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78화 (78/185)

#78화 지도2

돌멩이를 바라보는 루터의 시선이 복잡하다.

‘이걸 사람들에게 팔라고?’

골치가 아파왔다.

어쩌다 발견하는 예쁜 조약돌도 아니었고 흙먼지에 투박하게 생긴 돌멩이였다.

당연히 팔릴 리가 없다.

루터는 마왕이 지시한 과정을 떠올렸다.

‘의도적이긴 한데, 즉흥적이었어. 분명 장사하라는 건 아닐 것이다.’

분명 내포한 속내가 있다.

헌데 그걸 모르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루터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장사를 하는 시늉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돌멩이를 쥔 채, 자리를 알아보는 루터의 표정이 곤란으로 가득하다.

‘빈자리가 없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인 할 생각은 꿈도 못 꿨으니 당연히 시장 바닥에서 자리를 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허나 이제는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니 자리를 찾아보려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빼곡하고 일렬로 메꿔져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루터는 오늘 하루 동안 몇 번이나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모르겠다.

‘다음엔 강제로라도 진의를 알아내야겠다.’

실용적이고 계획적인 그의 사고방식과 달리 마왕은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였다.

속으로 마왕의 무책임한 지도 방식에 투덜거리며 장소를 찾아 헤맨 루터가 결국 정한 곳은 좁은 골목길의 구석진 곳이었다.

그늘이 졌고 눈에 띄지 않았다.

허나 어쩌겠는가.

처지가 아쉬운 형편이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펴고 망토를 벗어 바닥에 깔았다. 돌멩이를 세어 보니 열다섯 개였다.

루터는 가판처럼 돌멩이를 망토 위에 올려놓고 팔짱을 낀 채, 앉았다.

돌멩이를 보는 그의 시선이 몹시 복잡하다.

‘대체 이걸 시키는 이유가 뭐지?’

의도를 알아내려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무슨 수작일까 고민하는 사이 인기척이 루터의 앞에 나타났다.

고개를 드니 더러운 넝마 차림의 두 아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님인가.

루터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의 용건은 다른 데에 있었다.

남자 아이가 루터가 앉은 자리를 가리켰다.

“아저씨. 거기 우리 자리에요.”

편 자리에 임자가 있었다.

루터는 말없이 둘을 빤히 바라봤다.

“히끅!”

남자 아이 뒤에 숨어 있던 여자 아이가 갑자기 딸꾹질을 했다.

루터의 무표정한 시선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남자 아이는 떨렸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예전부터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으니까 비켜 주세요.”

루터는 의아했다.

뒤에는 음침한 골목길에 앞은 다른 상인들이 가판을 거나하게 차려놔 손님이 올 구석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어린 아이가 장사를 한다.

루터는 남자 아이의 손에 돌돌 만 거적을 바라봤다.

아마 그 안에 팔 것들이 있나 보다.

그가 벌떡 일어서자 여자 아이가 깜짝 놀랐다.

“엄마야!”

해코지 할 줄 알았지만 골목길 구석 반대편으로 이동해 다시 주저앉았다.

아이들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루터를 바라보다 양보했다 생각했는지 안심하고 자리를 폈다.

펼친 거적에는 빛 바란 장신구 등이 담겨 있었다.

부식되어 여기저기 닳아 있었는데, 두 아이들은 신주 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거적 위에 장신구를 올려 두었다.

여자 아이가 반대편에 앉아 있는 루터를 힐끔 보더니 남자 아이에게 속삭였다.

“오빠. 나쁜 사람은 아닌가봐.”

“쉿! 들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

“응.”

쑥덕거리는 두 아이를 뒤로하고 루터는 다시 돌멩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왕의 의도가 무엇일까.

‘전혀 모르겠군.’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사이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 아이의 시선이 루터에게 닿았다.

“여행객일까? 아니면 취객? 왜 저기에 앉아 있지?”

“에밀리. 내가 뭐라고 했지? 이상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했지?”

“이상한 사람 같지 않은걸?”

“그래도 수상해. 아까부터 돌멩이만 뚫어져라 보고 있잖아. 아마 약이나 술에 취한 사람일 수도 있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 절대 관심 갖지 마.”

남자 아이의 엄포에 여자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움츠러 들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남자 아이가 심호흡을 하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예쁜 장신구가 있어요! 보러 와주세요!”

아이의 외침은 시끌벅적한 상인들의 고성에 묻혔다.

남자 아이가 시무룩해졌다.

낡은 장신구를 팔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여자 아이가 위로했다.

“괜찮아. 곧 다른 사람들이 사 줄거야.”

“응.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날이 저물고 밤이 되었다.

상인들이 가판대를 접고 자리를 떠날 채비를 했다.

아이들과 루터 모두 물건을 팔지 못했다.

시무룩해진 아이들이 일어나는데, 여자 아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파.”

“내일까지만 참아. 물건을 팔면 맛있는 걸 사줄게.”

“응.”

아이들이 돌아가려다 몸을 돌렸다.

여전히 루터는 앉아 있었다.

여자 아이가 루터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안 가요?”

하루 종일 근처에 있다 보니 경계심이 풀렸다.

루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 아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루터는 돌아가는 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사이 뒷골목에서 취객들의 고성방가가 들려오더니 이내 격렬한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달라는 비명성이 터지고 피 냄새가 풍겼다.

작업을 마친 패거리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재커슨 패밀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겠지.”

“크크크. 아마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안하겠지. 이 일대는 우리 패밀리 차지니까.”

“기분도 좋으니 한 잔 더 하러 가자고.”

웃던 이들이 빠져 나온 골목길 옆에 앉아 있는 루터를 발견했다.

“엉? 이 녀석은 뭐야?”

“왜 혼자 여기에 있지?”

“임마! 넌 뭐냐!”

일행의 시비에 루터는 대꾸도 안했다.

처음부터 내내 돌멩이만 바라보고 있는 데, 어찌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미동도 안했다.

“이게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왜 말이 없어!”

청년들이 벌컥 화를 내었다.

당장 시비가 터질 것 같았는데, 통통한 사내가 일행을 말렸다.

“냅둬. 꼴을 보아하니 중독자 같은데 그냥 무시하자고.”

“중독자?”

“뭐, 약이든지 도박이든지. 그런 녀석들 있잖아. 정신 하나 풀려서 늘 멍해 있는 것들.”

“이 놈도 그런 부류인가 보네.”

“퉤! 불쌍하니까 살려주마.”

“기분 잡치지 말고 술이나 퍼 마시자고.”

바닥에 침 뱉던 이들은 손대기도 성가신지 루터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시간이 또 지나니 이번엔 길가에 여자들이 나타났다.

얼굴에 허연 분을 칠하고 싸구려 드레스에 짙은 향수를 뿌린 창녀들이었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창백한 여자가 루터를 발견하곤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망설이던 그녀가 말을 걸었다.

“저, 저기. 가, 같이 놀래요?”

루터는 그녀의 유혹을 들은 채도 안했다.

돌연 여자가 기침을 토했다.

“콜록! 콜록!”

여자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해 보이던 그녀는 루터가 반응이 없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위태해 보인다.

허나 루터는 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돌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하루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움직였다. 루터는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는 장사에 대한 생각보다 마왕의 감춰진 의도를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그 사이 어제 보았던 여자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의 낌새가 이상해 보였다.

넝마에는 핏자국을 묻힌 채, 여자 아이는 울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가 루터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아저씨! 도와주세요!”

울음 바람으로 달려오는 아이의 다급한 애원에 루터는 시장에 와서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엉엉! 나쁜 사람들이 오빠를 때렸어요! 오빠가…….오빠가 많이 아파요.”

루터는 갈등하다 몸을 일으켰다.

“네 오빠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루터는 여자 아이를 따라 외성의 빈민가로 향했다.

다 쓰러져 가는 판자촌의 토굴에 남자 아이가 있었다.

남자 아이의 몸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때 늦은 후였다.

가슴에 찔린 상처가 치명적이었다.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가 죽은 줄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엉엉! 도와주세요!”

여자 아이의 애원에 루터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

“네, 네?”

“죽었다는 말이다.”

그의 무심한 말에 여자 아이가 창백한 얼굴로 남자 아이를 보다 이내 몸을 껴안으며 통곡했다.

“오빠! 오빠!”

서글피 우는 아이의 눈물이 씁쓸했다. 루터는 몸을 돌리려다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마왕의 등장에 흠칫했다.

마왕은 이제껏 봤던 표정 중에 가장 사나웠다.

그가 루터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한심하도다. 네게 정말로 실망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뭘 하라는 겁니까?”

“굶주린 아이들이 외면하고 악한 패거리들을 내버려 두었다. 또한 죽어가는 창녀를 무시했지. 대체 너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

마왕의 힐난에 루터가 얼굴을 굳혔다. 그가 자신에게 요구한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루터가 물었다.

“장사는 상관없었고, 타인을 도우라는 것이었습니까?”

“쯔쯧. 그런 게 아니다.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마음을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시장은 온갖 인간 군상들이 집결하는 곳이다. 그 곳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울리고 섞여 네 마음을 움직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동정심, 분노, 이타심. 그 어느 것도 비추질 않았다.”

마왕이 돌연 루터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마음이 닫혀 있어. 그래 가지곤 어느 무엇도 할 수 없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래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음의 소리? 마음의 소리가 뭡니까?”

“때로는 목적을 추구하지 말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풍요로움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되며 결국 궁극으로 향하는 진실이다.”

혀를 찬 마왕이 지시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 다 아니까.”

의문투성인 채 바라보던 루터가 얼굴을 굳혔다.

그가 물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조르주를 잘도 가지고 놀더군. 이제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조금씩 올 거야. 그러니 전과 다른 모습을 기대하마. 그리고 명심해. 돌멩이는 다 팔아야 한다.”

루터는 복잡한 눈으로 마왕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죠.”

그는 여전히 울고 있는 여자 아이를 바라봤다.

“마음의 소리라…….”

중얼거리던 그는 시간을 돌렸다.

마왕이 그에게 돌멩이를 주던 그 때로.

시간을 되돌리니 환한 대낮에 돌멩이를 쥔 채, 시장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루터는 자신의 손바닥에 들린 돌멩이를 바라보다 두리번거렸다.

마왕은 없었다.

루터는 돌멩이를 바라봤다.

‘장사가 목적이 아니었군.’

그럴 줄은 알았는데, 의도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마음을 움직이라는 마왕의 지시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제까지는 잘만 살았는데, 마왕은 그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루터는 마왕이 준 과제가 쉽지 않다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골목길 입구에 자리하자 아이들이 루터를 향해 다가왔다.

‘마음의 소리라…….’

다시 한 번 중얼거린 그는 다가오는 아이들을 향해 바뀐 태도를 보였다.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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