 워낙 귀해 황제에게도 진상하기 힘든 종인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먹게 되는군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주님을 모시게 된 것은 제 일생일대의 최고의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맛있는 걸 우리끼리 먹을 순 없지. 가신들을 불러라.”

“예.”

바르코즈가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서둘렀는지, 금세 바르코즈의 자택은 사람으로 들썩였다.

다랑어와 문어. 그리고 알상어의 알은 그들이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엘레나의 얼굴에 황홀함이 떠올랐다.

“아. 정말 너무 맛있어요.”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루터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 모든 식재료를 하나의 생물로 합하면 어떨 것 같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맛이 나올 거예요.”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다. 이미 이름까지 정했어. 트리플 피쉬다.”

케인이 의문을 드러냈다.

“영주님. 그런데 이것들을 전부 합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엘몬트 특산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특산품이요?”

“그래. 나는 이 트리플 피쉬를 양식 할 거다. 앞으로 사람들은 이 트리플 피쉬를 언제 어느 때에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할 거다.”

루터의 계획에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얌전히 있던 레베카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거예요.”

케인의 아내인 도로시도 상기 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매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루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오래 생각해 봤는데,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음식이야. 엘몬트에 값싸고 맛있는 식재료를 제공하는 게 내 우선적인 영지 경영의 발판이 될 거다. 어떤가?”

바르코즈가 헛웃음을 흘렸다.

“가만히 있을 때는 태산 같으시더니, 움직이니 대륙을 진동시키시는군요. 아마 모든 사람들이 열광할 겁니다.”

케인은 바르코즈의 말이 체감되었다.

자신들이 죽어라 일해도 안 되는 일을 루터는 하루 만에 뚝딱 해결한다.

‘애초에 그릇이 달라. 그릇이.’

영지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루터의 행보가 이제는 궁금하다 못해 두려울 지경이다.

그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낼까.

케인은 루터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트리플 피쉬를 만드는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생물도 룬어로 이루어져 있다.

루터가 할 일은 그 생물이 가진 고유의 기능의 룬어를 뽑아내 조합한 뒤, 형성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트리플 피쉬를 만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허나 결과물은 범상치 않았다.

다랑어의 몸통에 문어의 다리. 마지막으로 알상어의 알을 똑같이 구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양식을 위한 조건으로 자웅동체로 만들어 언제든 스스로 번식할 수 있게 했다.

외관은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나 생선의 몸통에 문어의 다리가 수염처럼 자라다 보니 끔찍한 혼종 같았다.

루터는 외관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맛만 좋으면 되지.’

어차피 알고 먹으나 모르고 먹으나 맛은 똑같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은 격했다.

그는 꼭두새벽부터 출항에 나서는 어부들을 모아 트리플 피쉬를 선보였다.

반응은 한결같았다.

“으악! 괴물이다!”

“으아아악!”

“저, 저게 뭐야!”

엘몬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순하다.

어떤 일이든지 흐르는 물처럼 담담히 순응하는 성격인데, 트리플 피쉬를 보는 어부들은 하나같이 경악 일색이다.

루터는 그들의 놀람을 잠재우고자 즉석에서 요리를 선보였다.

몸통은 날로 제공했고, 다리는 구웠다.

그리고 상시 품고 있는 알까지 내밀자 먹는 어부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 이건!”

“어찌 이런 맛이!”

감탄한 어부들이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엔 트리플 피쉬를 해치웠다.

루터가 물었다.

“이래도 겉만 보고 판단할 거냐?”

어부들이 자책했다.

“저희들의 안목이 부족했습니다.”

“정말 맛있어요.”

맛을 본 어부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다.

루터가 계획을 말해 주었다.

“앞으로 이 녀석들을 양식할 생각이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먼 해상까지 나아갈 필요가 없지.”

“정말 좋습니다.”

“대찬성입니다.”

“그래. 시작은 트리플 피쉬다. 앞으로도 이것 외에 다른 양식장을 만들 테니, 양식에 필요한 생선이나 생물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하라.”

루터는 긍정적인 어부들의 반응에 만족한 뒤, 어획 구역을 지정했다.

그런 다음 마법진을 지정하여 트리플 피쉬를 풀었다.

자웅동체인 녀석인지라 번식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리라.

“하루, 이틀이면 끝난다.”

루터는 구역 표기를 위해 부표를 띄워 어부들에게 알기 쉽게 구분을 해 주었고, 양식 시기가 되면 부표의 색을 바꾸기로 했다.

한 어부가 환하게 웃었다.

“이제 비바람 맞아가며 멀리 갈 필요가 없겠군요.”

바다에서 태풍을 만난다는 것은 조난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조난당하면 대게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덕분에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터는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조언을 했다.

“먹이를 잘 챙겨 주어야 한다. 양식장은 꽃을 재배하는 것과 같다. 상태를 계속 보살펴 주어야 잘 자라기 마련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입 모아 말하는 어부들을 보며 루터는 트리플 피쉬가 건강히 자랄 것임을 확신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풀어 놓은 트리플 피쉬의 수확 시기가 되었다.

루터는 자신이 만든 양식장에 증식한 트리플 피쉬를 보며 만족했다.

양식을 시작할 때에는 고작 몇 마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수만 마리로 불어났다.

양식업은 대성공이었다.

어부들은 분주했다.

그래도 손이 모자라 가족 단위로 일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처음엔 다들 트리플 피쉬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러나 맛을 본 이후로는 트리플 피쉬에 열광했다.

루터는 수확 시기가 되는 첫해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케인에게 일러두어 트리플 피쉬 축제를 열었다.

이 날은 지정한 소상인을 통해 무료로 트리플 피쉬를 시식하는 날이었다.

바르코즈나 케인 등은 루터가 벌써 결과를 선보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불과 며칠 되지 않았는데 계획한 바를 결실로 이루는 데 성공했다.

가공할 만한 추진력이다.

축제는 성대하게 열렸다.

처음 트리플 피쉬가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은 울었고, 상인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조리가 시작되자 시선이 달라졌다.

트리플 피쉬는 대륙에서 가장 진귀한 바다 생물 세 가지의 장점만을 취합해 만들었다.

당연히 풍미가 뛰어나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지고 군침이 흘렀다.

줄을 서고 먹기 시작하자 모두가 그 맛에 취하고 말았다.

흥이 돋자 악사가 연주를 시작했고, 노래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즉석의 흥에 무도회가 열렸고 사람들은 춤을 추었다.

관문에서 엘몬트로 갓 입성한 사람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무척 기뻐했다.

고생하고 노력하여 엘몬트로 들어올 가치가 있었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어울리고 하나가 된다.

기뻐하는 인파 속을 거닐 때, 관문을 지키던 자크가 찾아왔다.

“영주님. 아네스의 대사제가 찾아왔습니다.”

“빨리도 도착했군.”

한 교단의 직위가 있는 자들은 느리기가 거북이와 같아 가까운 거리라도 움직이면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에는 제법 빠른 시일이었다.

루터는 아네스 교단의 의중을 알았다.

“노른자 땅이라 이거겠지.”

교단의 세력을 퍼트리려 서두른 게 분명하다.

루터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 어느 교단도 엘몬트에 머무를 수 없다.”

아네스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대사제의 방문을 허용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결코 내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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