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52화 (52/185)

#52화 각자의 꿈

칼루아와 신목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모두 상태창에 관해서였다.

루터는 이들에게 제약을 없앴다.

스스로의 의지를 마음껏 표출하게 했으니 열린 사고방식은 상상력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었고 또한 제한이 없었다.

칼루아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쳤다.

“공동체로 활용하는 게 어떨까?”

[공동체?]

“그래! 옆에 있지 않아도 어디에 있더라도 상태창을 이용해 서로가 소통하는 거야! 언제 어디에서든 마음껏 대화할 수 있어. 상태창을 통해 모두를 한 공간에 묶는 거지.”

칼루아의 의견에 신목이 하나를 더 추가했다.

[나는 상태창을 가진 이들을 좀 더 돕고 싶어. 칼루아. 네 의견대로라면 내가 그들을 돕는 방법이 한결 수월해질 거야.]

신목은 상태창을 가진 모든 이들과 소통하길 원했다.

칼루아가 팔을 걷어붙였다.

“좋아! 그러면 한번 해보자고!”

권한을 갖고 있으니 수정과 보완이 시작되었다.

칼루아는 상태창을 가진 모든 이들을 불러들이고 앞으로의 일을 설명했다.

버드나무 앞에 선 엘레나 등은 칼루아의 열변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릴까?”

“상태창에 통신구 같은 기능을 넣으려고 하나 봐.”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하다면 엄청난 일이지.”

통신구는 가격만 하더라도 수천 골드를 상회한다.

그런 통신구의 역할을 겸한다고 생각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설명을 마친 칼루아가 활짝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 그럼 누가 먼저 해보겠어?”

칼루아의 제안에 엘레나가 가장 먼저 나섰다.

“내가 할게.”

통신 기능이 생긴다는 것에 깊은 호기심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좋아! 엘레나. 이리와!”

엘레나를 불러들인 칼라우가 신목 앞에 그녀를 세웠다.

“조금만 기다려! 놀라운 일이 벌어질 테니까.”

칼루아의 호들갑에 엘레나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말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신목의 버드나무 가지가 엘레나의 몸에 닿았다.

그 동작이 한 번 이루어졌는데, 돌연 그녀의 머릿속에서 신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엘레나.]

“앗!”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

칼루아가 빙그레 웃었다.

[내 목소리도 들려?]

“헉!”

숨을 삼킨 그녀가 얼떨떨한 눈으로 물었다.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그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대상의 이미지를 떠올린 뒤,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생각해 봐.]

칼루아의 안내에 엘레나가 생각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드, 들려?]

칼루아를 떠올린 그녀가 말을 건넸다. 칼루아가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했어!”

엘레나는 본인이 하고도 얼떨떨했다.

“이거 정말 신기하네.”

“대상을 떠올리는 게 가장 중요해.”

엘레나를 시작으로 상태창을 가진 이들의 기능을 늘리는 일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곧잘 적응했다. 그리고 각자 시험하기 시작했다.

홀로 있던 돌켄이 까마득하게 멀어진 자크를 향해 목소리를 전달했다.

[자크. 내 말 들려?]

[잘 들린다.]

[하하. 이거 신기하네.]

전과 달리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자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는 이종족들과 함께 있는 엘레나에게 닿았다.

[엘레나. 돌켄이 의식적으로 너와 거리를 벌리고 있는 걸 알고 있나?]

이종족들에게 미소를 짓고 있던 엘레나가 흠칫하며 자크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녀의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그래서?]

[통신 기능을 이용해 서로 서먹함을 풀어 보는 게 어떻겠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있으니 어색함은 덜 할 거다.]

자크의 조언에 엘레나가 머뭇거렸다. 돌켄이 그런 엘레나를 향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 네 행동이 돌켄을 점점 위축시키고 있다. 돌켄보다는 네가 먼저 나서라.]

엘레나는 돌켄을 쳐다봤다.

홀로 어슬렁거리며 내려트린 어깨가 안쓰럽다.

[알았어.]

자크의 말이 맞았다.

돌켄이 더 위축되기 전에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엘레나가 돌켄을 향해 목소리를 전달했다.

[돌켄. 나랑 얘기 좀 해.]

흠칫한 돌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엘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엘레나가 말했다.

[그때 있었던 일은 나도 까맣게 잊었어. 그러니까 너무 주눅들것 없어.]

엘레나의 말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리는지 돌켄이 얼굴을 붉혔다.

그가 더듬거렸다.

[미, 미안하다.]

[이런 일로 서로 어색하지 말자. 아,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빛에 쏘였을 때, 네 행동에 조금 감동했어.]

다쳤을 때, 발끈하며 분노하던 돌켄이 제법 괜찮게 보였나 보다.

그녀의 칭찬에 돌켄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동료가 다치면 당연히 도와주어야지.]

[좋아. 그러면 앞으로도 예전처럼 동료로 잘 지내자고.]

쾌활한 엘레나의 목소리에 돌켄이 씩 웃었다.

[그래. 물론이지.]

활기찬 목소리가 반갑다.

멀리서 보던 엘레나가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돌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라…….”

가깝고도 멀게 느껴진다.

돌켄은 무거운 얼굴로 쾌활하게 웃고 있는 엘레나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의도대로 상태창을 통해 연결을 성공한 신목은 모두와 대화를 요청했다.

신목은 루터의 지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수많은 지식을 토대로 고민에 빠진 이종족들을 돕기 시작했다.

시작은 오우거 족 펜트라였다.

펜트라는 마법을 발현하는 재능보다 마법을 통해 무언가를 제작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신목은 그런 펜트라에게 아티팩트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티팩트는 쉽게 말해 마법 무구를 만드는 것이다.

마법적 기능을 가진 도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펜트라는 자신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펜트라와 비슷한 고민에 쌓인 이종족은 많았다.

고블린 족인 랑델은 제작하는 것을 좋아했다.

철광석을 녹이고 부속품을 만들었는데, 주로 바퀴를 연결하는 이음새나 농기구 등이었다.

손재주가 유난히 좋아 랑델의 실력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랑델은 그 크고 웅장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신목은 그런 랑델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랑델은 신목과의 대화를 통해 성을 축조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도면을 만들어 구조를 짠 뒤, 제작하는 방법까지.

배움을 얻은 랑델은 그 날부터 공동 중앙에 성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개성이 넘치는 이종족은 각자 지향하는 바가 달랐다.

누군가는 동, 식물을 연구하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색다른 무기를 다루고 싶어 했다.

신목은 그런 이종족들의 등대 역할을 맡았다. 방법을 가르쳐 주고 방향을 제시했다.

언제 어디서든 대화가 가능하니 모르는 것은 바로 물어보고 배웠다.

배움은 곧 결과로 나타났다.

공동에 문화가 태동했다.

종이와 잉크가 나타났다.

그러자 그림을 그리는 이종족이 나타났고, 노래를 부르는 이종족도 생겨났다.

악기를 만들고 또한 다뤘다.

융성한 문화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루터가 나타날 즈음에는 수많은 것들이 실현되고 있었다.

엘레나는 노래 부르는 이종족을 보며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고운 목소리의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담고 있었다.

부르는 노래에 따라 그들이 직접 배우고 제작한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부드러운 선율과 사랑이 담긴 노래는 모두가 흠뻑 빠졌다.

엘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행복하게 웃는 이종족들 사이에 있는 루터의 모습이 보였다.

“루터 님은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키아라와의 첫 대면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다.

케인은 이종족들이 직접 담근 발효주를 입에 넣었다.

향긋한 향과 더불어 부드러운 목 넘김이 뛰어났다.

그가 술을 마시며 대꾸했다.

“충분히 예상하셨겠지.”

처음부터 이종족을 보는 시선이 달랐다. 그러니 이런 일을 보는 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다.

돌켄은 아연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그들이 참가한 자리는 바로 결혼식이었다.

그렇게 서로 붙어 다니던 샤넨과 펠로그의 결혼식이었다.

신목은 생활 전반에 거쳐 지식을 전수했는데, 그중 하나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교육이 마치자 샤넨과 펠로그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결혼을 알렸다.

공동 내의 모든 이종족이 찾아왔고 연회가 벌어졌다.

꽃잎을 뿌리고, 노래를 부른다.

모두가 웃으며 즐거워한다.

자크가 중얼거렸다.

“이종족들에게 삶을 준다고 하셨지.”

당시에는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수긍이 갔다.

결혼하고 행복해하는 샤넨과 펠로그를 보니 절로 삶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돌켄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대단한 분이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감탄만 나왔다.

엘레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또 궁금하네. 혹시 알아? 지금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지.”

“이미 시작되고 있어.”

케인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펑펑펑!

결혼을 축하하는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케인이 보기에 공동 내의 이종족들의 변화는 이미 인간의 문화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땅의 정령왕과의 일을 마치고 다른 속성의 정령계를 치유하려 했다.

하지만 이종족이 결혼을 한다는 말에 모든 일을 제쳐 두었다.

결혼이란 가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당연히 축복을 해 주어야 한다.

루터는 첫 결혼을 하는 샤넨과 펠로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내 앞에 서거라.”

루터는 샤넨과 펠로그의 머리말에 무언가를 뿌리듯 손을 저었다.

눈 부신 빛이 두 사람의 머리에 가라앉았다.

샤넨이 말했다.

“마음이 따듯해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축복이다. 앞으로 평안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조르주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그가 발휘한 빛의 속성의 실마리를 깨우친 루터였다.

빛의 속성은 일종의 각인효과가 있다. 한 번 뿌려두면 두고두고 효과를 본다.

강한 효과는 짧지만 간단한 효과는 오래간다.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룬어의 빛을 주었으니 어지간하면 튼튼하게 잘 살 것이다.

설명하던 루터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샤넨을 바라봤다.

“존댓말은 어디서 배운 거냐?”

펠로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신목님이 가르쳐 줬어요. 루터 님한테는 존경의 표시로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샤넨이 잽싸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에요.”

루터의 시선이 묘해졌다.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많은 것이 변화했다.

하루가 남다르게 변화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예 생활양식이 달라졌다.

결혼식을 마치고 루터는 신목과 칼루아와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많이 변했다.”

“히히. 저희들이 다 한 거예요.”

“그래. 잘했다.”

루터는 제법 놀랐다.

칼루아와 신목은 자신이 못한 일을 해내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삶이라는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실현 시켰다.

예전에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 어설프게 만든 옷을 입으며 수련을 추구하며 지냈다면, 현재는 제대로 갖춘 의복과 뚜렷하고 명확한 자신들만의 일을 하고 있다.

신목과 칼루아는 자신이 내린 지시 이상의 일을 해내었다.

그러니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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