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서클 영주님-50화 (50/185)

#50화 정령계2

자신보다 크다고 해서 지레 위축될 건 없다. 전투력이 더 나은 상황에서 상대의 비대한 몸은 오히려 약점이다.

골렘들이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리 빨라도 무게 대비 속도에서 루터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양 골렘 사이에 있던 루터가 몸을 움직였다.

그가 비켜선 자리로 태산처럼 거대한 양 골렘의 주먹이 서로 맞닿는다.

콰아아앙!

있는 힘껏 내질러서인지 부딪힌 주먹이 산산조각이 난다.

비산하는 돌 파편을 보며 루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종말이 벌어지는 것 같네.”

일전에 조르주를 상대로 일으킨 기가 메테오를 연달아 보는 것 같다.

워낙 거대하다 보니 충돌의 규모가 남달랐다.

허나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골렘의 수가 워낙 많았다.

“대체 앞에 뭐가 있기에 가로막고 있는 거냐?”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듯한데, 본능은 남아 있어 낯선 이방인의 전진을 막는 것 같다.

루터는 바람을 일으켰다.

거대한 태풍이 골렘들의 가운데에 떠올랐다.

골렘들은 꿈쩍도 안 했다.

크기가 워낙 커서 어지간한 바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런데 루터의 마법은 어지간한 바람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바람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

거대한 골렘조차 뒤뚱거릴 정도로 부는 바람이 거칠다.

미풍은 강풍이 되고, 이내 흉포해졌다.

9서클 마법. 기가 토네이도.

거대 골렘 사이로 나선형의 칼바람이 사방을 쓸어 삼키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골렘들의 신체 파편이 부서지며 빨려갔다. 기가 토네이도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빼곡하게 차 있던 골렘들이 무너진다.

사납던 기가 토네이도는 사방이 고요해지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마법을 마친 루터는 돌무더기를 제외하곤 조용해진 것을 확인했다.

웅장하게 등장했지만, 결국 그뿐이다. 루터가 중얼거렸다.

“폭주 상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가로막은 건가?”

정령들은 한눈에도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루터가 전방을 바라봤다.

“분명 저곳에 뭔가가 있다.”

뭐가 또 가로막건 이젠 궁금해서라도 반드시 확인해야겠다.

거대 골렘을 해치운 루터는 더 이상 가로막을 정령이 없자 다시 나아가려 했다.

헌데, 그의 움직임을 막는 소리가 있었다.

그으으응!

신음하는 대지의 울림에 루터는 멈칫했다.

“뭐지?”

어리둥절한 그가 땅을 내려다봤다.

무너져 내린 암석 파편 아래 깊은 바닥에서 고동처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터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거대 골렘의 흔적이었던 돌무더기 파편을 지나고 가뭄이 온 것처럼 쩍쩍 갈라진 바닥 밑으로 내려갔다.

차갑고 어두운 깊은 바닥 밑으로 계속 내려가도 소리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의아해하던 루터는 돌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텔레포트로 공중으로 이동했다.

점점 위로 솟구친 그는 바닥이 점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높이 떠오른 그는 그제야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가 지나쳤던 대지 전체가 보였다.

루터가 눈을 빛냈다.

“드디어 찾았다.”

그가 찾던 것은 땅 속에 숨은 존재가 아니었다. 바로 폭주한 정령들이 지지대 삼던 땅 자체였다.

“어마어마하군.”

한 세계의 근본 역할을 하는 대지라니, 크기는 고사하고 대체 어느 정도의 존재인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루터는 턱을 쓸었다.

“대지가 시름을 한다고?”

고동처럼 울려 퍼지는 괴로움의 울림이었다.

“대지 전체가 고통을 받으니 그 위의 정령들이 미쳐 날뛰는 거였어.”

한 세계를 지탱하는 존재가 괴로움에 울부짖고 있다. 정령들이 흉포하게 된 원인이 저곳에 있었다.

루터는 시름하는 대지의 정체를 짐작했다.

“혹시 저게 정령왕인가?”

정령술은 작게는 하급부터 시작하여 정령왕까지 닿는다고 한다.

만약 이곳이 정령계이고, 저 대지가 정령왕이라면 지금까지의 이해 못 할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9서클이 되니 별 걸 다 보네.”

정령왕이든 아니든, 정령의 근간을 이루는 대지의 주인이었다.

신기하다는 생각도 잠시였다.

“어째서 저렇게 된 건지?”

궁금하면 해결하면 된다.

루터가 생각했다.

“치유할 수 있을까?”

때마침 조르주의 빛 속성이 있었다.

빛 속성은 치유의 근간이다.

루터는 자신의 목표를 세웠다.

“대지를 치유해보자.”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만약 대지를 고쳐준다면, 자신은 한 세계의 은인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방금처럼 골렘들이 자신을 공격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령의 힘을 접해보고 싶고, 사용해보고 싶었다.

루터는 시름하는 대지를 고쳐보기로 다짐했다.

바닥에 선 루터는 정령 하나를 붙잡아두고 있었다.

처음 정령계에 들어왔을 때 시름하던 정령이었는데 자신에게 변변찮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하급 정령 같았다.

그런데 빛의 속성을 이용한 정화 작업이 그 하급 정령에게 통하지 않고 있었다.

루터는 골치가 아팠다.

“룬어가 아닌 이계의 존재라 그런가. 치료가 쉽지 않아.”

그의 세계는 룬어였지만, 이 세계는 아니었다.

만약 룬어의 세계였다면 고치는 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내면을 넘어 근본을 보는 그의 눈이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허나 정령들은 달랐다.

그러니 룬어 세계의 방식대로 치유계 속성으로 치료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루터의 좁힌 미간이 일이 뜻대로 안 풀리는 것을 반증한다.

씨름하던 루터는 빛의 속성을 개 모양을 한 정령에게 퍼붓는 것을 포기했다.

“맞질 않아. 이게 아니야.”

빛의 속성은 절대 정령을 치유하지 못한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그그그!”

그사이 개 모양의 정령이 부들부들 떨더니 퍼석 하며 부서졌다.

루터는 부서진 돌의 파편을 매만졌다. 먼지로 만들어진 것처럼 경도가 약했다.

그가 가늘게 중얼거렸다.

“땅 속성 정령이라…….”

깊게 고심하던 그가 돌연 바닥에 마법진을 뿌리고 근처에 쓰러져 부들거리는 정령을 들어 올렸다.

정령을 보는 그의 시선에 확신이 차올랐다.

“이번엔 가능하겠지.”

기대를 품으니 동작이 힘차다.

정령을 마법진 위에 올려놓은 루터가 마법을 사용했다.

드드드드!

변환한 마력에서 땅의 기운이 흘러 나와 땅의 정령을 감쌌다.

“그그그…….”

부들거리던 정령이 몸을 멈췄다.

루터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된다!’

정령과 땅의 기운이 뒤섞이며 형체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퍽퍽하고 마른 몸이 통통해졌으며 황갈색을 띠고 윤기를 머금었다.

건강해진 정령이 벌떡 일어나더니 루터를 향해 점프했다.

“컹컹!”

정령의 힘찬 울음소리에 루터가 미소를 띠었다.

“성공했어.”

역시나 속성 정령은 같은 속성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자신이 보유한 혼돈의 마나를 땅 속성으로 바꿨고 빛 속성의, 치유력을 혼합했다.

그러자 즉각 효과를 본다.

치유받은 정령은 개를 닮았다.

꼬리를 흔들고 혀를 내물며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던 정령이 고개를 돌려 시름하는 동료들을 본다.

“끼이잉! 끼이잉!”

구슬픈 정령의 울음소리에 슬픔이 가득하다.

루터는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라. 고치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네 친구들을 도와주마.”

알아들은 걸까.

정령은 루터의 위로 한마디에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했다.

물 한 줌으로는 산불을 끌 수 없으며 가뭄을 해결할 수 없다.

계획을 구상한 루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문제는 안전이었다.

실행을 할 때, 다시금 대지의 정령들이 튀어나와 공격을 한다면 속수무책이다.

그는 대지 전체에 마법진을 그린 뒤, 마나를 쏟아 부어 한 번에 치유할 생각이었다.

워낙 광범위한 탓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소모될 것이다.

그사이에 폭주한 골렘이 갑자기 공격이라도 한다면 위험한 것은 당연했다.

루터는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이게 최선이다.”

정령을 치료해도 대지가 말썽이면 무소용이다. 게다가 그가 있는 세계는 정령계.

원래 있던 세계와 달리 마나의 소통이 원활한 곳이 아닌지라 꾸준한 활동이 불가능하다.

결국 한 방에 깔끔하게 해결하는 게 낫다.

던진 주사위는 돌아오지 않는다.

계획을 짠 루터는 곧장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컹컹!”

어깨에 매달린 정령이 신나게 짖는다.

하늘은 날지 못했기에 폭주한 다른 정령에게 공격받을까 봐 데리고 다녔더니 신나서 꼬리가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원래 사람을 잘 따르나?’

정령은 친화력에 따라 부릴 수 있는 등급이 존재하는데 이 개처럼 생긴 정령은 아마 하급 정령 노움일 것이다.

자신을 따르는 노움을 보니 궁금증이 일었다.

‘인간이 정령을 다룰 수 있을까?’

신화에 의거하면 정령은 엘프의 전유물과 같은 존재다.

인간이 정령을 부렸다는 기록이 없었으니, 루터는 자신을 따르는 정령이 제법 신기했다.

‘친화력이 없으면 부릴 수 없다고 한 것 같은데.’

친화력은 정령을 부리는 데 필요한 요소다.

마나와 비슷한 능력인데, 이 힘이 없으면 정령과 계약을 하지 못한다.

‘흥미로운 연구대상이지.’

루터는 자신을 보며 꼬리를 흔드는 노움을 보며 작업에 착수했다.

루터는 들썩이는 대지를 내려다보며 각오를 다졌다.

‘한 번에 끝낸다.’

전신의 모든 마력을 방출하리라.

루터는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

바닥을 겨누듯이 팔을 뻗은 루터가 그림을 그리듯 마법진을 그렸다.

의지를 이행하는 마법진이 대지 위에서 천천히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마법진은 증폭 효과와 땅 속성 마법을 강화하고 더불어 조르주를 통해 착안한 치유 속성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마나를 전달하는 일이다.

루터는 자신이 가진 마나를 마법진에 밀어 넣었다.

콰아아앙!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지축 음과 함께 지면이 빛에 물들었다.

루터의 마력이 대지를 뒤덮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들썩이던 땅이 가라앉고 울부짖던 정령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가만히 루터의 땅 속성 기운을 받아들이는 정령이 있는가 하면 저항하는 정령도 있었다.

드르르륵!

일어선 흉포한 골렘들이 일제히 루터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마나를 주입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지라 방비할 방법이 없다.

“컹컹컹!”

그때, 그의 어깨에 매달린 노움이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치유가 빨랐던 하급 정령 노움들이 우르르 몰려와 골렘에게 달라붙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신장과 힘이 월등한 거대 골렘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튕겨나가고 부서졌지만, 그래도 루터를 겨냥하는 골렘들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드드드드!

거대 골렘이 바위를 들어 올렸다.

팔을 당겨 루터를 겨냥했다.

노움들이 사력을 다해 골렘에게 달라붙었다. 이빨로 물거나 몸통 박치기를 해도 거대 골렘은 끄떡도 안했다.

“컹컹!”

“컹컹컹!”

별반 소용없는 저항은 물리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다른 정령들을 불러들이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루터의 마력에 의해 치유 효과를 본 다른 등급의 정령들이 나타나 거대 골렘들을 가로막았다.

노움은 힘을 못 썼지만, 다른 정령들은 달랐다.

상대적으로 작은 골렘들은 숫자를 이용해 거대 골렘들을 두드렸다.

가슴에 돌무더기를 받은 거대 골렘이 뒤뚱거렸다.

몸이 움직이는 바람에 던진 바위가 전혀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치유받은 정령과 그렇지 않은 정령 간의 얽히고설킨 사투가 벌어졌다.

루터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마력을 붓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눈이 대지에 닿았다.

‘소리가 그쳤다.’

시간 간격으로 고동처럼 울던 대지의 깊은 울음이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부어넣는 대지 속성의 치유 마법이 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니 날뛰던 거대 골렘들이 잠잠해졌다. 들썩이던 대지는 차분해지고 황무지 같던 바닥은 비옥해졌다.

대지에 마나를 퍼부었던 루터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땅 속성 기운의 치유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 마나를 모조리 소모했다.

플라이 마법을 간신히 유지할 정도의 마나만 남긴 채 내려앉은 그에게 모든 정령들이 다가왔다.

정령들을 요목조목 살피던 루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개성을 띤 정령들의 모습에서 예전과 같은 고통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냈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던 정령들을 해방시켰다.

성취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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