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드래곤 영역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의 적응기는 순조로웠다.
관문 바깥과 다르게 성 내의 사람들은 이방인을 환영했고, 또한 친절했다. 신분증을 작성하고 주거지를 배정 받았다.
이방인들은 곧 엘몬트 특유의 사회에 금세 적응하리라.
루터는 도시의 중앙 탑 꼭대기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점점 늘어나고 있다.’
꾸준히 인구를 받다 보니 숫자가 늘어났다.
현재 도시의 인구는 총 5만.
중소 도시 규모의 인구였다.
‘여전히 부족하다.’
좀 더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해상 루트를 뚫어야 하고, 사람들을 더 끌어 모아야 한다.
도시의 인구들이 곧 자신의 세계에서 활동할 사람들이다.
그러니 많을수록 좋다.
생각을 마친 루터가 지도를 펼쳤다.
마왕이 건넨 지도였는데, 엘몬트에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선명하던 붉은 점이 사라져 있었다.
루터가 물었다.
“당신의 부하들이 안 보이는군요. 어떻게 된 겁니까?”
어느새 나타난 마왕이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정확히는 날 실망시킨 옛 부하들이지.”
“어떻게 된 겁니까?”
“숨었어. 동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니 낌새를 눈치 채고 어둠에 몸을 숨겼다. 심지어 내 권능까지 버린 채로.”
마왕과 부하들은 권능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권능을 잘라 내었으니 찾는 일이 요원하다.
루터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당신의 시선을 피해 숨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마물이 간섭하면 가능하지.”
루터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마물은 나타난 이상 해악을 끼친다.
“사달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 가면 되겠군요.”
“그게 말이야. 그 마물도 네 장난감처럼 제 목숨을 꽤나 중히 여기는 것 같아.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악령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러면? 동료인가?”
“악령은 절 대장으로 부릅니다.”
“마물은 조심해야 해.”
“그는 겁쟁이라 제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마왕은 어깨를 으쓱였다.
루터가 결정 지은 이상 악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간섭이다.
“마물이 활동을 하지 않은 채, 당신의 변절한 부하들을 감추면서 숨었다는 것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거나 아니면 겁을 먹었단 얘기겠군요.”
“어느 쪽에 확률을 더 두고 싶나?”
“당신의 부하들은 약하고, 그래서 소환한 마물은 형편없습니다. 음모를 꾸며봤자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수준이겠죠.”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
루터는 몇 번의 결투 동안 마왕의 부하가 자신에게 대적할 수 없음을 알았다.
마왕이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겁을 먹었을거야.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테고.”
“아네스가 신나겠군요.”
교단의 주체가 되는 존재들이 활동을 멈추었으니, 아네스 교단이 득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루터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드래곤을 데려갔던 마왕이 돌아왔다.
어째서 드래곤이 마왕의 변절한 부하들과 결탁했는지가 궁금했다.
“드래곤을 조사해 봤습니까?”
“그래. 별 거 아니더군.”
“왜 그랬답니까?”
“내분이 생겼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을 보아 드래곤은 내분이 흔하게 일어나는 듯 했다.
그 사실을 처음 접한 루터는 헛웃음을 드러냈다.
“내분? 드래곤도 내분이 일어납니까?”
“전쟁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들조차 드래곤의 잔혹한 역사에 비견될 수 없어. 그들은 항상 싸우고 잡아먹는다.”
“평화로울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드래곤도 인간과 그다지 다를 게 없군요.”
그런데 의문점이 발생했다.
드래곤은 로드의 직함을 가진 대장이 존재한다. 그 대장이 어째서 사회를 안정시키지 않는 걸까.
“드래곤 로드라는 자가 보통이 아니라면서요?”
“그래.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료를 잡아먹어 성장했기 때문이야. 누군가 마음먹고 드래곤 학살을 자행하면 로드 만 큼 강해지지 말란 법은 없지.”
루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전에 만난 콕스를 통해 드래곤의 사회를 어림짐작하고 있긴 했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드래곤은 성장 방식은 서로 잡아먹는 방법 밖에 없답니까?”
“강해질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지만, 그 선택이 옳아. 결국 독한 자가 승자가 되는 법이거든.”
“내분은 어떻게 된 거랍니까?”
“드래곤 로드의 폭식이 증가했다는군.”
“폭식?”
“동료를 많이 잡아먹는다는 거야.”
루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죄책감도 없답니까?”
마왕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죄책감? 재미있는 소릴 하는 군. 내가 알기론 그 죄책감을 가진 드래곤은 하나 밖에 없어.”
루터는 마왕이 누굴 지칭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인간 세계에 머물고 있는 유일한 드래곤 콕스.
말 하는 것을 보아 그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활동하는 것을 눈 감아 주고 있는 듯 했다.
루터는 마왕이 이 애길 하는 이유를 알았다.
“분란으로 인한 갈등은 내부의 결속을 약화시키겠군요.”
“이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의도를 간파하는 군. 그래, 이제 북쪽으로 갈 시간이다.”
“알겠습니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군. 그래서 자네가 마음에 들어.”
“당신을 배신한 부하들의 처리는 나중으로 미루죠.”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러 왔어. 네 싸움을 지켜봤다. 예상하긴 했지만, 압도적이야. 더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면 나서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드래곤들이 더 문제야. 놈들은 종잡을 수 없는데, 능력도 있거든.”
드래곤 로드만 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강력한 마물을 소환할 수 있다.
루터도 드래곤 로드의 마물 소환은 꺼림칙했다.
마왕이 단호히 말했다.
“이 참에 놈들을 정리해야겠어.”
루터는 시큰둥했다.
“설마 이번에도 저 혼자 하라는 건 아니겠죠?”
마왕이 씩 웃었다.
“가능하잖아?”
“이번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애초에 당신의 변절한 부하들을 홀로 처리한 것은 조르주와 같이 부족한 자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엔 드래곤이라 예측이 쉽사리 되지 않는군요.”
루터는 일부러 발을 빼려 했다.
그는 마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
지금이야 마왕의 부하건 드래곤이건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마왕의 야욕은 낙사노르까지 닿아 있다.
드래곤을 처치하면 다음은 낙사노르의 마물이다.
그들과 싸우는 미래는 죽음이다.
루터는 마왕의 길이 파멸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했고, 들소 같이 기세를 끌어 올려는 지금 이때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심심한 반응에 내키지 않는 대답이 나왔다.
마왕이 혀를 찼다.
“담이 작군. 처음 만날 때,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로 갔나?”
“지금도 자신감은 충만합니다. 다만, 돌다리를 건널 때에도 두드려 보는 습관이 있어서 말이죠. 충분히 조사 한 뒤에 당신의 계획을 실행해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다가 드래곤들이 미친 짓을 할지도 몰라. 놈들은 내 옛 부하들과 달리 마력에 조예가 깊다. 힘은 뒤떨어져도 소환식이 뛰어나 감당 못 할 적을 불러들일 수가 있어.”
“당신이 있잖습니까. 당신의 부하들처럼 제약이 걸린 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설득이 자꾸만 막혀 들어간다.
그것도 마땅히 대답할 구실이 없었다. 마왕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다 한 가지 제안을 내밀었다.
“새로운 힘을 가르쳐주마.”
루터가 흠칫했다.
“새로운 힘? 또 배울 게 있습니까?”
“바로 소울. 영혼의 힘이다. 에네르와 결합하면 강력해지지.”
그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영혼을 다루면 먼저 싸웠던 필로아처럼 꿈과 정신의 세계에서도 부담없이 적들을 싸울 수 있다.”
“영혼을 끌어내는 법은 압니다.”
“그래. 하지만 에네르를 통해서였지. 영혼 자체의 힘은 아니지 않나? 내가 가르치는 것은 바로 영혼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이 또한 강력하며 에네르와 결합하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루터는 미끼를 덥썩 물었다.
“그럼 가르쳐 주시죠.”
“설마. 이번에도 맨 입으로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이맛살을 찌푸린 루터가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드래곤 로드를 죽이게.”
루터는 혀를 내둘렀다.
“결국 이런 식이로군요.”
“왜? 서로 좋잖나? 나는 잠재된 위협을 가진 드래곤 로드를 죽여서 좋고, 자네는 새로운 힘을 얻을 테니 좋고. 서로 도울 수 있잖나.”
“결국 나 혼자 싸우란 얘기 아닙니까? 대체 당신은 그 동안 뭘 하는 겁니까?”
“나는 바빠. 게다가 놈들은 내가 주위에 있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들이라 쉽사리 움직이기가 어려워.”
드래곤들은 마왕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구역을 나누고 철통같이 경계한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루터는 결국 자신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큰 손해는 아니지.’
드래곤 로드는 어떨지 몰라도 나머지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약 콕스와 같은 수준이라면 솔직히 말해 마왕의 부하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루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출발하도록 하죠.”
“잘 생각했어.”
원하는 바를 이룬 마왕의 만족스러운 얼굴이 흐릿해졌다.
“이제 드래곤의 씨가 마르겠구나.”
그가 사라지고 루터는 코웃음을 쳤다.
‘마왕이 날 경계한다.’
대가 없는 도움은 없다.
자신의 급격한 성장이 알 게 모르게 마왕에게 자극으로 돌아온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과 같이 대가없이 힘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래를 한다.
‘이용당할 수는 없지.’
마왕이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이 세계를 포기했다.
낙사노르와 평행을 이루는 세계에서 살 수 없다.
그렇지만 마왕을 거스를 수도 없다. 그는 측정 불가능한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다.
마왕을 거역하면 곧 죽음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반항 선에서 멈추고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루터는 이번을 계기로 마음을 더 강하게 추슬렀다.
‘떠난다. 영원히.’
빌어먹을 정도로 까마득한 괴물들의 틈바구니에 더는 끼어들지 않으리라.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루터는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서 평화로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굳건히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루터는 키아라와 함께 칼날 산맥 앞에 섰다.
시커먼 와이번들이 하늘을 배회하며 지옥의 호곡성과 같은 울음소리를 내뿜었지만 둘은 아랑곳 안했다.
몬스터의 수가 아무리 많든지 간에 자신들을 어찌 할 수 없다.
키아라가 루터와 다니는 게 좋은지 출발 할 때에는 항상 즐거운 웃음을 머금었다.
기괴한 괴성 속에 키아라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번에는 뭐 하는 거야?”
“칼날 산맥을 넘어 갈 거다.”
“북쪽? 거긴 드래곤이 산다면서.”
“그래. 이번엔 드래곤을 사냥한다.”
키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터와 함께라면 뭘 잡건 상관 없었다.
“알았어.”
“자, 가자.”
허공에 떠오른 둘은 이내 쏜살같이 산맥을 가로질렀다.
와이번들은 이방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성난 와이번 떼가 즉각 추격했지만, 둘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칼날 산맥을 벗어나 사막에 진입하자 와이번들은 더는 추적하지 않았다.
사막을 본 루터는 학구열에 휩싸였다.
“인간들 중에 사막을 횡단한 자들이 없었지.”
자신이 그랬듯, 사막 너머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 모두 한 가락 하는 자들이었다.
8서클 마도사도 있었고, 소드 마스터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사막 너머의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루터는 그래서 사막에 한 복판에 착지했다.
잘 비행하던 루터가 돌연 내려오자 키아라가 따라왔다.
그녀가 물었다.
“왜? 여기에 무슨 볼 일이 있어?”
“사막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오랫동안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아서 말이지.”
루터는 그 말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족적이 사막에 밟히는 순간 진동을 감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앙! 콰앙! 콰앙!
사방에서 모래 기둥이 연달아 치솟더니 맹렬한 날개짓 소리가 들려왔다.
키아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다 뭐야?”
솟구친 모래가 사라지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벌레들이 위협적으로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루터는 안력을 돋워 날벌레를 훑었다.
손바닥 만 한 크기의 벌레인데, 벌처럼 독침이 있었다.
“아마도 저 녀석들이 사막 너머의 비밀을 지킨 파수꾼인가 보다.”
윙윙윙!
벌레들이 구름 떼처럼 뭉쳐 움직이더니 루터를 향해 위협적으로 몰렸다.
그를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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